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독재를 옹호하거나 묵인해서 출세를 하고, 민주화시대에는 개혁을 내세우거나 민주세력에 아부해서 또 출세를 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인데, 대법원장께서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기고 / 李容勳 대법원장께!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대법원장까지 과거사를 왜곡해서
현실권력에 아부해야 합니까?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또 다른 권력에의 굴종이다.
張琪杓 새정치연대 대표
1945년 경남 김해 출생. 서울大 사법학과 졸업.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등으로 복역. 5·3 인천사태 주도 혐의로 구속.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실장, 전민련 사무처장, 민중당 정책위원장, 신문명정책연구원장,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역임.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당신은 책임이 없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국회 청문회와 언론 보도를 보면서 「저런 분이 대법원장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께서 취임사에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저의 杞憂(기우)가 금방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왜 이렇게 우려하고 실망했는지 밝혀서, 더 이상 사법부를 욕되게 하거나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재산 문제나 변호사 수임 문제 등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역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관련 발언이 더 중요한 문제임은 물론입니다.
논어에 「不在其位 不謀其政(부재기위 불모기정)」, 즉 그 일을 도모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대법원장께서 과연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도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법원장께서 말한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에 대법원장은 책임이 없는가요?
형사사건을 많이 맡지 않았다는 것으로, 1993년의 「사법파동」 때 소장법관들의 뜻을 법원장회의에 전달했다는 것으로, 그리고 대법관 시절 이런저런 종류의 소수의견을 더러 냈다는 것으로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대법원장은 책임이 없는 듯이 말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그런 정도의 미담이나 변명거리를 갖고 있지 않은 법관이 있기도 어렵겠거니와 군사독재 시절 법치주의의 근본을 파괴한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등이 발동될 때 법조인으로서 이에 대해 항의 한 번 하지 않고서 오히려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걸어왔다면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어찌 책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진정한 자기반성이 없이 마치 자신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노력해 온 양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도하겠다는 것은 불의를 속죄해야 할 사람이 정의의 표상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독재를 옹호하거나 묵인해서 출세를 하고, 민주화시대에는 개혁을 내세우거나 민주세력에 아부해서 또 출세를 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인데, 대법원장께서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잘못되었다」거나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에 항의하지 않은 법조인은 모두 비난받아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개인 사정에 따라 독재에 저항하고 불의에 항의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작금의 과거사 청산은 不義의 극치다
사회는 다양한 활동이 총화를 이루어 발전해 가는 것이지 어느 한 분야의 활동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독재에 저항하고 불의에 항의하는 것이 마땅할 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자 뒤늦게 「과거사 청산」의 주인공으로 행세하면서 마치 자신이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처신하는 것은 현대사를 왜곡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사 청산이란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인데 盧武鉉 정권이 추진하는 과거사 청산은 오히려 이런 일이 있게 하자는 것인 터에 대법원장마저 이 대열에 합류하니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과거사 청산을 내세워 현대사를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불의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서고서 권력에 줄을 대어 민주투사로 변신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과거사 청산은 그런 변신의 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 여사를 법정구속했던 인사가 金大中 前 대통령 시절 헌법재판관을 역임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안기부의 조정을 받아 판결을 했던 ○씨가 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 때 盧대통령을 변호한 공로로 정부기관의 대표로 발탁되면서 민주인사로 둔갑하고 있으니 이 어찌 현대사 왜곡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민족정기의 확립을 위해 잘 알기 어려운 과거사까지 파헤치려 하면서 그 反민주적 행태를 지켜본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도 민주인사로 둔갑하는 현대사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민족정기는 훼손되는 것을 넘어 파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뻐길 일도 아니지만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자들이 민주투사로 둔갑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사법부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대법원장이 추진할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또 다른 권력에의 굴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과거사 청산은 盧武鉉 정권 최대의 정책목표이고 통치수단인 터에, 盧武鉉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이 취임일성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들고 나오니 이를 어찌 권력에의 굴종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법부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입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는커녕 스스로 정치권력에 굴종할 뜻을 밝히니 사법부가 어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법원장께서는 사법부 독립의 요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청문회에서 盧武鉉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야당의원의 질문에 『사법부에서는 대통령과 대립할 사안이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이 무슨 망발입니까?
盧武鉉 정권 들어서도 사법부와 대통령이 대립한 사안이 대단히 많았거니와 대법원장 자신이 대통령과 관련한 재판에 여러 차례 변호인을 맡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근본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임을 모르시나요?
아마 그것을 모르는 것 같은데 그것을 모른다면 사법부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사법부의 수장이 될 자격만 없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될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견제」와 「균형」이란 3권분립의 원칙을 지키자면 사법부와 대통령은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역대의 대법원장들은 대통령과 대립해야 한다는 인식이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대법원장께서는 대통령과 대립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으니 어떻게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맡기도 하고, 盧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 측 변호인을 맡기도 했었는데, 이것은 이미 국가권력 3권의 하나인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장을 맡게 되었으니 귀하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장인 귀하가 지켜야 할 사법부의 독립은 현재의 사법부 독립인데, 현재의 사법부 독립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과거의 사법부 독립에 매달리겠다고 하니 현재의 사법부 독립은 오히려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법부 과거사 청산은 법관 줄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과정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시류에 영합하지 마라!
대법원장 취임 즉시 전국 법원에 공안사건 판결문과 「민주」나 「독재」라는 말이 들어간 판결문을 전부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법원행정처에서도 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대법원장 혼자 보겠다고 했는데, 그 태도의 非민주성도 문제지만 그 많은 양의 판결문을 혼자 다 읽으려면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대법원장이 과거에 파묻혀 현재를 보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사법부가 본연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 수임과 관련한 처신도 과연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최고법원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대법원장께서는 2000년에 변호사를 개업한 이후 5년간 400여 건을 수임해서 약 60억원의 수임료를 받아 약 22억원의 순소득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사회정의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대법관을 지낸 분이 대법원 계류 주요사건의 대부분을 수임하는 것도 옳지 못하거니와, 불과 5년 만에 400여 건을 수임하게 되면 수십 건 내지 수백 건을 동시에 맡고 있을 때도 많을 텐데, 이것은 돈만 눈에 보였지 성실한 사건처리는 안중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대법관을 지낸 분이 이런 처신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지만 이런 처신을 했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장이 되는 것은 단념했음을 의미할 것 같은데, 이런 분이 대법원장을 맡는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변호사 수임료를 한 달에 1억원씩이나 받는 것도 너무 과하지 않은가요? 국민들은 지금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데 말입니다.
제가 너무 과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과거사 진상규명」이란 이름 아래 현대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일이 너무 많은 데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침묵하고 있다가 민주화 시류를 따라 온갖 과도한 발언으로 영웅 취급을 받으려는 자 또한 너무 많아 분노하고 있던 터에 가장 엄정해야 할 대법원장까지 시류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한 말씀 드렸습니다. 직무수행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2005-10-31, 15:13 ]
기고 / 李容勳 대법원장께!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대법원장까지 과거사를 왜곡해서
현실권력에 아부해야 합니까?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또 다른 권력에의 굴종이다.
張琪杓 새정치연대 대표
1945년 경남 김해 출생. 서울大 사법학과 졸업.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 등으로 복역. 5·3 인천사태 주도 혐의로 구속.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정책실장, 전민련 사무처장, 민중당 정책위원장, 신문명정책연구원장,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역임.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당신은 책임이 없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국회 청문회와 언론 보도를 보면서 「저런 분이 대법원장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께서 취임사에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저의 杞憂(기우)가 금방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왜 이렇게 우려하고 실망했는지 밝혀서, 더 이상 사법부를 욕되게 하거나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재산 문제나 변호사 수임 문제 등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역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관련 발언이 더 중요한 문제임은 물론입니다.
논어에 「不在其位 不謀其政(부재기위 불모기정)」, 즉 그 일을 도모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대법원장께서 과연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도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법원장께서 말한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에 대법원장은 책임이 없는가요?
형사사건을 많이 맡지 않았다는 것으로, 1993년의 「사법파동」 때 소장법관들의 뜻을 법원장회의에 전달했다는 것으로, 그리고 대법관 시절 이런저런 종류의 소수의견을 더러 냈다는 것으로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대법원장은 책임이 없는 듯이 말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그런 정도의 미담이나 변명거리를 갖고 있지 않은 법관이 있기도 어렵겠거니와 군사독재 시절 법치주의의 근본을 파괴한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 등이 발동될 때 법조인으로서 이에 대해 항의 한 번 하지 않고서 오히려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걸어왔다면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어찌 책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진정한 자기반성이 없이 마치 자신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노력해 온 양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주도하겠다는 것은 불의를 속죄해야 할 사람이 정의의 표상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독재를 옹호하거나 묵인해서 출세를 하고, 민주화시대에는 개혁을 내세우거나 민주세력에 아부해서 또 출세를 하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인데, 대법원장께서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저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잘못되었다」거나 「유신헌법이나 긴급조치에 항의하지 않은 법조인은 모두 비난받아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개인 사정에 따라 독재에 저항하고 불의에 항의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작금의 과거사 청산은 不義의 극치다
사회는 다양한 활동이 총화를 이루어 발전해 가는 것이지 어느 한 분야의 활동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독재에 저항하고 불의에 항의하는 것이 마땅할 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자 뒤늦게 「과거사 청산」의 주인공으로 행세하면서 마치 자신이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처신하는 것은 현대사를 왜곡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사 청산이란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인데 盧武鉉 정권이 추진하는 과거사 청산은 오히려 이런 일이 있게 하자는 것인 터에 대법원장마저 이 대열에 합류하니 어찌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과거사 청산을 내세워 현대사를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불의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서고서 권력에 줄을 대어 민주투사로 변신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과거사 청산은 그런 변신의 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 여사를 법정구속했던 인사가 金大中 前 대통령 시절 헌법재판관을 역임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안기부의 조정을 받아 판결을 했던 ○씨가 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 때 盧대통령을 변호한 공로로 정부기관의 대표로 발탁되면서 민주인사로 둔갑하고 있으니 이 어찌 현대사 왜곡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민족정기의 확립을 위해 잘 알기 어려운 과거사까지 파헤치려 하면서 그 反민주적 행태를 지켜본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도 민주인사로 둔갑하는 현대사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민족정기는 훼손되는 것을 넘어 파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뻐길 일도 아니지만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자들이 민주투사로 둔갑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입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사법부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대법원장이 추진할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또 다른 권력에의 굴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과거사 청산은 盧武鉉 정권 최대의 정책목표이고 통치수단인 터에, 盧武鉉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이 취임일성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들고 나오니 이를 어찌 권력에의 굴종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법부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입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는커녕 스스로 정치권력에 굴종할 뜻을 밝히니 사법부가 어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법원장께서는 사법부 독립의 요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청문회에서 盧武鉉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야당의원의 질문에 『사법부에서는 대통령과 대립할 사안이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이 무슨 망발입니까?
盧武鉉 정권 들어서도 사법부와 대통령이 대립한 사안이 대단히 많았거니와 대법원장 자신이 대통령과 관련한 재판에 여러 차례 변호인을 맡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근본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임을 모르시나요?
아마 그것을 모르는 것 같은데 그것을 모른다면 사법부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사법부의 수장이 될 자격만 없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될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견제」와 「균형」이란 3권분립의 원칙을 지키자면 사법부와 대통령은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역대의 대법원장들은 대통령과 대립해야 한다는 인식이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대법원장께서는 대통령과 대립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으니 어떻게 사법부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맡기도 하고, 盧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 측 변호인을 맡기도 했었는데, 이것은 이미 국가권력 3권의 하나인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장을 맡게 되었으니 귀하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장인 귀하가 지켜야 할 사법부의 독립은 현재의 사법부 독립인데, 현재의 사법부 독립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과거의 사법부 독립에 매달리겠다고 하니 현재의 사법부 독립은 오히려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법부 과거사 청산은 법관 줄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확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과정이 될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시류에 영합하지 마라!
대법원장 취임 즉시 전국 법원에 공안사건 판결문과 「민주」나 「독재」라는 말이 들어간 판결문을 전부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법원행정처에서도 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대법원장 혼자 보겠다고 했는데, 그 태도의 非민주성도 문제지만 그 많은 양의 판결문을 혼자 다 읽으려면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대법원장이 과거에 파묻혀 현재를 보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사법부가 본연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 수임과 관련한 처신도 과연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최고법원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케 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대법원장께서는 2000년에 변호사를 개업한 이후 5년간 400여 건을 수임해서 약 60억원의 수임료를 받아 약 22억원의 순소득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사회정의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대법관을 지낸 분이 대법원 계류 주요사건의 대부분을 수임하는 것도 옳지 못하거니와, 불과 5년 만에 400여 건을 수임하게 되면 수십 건 내지 수백 건을 동시에 맡고 있을 때도 많을 텐데, 이것은 돈만 눈에 보였지 성실한 사건처리는 안중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대법관을 지낸 분이 이런 처신을 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지만 이런 처신을 했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장이 되는 것은 단념했음을 의미할 것 같은데, 이런 분이 대법원장을 맡는 것은 부적절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변호사 수임료를 한 달에 1억원씩이나 받는 것도 너무 과하지 않은가요? 국민들은 지금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데 말입니다.
제가 너무 과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과거사 진상규명」이란 이름 아래 현대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일이 너무 많은 데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침묵하고 있다가 민주화 시류를 따라 온갖 과도한 발언으로 영웅 취급을 받으려는 자 또한 너무 많아 분노하고 있던 터에 가장 엄정해야 할 대법원장까지 시류에 편승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한 말씀 드렸습니다. 직무수행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2005-10-31, 15:13 ]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