전생의 아버지를 알아보고 달려가 껴안은 인도 소녀 이야기
美 베테랑 기자와 80세 老학자의 前生 추적 동행기(9) -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아이, 차에 치여 숨진 전생 대상자

金永男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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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슨 박사 일행의 레바논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됐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이로부터 얼마 후 스티븐슨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인도 출장 일정이 잡혔는데 동행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레바논의 사례들을 직접 접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었다고 했다.


레바논의 경우는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는 아이들의 사례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이유가 외부인과의 교류가 적은 레바논 드루즈파의 특성상 이런 현상이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도 떠올랐다고 했다. 전생에 대한 거짓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드루즈파 신자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환생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생을 떠올려내는 것인지 궁금했다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일부 회의론자들이 레바논 드루즈파를 중심으로 전생 사례가 많이 나오는 이유로 문화 특성을 꼽는다고 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전생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슈로더는 만약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레바논에서만 이런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인도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언어와 지역이 다른 곳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면 이를 단순한 문화 차이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이렇게 인도 북부 델리를 찾아가 스티븐슨 박사를 다시 한 번 만났다. 인도에서는 사트완트 파스리차라는 여성 심리학자가 오랫동안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를 도왔다고 한다. 이 여성은 시크교도였다.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융합된 종교였다. 시크교는 힌두교의 환생 개념을 거의 똑같이 믿는다고 한다. 전생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삶이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착한 삶을 살면 좋은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못 되게 살면 나쁜 삶, 나아가 인간이 아닌 동물로 환생할 수도 있다는 믿음이다. 스티븐슨 박사의 인도 연구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은 사트완트의 종교를 문제 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가 환생을 믿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은 연구, 혹은 통역을 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사트완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사트완트는 “누군가가 힌두교인이든 아니든 과학자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스티븐슨 박사가 연구하는 사례들은 힌두교의 환생 개념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 때문에 처음에는 본인도 회의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스티븐슨 박사의 사례들을 함께 연구하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됐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이 인도에서 처음 조사한 사례는 프리티라는 7세 소녀의 사례였다. 아이의 아버지 이름은 탁 램으로 뉴델리에 있는 전화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이 사는 곳은 뉴델리로부터 두 시간 이상 떨어진 시골 지역이었다.


탁 램은 스티븐슨 박사 등에게, 딸 프리티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형제들에게 “이 집은 너네 집이지 내 집이 아니다. 저 사람들을 너네 부모지 내 부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한 여자형제에게는 “너는 남자형제가 한 명뿐이지만 나는 네 명이나 된다”고도 했고, 자신의 이름이 프리티가 아니라 셰일라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의 부모 이름이 무엇인지 말했고 자신이 살던 동네는 지금의 집으로부터 약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아마즈라라는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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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은 셰일라이고, 전생의 집이 훨씬 더 크고 좋았다고 말한 인도 소녀 프리티. (출처: 톰 슈로더 著 Old Souls)

 

프리티의 부모는 로아마즈라라는 지역을 방문한 적도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딸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하지 말라고 다그쳤었다고 했다. 슈로더 기자는 앞서 레바논에서 조사한 사례들과는 달리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가 하는 말을 믿어서거나, 아니면 아이에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주입한 것이 아닌 사례인 것 같아 흥미로웠다고 했다.


아버지 탁 램은 “프리티가 네 살쯤 됐을 때 밀크맨(우유배달원)을 향해 ‘이 사람들이 나를 내 고향으로 데려가주지 않는데 나를 데려가 주겠느냐’고 물었었다”고 했다. 슈로더 기자는 탁 램 가족이 사는 시골에도 우유 배달원이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이 밀크맨이라고 불린 사람은 근처에 거주하며 물소 젖을 거래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밀크맨은 로아마즈라에 사는 그가 아는 사람에게 프리티의 이야기를 전했다. 프리티가 아버지의 이름이 카르나이고 어머니의 이름이 아구리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또한 이들 부부에겐 셰일라라는 딸이 있는데 이 딸을 잃은 부모를 알고 있느냐고 했다.


이 밀크맨의 지인인 여성은 카란 싱이라는 이름의 남성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카르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했다. 셰일라라는 10대의 딸이 있었는데 차에 치여 숨졌었다고 했다. 또한 카란의 부인 이름은 아구라가 맞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로아마즈라 지역에도 퍼지게 됐고 죽은 소녀의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프리티를 찾아왔다고 한다. 프리티의 아버지 탁 램은 아이가 셰일라의 아버지를 보자마자 알아봤고 그와 함께 온 다른 사람들도 여럿 알아봤다고 했다.


슈로더 기자는 스티븐슨 박사와 이런 사례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전생의 부모 등 누군가를 알아봤다는 사례들은 충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도나 레바논 사례의 경우 시골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시골에서 발생하는 것의 문제는 동네에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생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와, 전생 대상자의 가족 구성원 사이의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한계가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아이가 맞춰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귀띔해주거나 손짓 등으로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프리티의 아버지에게 전생의 아버지가 다가오는 것을 아이가 지켜봤었냐고 물었다. 아버지 탁 램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는 아직 학교에 있었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에 사람들이 다 몰려와 있었을 때였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는 프리티의 언니를 인터뷰해보고 싶다고 했다. 프리티의 언니는 11세로 프리티가 전생 대상자를 만났을 때는 9세였다. 프리티의 언니는 “동생과 함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게 보였다”며 “프리티가 내게 기대더니 귓속말로, ‘내 아버지가 여기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탁 램은 사람들이 프리티에게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 물어봤었다고 했다. 프리티는 카르나 싱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를 껴안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간 프리티는 계속 카르나 싱의 가족과 교류하며 지냈다고 했다.


탁 램은 프리티가 전생의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는 항상 외톨이처럼 지냈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지도 않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을 네다섯 번 만나고 난 뒤부터는 훨씬 더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같았고 더 이상 불행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는 “프리티가 전생에서 어떻게 죽게 됐는지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프리티의 어머니는 “아이가 말한 건 ‘위에서 떨어졌고 죽게 됐다’는 것뿐이었다”고 답했다. 어머니는 “하루는 내가 프리티에게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니’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며 “아이는 ‘강가에 앉아 울고 있었고 어머니를 찾지 못해 당신과 함께 오게 됐다’고 답했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프리티 가족에 대한 조사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슈로더 기자는 프리티 가족 하나만 인터뷰하는데 한나절이 걸린 것을 떠올리며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사뭇 깨닫게 됐다고 했다. 전세계에 있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사례 2500건 이상을 조사한 것인데 이들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느냐는 것이었다.


슈로더 기자는 셰일라가 차에 치여 숨졌다고 한다면 이에 대해 프리티나 가족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프리티가 직접적으로 차에 치여 숨졌다고 말한 것으로 설득, 혹은 조작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슈로더는 “위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차에 치인 것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셰일라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교통사고 목격자가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과거 차에 치이는 보행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하늘 위로 붕 떴다가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얼마 후, 스티븐슨 박사의 통역을 맡은 사트완트는 인도의 한 잡지에 실린 셰일라의 사고 기사를 찾아왔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셰일라라는 15세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 모이를 주기 위한 풀을 뜯으러 가고 있었다. 그러다 낫을 가져오는 것을 깜빡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차 한 대가 셰일라를 치었고 공중으로 3m 이상 튕겨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슈로더는 같은 기자 입장에서 이 글을 쓴 기자가 사고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과장 화법을 쓴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고 했다. 실제로 사고 피해자가 하늘을 날아갈 정도로 튀어 올랐는지를 확인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셰일라의 사례와 ‘위에서 떨어져 죽게 됐다’는 프리티의 사례를 연결 짓고 있는 기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슈로더 기자는 이를 감안하면 해당 기사의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지어낼 동기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은 셰일라의 가족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계속)

[ 2022-06-04, 05: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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