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논리나 사변(思辨)의 영역이 아니고 체험의 영역은 아닐까. 며칠 전 기독교 잡지를 하는 김 목사가 나를 찾아왔다. 칠십대의 그는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나 홀로 잡지를 하는 분이었다. 혼자 취재를 다니고 혼자 편집을 하고 그렇게 만든 잡지를 독자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속칭 흙수저 출신의 그는 평생 돈이나 세상과는 인연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끊임없는 고난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에게 원한을 품은 젊은 인터넷 신문 기자 한 사람이 집요하게 글로 그를 공격했다.

“나이 들어서 그런 돌팔매를 맞으면 힘드시겠어요?”
내가 위로조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 덕으로 정말 내가 많이 고쳤습니다. 내가 건방졌습니다. 누가 와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나다 너는 누구냐 하는 식으로 건방졌죠. 아무리 목사를 한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 역도를 하고 주먹을 쓰던 습성이 남아 있는 거예요. 저를 공격하는 그 젊은 친구 때문에 엄청나게 겸손해졌습니다. 그 친구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고난을 해석하는 그의 방식이 달랐다. 그와 만날 때면 변호사와 의뢰인이라는 틀을 넘어서 인생과 종교에 대해 마음을 열고 얘기하는 관계라 물어보았다.

“평생 모색하고 연마했던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그 질문은 요즈음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는 신학대학을 나와 미국에 유학을 했고 젊은 시절은 항구에서 돌아다니면서 외항선원들에게 전도(傳道)를 하던 사람이다.

“저는 사실은 종교성 짙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경주석(註釋)을 쓰고 싶어요”

“성경주석이라뇨?”
“성경에 대해서 그동안 나왔던 여러 해석이나 주석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거죠.”

나는 순간 호기심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학문적 해석으로 알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무식했다. 신학서적이 아니라 성경을 그저 조금씩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성경 속에서 주관적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영적(靈的)세계였다. 예수는 이 세상이 아닌 ‘하늘나라’를 알려주었다. 사도 바울도 길에서 ‘예수의 영’을 만나 평생 끌려 다니며 그 체험을 평생 얘기하고 다녔다. 그는 사막에서 셋째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영혼만 몸에서 빠져서 올라간 것인지 아니면 몸까지 올라간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성경에는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계시와 기적이 들어차 있었다. 그게 종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성경주석은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겁니까?”
“기존의 자료를 검토하고 성경의 어귀와 논리를 가지고 분석합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똑똑하다는 사람이나 학식이 있다는 사람에게 절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고 있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람한테는 예수의 십자가 자체가 넌센스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진짜 해석은 성령(聖靈)이 우리의 영혼에 들어와 알려줄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영의 세계는 신비 그 자체였다. 성경 안에는 성령도 나오고 악령도 나왔다. 수많은 귀신들이 등장하고 무당이 불러내 땅 속에서 올라온 사무엘의 영도 있었다. 신학은 그런 내용들을 논리와 어학적으로 풀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믿음이란 논리나 사변(思辨)의 영역이 아니고 체험의 영역은 아닐까. 맹인은 색깔에 대해 논리적 설명은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볼 수는 없다. 본질은 색깔을 직접 한번 보는 건 아닐까. 마찬가지로 성경의 주석은 삶 속의 고통과 체험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성직이 아닌 변호사 업을 하면서 평신도로 그냥 하나님의 영이 나의 영혼에 접속되어 내면이 환히 밝아지기를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