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제2기 좌파정권이 등장했을 때 宋復 교수는 월간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우파가 반드시 반격에 나설 것이고 盧정권은 한국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실패할 것이다'고 예언했다. 그는 또 좌파정권의 등장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더 강화시키는 자극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었다. 5.31 선거를 계기로 좌파종식의 길이 열린 지금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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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 宋復 교수의 자신만만(月刊朝鮮 2003년 3월호)
『무식만큼 무서운 건 없다. 그러나 나라가 잘못 가도록 보수 우파가 놔두지 않을 것. 우파는 약한 것 같아도 굉장히 세다』
『펀더멘털 되어 있고, 국가 예산 15% 이상 左之右之할 수 없는 만큼 盧武鉉 등장해도 파워 시프트는 없다』
宋 復
1937년 경남 김해 출생. 부산高, 서울大 정치학과 졸업(정치학 박사). 연세大 특별초빙 교수. 서울디지털大 석좌교수.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공동대표. 全經聯 발전특별위원회 위원. 저서「조직과 권력」,「한국사회의 갈등구조」,「열린사회와 보수」,「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외 다수.
李根美 자유기고가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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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차이 때문에 아름답다
지난 1월31일, 세밑이라 모두들 발걸음이 한 박자씩 빠른데 서울역 주변의 대우재단빌딩 13층에서 만난 宋復(송복·66) 교수는 느긋하기만 했다. 멀리 남산 자락이 보이는 경관 좋은 창가에서 녹차를 마시며 『뭐, 할 얘기도 없는데…』라며 필자를 맞아 주었다.
宋復 교수는 그 나이에 보기 드물게 피부가 맑고 혈색이 좋으며 단단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20년간 등산을 한 덕택이라고 했다.
차기 대통령에게 앞 정권을 反面교사로 삼으라며, 「사회적 철부지」라는 단어로 파장을 일으킨 宋復 교수의 경총 연찬회 연설 원고를 읽고 갔던지라, 자리에 앉자마자 무거운 얘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여유로운 宋復 교수는 예상을 깨고 필자의 이름을 話頭(화두)로 삼았다.
『뿌리 根에 아름다울 美라… 뿌리부터 아름답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뿌리만 아름답다는 뜻입니까?』
『뿌리부터 아름답고 싶지만 외모경쟁력은 없다. 하지만 성형수술을 할 마음은 없다』고 답하자 宋復 교수는 그만하면 괜찮은 인물이라고 위로(?)했다.
『1992년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었는데, 그 학교 의과대학이 아주 유명해요. 성형의학자 대회가 있다길래 흥미가 있어서 가 보았더니 세계적인 성형의학자들이 자신들이 솜씨를 아무리 발휘해도 하나님이 만들어 준 원 얼굴보다는 못하다고 하더군요』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 논리가 탄탄한 宋復 교수에게 『고쳐서 이뻐지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 눈이 그 미인들에게 定向(정향)이 되어 있다는 거지, 실상 성형의사들처럼 定向이 안 되어 있는 사람, 원초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예쁜 게 아니지. 사람 손이 갔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없지. 성형은 나이 들면 안 좋아져요. 손 안댄 얼굴이 훨씬 아름답게 되지요. 일본의 全 국토는 어디 한 군데 손이 안 간 데가 없어요. 영국을 가 보면 사람의 손이 간 것 같지 않은데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아주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다워요. 일본은 조금만 있으면 지루해져요. 일본 센다이에 마쓰시마를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 한려수도가 훨씬 아름다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고 손댈 줄도 모르고, 안목도 없어서 놔둔 것이 美를 보존하게 된 셈이죠.
나는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는 걸 아는 데 50년이 걸렸어요. 외국도 많이 다녀보고, 開眼(개안)도 되고 나이 들어 가면서 마음도 열리고 눈도 열리니까 선조들이 금수강산이라고 한 얘기가 이해되더군요. 가는 데마다 아름다워요』
『심미안이 못 되는 저같은 사람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고 또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비슷비슷하지만 자연은 복사가 없어요. 자연은 잎 하나도 같지 않아요. 차별성 개별성을 지니게 되고, 그 차이 때문에 아름답지요. 우리나라 도시는 아름답지 못하지만 도시 주변의 산, 특히 북한산은 정말 아름다워요. 세계 어느 나라 수도에도 아름다운 산, 풍부한 수량을 가진 강이 없거든. 나는 북한산을 28년간 오르내렸는데 코스가 243개가 있어요. 지금까지 40개 코스나 가 봤을까. 어느 코스든 다 아름다워요. 우리 집이 북한산 국립공원 자락의 기자촌에 있어요』
30년 동안 한 집에 살아
기자촌에는 정말 기자들만 사는지, 왜 기자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평소에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1960년대 말에 우리나라에 기자가 3000명이 있었는데 2000명이 서울에 살았어요. 그 중에 1500명 정도가 집이 없었지요. 당시 기자들의 월급이 다른 직업에 비해 괜찮은데도 집 없는 기자가 80% 정도 되었어요. 그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알 수 있는 일이죠.
서울신문 외신부 시절이었는데 월급이 3만원 가량 되었어요. 기자협회에서 기자촌 주택조합이라는 걸 만들어서 택지를 조성했는데 한 사람당 대지를 55평씩 나눠주었지요. 20만원을 내고, 은행에서 50만원을 융자받아서 거기다 22평짜리 집을 지었어요. 400채 정도 지었는데, 나는 추첨에서 떨어졌어요. 공부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971년에 동서문화센터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유학을 떠났지요.
2년 2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김포공항에 내리니 공해 때문에 코를 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다 분뇨냄새와 사람들이 입만 열면 마늘냄새, 김치냄새가 났어요. 누가 기자촌에 가면 변냄새 안 날 거라고 해요. 기자촌은 수세식이었거든. 처음에 전세로 조금 살다가 빚을 내서 기자촌에 있는 집을 하나 샀지요. 30년 동안 그 집에서 살고 있어요』
―22평이면 좁고, 옛날에 지었으니 불편할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 기자에게 샀는데 조금 크게 지어서 26평짜리였어요. 내부수리도 하고, 산 쪽으로 20평 정도 늘렸지. 기자촌 땅값이 300만원이 채 안 되니까, 시가로 2억도 안 나갈 겁니다. 그린벨트 지역인데다 주거제한 지역이어서 2층 이상 못 짓는 곳이죠. 우리 집은 참새도 날아와요. 다른 데 이사 못 가요』
―재산은 모두 어느 정도나 되는지요.
『집 한 채하고 내 퇴직금과 교사를 지낸 아내 퇴직금을 아내가 은행에 넣어 두고 관리합니다. 1988년에 교수들이 모여서 강화도에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여 땅을 500평씩 산 일이 있어요. 1100만원을 주고 샀는데 세금이 1년에 3000원 나오는 거 보면 비싼 땅은 아닌가 봐. 누가 병원 짓는다고 헌납해 달라고 해서 줬는데 못 짓게 되었다고 도로 돌려주더라고. 그거밖에 없어요.
두 애들 공부시켜서 하나는 교수하고, 하나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에 있고. 기자촌 우리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 건데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는 달이 기가 막혀요. 자식들에게 내가 죽고 나서 이 집을 얼마에 팔든지 상관없는데, 저 달값은 1억을 받아라. 안 그러면 팔지 말라고 했어요』
22년 전에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는 宋復 교수는 인터뷰 전날도 소주 두 병을 마셨다며 애주가라고 했다.
『술을 참 좋아해요. 일주일에 다섯 번에서 일곱 번쯤 먹지요. 예전에는 斗酒不辭(두주불사)였는데 요즘은 소주 1병 반 정도 먹어요. 폭탄주 다섯 잔 정도면 알맞게 취하고 기분 좋지요. 더 이상 안 먹어도 되고. 젊었을 때는 자제가 안 되었는데 우리 나이가 되면 자제는 잘 되지. 한계에 왔다 하면 그만 마시지요』
―요즘 어떤 분들과 술을 마시나요.
『북한산 一字패라는 등산팀이 있어요. 내가 「一」자를 넣어서 다 호를 지어 준 분들이죠. 구범모 서울大 교수, 한국일보 김성우 주필, 중앙타운 김재혁 사장, 한국논단 박화진 편집인, 조선일보에 오래 있었던 한영탁 영덕신문사 사장, 인하大 김성익 교수, 이태근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정호근 前 국회의원 김택덕 박사, 이런 분들이죠. 이 사람들과 20년 동안 함께 등산을 하고 있는데 1년에 60회 정도 북한산에 갑니다. 나는 등산을 行禪(행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를 쓰고 올라가거나, 건강을 유지하려고 가기보다는, 다니면서 하는 禪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얘기하면서 가도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욕구하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걸어가니 참선이지요』
특정한 데 집착하지 않는다
―어떤 종교를 믿으시는지요?
『종교는 없지만 집에서도 참선을 많이 해요. 새벽에 일어나서 다리를 가부좌 틀고, 혀를 말아서 입 천장에 대고, 눈을 살짝 감아요. 혀를 말아 올리는 건 어느 한 군데도 쉬는 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지. 그렇게 해서 마음의 응시를 합니다. 등이 가려울 때 마음의 눈으로 응시를 하면 간지럽지 않아요. 1975년부터 참선하면서 녹차를 물 대신 마시고 있어요. 하루에 15~20잔 마시고 커피는 안 마셔요. 술도 줄여 나가려고 합니다』
―一字패 분들과 술 마실 때 요즘 시국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시나요?
『기억에 남을 만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부부간에 많은 대화를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대화의 과정이니까. 대화라는 게 기억에 남으면 부담을 주지. 서로 부담 주지 않으면서 즐거운 대화를 해야 친구지요. 대화도 話禪(화선)입니다』
宋復 교수는 이면지를 갖고 와서 직접 한문을 쓰면서, 얘기를 했다. 그간 인터뷰할 때 필자를 과대평가(?)하여 전문용어를 원어로 마구 남발하던 많은 교수들과 달리 그는 영어보다는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공부는 세 가지 과정을 밟는데 처음에는 形臨(형임), 형식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생각하고, 읽으라는 책 읽고, 본을 뜨는 거죠. 저자의 글 쓰는 방식과 글의 전개과정, 저자의 말을 본뜨는 것도 形臨입니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하면 意臨(의임), 뜻을 모방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시대적 공간적 역사적 배경이 어떻게 되어 이런 글을 썼을까를 생각하죠. 초등학교에서 대학 4학년까지는 形臨 과정이고 석·박사는 意臨과정입니다.
그 다음이 背臨(배임), 지금까지 읽은 것과 모방한 걸 완전히 등져야 합니다. 자기 창조는 背臨의 단계에서 이루어지죠. 背臨은 자신이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경지입니다』
―背臨의 단계에 이른 사람이 많지 않을 거 같습니다.
『창조단계는 萬에 하나지. 창조단계에 이르는 사람은 선택된 사람이죠. 말을 즐거이 많이 했는데 잊어버린다는 건, 慾辯已忘言(욕변이망언)이라고, 도연명의 詩에 나오는 말인데 다른 아주 높은 경지에 갔을 때, 禪의 경지에 갔을 때라는 뜻이지요. 바로 話禪이지요. 도연명의 詩에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결여재인경 이무거마훤)이면 問君何能爾(문군가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이라는 글귀도 있어요.
「사람 사는 데 집을 지었건만, 수레소리 말소리 들리지 않더라. 그대여 어찌 그렇게 되는가. 마음을 멀리 두니 어디나 외진 곳이 되더라」는 뜻입니다. 내 호가 여기서 나왔어요. 「마음을 멀리 둔다」는 뜻으로 心遠입니다. 어느 특정한 데 집착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집착을 안 하면 학문적으로 左도 아니고 右도 아니게 됩니다. 사실이 사실대로 보이고, 진실이 진실대로 把持(파지)되지요』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주의자
―左도 아니고 右도 아니라는 말씀은 의외입니다. 교수님을 대개 右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내가 右다 보수다, 그런 말을 많이 하지요. 내가 왜 右냐 보수냐, 그랬더니 서울大 철학과 교수가 「金大中 정권이 좌파 정권인데 그걸 비판하니 저절로 우파가 된 거 아니오」 그러더군요. 나보다 더 신랄하게 金大中 정권을 비판한 사람이 없고, 좌파 정권을 비판하니 저절로 우파가 된 거라고 그러더라고』
―스스로는 우파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나는 보수를 중요시합니다. 내가 보수를 중요시하는 건 전통을 중요시한다는 뜻입니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詩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어도 좋더라.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도 전통이 있어서 좋다」고 노래했어요. 위대한 모든 나라는 전통이 있어요. 「전통이 현대에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옵니다. 전통이 없는 나라는 역사가 없는 나라가 됩니다. 전통 중에 최고의 전통은 책으로 말하면 「古典」입니다. 행위로 말하면 관습이지요. 버려야 할 관습도 많지만 지켜야 할 관습도 굉장히 많아요. 전통이 있는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제, 지혜, 용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에 관한 의식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우리는 전통에 관한 인식이 아주 박약해졌어요. 서울이 600년 된 도시인데 60년 된 도시 같습니다. 고궁은 생활공간이 아닌 특수한 공간이 되어 버렸지요. 런던, 일본, 미국 등에 가보면 사람이 완전히 역사 속에서 살고 있어요. 런던의 그 거대한 가로수들, 미국 하버드 대학 교정의 다양한 거목. 그걸 보면서 사람이 큰 나무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가 각기 다 달라요. 다양성이죠. 「차이」를 느낍니다. 盧武鉉 당선자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하고만 일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전통이 없어진 사람의 사고지요. 전통이 있는 사람은 똑같은 걸 존중하지 않아요』
―우리 현대사는 전통을 중요시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 지도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랬어요. 박통(朴正熙 대통령) 때부터 산업화를 해 왔어요. 산업화는 중요하고, 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산업화를 하면서 전통을 지키는데. 그래도 박통은 상당히 전통이 몸에 밴 사람이었어요. 1910∼192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전통이 몸에 배는 교육을 받았어요.
내가 경총 연찬회 연설에서 10代, 20代를 사회적 철부지라고 했더니 「윤동주도 20代였는데 철부지냐?」 하더라고. 윤동주는 1910년대 사람이니 전통이 배어 있지요. 현대사회로 올수록 전통이라는 것이 몸으로부터 떠나 버렸어요. 그러니까 인터넷 강국인데도 컨텐츠는 최빈국이 되어 있지요. 전통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主공급원입니다. 미국은 대학에서 古典을 공부시키고, 대학원 가서 직업적인 걸 가르칩니다』
경험이 없는 세력은 실패한다
―이번 정권은 굉장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과연 전통이 잘 지켜질까요.
『인수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있어요. 굉장히 위태로워요. 인수委 사람들은 지식으로서 이념만 갖고 있어요. 방법은 경험세계에서 터득하고, 현실로부터 나오는데 터득을 못했어요. 金泳三, 金大中 대통령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이념은 있었는데, 현실을 관리하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죠』
―盧武鉉 당선자는 두 대통령과 비교하여 어떤가요.
『盧武鉉 당선자는 훨씬 더 심하지요. 메소달러지(방법론)가 없는 사람들이 중심인물이 될 때 백이면 백, 다 실패합니다』
―盧武鉉 당선자가 국회의원 두 번 하고, 해양수산부 장관 몇 개월밖에 안 해, 경험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통령학 하는 함성득 교수가 대통령론을 쓰면서 盧武鉉씨 취재를 했더군요. 盧武鉉씨가 역대 장관 중에서 자기가 제일 잘했다고 자찬하더랍니다. 「경험이 없는데 어째서 잘했냐」고 했더니, 「나는 우선 도덕성 정통성이 있다. 그러니 관리들이 나를 신뢰하더라. 그래서 내가 제일 잘했다」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뭘 모르는 소립니까. 하지만 金泳三, 金大中 정권 때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金泳三, 金大中 정권을 거치면서 사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상당히 단단해졌어요.
그건 朴正熙 대통령의 功이라고 봐야 해요. 산업화로 인해서 기업, 학교, 사회의 많은 조직들이 상당히 단단해졌어요. 盧武鉉 당선자가 삼성을 이길 수 있나요? 盧武鉉 정권이 조선일보를 이길 수 있나요? 이길 수가 없어요. 金大中 대통령이 이기려고 애를 썼지만, 이겨지나요』
―새 정권에서 조선일보를 어떻게 할지 지켜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조선일보가 많이 힘들어질 거라고들 합니다.
『조선일보가 약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겠지. 조선일보가 너무 세지. 조선일보에 글을 써 보면 반응이 훨씬 커요』
―제가 아는 안티조선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중이 우매하여 조선일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판단력이 있고, 일반인은 판단력이 없다는 생각은 오만이죠. 오만하면 정신적으로 황폐할 수밖에 없어요』
날라리에 白面書生은 위험
―이번 선거를 젊은이들의 승리, 인터넷 세대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번 여론조사에서 발표한 거 보면 젊은이(20代)들이 47.5%밖에 투표를 안 했더군요. 30代가 58.5% 했다니까, 20~30代를 합치면 53% 투표한 겁니다. 전체 투표율 71%에 비하면 17∼18%가 낮았어요. 15代 때는 10% 정도 낮았어요. 그때보다 젊은이 참여가 줄어들었어요.
어디에서 결판이 났느냐 하면, 전라도에서 盧武鉉 270만 표, 경상도에서 李會昌 240만 표 나왔어요. 盧武鉉과 李會昌의 전체 표 차이가 58만 표인데, 경상도 유권자가 세 배나 많은데도 30만 표 적게 나왔어요. 나머지 28만 표는 전국에서 나온 거죠. 전라도가 30만 표 더 주었고, 경상도 투표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된 것이지, 20∼30代가 지지를 많이 해서 盧武鉉이 된 게 아니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50代만 되어도 낡았다,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국도 영국도 40∼50代가 정권을 잡았으니 우리도 젊은이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40∼50代가 들어가 있더라도 경험축적자들이 들어가 있지, 날라리들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니지요』
―날라리라고 생각하세요?
『날라리고 白面書生(백면서생)이지. 白面이란 흰종이 앞에 놓고 책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말합니다. 현실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85%의 국가 예산은 어떤 정권도 손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고. 15% 갖고 요리할 수밖에 없어요』
―걱정된다면 盧武鉉 정권에 경험축적자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어른들과 지식인들이 강력하게 권유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高建(고건)이라는 경험축적이 많은 사람을 총리로 앉혀 놨지. 高建은 내 대학 동창인데 「高시장」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盧武鉉이라는 사람의 주변 사람이 거기서 거기여서 高시장을 총리로 앉힐 거라고 예측했어요. 그래서 高시장에게 1년 하다가 갈아치우는 소모품 총리 하지 말고, 「5년 같이하는 걸로 보장해 주면 앉겠다」 그렇게 말하라고 했지요.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1년 만에 갈아치우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金大中 정권이 왜 시원찮았느냐 하면 사람을 갖다 놓고 11개월 정도 쓰다가 버리고, 27시간 정도 쓰다가 내버리고 했단 말야. 사람을 활용할 수가 없어요』
―盧武鉉 당선자가 다음 총선 때 원내 다수를 차지하는 당에서 총리를 뽑겠다고 했으니, 어쩌면 5년 보장은 힘들 것 같은데요. 高建씨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십니까?
『高시장은 우선 행정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죠. 일의 머리가 어디고 꼬리가 어딘지 아는 사람입니다』
『글은 一針見血』
―요즘 정권교체기여서 그런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경총 연찬회에서 강한 톤으로 말씀하신 거 읽고 좀 놀랐습니다. 보수주의자 하면 宋復 교수님을 떠올리는 이유가 뭘까요?
『왜 조선일보에 보니까 바른 소리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글은 一針見血(일침견혈)이라, 「침을 한 번 탁 찔러서 피가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돌팔이 의사는 침을 여러 번 찔러도 피가 안 나온단 말야. 사람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지. 명의는 한 번 찌르면 병이 나아요. 신문에 쓰는 글이나 논문이나 저서나 一針見血식으로 해야 합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게 쓰면 읽는 독자만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다 고전에 있는 말입니다』
―교수님이 쓰신 「열린사회와 보수」라는 책은 신문에 기고하신 글모음 같던데, 10년 전에 쓰신 것도 요즘 상황에 맞더군요.
『세상은 끝없이 변하는 유행의 원리와 절대 변하지 않는 不易流行(불역유행)이 있어요. 세월 따라 세상 따라 바뀌는 게 있고,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안 바뀌는 게 있어요. 不易流行을 따라하면 100년 후에도 맞지요. 뭐는 바뀌고 뭐는 안 바뀐다는 걸 생각하죠. 내가 쓰는 글의 대다수는 不易流行에 따라 씁니다』
―유행에 민감한 요즘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젊은 사람들은 급격성과 과격성을 갖고 있어요. 급격은 일시적으로 바꾸고, 과격은 밑뿌리째 바꾸는 것입니다. 둘 다 성급하죠. 젊은이라는 게 급합니다. 50代 이상은 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도 스무 살 때 서른 살 먹은 사람이 안 죽고 어떻게 살아 있나, 생각했어요. 서른을 넘기면서 인생에 대해 開眼(개안)이 되었죠. 30을 立(입)이라 했거든. 선다는 말은 퍼스낼리티가 서서히 형성되어서 자기 눈이 뜨인다는 거죠. 40이 不惑(불혹)이고』
―마흔이 넘어서도 헛소리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서른에 서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마흔에 불혹 되는 사람도 많은 게 아니거든. 나이가 많아도 무지한 상태로 있는 사람도 많고. 나는 1968년, 서른한 살에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고생했어요. 그때 성급하게 朴正熙 정부에 대해 글을 썼지요. 유학도 갔다 오고 신문기자를 오래 해보니까 현실에 대해 開眼이 되더군요. 그런 경험을 쌓아서 開眼이 되는 거지, 책만 읽어서는 안 돼요. 내 인생에 있어서 기자를 했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경험 축적의 세월이었죠』
『나를 욕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일종의 布施다』
―항상 강한 톤으로 글을 쓰시던데 글 쓸 때 주변을 의식하지 않나요.
『정년 은퇴식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는 세 가지 자유를 얻었다. 첫째, 글의 자유다. 나는 쓰고 싶은 것만 썼지, 쓰기 싫은 글을 쓴 적이 없어요. 외부강압 때문에 쓰고 싶은 글을 못 써 본 일도 없고, 돈 때문에 글을 써 본 일도 없고, 돈 많이 준다 해서 써 본 일도, 돈이 없어서 글을 써 본 일도 없어요. 둘째, 시간의 자유가 있었어요. 내가 총장 부총장 조직의 라인 속에 들어갔으면 명령에 따라야 했겠죠. 나는 자유롭고 싶어서 보직을 맡으라고 하는데도 안 맡았어요. 金泳三 시대에 나에게 두 번이나 장관 하라고 했어요. 내가 미쳤다고 장관 하고 있어, 자유로운데. 교수들이 왜 장관 하면 다 실패하느냐. 이 사람들이 경험은 없는데 知만 있단 말야. 그러니 백이면 백 다 실패하죠. 셋째, 난 돈의 자유를 누렸어요. 난 돈 관리를 해 본 일이 없어요. 상당히 가난하다 하겠지만, 언제나 쓸 만큼은 있었어요』
―그동안 글을 쓰면서 비난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엄청나지 뭐. 누구나 다 생각의 자유가 있으니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읽어 본 적도 없는데, 강준만이라는 사람이 내 욕을 그렇게 한다네.
내 제자인 교수가 나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해야 합니다」 그러더라고. 「나는 지금까지 내 가족밖에 못 먹여 살렸는데, 나를 욕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일종의 布施(보시)다. 내 욕해서 그걸로 먹고 살라고 해라.
일본에서 아사히 신문을 욕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수수천 명이라더라. 미국에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욕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수수만 명이라더라. 남 욕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밥 먹고 살겠다는 데 왜 거부하냐」 그랬지요』
―남이 비난하면 신경 쓰이지 않나요.
『신경 쓸 게 뭐 있어. 나와 생각이 달라서 그런데… 욕을 하면 「생각의 차이다」라고 여기면 그만이지. 차이가 있다는 것, 「다름」이라는 걸 나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두 시간 정도 얘기하는 동안 宋復 교수는 계속 녹차를 마셨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되지 않았느냐며, 인터뷰를 끝내자고 했다. 다음날이 설이니, 그쯤에서 헤어지고, 하와이 가기 전날인 2월3일에 宋復 교수를 다시 만났다. 하와이 대학 이스트 웨스트 센터에 있는 趙利濟 박사가 펴낸 책을 편집 겸 감수하러 가는 길이라며, 한 달 정도 체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대자들의 질과 영향력이 문제
宋復 교수가 제조한 녹차를 얻어 마시며 연세大 특별초빙 교수가 된 연유부터 물어 보았다.
『연세大에서 2002년 9월에 특별초빙 교수제도를 만들었어요. 국내 석학들 중에서 네 분을 초빙했는데, 100여 명의 연세大 명예교수 중에서 나를 선정하고 다른 세 분들은 외부인사예요. 특별초빙 교수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강의를 하여 학생들에게 새로운 오리엔테이션을 갖도록 하려는 겁니다』
―평소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였는지요.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어요?
『인기 교수지요. 많이 신청하기 때문에 첫날 「숙제 굉장히 많이 준다, 강의 들으려면 부담이 많이 갈 거다」고 얘기하죠. 보통 200명, 150명씩 신청하는데 70명 이상은 안 받았어요. 대학 3, 4학년 사회조직, 사회계급, 정치사회학을 가르쳤고, 전교생을 대상으로 사회의 이해를 가르쳤죠』
―정년퇴직 하는 날 학생들이 「열심히 닭짓 한 당신 떠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데모를 했다던데요.
『신문에서 크게 보도해서 알았어요. 내가 강의 마치고 나오니 저쪽에 학생들이 대여섯 명 모여 있던데, 왜 모여 있는지 몰랐어요. 그날 손님들이 많이 와서 그분들과 같이 나왔어요. 신문에 보니 걔들이 데모하는 애들이라 하더군요. 그 학생들이 그러는 거 신문에서 다시 생각해야 돼요. 교문에 나가면 누구 교수 반대, 조선일보 반대, 李會昌 반대, 이런 피켓 들고 늘 대여섯 명이 서 있어요. 2002년 1학기 때 강의실 외벽에 안티조선 플래카드를 크게 붙여 놨어요. 지하 강당에서 하고 있습디다. 어떤 학생이 하나,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어요. 제일 앞에 가서 보니 한 다섯 명이 앉아 있어요. 맨날 안티조선 운동 하는 그애들만 모인 거죠. 세력이 크지도 않고, 학교에서 클 수가 없어요』
―그 학생들이 구호를 외쳐서 교수님이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고 신문에 나와 있던데요.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전화해서 「당신이 나를 봤느냐, 파르르 떠는 거 봤느냐」고 했더니 아마 그렇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했다더군요』
―지식인들도 안티조선 운동을 하던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 지식인들 숫자라든지, 質이라든지, 영향력이 얼마나 돼요. 조선일보가 위기나 우려감을 느낀다면 그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거라고 봅니다. 가장 큰 신문에 대해서, 가장 큰 세력에 대해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에 대해서 반대하는 건 어느 시대나 당연히 있었어요. 심각할 거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그런 게 없다면 그 사회는 그만큼 정체된 사회지. 안티조선 운동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다이내믹하다는 증거지, 나쁠 게 하나도 없어요』
악의 축을 지원하면 똑같은 악의 축
―조선일보 반대운동 자체를 어떻게 보십니까.
『조선일보가 반대받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現 정부 정책에 대해서 정면대응하는 게 많기 때문이죠. 반대 측에서 보면 조선일보가 극우세력도 되고, 보수세력도 되고, 남북관계에서 냉전세력도 되는 거죠. 조선일보는 다른 것보다 對北 정책에 대해 가장 정면으로, 가장 강하게, 내가 볼 때 가장 정직하게 대응했어요.
당장 봐요. 돈을 줬다는 거, 돈을 왜 줍니까. 햇볕정책이라는 게 뭡니까? 全斗煥, 盧泰愚, 金泳三, 이 사람들도 다 포용정책을 썼지만 그 정권에서는 현금을 안 줬어요. 국가 간의 지원은 현물지원을 원칙으로 합니다. 현금을 안 줘요. 미국이 우리나라에 현금 줬나요?
金大中 정부에서는 금강산 관광, 경제지원 같이 앞으로 주는 것도 모자라서 뒷돈을 줬단 말입니다. 뒷돈 준 건 국가 범죄라고. 그냥 넘어가선 안 돼요. 뒷돈 주면 그게 어디 가요. 불쌍한 북한 동포한테 갑니까. 金正日 정권 유지하는 데 쓰지. 핵무기 개발,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 말입니다.
金大中 정부는 부시 말대로 하면 악의 축이나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金正日이 악의 축이란 말이에요. 악의 축을 지원하면 악의 축이지. 악의 축을 악의 축이라고 하면 「민족공조 안 한다, 사대주의자, 냉전주의자」라고 합니다. 이건 부정직한 거죠. 위선이고 거짓말이죠. 金大中을 지지하는 세력을 진보세력이라고 하는데, 진보라는 용어를 함부로 붙일 수 없어요. 어디까지나 좌파지, 진보라고 할 수 없지. 진보 아닌 좌파가 얼마나 많아요』
― 우리 사회에서 진보 좌파, 보수 우파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定義를 어떻게 내려야 합니까.
『진보와 좌파, 보수와 우익이 명확히 구분이 잘 안 가고, 사람들이 쓸 때 구분을 안 하지요.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 이렇게 써 버리지. 개념이 서로 다른 건데 知的인 훈련을 안 받은 일반 사람들이 그냥 써 버리는 겁니다.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진보와 좌파의 공통점은 현상을 변경시켜 보자는 것이지요. 보수와 우파는 현상을 유지해 보자는 것이죠. 보수나 우파는 10% 전후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진보나 좌파는 20%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정도입니다. 조금의 차이밖에 안 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10%는 굉장히 큰 겁니다.
시간으로 보면 진보 좌파는 단기간에 바꾸려고 하고, 보수 우파는 긴 시간에 바꾸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에 10%를 더 바꾸려고 하면 사회적 충격이 커요. 보수 우파는 변화의 폭이 좁은데 시간을 길게 두니까 충격이 작지요』
―金大中 정부에 대해 밖에서는 좌파 정권이라고 부르지만, 당사자들은 좌파가 아니라고 합니다.
『진보하고 좌파는 분배에 언제나 역점을 두어요. 진보는 구조에다 역점을 두지요. 보수는 언제나 생산에 주력을 두고, 생산을 먼저 하고 분배는 그 다음이라고 하죠. 盧武鉉 당선자나 金大中 대통령을 좌파라 하는 건 생산보다 분배 쪽에 역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중상층보다 중하층에 역점을 두었단 말이죠.
金泳三 대통령은 좌파라기보다 우파 정권이고, 金大中 대통령은 보수세력에 대한 반대라든지, 對北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철저히 구현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좌파 정권이죠. 북한 주민의 인권을 내세워야 하는데, 북한 주민을 착취하는 상태로 몰아놓고 계속 지배하려는 세력에 현금을 줘서 지원한 건 좌파지요. 盧武鉉 당선자도 그 성향을 그대로 지니고 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보는 구조변화니까,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관습 제도를 바꾸려고 합니다. 보수는 관습과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보수 우파는 메소달러지(방법론)가 있고 현실을 알아요. 진보 좌파는 이념은 있는데 현실을 모르지요.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南美의 아르헨티나처럼 후퇴시키는 경우가 많지.
보수 우파는 사회적으로 인기가 없어요. 경험이 많은 40代 후반이나 50代 이상이 지지하게 되니까. 진보 좌파 지지자는 20代부터 40代 초반까지가 많죠. 심지어 10代도 지지하죠. 포퓰리즘에 빠지게 돼요. 열심히 일 안 해도 월급 많이 올려 준다, 경험 많지 않아도 직위 올라간다, 그거 바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걸 겨냥하면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지』
지도자는 눈과 귀가 밝아야 한다
―소위 진보 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5년, 앞으로 5년 합쳐서 10년간 정권을 잡고, 좌파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커져서 걱정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거야 뛰어야 벼룩이지. 되게 시끄럽지만 시끄러울 뿐이지. 그건 어느 사회 할것 없이 그런 세력은 있어야 하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게 없으면 안 돼요. 한국의 펀더멘털이 튼튼해서 盧武鉉 정권이 꼼짝달싹은 하겠지만,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닙니다』
―盧武鉉 당선자가 金大中 정권의 對北 정책을 대부분 이어가겠다고 했으니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盧武鉉 당선자도 金大中 대통령이 악의 축 노릇을 한 것처럼 악의 축 노릇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거지. 지난번에 경총에 가서 20~30代를 사회적 철부지라고 했는데, 사회적으로 책임감을 안 느끼고 사회적으로 역할이 제대로 부여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제 마음대로 떠드는 걸 철부지라고 해요. 철이 안 들어서 모른다는 뜻이에요.
盧武鉉 당선자 스스로 뭐라고 했어요. 노사모 회원들에게 「당신들과 대형사고 친 공범」이라고 했어요. 그건 철부지와 놀아났다는 말이죠. 내 발언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른의 입장에서 20代와 30代는 철부지죠. 책임감도 없지 역할도 제대로 못하지. 철부지와 같이 놀아난 盧武鉉 당선자도 철부지라는 含意(함의)가 들어가 있는 거죠』
―盧당선자가 말을 거르지 않고 하는 게 자연스럽고 좋다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盧武鉉 당선자는 대학 교육을 못 받았어요. 겨우 한 것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건데 사법시험 합격은 교육이 아니라 자격증 따는 거지. 자격증은 무식해도 따요. 그 분야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잘 보면 되니까.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대학 4년 동안 빌빌 놀고 나와도 대학 4년을 공부했느냐 아니냐,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대학 분위기를 안다는 건 중요하죠.
金大中 정부 초기에 「제왕의 난파선」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칼럼을 썼어요. 「국정을 하도 어지럽히니 난파선이다, 金大中이라는 사람이 대학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다」는 내용이었죠. 그것 때문에 엄청난 지탄을 받았는데, 그 뒤 다시 왜 대학 교육을 못 받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는가를 쓴 일이 있어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炯眼聰耳(형안총이)입니다. 炯眼은 눈이 밝아야 한다, 聰耳는 귀가 밝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눈밝음과 귀가 밝음이 지도자의 중요한 요건입니다. 눈밝음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죠. 사람이란 금맥과 같아요. 사람 하나하나가 다 가치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가치, 능력을 잘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앉히는 게 炯眼입니다. 그러려면 눈이 높아야 해요. 눈이 그냥 높아지지 않아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훈련이 가장 좋냐, 대학훈련입니다.
대학을 다녔다는 건 인재의 풀 속에, 인재의 호수 속에서 놀았다는 거지. 누가 큰고기고 누가 피라미인지 알아요. 대학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은 인재를 볼 줄 아는 눈이 저절로 만들어져요. 聰耳라는 건 세상사람 소리를 듣는 거라고. 우리 얼굴에 미각 시각 청각이 있는데 듣는 게 가장 어려워요.
대학은 보는 훈련뿐만 아니라 듣는 훈련을 하는 장소입니다. 한 학점 따려면 16시간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140학점 따려면 2240시간을 바쳐야지요. 거기다가 자기 동료와 늘 하루에 두세 시간씩 세미나와 토론을 합니다. 대학 4년이면 3000이니 5000시간 이상 귀 훈련을 받는 거지요. 친구는 교수 하나하나와 똑같아요』
―盧당선자도 그런 점에서 문제가 되겠네요.
『盧武鉉 당선자도 말을 못 알아들어요. 외국 기자가 보도한 내용과 그 밑에서 경험한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金大中 대통령은 누가 말을 하면 1분 만에 「어 그거 내가 알아」라고 한답니다.
남의 말을 1분을 안 듣는다고. 훈련을 안 받았으니 못 듣는 거지. 지식의 세계에 안 살아본 사람은 자기가 다 아는 걸로 생각해요. 훈련을 안 받아 봤거든. 내가 안다고 하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金大中 대통령이 똑똑한 줄 아니까』
무식한 사람은 자만, 오만, 교만해져
―金大中 대통령이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소문났잖아요.
『책 본다고 해서 다 아는 게 아니지. 공자가 2500년 전에 책을 그냥 많이 본 사람이 제일 위태롭다고 했어요.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 자기가 독학만 하고 배우지 않은 게 제일 위태롭다는 뜻이죠. 철저한 독단이지. 獨이 생겨. 독단에다, 독선에다, 독판에다, 獨이 뭐냐? 고전에서 獨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獨은 이리 승냥이라고. 獨(독)이란 글자를 보면 앞에 개 犬(견)자를 쓰는데, 獨이란 승냥이가 있어요. 모든 좋은 건 자기가 다 먹는 걸 승냥이라고 해요. 우리 고전에서 獨을 제일 나쁜 글자로 생각해요. 배우지 않으면 獨이 생기는 겁니다. 盧武鉉 당선자는 말하는 거 보면 무식한 게 나타나요. 「깽판 놓는다, 대형사고를 저지른 공범이다, 패가망신할 줄 알아라, 半統領이다」 이런 무식한 말이 어디 있어요. 국민이 뽑아 놨는데 어떻게 半통령이야』
―무식한 사람이 갖는 병폐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첫째 自慢(자만)합니다. 내가 공부 안 했는데 공부한 너희들보다 잘났다, 뽐낸단 말이지요. 그 다음에 傲慢(오만)해져요. 무식하면 거만하고 驕慢(교만)해져요. 교만하면 옆사람이 안 보여요. 남의 글은 글로 안 보이고, 남의 말은 말로 안 들리고, 남의 업적은 업적으로 생각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것만 최고로 생각됩니다. 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 가는 길이 3慢입니다. 3慢으로 가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金大中 대통령은 대통령 되고부터 3慢 상태가 되었어요.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내가 남의 말 왜 듣느냐…』
―盧武鉉 당선자가 집권하면 어떨 거라고 예측하십니까.
『마찬가지죠. 앎의 세계는 무서워요. 알면 알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 알 것이 있고, 불확실합니다. 옛말에 初學三年(초학삼년)에 天下無敵(천하무적)하고, 再修三年(재수삼년)에 寸步難進(촌보난진)이라 했어요. 글 3년만 배우면 천하에 적이 없어요. 하지만 3년을 더해 보면 반걸음 더 떼기가 힘들어집니다. 배운다는 게 겸손을 가져다주고, 무섭다는 걸 가르쳐 줍니다. 그냥 하는 행동이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준다는 걸 初學은 몰라요. 언제나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고 큰소리 치잖아요. 金泳三, 金大中 대통령 다 그랬지요』
―金泳三 대통령은 대학을 졸업했잖아요.
『조금 낫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학 다닐 때 공부할 수 있었나요. 강의를 몇 번 들었겠어요. 金泳三 대통령은 그래도 대학을 다녔으니 훨씬 나아요. 金大中 대통령, 盧武鉉 당선자에 관해서는 우리가 두려워요. 金大中 대통령이 행동하는 걸 봤잖아요』
지도자는 거슬리는 말, 꾸지람을 들어야
―盧武鉉 당선자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자기와 다른 소리 하는 사람 갖다 놓고,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盧武鉉 당선자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만 갖다 놓겠다 했어요. 이것은 一元주의, 획일주의 사회에서나 하는 소리지요. 「같음」을 기본으로 해요. 자기 의견과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그 의견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그걸 안 하면 실패합니다. 끼리끼리 모여서 뭐가 돼요. 「좋은 대학 나왔다, 지금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상당히 자본주의적으로 떠들더라, 시장가치적으로 떠들더라, 자유주의적으로 떠들더라, 민족공조보다 국가를 중요시하더라」 그건 냉전주의자, 수구반동, 半통일주의라고 합니다. 그럼 오늘날같이 되는 거죠. 다른 소리를 많이 들어야 균형이 잡힙니다.
옛날 제왕은 세 가지를 갖추고 있었어요. 자기한테 꾸지람을 해 주는 선생이 있었어요. 전통사회에서 임금 공부시키는 데가 經筵(경연)입니다. 선생들이 임금과 대신을 앉혀놓고 끊임없이 강의를 해요. 임금이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늘 교육을 받아요. 선생이 經筵에서 무자비하게 얘기를 해요. 선생이 經筵에서 얘기하는 건 잡아넣을 수가 없어요. 그 다음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임금의 귀에 거슬리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귀에 솔깃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에요. 잘못된 것을 기탄없이 말해 주는 친구나 신하가 있어야 해요.
자기를 지켜주는 방패, 爪牙(조아)라고 합니다. 짐승의 발톱과 어금니죠. 자기를 지켜주는 발톱과 이빨이 있어야 돼요. 그야말로 생명을 바치고 지키는 신하지. 충성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될 수가 없어요. 특히 盧武鉉 당선자 같은 사람에겐 옆에서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金泳三, 金大中 대통령도 세 가지가 없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합니다』
―그전 대통령들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李承晩 대통령은 독재하고 부패했으나 건국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대열에 갖다 놓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朴正熙 대통령은 독재와 인권유린을 했지만 산업화 대통령이지요. 全斗煥 대통령은 권력을 잡기 위해 사람 죽이고 광주사태를 일으켰지만, 물가가 안정되고 국제수지 흑자를 만들었어요. 盧泰愚 대통령은 민주화 기반을 잡았어요. 「물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하게 했지요.
金泳三 대통령 때는 뭘 했어요. 외환 위기를 몰고 왔지요. 金大中 대통령은 햇볕 대통령이 되고 싶겠지만 햇볕 때문에 어떻게 되었어요. 1992년도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어요. 햇볕정책을 실시했는데 비핵화가 파기되었어요. 돈만 갖다주고 남쪽의 분열과 갈등만 높여 놓았지. 남쪽에 內債(내채)가 얼만데. 재정적자와 개인부채가 엄청납니다. 外債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게 內債 위기입니다. 언제나 功과 過가 있는데 金泳三, 金大中 대통령은 功이 없잖아요. 盧武鉉 당선자가 功을 만들려면 사람을 제자리에 잘 앉혀야 합니다』
인터넷은 감성에 불을 지르는 매체
宋復 교수는 경총 연찬회에서 인터넷을 「모든 살인기구가 동원되는 조폭시대의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엄연한 인터넷 시대, 인터넷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지 물어 보았다. 宋復 교수는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메일은 조교가 관리해 주고 있으며,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 홈페이지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 디지털 대학의 석좌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진보 측 30~40代 논객들은 인터넷에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보수 논객의 목소리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大選을 인터넷 세대의 승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인터넷에 글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월남戰 때 「신문세대가 TV세대에 졌다, 활자 미디어가 전파 미디어에 졌다, 그래서 월남戰에서 미국이 패망했다」, 맥루한이 「핫 미디어 쿨 미디어」라는 글에다 그렇게 썼어요. 신문이라는 건 쿨 미디어입니다. 핫 미디어는 감성을 자극하죠.
TV는 감성을 자극하고 신문은 이성을 자극합니다. 인터넷은 월남戰의 TV나 마찬가지로 감성적인 매체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 감성에 불을 지르는 건 멋쩍어질 수밖에 없죠. 자기 세대의 매체가 아니니까. 이성적으로 침착한 건 인터넷에 맞지 않아요. 나이 든 사람은 깊은 감명을 주고, 강도 높게 사유하게 하고, 그리고 고도의 추상을 불러다주는 글을 써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경험의 세계도 지식의 세계도 없으니까, 줘 봐야 잘 안 통해요. 나이 든 사람이 점잖지 않게 애들 불지르는 글이나 쓰면 되겠어요? 그야말로 철부지에 속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죠. 나이 들어서 인터넷을 고집하려면 인터넷 매체가 요구하는, 인터넷 매체의 속성과 조금 떨어진 행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나처럼 나이 더 든 사람은 속성과 멀어진 매체를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속성과 맞는 매체는 어떤 것인가요.
『지금보다 더 깊은 사유의 세계를 요하는 매체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책이에요. 젊은이가 읽든 말든 관계없어요. 지금 안 읽으면 한 세대 후, 두 세대 후에나 읽겠지요』
名著를 쓰고 싶다
―신문 칼럼도 안 쓰실 건가요.
『신문에 안 쓰려고 해요. 이미 내 속성에 맞는 매체가 아니에요. 오늘 아침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김상균 교수가 새벽에 전화했어요. 내가 쓴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를 읽었는데 그 책이 名著(명저)라고 말해 주더군요. 名著를 쓰고 싶어요. 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그룹들, 창조적 소수를 겨냥해서 글을 씁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꿉니다.
지금 진보다, 좌파다 하는 사람들은 그냥 떠들 뿐이지, 세상을 못 바꿉니다. 그 사람의 지식 체계로는 세상이 안 바뀝니다. 아무리 떠들어 봐야 그런 표피적인 지식을 갖고, 그런 말초신경적인 지식을 갖고, 그런 가냘픈 지식을 갖고, 어떻게 세상을 바꿉니까. 깊으나 깊은 세계가 있어요.
젊은 날 나도 내 감성에 따라 감정에 따라 살았어요. 20∼30代 때 그랬어요. 그때는 나도 TV와 라디오를 좋아해서 그 매체에 맞는 속성에 따른 행동을 하고 글도 쓰고 말도 했어요. 지난 25년간 요청이 수도 없이 왔지만 일체 안 나갔어요. 그동안 TV에 나간 화면은 내 강의한 걸 찍어 간 것입니다. 지난 1월3일, 새 시대도 되었으니 새해에 꼭 한마디 해 달라고 해서 「法治, 法治, 法治」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하나 썼을 뿐입니다』
―그동안 쓰신 책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꾸준히 나가요. 20년 전에 쓴 「조직과 권력」도 판을 다시 찍자고 해요. 1990년에 쓴 「한국사회 갈등구조」도 지금까지 나가고 있고, 1995년에 조선일보에서 나온 「열린 사회와 보수」는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찍었어요. 1997년에 나온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도 4판째 찍었어요. 한국 상층을 비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곧 나올 겁니다』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를 시리즈로 낼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는 論語(논어)의 세계입니다. 올해 말에 낼 2부는 孟子(맹자)의 세계입니다. 내년에 낼 3부작은 大學과 中庸입니다. 그러면 동양 4서를 다 내는 거지요. 내가 고희가 되면 주역의 세계에 대한 책을 낼 생각입니다. 주역은 신비의 세계입니다. 서양에는 주역에 비견할 만한 책이 없어요. 주역은 세 가지를 드러냅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제를 가르치지요. 두 번째는 철학책으로 세상, 인생, 우주에 대해 깊은 진리를 담고 있어요. 세 번째가 점치는 것입니다』
―동양적 가치란 어떤 건가요?
『서양은 효율의 가치입니다. 가장 과학적 가치죠. 인풋(input)을 적게 하고 아웃풋(output)을 최고 많이 내는 가치죠. 서양이 효율의 가치로 동양을 지배하고 지난 300년 동안 세계를 주도해 왔지요.
동양적 가치는 효율의 가치에 대해 도둑놈 가치로 생각합니다. 조금 넣고 많이 받는 건 사기꾼이라고 하죠. 서양은 근대 산업사회 이후에는 商工農(상공농)이에요. 우리는 農工商이었거든. 農은 노력한 것만큼 뽑아내죠. 工은 노력한 것보다 훨씬 많이 뽑아내고, 商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뽑아내죠.
서양이 효율의 가치라면 동양은 도리의 가치입니다. 서양은 항상 현실적인 판단을 해요. 현실적으로 되느냐 안 되느냐, 동양은 가치판단을 해요. 가치의 3대 요소가 善惡(선악), 義 不義(의 불의), 美醜(미추)란 말입니다. 아름다워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고, 선해야 하는 게 도리지요. 동양의 가치는 인간적 가치지요. 서양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대상적 가치지요』
―서양적 가치와 동양적 가치 중 어떤 게 우수한가요.
『어느 걸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서로 다릅니다. 우수하다면 열등한 건 버려야 하는데, 이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적 가치를 선택했는데 지금 와서는 서양적 가치를 가지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는가, 새로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도 지금까지는 서양의 가치를 선택해서 굶주림, 불편한 거, 속박을 벗어났는데, 이제 동양적 가치를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主流는 바뀌지 않는다
전화로 인터뷰 약속을 하면서 핸드폰 번호를 물었을 때 宋復 교수는 『핸드폰 안 갖는 게 내 소신』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겨우」 핸드폰에 「소신」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하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은 사업하는 사람, 현실세계에서 아주 바삐 돌아가는 사람에게나 필요하지 나에게는 필요 없어요. 걸어가면서 조용히 생각해야 하는데 왜 방해를 받아. 우리 나이가 되면 사회 관계를 최대한 단순화해야 해요. 핸드폰은 사회관계를 복잡화시키거든. 단순화를 시켜야 내 知的(지적) 작업을 합니다.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해야 하는데 바쁘면 사유할 시간이 없어요』
핸드폰이 새로운 컨텐츠 개발에 막대한 지장을 미치니 「소신」이라는 단어를 쓸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일 중요한 건 문학과 역사와 철학, 지식의 主 공급원을 文史哲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늘 詩와 소설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詩와 소설은 우리에게 직관의 세계를 개발해 주죠. 대학 와서 소설 300권을 읽고, 詩 300편을 외우라고 권합니다. 외국 고전도 좋고 국내 작가 박경리, 이문열, 이청준 등 좋은 소설가들의 작품이 많지요.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훌륭한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몰랐던 나의 심리를 알게 합니다』
宋復 교수는 지난해 12월 미당 서정주 2주기 詩암송회에서 詩王 상을 받았다며 흐뭇해 했다. 漢詩(한시)까지 합치면 600∼700편을 외울 정도라고 한다. 宋復 교수는 唐詩(당시)를 외워서 써야 하는 唐詩 서예전을 한 바 있다. 1980년 중반부터 정식으로 서예를 공부했다는 그는 서예를 「마음의 도」라고 했다.
『젊을 때 역사책 200권을 읽어야 합니다. 역사는 통찰의 세계입니다. 동·서양사, 특수사, 우리 국사를 꼭 읽어야 합니다. 철학은 판단의 세계입니다. 기본으로 100권을 읽어야죠. 우리는 자기 일과 관계해서 자기 생각과 입장, 위치에서 생각합니다. 그러면 구부러진 현실을 보게 되지요. 사실을 사실대로 안 보고 진실이 진실대로 파악이 안 됩니다. 문학은 감동의 언어를 갖게 해 주고, 역사는 지혜의 언어, 철학은 사유의 언어를 갖게 해 줍니다. 文史哲이 기본이고, 이게 있어야 컨텐츠가 만들어집니다』
―일부 신문에 한국의 主流(주류)가 바뀌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에서 신진세대로 바뀌고, 보수세력에서 진보세력으로 바뀌고, 우파에서 좌파로 바뀌느냐, 그건 아닙니다. 펀더멘털이 제대로 안 되어 있을 때는 그게 가능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동하려고 해도 이동이 안 됩니다. 主流가 바뀔 수가 없지요. 어느 시대든 현실을 움직여 가는 건 보수니까』
―좌파가 정권을 잡아도 보수층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뜻인가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은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 보수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유와 인권과 법치입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보수세력에게는 생명과 같습니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한 파워 시프트는 안 일어납니다. 신진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합시다. 개인의 자유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인권을 축소시키고, 법치를 안 하고 人治(인치)할 수 있습니까. 主流는 그대로 있어요. 메인스트림은 그대로 가는 거라고』
선거는 表皮를 바꾸는 것뿐
―신문 쪽은 신문의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수적인 색채를 띤 매체가 많은데, 방송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방송이 진보를 표방한다고 합시다. 나도 방송을 들어 보면 신문과 다르다고 느껴요. 방송이 사회를 다르게 바꿔 놨습니까?』
―선거는 이겼잖아요.
『선거에 이겼다는 건, 위의 表皮(표피)를 바꾸는 것뿐입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세상이 달라졌습니까?』
―「시청자는 4000만이다. 조선일보는 겨우 200만이다. 세상은 바뀐다」는 얘기를 하는 방송사 친구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고?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 된단 말이오? 자유민주주의는 그대로 있을 거 아닙니까. 사회주의 될 수 없고, 시장가치가 국가 계획경제로 바뀔 수 없고, 代議정치가 임명제 정치로 바뀔 수 없잖아요. 사회주의 좌파들이 지향해 오던, 국가개입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잖아요. 규제완화를 내세우지 규제 증대를 내세우지 않잖아요.
세상이 뭐가 바뀌었어요. 세상이 바뀌었다면 좀더 젊은 사람이 요직에 앉는다는 것이지요. 신진지위 점유자들이 득세를 한다, 이건 돼요. 朴正熙 시대를 봐요. 물갈이를 싹 했지요. 全斗煥 대통령도 했는데, 盧泰愚 대통령부터 金大中 대통령까지 15년을 늙은이들이 잡고 있었어요. 늙은이들의 대표가 李會昌, 젊은이 대표가 盧武鉉이잖아요. 이번에는 盧武鉉이 당선되어서 사람 물갈이를 한 번 하는 거지요』
―30∼40代가 느낄 때 좌파의 목소리가 큰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金大中 정권 5년 동안 그렇게 공격당한 조선일보 부수가 떨어집디까, 月刊朝鮮 부수가 떨어집디까. 공격당하지만 그대로 살아남고 유지해 가잖아요. 서구에서도 신진세력, 급진세력, 좌파세력, 진보세력이 엄청나게 보수세력을 공격합니다. 그래도 서구는 꼼짝도 안 해요. 공격하는 게 당신 본연의 임무다, 그런 정도로 생각하죠』
―인터넷에서 직접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자주 봐서 좌파의 세력이 크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서양에서도 인터넷을 쓰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경험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지요. 서구 언어는 언어 자체가 풍부하면서 너그러워요. 그런데 우리는 언어가 개발이 안 되어서 어휘가 적으면서 굉장히 공격적이에요. 그런데다 보수세력이 자신이 없어요. 공격을 하면 떨어요. 떨 필요가 없는데, 기초가 바뀔 수도 없는데.
우리 사회를 다이내믹 소사이어티, 動態的(동태적)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 보수세력이 목소리를 내야지요. 보수가 엉거주춤해 갖고 별 자신도 없고. 우리 사회는 젊은이는 으레 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수 목소리를 내면 자격지심도 생기고. 그래서 못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게 되어 있어요』
―최장집 교수 사건 이후로 안티조선 운동이 일어나면서 진보의 목소리가 많이 커졌지요.
『내가 최장집에 대해 공인은 검증되어야 한다, 최장집은 안 된다는 글을 썼어요. 반대도 많이 했겠지만, 나는 그걸로 얼마나 많은 지지를 받았는지 몰라요』
지지하는 세력이 80%다
―교수님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지하는 세력도 많죠.
『지탄이 2라면 지지가 8입니다. 지탄세력은 전화로 욕을 무지하게 합니다. 익명으로 하지요. 집으로도 하고 사무실로도 하고 총장실로도 하고… 「宋復 교수 형편없다 잘라라」, 그런 얘기를 하지요. 이름을 밝히고 지지 편지를 보내는 분들이 많아요. 「용기를 얻었다. 지지한다, 계속 얘기해 달라」는 내용들이지요. 난 인터넷 안 들어가요. 일부러 안 보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쓰레기 글을 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학교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대학원생 말로는 송사모도 있다고, 날 지지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요. 연세大서 느끼는 건 학생의 절대 다수가 보수 우파라는 겁니다. 진보 좌파는 5∼10% 정도 되겠죠』
―朝·中·東이 오프라인을 70% 정도 점유한다면, 인터넷 신문의 상위는 대개 좌파 성향의 매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좋은 현상입니다. 내가 잡지와 신문을 오래해 본 경험에 의하면 수지가 안 맞으면 오래 못 갑니다. 수지가 맞으면 오래갈 거고. 그게 필요한 거고 사회는 그런 숨통이 있어야 해요. 열린 사회에서는 그런 걸 통해서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합니다.
보수가 자꾸 소리를 내면 어느 시점에 폭발합니다. 非보수와 反보수가 언제나 울분이 많고, 분노가 많고, 새로운 희망을 불태우는데 그 사람들이 목소리를 안 내면 사회가 폭발하게 되어 있어요. 유지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지요.
오마이뉴스가 어떻게 하든 자유주의, 시장경제, 대의정치, 규제완화는 기본이란 말입니다 오마이뉴스 같은 매체가 있어서 기본이 더 단단해지고, 더 지속적으로 가는 거죠. 그건 두려워할 게 아닙니다』
―인터넷의 나쁜 점 가운데 하나가 익명으로 근거 없는 험담을 하고 심한 욕을 하는 건데, 그것도 큰 문제 아닌가요.
『남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간이 좀 지나면 점잖아져요. 평생 욕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나중에 점잖아져요. 자기가 욕을 해 보면 스스로 얼마만큼 저질적이라는 걸 알게 돼요』
―오늘 낮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미군은 철수한다고 하고, 나라가 적화되는 것 같고 해서 이민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북한은 곧 망해요. 적화가 되긴 뭘 돼. 저런 상태로 어떻게. 북한은 곧 끝나게 됩니다. 끝나야 하는 걸 연장시켜 준 게 金大中 정권이지요. 미국이 왜 나갑니까. 안 나가요』
보수 우파는 약한 것 같지만 강해
―언제쯤 통일이 될 거라고 보시는지요. 통일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앞으로 10년 안 간다고 봐요. 10년은 짧아요. 독일 통일 경험을 잘 살려 일단 통일이 되면 휴전선을 유지시키고, 수년 동안 계획을 세워 북한을 관리해야 돼요. 하루아침에 북한 사람들 다 내려오면, 오히려 북한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겁니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참 좋은 경험을 주었어요. 북한을 5∼10년 정도 저대로 두면서 남쪽에서 지원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지원해야 합니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5년 내로 추월한다는 뉴스를 듣고 우울해 하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나라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악하고 그동안 훈련을 많이 받고, 知的인 축적도 많아요. 중국이 우리나라를 추월하는 부분이 많이 나올 겁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현재 페이스대로 나가는 거지. 나는 우리나라 역사를 아주 긍정적으로 봐요. 지금 우리 현실도 좀더 발전하는 단계로 생각합니다. 신진들, 공격성을 가진 진보 좌파라면 좌파인 사람들의 등장이 우리 사회를 좀더 動態的으로,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거라고 봐요. 盧武鉉 후보의 당선이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는 데 굉장한 기여를 했지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해 줬어요. 도덕적 해이, 모럴 해저드를 막아 주는 데 엄청나게 기여했지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긴장감이 풀려 있었고, 보수층이 나름대로 굉장히 오만했었죠. 이번에 두려움을 느꼈지요.
공산주의가 나오면서 자본주의가 두려움을 느껴서 발전한 겁니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가 출현하지 않았으면 망했을지도 몰라요. 피터 드러커는 「공산주의가 끝나는 순간 자본주의가 위기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는데 자본주의가 위기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서구 정권에서 좌파가 자꾸 등장하잖아요. 그게 자본주의를 건전한 방향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거라고. 좋은 경종을 울린 거지』
宋復 교수는 『이제 그만하자』면서 수업시간에 마지막 정리를 해 주듯 『펀더멘털이 되어 있고, 예산의 15% 이상을 좌지우지 못하고, 盧武鉉이 등장해도 파워 시프트 안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낮지만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가가 잘못 가도록 보수 우파가 놔 두지 않을 겁니다. 보수 우파는 약한 것 같아도 굉장히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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