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敎宗)은 방한(訪韓)기간 동안 너무 많은 것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한 교종의 정체가 진보인 것으로 드디어 밝혀졌다. 교종의 진보와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경향신문은 “진보교황이 남긴 메시지, 보수 한국가톨릭 바꿔놓을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교종은 정치, 경제, 문화, 전쟁과 평화, 폭력과 저항 그리고 투쟁, 용서와 화해, 소외와 고통, 소통과 대화 등등 참으로 많은 것에 대하여 나직한 목소리로 호소했고 당부하기도 했다. 강력한 주문(注文)을 하기도 했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에게 전한 메시지도 있었지만 특정인들을 염두에 둔듯한 한정된 범주의 강론도 있었다.

교종의 수많은 언급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받아 들여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왈가왈부(曰可曰否)하고도 있다. 송구스러우나 교종(敎宗)께서 너무 많은 것을 설파하는 바람에 정작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어록(語錄)이 선뜻 떠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다언필실(多言必失)이란 속담이 실감나기도 한다.

교종이 남긴 어록을 다시 챙겨보니 생각나는 발언도 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습니다”(한겨레신문, 8월20일보도)라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 고통 앞에서 중립 지킬 수 없었다”고도 했다. “고통 받는 자 앞에 중립 없다”(8월21일, 경향신문)는 교종의 마음은 숭고한 박애(博愛)정신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2,300만 북한동포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왜 한마디 언급이 없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교종은 또 민족의 화해를 언급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77번의 용서”를 강조했다. 동족(同族)의 가슴에다 총부리를 겨누며 수백만 명을 죽인 원수에게도 7번이 아닌 77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뉘앙스를 품은 권유를 했다. 그렇다면 교종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와 동시에 용서하라고 어루만지고 설득했어야 하는 것이 성직자다운 관용과 화해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교종의 위로에 힘을 받아 세월호 유가족들은 더 강경해졌고 가해자들을 피해자인 자신들이 직접 단죄(斷罪)하려 하고 있는 것은, 교종의 용서하라는 호소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종의 용서하라는 말씀은 상대에 따라 다른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종은 누군가에 의해 한국의 현실에 대해 편향된 자료를 제공받고 행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가 방한(訪韓)기간 동안 남기고 간 애매하고 석연찮은 중립언행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지금 혼돈의 계곡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있다.

필자가 칼럼 “교황의 등화불명”에서 교황이란 호칭은 황제(皇帝)의 이미지가 강하고 황제는 세속적 탐욕의 상징이며 가장 권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낮은 곳으로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프란치스코”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어느 네티즌은 교황에 대한 존칭은 각하(閣下), 폐하(陛下), “하느님의 대리자” 등으로 부른다고 댓글을 달았다. 한편 경향신문의 손동우 논설위원은 “여적(餘滴)” 칼럼에서 “교황(敎皇), 교종(敎宗), 교종(敎從)”에 대해, ‘교종(敎從)이 적절한 호칭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교황은 자신을 “종들 중의 종(從)”(Servus Servorum)으로 쓴다고 적었다(8월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