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의 王은 많은 王과 侯를 임명했다
武寧王陵의 공주에서 ‘2023 大百濟(대백제)전’ 개막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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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충남 공주에서는 ‘2023 대백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개막식에 참석한 尹錫悅 대통령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의 유산은 아시아 문화 발전을 이끌어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DNA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대백제전’이 백제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축제로 발전해 가기를 바라며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씀과는 달리, 백제의 유산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패전국이라 유물, 유적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史書(사서)에서도 폄훼되었습니다.
  다만, ‘대백제’였을 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첫째는 1971년 충남 공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武寧王陵(무령왕릉)입니다. 武寧王陵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 인근, 그리고 옛 고구려 땅에서 그 많은 왕릉이 발굴됐지만, 정확히 누구의 무덤이라고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짐작만 할 뿐이죠.
  
  武寧王陵에서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은 백제의 斯麻王(사마왕·사후 묘호는 武寧王·재위 501~523)이 묻혔다고 정확하게 기록된 墓誌石(묘지석)이 나왔습니다. 지석에는 〈寧東大將軍 百濟 斯麻王 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 壬辰 崩, 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 甲申 安曆登冠大墓·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 연62세 계묘년5월병술삭7일 임진 붕, 도을사년8월12일 갑신 안력등관대묘〉라는 銘文(명문)이 구워서 만든 네모난 도자기판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던 계묘년(523년) 5월7일 붕어하셨다. 을사년(525년) 8월12일에 이르러 (3년상을 마치고) 안장되었다〉는 뜻입니다. 영동대장군이라는 직함은 중국 南朝(남조) 가운데 하나인 梁(양)나라(502~557년)의 역사책 《梁書》에 梁나라 창업자 武帝가 餘隆(여융·武寧王을 중국에서 부른 이름)에게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武寧王陵에서 나온 유물은 108종 2900여 점에 이르며, 王과 王妃의 금관 및 금제 관장식, 금제 귀걸이, 목걸이, 청동거울, 베개, 足枕(족침) 등 국보로 지정된 것만 12점이나 됩니다.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구은 塼(전)돌 무덤은 중국 梁나라의 양식을 따른 것이나, 신라나 일본이 건축할 때 백제에 기술자 파견을 요청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부합할 만큼 백제시대의 높은 건축 수준, 예술적 감각을 생생하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武寧王陵은 한반도를 포함, 과거 동이족의 나라였던 곳에서 발굴된 왕릉 가운데 왕명이 밝혀진 유일한 예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만, 또다른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로 묘지석에서 나온 「崩(붕)」이라는 표현입니다.
  
  孔子가 지은 《禮記》에는 죽음에 대한 용어가 신분에 따라 명기되어 있습니다. 〈天子曰崩 諸侯曰薨 大夫曰卒 士曰不祿 庶人曰死(천자왈붕 제후왈흉 대부왈졸 사왈불록 서인왈사)〉입니다. 崩은 天子가 죽었을 때만 쓸 수 있었고, 봉토를 가진 公·侯·伯·子·男爵은 薨, 벼슬아치는 卒, 선비는 不祿, 평민은 死라고 했습니다. 이는 上代 율령사회에서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엄격한 규율이었습니다.
  
  그런데 武寧王의 죽음을 「崩」이라고 표기했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당시 백제에는 중앙인 사비에서 전국을 통치하는 통치자 이외에 지역별로 여러 명의 王과 侯가 있었다고 합니다. 日本 사카모토 오시타네(坂元義種·판원의종) 교수의 「5세기의 百濟大王과 그 王侯」라는 논문에는 『옛날 백제에는 弗斯侯(불사후), 八中侯(팔중후), 都漢王(도한왕), 阿錯王(아착왕), 邁廬王(매려왕), 避中王(피중왕) 등 지명을 곁들인 王侯(왕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南齊書》라는 중국 역사책의 '백제국전'에는 더 상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武帝 永明(영명) 8년(490년)에 東城王(동성왕)이 표문을 올려 『寧朔(영삭)將軍 面中王(면중왕) 姐瑾(저근)을 冠軍(관군)將軍 都漢王(도한왕)에, 建威(건위)將軍 八中侯(팔중후) 餘古(여고)는 寧朔(영삭)將軍 阿錯王(아착왕)에, 建威(건위)將軍 餘歷(여력)은 龍'524;(용양)將軍 邁廬王(매려왕)에, 廣武(광무)將軍 餘固(여고)는 建威(건위)將軍 弗斯侯(불사후)에 임명했다』고 했고, 495년에는 (백제를) 침략한 (선비족의) 魏軍(위군)을 무찌른 공로로, 『沙法名을 行(행)征虜(정로)將軍 邁羅王(매라왕)에, 贊首流(찬수류)를 行安國(안국)將軍 辟中王(피중왕)에, 解禮昆(해례곤)을 行武威(무위)將軍 弗中侯(불중후)에, 木干那(목간나)는 行廣威(광위)將軍 面中侯(면중후)에 임명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王은 면중왕, 도한왕, 아착왕, 매려왕, 매라왕, 벽중왕, 侯는 팔중후, 불사후, 불중후, 면중후입니다. 백제의 최고 통치자가 王과 侯를 임명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뿐 아니라, 중국의 동부 해안, 倭(왜) 등을 통치하는 해양국이었다는 중국 남조시대의 기록 등을 살펴볼 때, 백제는 대왕이 다스린 ‘大百濟’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 2023-09-24, 08: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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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23-09-26 오후 5:39
흥미로운 대백제국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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