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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북한 최다부작 영화(24편) <이름 없는 영웅들>에서이다. 반미적 첩보 영화를 만들자니 서구문화인 크리스마스를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큰 정신 문화적 의미를 지닌 것인지는 몰랐다.

크리스마스를 처음 현실로 맞는 것은 탈북한 후인 1991년 12월 25일 중국 연길에서이다. 묵고 있는 조선족 집(리룡국) 친지와 그 친구들이 연길 조선족 교회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간다는 것이다. 망명 체류지에서 몹시 외롭고 답답함, 궁금증으로 그들을 따라가 보았다.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목격하였지만 그 의미는 전혀 모르고 또 가르쳐주는 연고도 없었다.

교인인 듯한 곁에 앉은 조선족 청년이 착한 심성으로 저를 대해주는 인상만 남아있다. 그 청년이 지닌 성경 책을 난생 처음 보았다. 성경은 가죽으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런 책 역시 처음 보았다. 그 종이 질 역시 김일성 부자 교시록보다 훨씬 좋았다. 북한에서 최고의 가치와 질을 가진 책은 김일성 부자 교시록이다. 김 부자 책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가죽으로 포장되어 있지는 않았다. 성경은 뭘 그렇게 귀한 뜻이 담겨있는지 가죽으로 포장, 이는 남조선에 있는 친척이 자신에게 선물 준 것이라고 했다.

교회 분위기와 이 청년 교인을 통해 북한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악마들의 축제>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서 가장 싫어하는 종교는 기독교이며 그 선교사들은 악마 중의 악마라고 교육 선전 받았었다.

1992년 6월19일 나는 중국에서 소련으로 넘어갔다. 남조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남한 대사관이 있는 모스크바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는 남조선 대사관이 없었고 내가 떠난 1992년 가을경에 생겼다. 이런 앞날을 신이 아닌 이상 예상할 수 없다.

(2)
따라서 몇 달 연구하고 준비한 끝에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에서 소련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곳 동년현에서 소련으로 흐르는 수분하 강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4일간 강 따라 시베리행 열차역이 있는 우쑤리스크에 도달하였다.

수분하 강의 중소 국경을 넘을 때 난생 처음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소 국경을 넘으려면 철조망을 치지 않은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것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강으로 생각하였다. 과학자인 나의 판단은 비상해 보였지만 이것이 너무 어이없는 것임은 현장에 부닥쳐서이다. 철조망은 없지만 그 대신 기관총을 걸어 놓고 화경(헤드라이트)을 단 망루 초소가 나타나는 것이다.

일단 들어선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눈뜨고 총구 앞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의 구덩이인 줄 알면서도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때 가장 부러운 것이 물고기와 새였다. 물고기처럼 잠수했으면, 새처럼 날 수 있으면 살겠는데 하는 지푸라기 잡는 염원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 너무나 냉정했다.

망루와 총구는 점점 다가오지만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는 한 없이 맥없는 나였다. 가까이 갈수록 망루는 악마의 아구리를 넘어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죽음의 구덩이로 보였다. 도무지 쳐다 볼 수조차 없어 얼굴을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 그 한 마디는 또렷히 기억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남들은 믿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신비한 체험을 한다. <하늘아! 날 좀 살려 다오!>와 함께 나는 하얀 목화 솜인지 구름인지에 평안이 누워있는 것이다. 방금 직전의 죽음의 구덩이가 아니라 정말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평안한 곳이다. 이 체험을 정신분석학으로 평가하든지 교회적으로 평가하든지 나는 모르겠다. 단지 내가 나를 속일 수 없는 체험임은 분명한 것이다. 아마도 이 체험 때문에 추후 종교를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하다.

이 평안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물소리가 다시 들리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살핀 것은 쳐다볼 수도 없이 무서웠던 망루였는데 그게 안 보인다. 일단 안심이 되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니 망루는 저 뒤에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켜져 있어야 할 망루의 화경은 그 날따라 아직도 켜져 있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중소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렇게 무사히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3)
중국 땅에서 하루, 소련 땅에서 삼일간 강 위의 낙엽처럼 흘러 시베리아행 열차 역이 있는 우수리스크에 도착하였다. 그 동안 고생을 이 자리에서 다 묘사하기는 주제가 넘어 생략을 하련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몇 가지 사실만 말하려 한다. 잡히면 안되기에 군인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군 장교가 나타나 숙식과 물 속에서 잃어버린 신발도 얻게 되었다.

우수리스크 역전에서 차 표를 사야 하는데 난데없이 크레스티얀이 나타나서 반갑다며 대신 사 준다. 크레스티얀은 기독교인이란 말 같지만 러시아어로 농민이다. 한낮을 족히 달려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경이였다.

야밤에 어디 갈 데 없을 때 막차 버스에 탄 곁의 손님이 위험하니 자기 집에 가 자고 가라고 한다. 이분은 하바롭스크 대학 교수라고 한다. 낯설은 곳이지만 가는 곳마다 약속이나 한 듯 <천사>들이 나타나 목적지에 이른 것이다.

모스크바 가기 전에 나의 계획은 연길 거주 집 리용국의 처제를 통해 알게 된 하바롭스크의 율라라는 집에 들렀다 가려고 했다. 리용국 처제는 보따리 장사 길에 율라의 집을 알게 되었는데 그 곳에 남조선 사람들이 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모스크바 남조선 대사관에 어떻게 가는지 물으려 했다.

이들을 만나보니 뜻밖에도 선교를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 책임자가 캐나다 국적을 가진 유영길 선교사(목사)였다. 이들을 만난 날은 신통히도 남북전쟁이 일어난 6월25일이다.

난생 처음 기독교인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열흘 간 함께 있다가 유영길 선교사의 도움으로 모스크바 한국 대사관에 들어선 날은 1992년 7월6일이다. 그 당시는 북한 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를 받지 않을 때이다.

중국 감옥과 북한 감옥, 드넓은 아시아, 유럽 대륙을 거쳐 찾아갔지만 그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탈북자에게서 남조선 대사관은 희망과 생명의 등대였는데 현실은 절망이었다. 물론 북한 과학자 출신이었기에 반 김일성 인사 허진 선생에게 소개를 해주었지만 벌목, 건설 공 출신 탈북자들은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어!> 하며 내쫓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인간답게 느껴진 곳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결국 내 발로 교회에 찾아가게 된다. 이렇게 넓은 광야에 가는 곳마다 한인 교회가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절망 속에 희망이라고 이들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에서 가장 악당이라고 했던 이들이 가장 어려울 때 도와준다. 진짜 친구는 가장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이다. 이런 현실 앞에 기독교는 가장 악당이라고 했던 북한의 세뇌는 무너졌다.

그 다음 문제는 이들이 원하는 기독 즉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보건대 무맥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아무런 죄도 없이 얻어터지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가지고 어케 혁명을 하겠어? 천하의 바보가 예수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였다. 세계적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천하의 바보 예수 생일 기념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놀란 것은 예수 탄생년이 양력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즉시 위대한 수령이라고 했던 김일성과 비교가 된다. 가장 위대한 수령이라고 하여 김일성 생일은 <태양절>로 정했다. 그 탄생년 1912년을 기점으로 <주체년>역서를 따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태양절>, <주체년>은 북한에서만 국한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양력은 전세계 심지어 북한에서도 표기된다.

와! 세상 바보 예수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보다 훨씬 세네! 한편 예수 세상(자유세계)은 자유롭고 풍요한 현실이다. 반대로 김일성 세상은 가장 억압되고 대량 아사가 될 정도로 궁핍함이다. 북한에서도 진리의 기준은 현실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는 원인이 뭘까 저절로 한인 교회의 신학교를 다니게 된다. 조영철 목사와 류지열 목사가 각각 운영하는 모스크바 감리교 신학교였다. 추후 남한에 와서도 어쩌다 두 개의 신학 대학원을 나오게 된다. 서울 삼육신학대학원과 총회신학대학원이다.

나는 스스로 북한에서 가장 악당인 선교사로서 가장 악당이 된다. 나를 선교사로 최초로 임명한 곳은 LA소재 새벽 선교회(최광식 선교사)와 LA 충현 선교교회 등 기타 한인 교회들이다. 저를 미국 선교사로 처음 임명한 최광식 선교사는 저와 같은 과학도이다. 한국 카이스트와 미국 스탠포드대 출신으로 20대 공학박사이이며 교수이다. 북한에서 미국 선교사가 가장 악당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 꼴이 되었다.

사실 신학 대학원을 나왔다고 하지만 평신도보다 성경을 읽지 못했다. 또 신학 대학원을 나오면 목사가 된다고 하지만 저는 극히 사양했다. 목사가 될 수 없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이가 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폐쇄 북한에 복음을 직접 보내기에 선교사라고 할 뿐이다. 선교사란 말도 가당치 않아 평시는 대북풍선단장이라고 한다. 풍선으로 북한 동포를 직접 돕는다는 의미인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대표이다.

나의 신앙은 어린 다윗처럼 거대한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선 것이다. 한없이 어리지만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는 확신 있는 싸움이다. 나의 싸움 상대는 거대한 거짓말의 우상 골리앗이다. 일제 타승 815해방자, 미제 타승 625 전승자라는 골리앗인 것이다. 이런 새빨간 거짓말, 위대한 사기꾼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진실이다. 싸움의 고수는 무엇보다 상대의 치명상이 뭔지를 알고 치는 것이다.

치명상인 이 진실이 들어올까봐 라디오 인터넷을 막은 유일 폐쇄국이 북한이다. 이 폐쇄를 거뜬히 뚫고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무너뜨릴 것이 대북 풍선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대북 풍선을 막을 수 없다. 레이더와 열, 소리,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풍선이기 때문이다. 이 대북 풍선을 민간인으로 탈북자로서 처음 개발하여 날린다.

어둠이 빛을, 거짓이 진실을 절대 이길 수 없기에 승산이 분명한 싸움이다. 백전백승보다 상책인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인 것이다. 북한 동포들도 크리스마스가 뭔지를 알도록 하는 것이 나의 투쟁이다.

*실없는 말이지만 신통히도 나의 어머니, 나, 막내딸의 생일이 크리스마스날인 12월25일 이후에 몰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