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감 넘치던 운동권 변호인은 왜 악마의 변호인이 되었나’ 좌경 독서회 사건인 ‘부림사건’을 변호하다 학생들에게 의식화 당해 좌파적 정치인이 된 노무현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이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264쪽, 1만 원, 조갑제닷컴)은 ‘그렇게 정의감 넘치던 운동권 변호인은, 왜 대통령이 되어선 악마의 변호인이 되었는가?’하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있었던 노무현-김정일 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노무현은 ‘미국을 제국주의, 북한을 자주국가, 한국을 분단정부’로 표현한다. ‘美 제국주의와 맞서는 자주국가의 수령’ 김정일 앞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이념적 동지 내지 이념적 부하로 서있는 셈이다. 이어지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고백―“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의 입장을 변호해왔습니다”―은 충격적이다. 1982년 부림사건으로 계급투쟁론을 접했던 노무현은 25년 뒤 악마의 변호인임을 자백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저자 조갑제趙甲濟 기자는 “휴전선 남쪽에선 ‘용감’했던 노무현은 왜 김정일 앞에서는 그토록 작아졌던가? 왜 부하처럼, 이념적 동지처럼 행동했던가? 그 답은 ‘계급투쟁론에 의한 대한민국 부정’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악마의 변호인’인가 ‘Devil’s Advocate’인가? 노무현은 2007년 10월2일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을 찾아가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란 글을 남겼다.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우슈비츠에 가서 ‘유대인의 행복이 나오는 전당’이라 쓴 것과 비슷하다. 전체주의보다 더한 유일唯一독재체제인 북한에서, 주권은 수령 한 사람만 행사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인민人民주권’이라고 선전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급투쟁론의 화려한 포장인 ‘인민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문서로 남긴 것이다. 부림사건은 북한과 연계 없이 이뤄진 독서회 사건이지만 이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한 사람은 북한에 몰래들어갔다 나와 실형을 산 적이 있다. 부림사건 연루자들이 읽은 책들은 공산주의 원전原典이 아닌 좌경학자들이 쓴 것이었다. 이런 책을 읽는 것과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것 사이엔 아무 관련성이 없을 것 같지만, 계급투쟁론적 가치관을 흡수하면 노무현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거룩한 이름을 가지고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란 칭송을 북한 독재정권 앞에 바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노무현이 자기 입으로 말한바 ‘북측의 변호인’은 ‘악마의 변호인’이란 의미이지만 한편으론 본의本意아니게 천주교의 ‘데블스 에드보케이트’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최단시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과 그 주인공들은 세계사世界史의 성인聖人으로 추대될 자격이 있다. ‘역사의 신神’이 성인 자격심사를 한다면 법률가 출신인 노무현을 ‘악마의 대리인’으로 임명,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도록 시킬 것이다. 북한정권이 무너지고 자유통일한 뒤에 돌아보면, 노무현과 그 추종세력은 대한민국이 야성野性과 투지鬪志를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역할,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었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부림사건 피의자,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 과연 ‘부림사건’은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용공容共조작이었을까 1982년 부림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부림사건은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하면서 최초로 인권人權을 알고, 사회를 알고, 정치를 알게 됐다고 해서 굉장히 의미를 두는 사건입니다. 최대한 축약해 말씀드리면 부림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 피의자가 제게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 조사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사건이라는 것을 저는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림사건은 알려진 바와 달리 여전히 유죄有罪로 남아있다. 2009년 부산지법 형사 항소 3부는 이 사건의 재심판결에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판단을 유지했다. 사건 주역이 정권을 잡았던 노무현 정부 당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등도 뒤집지 못했다. “명백한 공산주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도 공론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 고영주 변호사의 설명이다. 2차 부림사건 재판장으로 일부 피고인들에게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내렸던 서석구 변호사는 최근 “무죄 판결의 결과가 국가안보安保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순수 민주투사들을 변호한 사람이 악마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투사가 공산·전체주의 수괴首魁를 변호할 순 없기 때문이다. 좌경운동권을 변호하다가 의식화를 당한 변호인이라야 악마 김정일의 변호인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는 점을 이 책이 보여줄 것이다.
| 책 속으로 |
영화 <변호인>을 본 조선뉴스프레스의 이상흔 기자는 비판적인 평을 썼는데, 나에게 흥미로운 소감을 말했다. “변호인을 미화美化하고 경찰, 검찰, 법원을 악惡으로 모는 영화인데, 강조점은 후자後者인 것 같습니다. 노무현 미화보다는 국가를 부정하는 데 중점을 둔 듯합니다.” 그는 영화평에서 이렇게 썼다. <영화에서 고문 경찰은 상대를 폭행하는 와중에서도 애국가가 나오자 부동자세로 경례를 취하는데, 굳이 이런 장면을 삽입한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가의 권위를 희화화하려는 것이다.> -9페이지 (머리글 中) ‘좌경의식화 독서회 사건’의 성격을 가진 부림사건은,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대통령을 의식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대통령의 많은 정책들이 국가를 왼쪽으로 기울게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구속재판을 받는 가운데서 학생들이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착취와 빈부貧富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에 대하여 변호인을 가르치려 들었다는 점은 당시의 재판·수사 분위기에 대해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 -30페이지 (1장 부림사건 변호인은 왜 악마의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中) 한국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이념 갈등 사건에서 자동적으로 한편에 서는 세력이 있다. 광우병 난동-천안함 폭침爆沈-연평도 포격-철도노조 불법 파업-한국사 교과서 파동 등으로 편이 갈릴 때 왼쪽으로 정렬하는 세력은 북한정권, 민주당, 통진당(구 민노당), 정의당, 민노총, 전교조, 한겨레신문, 좌경 종교단체 등이다. 평소 북한정권을 비판하던 이들까지도 대한민국과 북한정권, 법치와 불법의 대결구도가 되면 북한정권과 불법 편을 든다. 스스로 종북從北이 아니라고 하는 좌파도 이념문제에선 대한민국 편을 들지 않는다. 한국에 ‘반북反北 좌파’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런 자동적 줄서기의 비밀을 알면 많은 의문이 풀린다. 예컨대, 휴전선 남쪽에선 용감하던 소위 민주투사들이 왜 반反민주의 원흉인 북한 독재자 앞에 서면 비굴해지는가? 인권을 신념으로 여긴다는 세력이 왜 북한 인권법 통과에 대해서는 적대적인가? 김대중, 노무현은 왜 김정일 앞에서 작아졌던가? 부림사건 변호인은 왜 악마적인 김정일의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한반도의 가장 큰 수수께끼의 정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계급투쟁론’이다. -50페이지 (1장 부림사건 변호인은 왜 악마의 변호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中)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임무》(Duty)에서 2007년 11월 서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적 있다며 “나는 그가 반미적이고 아마도 약간 정신나갔다(a little crazy)고 결론 내렸다”고 썼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아시아의 최대 안보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지적했다”고 공개했다. 미국은 연 180만 명의 미군을 한국에 보내 5만 4000명이 전사戰死, 10만 명이 다치는 희생을 치르면서 한국을 북한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구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의 국방장관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으니 ‘정신 나간 듯’이란 감정적 반응이 나온 것 같다. -99페이지 (2장 동맹국 美 수뇌부의 시각: “약간 정신이 나간 듯” 中) “제가 부림釜林사건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것이 이 사건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수사 중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피의자였던 이상록 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고영주 변호사 인터뷰) -107페이지 (3장 수사검사, 입 열다 中) 어느 날 한 언론이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부산지방법원 판사 시절인 1982년, 이른바 부림사건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은 전부, 집시법이나 계엄법 위반 일부에는 무죄를 선고한 나의 판결주문이나 일부 무죄 판결 부분 이유가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용감한 명판결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선뜻 동조하지 않았다. 물론 옳은 부분도 있겠지만 완벽하게 옳다는 확신에 이르지 못했다. …기자에게는, 판결이유에 문제가 된 운동권 서적에 대하여 해석한 내용들이나 무죄 판결의 결과가 국가안보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서석구 변호사 手記. -137페이지 (4장 부림사건에 무죄를 선고했던 판사의 후회 中) <변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일반화다. 고문조작·용공조작이 국가보안법 관련, 모든 공안사건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안보와 공안을 다뤄 온 모든 공무원들은 권력, 명예, 또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악당들로 폄훼된다. (김성욱 기자의 後記. -145페이지 (5장 영화 <변호인>을 보고 쓰다 中) 영화에서 절대선으로 포장한 ‘정의의 사도’ 세력은 스스로 ‘폐족’이라 불렀을 정도로 결코 아름다운 흔적만을 남겨놓은 것이 아니다. 이념과 지역,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부자와 서민, 서울대와 기타대학,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으로 나라를 사분오열四分五裂했다는 민심의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한동안 사라졌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이 영화는 도대체 왜 태어난 것일까? (이상흔 기자의 後記). -154페이지 (5장 영화 <변호인>을 보고 쓰다 中) 영화 <변호인>은 좌파적인 문화코드에 더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대의 양심’으로 그리며 친노親盧세력들에게 反독재-인권투사라는 그럴듯한 ‘감투’까지 씌워주고 있다. (이상흔 기자의 後記 -154페이지 (5장 영화 <변호인>을 보고 쓰다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