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안 해도 되는 사람은 정녕 없을까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고, 변명을 안 해도 되는 그런 대법원장을 가질 福이 우리에게는 정녕 없을까

무학산(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오늘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 《“송구” “죄송” “반성” 고개 숙인 이균용》이런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면 국민의 가슴은 또 무너져 내리지 않겠나. 작은 잘못을 확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저런 말을 여러 차례 말할 수밖에 없었던 잘못을 꾸짖는 것은 확대 해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도리어 그냥 넘어간다면 더 부끄러운 국민이 되고 만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핑계 없는 잘못은 없고 변명하지 못할 잘못도 없다. 그런 핑계와 변명을 듣고 있으면 살인자도 용서된다.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고, 변명을 안 해도 되는 그런 대법원장을 가질 복이 우리에게는 정녕 없을까.
  
  김명수 대법원장 때문에 국민의 속이 얼마나 썩었던가. 그 잘못을 없애 버리려 가는 새 대법원장이 송구. 죄송. 반성이란 말을 연이어 했는데 무슨 염치로 남의 잘못을 청소한단 말인가.
  
  우리가 어렸던 시절에는 ‘반성한다’는 말 자체를 부끄럽게 여겼다.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는 반성한다라는 말을 듣기 귀할 만큼 반성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드물었다는 말이다. 길거리 사람들조차 그랬는데 하물며 정치가였겠나. 판사였겠나.
  
  그러나 이제는 어찌된 일인지 반성한다는 말을 일상으로 듣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래선지 반성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도리어 모범적 인사로 대접받게 되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뚝 잡아떼는 시절이니 반성한다는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대접되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만 하면 된다는 가치관이 굳어질 것 같다.
  
  그러나 이균용 씨는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안 그런 사람을 못 찾으니 대통령도 저 사람을 임명하지 않았겠나. 기업은 1류. 공직은 2류. 정치는 3류라 했다. 오히려 그 3류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런 정치의 맨 앞에 문재인이 있고 이재명이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 2023-09-20, 10: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