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의 필연적 결말, 극악의 독재정치
FREEDOM 교양영어(134): Animal Far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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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tlemen,' concluded Napoleon, 'I will give you the same toast as before, but in a different form. Fill your glasses to the brim. Gentlemen, here is my toast: To the prosperity of The Manor Farm!'
  
  There was the same hearty cheering as before, and the mugs were emptied to the dregs. But as the animals outside gazed at the scene, it seemed to them that some strange thing was happening. What was it that had altered in the faces of the pigs? Some of them had five chins, some had four, some had three. But what was it that seemed to be melting and changing? Then, the applause having come to an end, the company took up their cards and continued the game that had been interrupted, and the animals crept silently away.
  
  But they had not gone twenty yards when they stopped short. An uproar of voices was coming from the farm-house. They rushed back and looked through the window again. Yes, a violent quarrel was in progress. There were shoutings, bangings on the table, sharp suspicious glances, furious denials. The source of the trouble appeared to be that Napoleon and Mr Pilkington had each played an ace of spades simultaneously.
  
  Twelve voices were shouting in anger, and they were all alike. No question, now, what had happened to the faces of the pigs. The creatures outside looked from pig to man, and from man to pig, and from pig to man again: but already it was impossible to say which was which.
   November 1943-February 1944
  
  THE END
  
  〈George Orwell, Animal Farm〉
  
  "신사 여러분, 전과 같은 건배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잔을 넘치도록 채우십시오. 신사 여러분, 여기 저의 건배사가 있습니다: Manor Farm의 번영을 위하여!"라고 Napoleon이 결론적으로 말하였다.
  
  전과 똑같은 충심의 환호가 있었고 잔은 남김없이 비워졌다. 그러나 밖에서 동물들이 그 장면을 지켜볼 때에, 그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돼지들의 얼굴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그들 중의 어떤 것들은 5개의 턱을, 어떤 것들은 4개를, 어떤 것들은 3개를 가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갈채가 끝났을 때 그 무리들은 카드를 집어 들고 중단되었던 도박을 계속하였고 동물들은 조용히 기어서 떠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20야드도 못가서 걸음을 멈췄다. 농가 건물로부터 왁자지껄하는 큰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동물들은 도로 달려가서 유리창을 통해서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렇다, 난폭한 언쟁이 진행중이였다. 고함소리와, 탁자를 치는 소리와, 날카로운 의심의 눈길과, 격렬한 반대 소리가 있었다. 문제의 근원은 Napoleon과 Mr Pilkington이 동시에 장땡을 잡은 것처럼 보였다. 12개의 음성이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똑 같았다.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돼지들의 얼굴에 일어난 변화였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서 사람 쪽으로, 사람에서 돼지 쪽으로, 다시 돼지에서 사람 쪽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1943년 11월-1944년 2월
  끝
  
  * 해설
  
  마르크스는 당대의 산업자본가들의 사회를 무갈등 사회의 도래 직전 단계로 간주하였다. 그는 현대기술의 무자비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일터에서 몰아내게 될 것이고 실직 대중은 더욱더 많아지고 생산수단으로부터 더욱 소외되고 더욱더 가난하게 될 것이며 반면에 생산수단의 소유와 통제는 더욱더 소수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더욱더 양극화시킬 것이다. 兩계급간의 갈등은 더욱 악화되어 마침내 數(수)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생산수단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 혁명은 두 가지 의미에서 역사의 종언이 될 것이다. 즉 노동자들의 혁명은 변동하고 있는 사회가 향해서 가고 있는 필연적 정점이며 이후에는 어떠한 변증법적 변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계급적으로 분단되는 일도 끝날 것이다. 생산수단은 모두에 의해서 소유될 것이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운용될 것이다. 계급이 없어졌기 때문에 사회는 갈등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이 다스리는 정부는 없고 오로지 행정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힘의 강압이 없어지기 때문에 인류는 자유롭게 자기 충족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소위 사회주의 지상낙원에서 살게 될 것이다.
  
  세상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이론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학설을 뉴턴의 물리학처럼 과학적이라고 확신하였다. 뉴턴의 力學(역학)에서는 주어진 조건 하에서 물체의 미래의 운동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에 있어서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혀내었다고 《자본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사회의 불가피한 발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적'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타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命名(명명)하였다. 정말로 그는 다른 사회주의를 경멸하였다. 그는 여타 사회주의를 단지 유토피아적인 몽상에 바탕을 두고 있거나 도덕적 高揚(고양) 또는 소망스런 생각에 불과하고 반면에 그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이런 힘의 작동(operation)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과학적 연구를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정치적 교훈도 이런 과학적으로 발견한 사실(realities)에 근거한다고 생각하였다.
  
  마르크시즘이 과학적이라는 개념은 20세기 후반까지 마르크시즘의 매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마르크시스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단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과학적 지식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신념을 절대화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부여하여 다른 견해나 의견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거의 예외 없이 자신들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의 발표나 가르침은 금지하고 탄압하였다.
  
  마르크스주의의 또 하나의 매력은 미래는 사회주의자들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정확성을 가지고 미래의 사회 발전을 예측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불가피한'것이며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미래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든지, 뭐라고 말하든지 그들이 믿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사회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것처럼 “역사는 우리 편”이고 트로츠키가 말한 대로 “敵(적)들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현대'보다도 더 현대적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단지 현재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에도 살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미래에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 - '과학', '현대화', '미래의 편에 있다'- 은 低개발국 지식인들에게는 최면적인 매력을 발휘하였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도 이런 매력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합리성은 경제의 중앙계획과 통제를 요구하였다. 18세기의 로크(Locke)의 이론이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듯이 20세기에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혁명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스의 사상에 충성하는 공산주의 운동이 제3세계를 휩쓸었다. 공산주의자들이 다수의 제3세계 국가에서 권력을 잡았다.
  
  마르크스가 과학적이라고 강조하였던 공산주의는 현실(events)에 적용되었을 때 논박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게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실험을 통해서 검증을 받듯이 어떠한 사상도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사건을 통해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마르크스 이론이 말한 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세계 어디에서도 마르크스의 소위 '역사발전의 과학적 법칙'에 맞추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 운동가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예외 없이 극악의 독재정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 이론이 반드시 도래한다고 주장하였던 그런 사회는 전혀 아닌 것이다. 또 마르크스주의 사회의 경제는 예외 없이 실패하였다. 번영 대신에 빈곤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부는 국민에게 가난과 독재만 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고: Bryan Magee(1998), The Story of Philosophy.
[ 2022-07-14, 09: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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