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이성일까, 감성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은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뇌과학의 발달로 도덕은 오히려 감성의 영역에 가까움이 밝혀졌다. 전두엽의 일부 또는 편도체를 절제한 사람과 정상인을 상대로 한 여러 실험 중에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가상실험으로, 재난을 만나 바다에 표류하게 된 보트피플이 식량이 완전히 바닥난 후 물만으로 며칠을 버티다가 제비뽑기로 한 사람을 잡아먹고 나머지 전체가 사는 게 옳은가 그른가, 라는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다같이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한다고 대답한다. 설령 찬성하더라도 엄청난 고뇌 끝에 하루 더 기다려 본다든지, 제비뽑기를 잘못한 사람이라도 자진해서 죽지 않는 한, 강요할 수는 없다든지, 라는 식으로 조건부로 찬성한다. 그러나 대뇌변연계와 신피질 사이의 뉴런이 사라진 사람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식인(食人)에 대해 찬성한다. 그에게는 합리적인 판단이 있을 뿐 도덕적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이 아예 없다.

 둘째는 사람이 비참하게 죽어 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 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알아 보는 것이다. 여기서도 정상인은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맥박이 빨라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심지어 토하는 사람도 있고 며칠간 잠도 못 자고 식사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감정이 사라진 사람은 그냥 아무런 느낌이 없다. 지능지수도 판단력도 정상이지만,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악한이 선량한 사람을 이유 없이 도끼로 내리찍어 죽이는 모습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른다.    

 인간의 이해는 신피질의 인식 곧 이성적인 이해가 전부인 걸로 착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못지않게 감성적 이해가 중요하다. 감정이 제거된 사람은 굉장히 일을 잘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선 순위를 정하지 못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모르니, 매 순간 헷갈려 엉뚱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완전히 사라져서 사기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따라서 불교의 무념무상이나 스토아철학의 아파테이아(apatheia 無感情)는 과학적으로 말하면, 감정이 사라지고 이성만 남은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과 진리는 이성의 영역인 동시에 인식의 영역이다. 인식은 무의식과 의식과 외부와의 교감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사실과 진리는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이미지 형태로 존재하고, 이 이미지는 이성보다 감성에 쉽게 다가간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치권력이든 문화권력이든 권력이 거짓은 반복하고 진실은 의도적으로 차단하거나 왜곡하고 축소하면, 사람들은 거짓은 진실로 믿고 진실은 거짓으로 믿는다. 그렇게 형성된 이해가 양심과 연결되면 증오를 낳고 피를 부른다. 이미지에 주로 의지하여 감성적 이해를 노리는 상업적 광고는 기껏해야 과소비를 조장할 따름이지만, 정치적 선전선동이나 예술적 선정성이 국민을 우민화하면 한 나라가 파멸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왕조는 감성적 이해를 악용한 스탈린으로부터 전수 받은 세뇌기술로 전 주민을 공포의 동굴과 기아의 수렁과 증오의 바다에 밀어 넣었다. 90년대 초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한국에 흡수통일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때 김정일과 한국의 19세기식 민족자주파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흡수통일 절대 반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대적인 역세뇌공작에 들어갔다. 꿈만 같던 일이 성공했다. 이성적 이해를 신봉하는 한국의 자유민주 세력은 어이가 없었다. 공산주의가 다 망했는데, 세계가 하나 되었는데, 중국에 이어 동구와 러시아, 베트남도 개혁개방했는데, 왜 북한만 저러고 있을까, 왜 한국의 방송과 인터넷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듯 자진해서 뱀의 혀처럼 5천년 역사상 단연 1등 민족반역자의 대변인 역할을 담당할까.   

 감성적 이해가 이성적 이해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서 한국의 새 위정척사파는 먼저 감동으로 사람의 눈시울을 적시거나 주먹을 쥐게 만들기 위해 일찍이 70년대 이래 문화를 공략했다. 문학과 연극과 노래, 영화 등은 이들에게 멋진 무대였다. 양심을 훔치거나 마비시키는 데 이보다 좋은 무기는 없었다.

 생존시위나 생명시위나 민족자주시위나 환경시위나 건강시위나, 여차하면 온 나라에 순식간에 증오의 불길이 번지는 것은 바로 이들이 이성적 이해보다 감성적 이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서 치밀하게 이미지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서 이제 형식상의 정권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위가 거듭되면 허둥지둥한다. 결국은 다 들어준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음에도 서서히 끓는 물 속에서 죽어 가는 개구리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다.
         (2008.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