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농사짓고 사는 고향친구 K군과 안부전화를 주고받았다. K군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신문기자 생활을 한 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충북 단양(丹陽)의 소백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다. 개도 키우고 닭도 기르며 살고 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밭고랑을 다듬고 파종(播種)준비를 했다고 했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엔 런던특파원도 지냈고 논설위원도 거치면서 주로 경제 분야 논설을 많이 썼다. 산중 생활을 하면서도 신문에 게재한 칼럼과 대학의 강의 자료, 외신(外信) 등의 자료를 모아 한국경제를 분석한 <○○의 경제학>이란 저서도 출간한 바 있다. 통화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이어졌다.

K군이 참 좋은 얘기를 들려 줬다. “친구야, 나이 들면 세속의 골치 아픈 일은 잊어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좋네, 온갖 풍상을 다 겪고 자란 주목도 보고 철따라 변하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네. 산새가 울어서 꽃도 피우고… 자연이 만법(自然萬法)일세.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 본들 기본이 무너진 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사람아, 이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오만한 자들이 자기들 편리한 대로 세상을 농락하고 있지 않는가?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희롱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지 않는가? 때가 되면 양지(陽地)가 음지(陰地)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법일세. 세도(勢道)가 어디 천년만년 가는가? 세상 이치는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세. 권력이 무상하다는 것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지 않는가?”

K군의 얘기는 마치 소백산(小白山) 산신령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시정잡배들을 향해 호통 치는 듯 들려왔다. 전화는 이렇게 이어지다 끝났다. K君, 올 농사도 풍년들기를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