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만난 흙수저
금수저나 은수저는 불을 만나면 녹아버린다. 그러나 흙수저는 불을 통과하면 단단한 도기(陶器)가 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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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파동으로 광장이 살기로 들끓던 때였다. 그는 친일파 매국노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인형이 광장에서 화형을 당하고 있었다.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가짜뉴스가 황사같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분노한 군중이 그를 찾고 있었다. 그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관이 광장에 나가 설명하려다가 얻어맞고 안경이 날아갔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선글래스로 눈 부위를 감춘 채 숨어다녔다. 언론은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었다. 그는 한국측 소고기협상 대표였기 때문이다. 도망다니던 그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너나 나나 어렸을 때 가난한 집에서 언제 돼지비계라도 한 점 제대로 먹어본 적 있니? 솔직히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였잖아? 못 먹어서 키도 제대로 못 크고 말이야. 나는 소고기 협상 대표가 되면서 생각한 게 있어. 싼값에 수입하면 가난한 엄마들이 아들에게 소고기를 먹일 수 있어.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동료들과 함께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소고기를 안주로 소주 한잔 나눌 수도 있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해 주고 싶었어. 또 나라 간에도 기브앤 테이크야. 우리가 자동차와 핸드폰을 팔아먹으면 그 나라에서도 뭔가 사 줘야 하는거야. 미국 사람들 장사나 무역에 있어서는 무서운 사람들이야.”
  
  “광우병 사태가 일어난 문제의 핵심은 뭐였어?”
  “소고기를 수입하면 국내 축산업자들이 망하는 거지. 무역의 문제가 정치가 되는 거지. 노무현 대통령은 그게 싫어 다음 정권으로 뜨거운 감자를 넘기고 싶었지.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받기 싫었던 거고. 나는 제단에 바쳐진 불태워질 제물인 약한 양 한 마리고 말이야. 정치는 모든 걸 만족시켜줄 수 없어. 그런데 대통령들은 그렇게 될 듯 쇼를 하고 싶은 거야. 그 누구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협상대표 자리에 가려고 하지 않았어. 나 같은 흙수저 출신이나 간 거지. 외교부 공무원으로서의 생명도 이제 끝났어.”
  
  그의 말이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는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흙수저 출신인 그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와 절과 고시원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그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내게 넋두리했던 것들이 내 기억의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린시절 몸이 불편한 가난뱅이 아버지가 육남매를 데리고 전라도에서 무조건 상경한 거야. 물지게를 지고 나르는 산동네 판잣집에 살았지. 온 가족의 생존 자체가 절대명제였지. 중학교 때 나는 방과 후면 혼자 교실에 남아 공부했어. 집이라고 책을 펴 놓을 장소도 없는 거야. 무엇보다 참고서를 볼 수가 없었지. 자존심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어. 그런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슬며시 참고서를 놓고 가는 거야. 선생님은 내가 뭐가 필요한 걸 알았던 거지. 그때 도시의 구석에서 주눅들어 살던 아버지는 나만은 어떻게 하든지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했어. 내가 성적이 좋으니까 다니던 학교에서는 나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어. 담임선생님은 일류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권했어. 한 명이라도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는 게 교사의 의무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내 고집에 담임선생님이 슬며시 양보했지. 그때 일류고등학교 입시를 치기 위해서는 음악과 미술이론을 공부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배울 길이 없는 거야. 학원이 있다고 해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지. 그때 담임선생님이 학교의 음악과 미술 선생님에게 개별적으로 내게 이론을 가르쳐 줄 걸 간곡히 부탁해줬어. 음악 선생님이나 미술 선생님이 한 학생의 앞길을 열어주자는 의미에서 내게 특별교육을 시켜줬어. 지금 생각하면 이십대 청년인 선생님들이 그런 사랑을 베풀기는 쉽지 않았을 건데 말이야. 감사하지.”
  
  그는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와는 친구가 되었다. 고교시절 그는 도산 선생이 만든 흥사단에 들어 민족정신을 흡수했다. 정치공학이 아니라 민족이 본질적으로 뭘 요구하는지를 배운 것 같았다. 그는 외교관이 됐고 엘리트 의식이 팽배한 외무부에서 직업관료의 최고봉인 차관까지 하고 물러났다. 차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과 출신학교와 흙수저 출신이라는 벽을 깨부순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금수저나 은수저는 불을 만나면 녹아버린다. 그러나 흙수저는 불을 통과하면 단단한 도기가 된다. 그가 그랬다. 어제 오후 해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 나이 칠십을 훌쩍 넘긴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레 아침 아홉시 반에 묵호역에 도착할 테니까 나와.”
  
  노인 두 명이 햇빛이 반짝거리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시원한 여름 파도를 보면서 추억을 되새김할 것 같다. 그가 화형식을 당할 때 생각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이 돌을 던질 때 다가가는 게 친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 2022-06-28, 09: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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