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대통령, 진짜 대한민국

나의 일생에 길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불의에 부딪칠 때 불쏘시개가 되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나는 ‘일진’이라는 아이한테 칼을 맞은 적이 있다. 그 아이가 뒤에서 기습했다. 비겁했다. 귀가 잘리고 볼에 길게 칼자국이 났다. 그 아이는 재벌의 아들이었다. 학교측은 그 아이를 퇴학시키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 사건이 왜곡됐다. 서로 싸우다가 그렇게 된 것으로 사실이 만들어졌다. 둘 다 무기정학에 처해졌다. 그 아이는 퇴학을 면했지만 피해자인 내가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건 납득할 수 없었다. 명문 학교에서 무기정학은 일반사회에서 전과자가 되는 것보다 더 참혹했다. 처절한 소외였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나를 만나지 말라고 엄명했다. 당시 징계절차는 교사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배심제 비슷했다. 어느 날 아직 젊었던 수학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재벌 집에서 교사 전체를 워커힐호텔에 초대해 대접을 했어. 돈 봉투와 고급 양복표도 받았지. 그걸 받고 너를 무기정학을 주는 쪽에 투표했어. 양심상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너에게 말을 해 두어야 될 것 같았다. 미안하다.”

재벌 집 아이가 있던 반의 담임선생님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이라 이 사건을 주도했다. 나는 다른 선생보다 돈을 훨씬 많이 받았다. 교육자로서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미안하다.”

칼로 받은 상처보다 교사의 양심고백이 내 뼈를 깎는 것 같이 더 아팠다. 나는 교감선생을 찾아가 말했었다.

“자퇴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교감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명문학교라는 게 단지 공부를 잘한다는 증명이 아니다. 훗날 사회에서 너를 끌어주고 받쳐주는 사다리가 될 텐데 그냥 참고 졸업장을 받아두는 게 어떻겠니?”

어느 날 훈육 담당 선생이 방과 후 상담실에서 조용히 보자고 했다. 그 선생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재벌이 약자를 짓밟는 세상이다. 너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뒤집어엎나 살아가면서 잘 생각해 봐야 할 거야.”

그 사건은 내게는 최고의 스승이고 길잡이가 된 것 같다. 남보다 일찍 산봉우리를 넘는 경험을 가졌다고 할까. 나는 그 봉우리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세상이 어떤지를 얼마쯤은 깨달은 것 같았다. 그 사건이 나를 법률가이자 작가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청부 살인범을 변호했었다. 준재벌 사모님이 사들여 온 판사 사위가 다른 여자가 있는 것으로 오해했다. 사모님은 의심이 가는 여성을 살해하라고 청부했었다. 어느 날 감옥에서 살인범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모님 측에서 내가 미행하다가 실수로 죽였다고 법정에서 진술해 주면 50억을 주겠답니다. 그렇게 하면 나는 과실치사로 경미한 처벌을 받고 사모님은 무죄가 된대요. 돈을 드릴 테니까 변호사님도 협조하시죠.”

그 순간 나는 중학교 때 정의가 무엇인지를 내게 가르쳐 준 사건이 떠올랐다. 그 사건의 비밀을 세상에 폭로했다. 그리고 변호사의 업무상비밀누설에 대한 법적인 대가를 치렀다. 체험으로 깨달은 정의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반복해도 내 가슴에 울림이 없었다. 평생 검사를 해 온 그보다는 엄청난 고문을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가 본 사람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본질을 더 잘 알 것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박근혜 대통령보다는 닭장 같은 공장노동자 합숙소에서 살아본 노동운동가가 더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오면서 가난한 환경을 택했다. 그는 노동자였다. 죄수가 되어 고문을 받았다. 그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러 명의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나는 십자가를 지고 고통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진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날 고통의 기억들을 강물에 무심히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기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