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술집에서 지금 막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 글을 쓴다. 술집에서 기억에도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에비촐촐한 가시나 그기…”라 했다. 입에 익은 대로 나온 말인데 두어 넘은 웃고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들은 “아재 에비촐촐이 뭐요?” 했다. 내가 다시 생각해도 좀 우습기는 하다.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노라면 어려서 쓰던 경상도 말이 나도 몰래 튀어나오는데 천천히 대화할 때는 저절로 표준어가 써진다. 내 고장 말에 작은 애정이나마 가진 내가 이럴진대, 경상도 말도 제주어처럼 공식적으로 사라졌음을 선포할 날이 머잖아 보인다.

‘에비촐촐하다’는 에비기는(야위기는) 한데 보기 좋을 정도로 야윈 상태를 말한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렇게 경상도 말을 표준어로 번역하자면 그 깊은 뜻까지 다 옮기기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마치 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그 감정까지를 영어로 옮기기 불가능하듯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고 글자대로 번역하면 서양 사람들은 “왜 그냥 보내?” 하면서 ‘겁쟁이’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가장 모욕적인 욕은 ‘겁쟁이’라고 한다. ‘에비촐촐’도 표준어에는 없으면서, ‘야위다’와는 다른 깊은 뉘앙스를 가진 언어다. 이것을 표준어로 정하고 쓰면 우리 문학과 언어에 다행일 것이다.

이렇게 말해 주니 그 젊은이들은 또 물었다. “그라모, 보기 싫게 에빈 것은 뭐라고 하요?” 했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때는 ‘뼈뼈장구’라 한다.” 이어서 “어지간한 사투리는 네이버 사전 같은 데에 나오는데 에비촐촐이나 뼈뼈장구는 안 나온다. ‘사어(死語)’가 됐다는 의미다.”고 했다. 덧붙여서 에비촐촐이나 뼈뼈장구는 싫은 감정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말이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우리 말을 배울 나이 때부터 써 온 말이니 말에 담긴 감정까지 아는 것이다.

벽초 홍명희가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을 연재하다가 미완으로 남겨둔 채 월북해 버렸다. 북한에서 김일성 아래의 부수상을 했는데 다행인지 그는 숙청당하지 않았다고 신문에서 읽었었다. 그래서 소설 임꺽정은 금서(禁書)였다. 그땐 월북 작가의 작품은 의당 금서였다. 이걸 노태우 대통령이 해제했다. 해제하자마자 바로 책이 출판됐다. 이때 ‘임꺽정 전집’ 10권짜리를 샀고 지금까지 62번 읽었다. 하늘이 날수를 허락한다면 620번까지는 읽을 참이다.

저 책을 우리 문화계는 '우리말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토속어가 무진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투리를 보배로 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사투리를 쓰면 무식꾼으로 친다. 사투리를 국사발 골동품 정도로도 쳐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어찌 ‘에비촐촐’을 모르며 ‘뼈뼈장구’에 웃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