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의 수사권 박탈을 위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여권을 향해 ‘민주주의 후퇴’이며 ‘헌법 파괴’라고 정면 비판했다.

윤 총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수청 설치 입법은 검찰 해체”라며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고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은 또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이제는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 원칙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으니 포클레인을 끌고 와 길을 파내려 하는 격"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졸속 입법 추진에 "직(職)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말했다.

여권이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윤 총장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법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고 국민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가 일체가 돼야 한다”며 “경찰이 주로 수사를 맡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검·경이 한몸이 돼 실질적 협력관계를 갖춰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날이 지능화, 조직화, 대형화하는 중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덧붙였다.

또한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건들일수록 범죄는 교묘하고 대응은 치밀하다”며 “수사와 공소유지가 일체가 돼 움직이지 않으면 법 집행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했다. 윤 총장은 “내가 현역 검사들 가운데 직관(수사검사가 공판을 책임지는 일)을 가장 오래 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며 여권이 추진하는 수사-기소 분리는 “검찰권의 약화가 아니라 검찰 폐지”라고 주장했다.

윤 총장의 지적처럼 여권은 "선진국은 수사·기소권이 분리돼 있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미국·프랑스·일본은 검찰 수사권이 법적으로 규정돼 있고, 독일도 경찰을 지휘하는 형태로 수사권을 갖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무려 77%에 달하는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일본의 ‘록히드 사건’, 미국의 ‘엔론 회계 부정 사건’도 모두 검찰이 직접 수사한 것이다. 특히 중대 범죄는 나날이 지능·조직·대형화하고 있어 수사·기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여권에서 마치 중수청의 모델로 거론하기도 했던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SFO) 또한 뇌물·부패 등 중대 범죄에 한해 수사·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다. 자치경찰제의 전통이 뿌리 깊은 영국은 80년대까지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주도했지만, 중대 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 능력에 한계가 생기자 1985년 검찰청을 신설했고, 이후 수사권과 공소권을 모두 보유한 중대범죄수사청(SFO)을 1987년부터 설치했다. 중대범죄의 경우 한 기관에서 유기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SFO 홈페이지 소개글에는 “SFO는 담당 사건에 대한 수사 및 기소를 모두 담당한다는 점에서 영국 사법제도의 예외에 해당한다”며 “이는 담당 사건 유형의 특성상 사건 초기부터 검사와 수사관의 협력 필요성에 따라 이와 같이 설계됐다”고 나온다.

윤 총장 또한 영국의 SFO가 중수청의 모델이라는 여권 주장에 대해 “진실을 왜곡했거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SFO를 만든 것도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 전문화, 대형화하자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는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 일”이라며 “수사·기소를 분리한 게 아니라 수사·기소를 융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중수청 법안을 이번 주에 발의해 올해 상반기 중 처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