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22)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병력 50만 무너진 軍, 반격은커녕 방어도 힘들다》

저 기사 제목을 읽다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80년대 초, 정부(?)의 실수로 방송국이 “지금 적기(敵機)가 인천을 폭격하고 있다.”고 방송했다. 휴가 중에 거리를 걷던 군인이 방송을 듣고서 부대로 황급히 달려가던 사진이 신문에 실렸었고 보는 이마다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그날 나도 휴가를 얻어, 친구 가족과 나의 가족이 함께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저 방송을 라디오로 듣고서 공무원이었던 나도, 교사였던 친구도 뒤처리를 각각의 내자에게 맡기고 또 각각의 직장으로 뛰어갔다. 감히 우리가 잘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저 기사에 딸려 있는 작은 제목들이 이렇다

⸱ 병사 모자라 군무원이 보초…
⸱ K9 자주포 30%는 조종수 없어 '대기'
⸱ 李 "외국군 없인 자주국방 불가능하단 생각, 굴종적"

놀라운 군대 현실을 눈앞에 두고서 하필 이때에 대통령이 주한미군이 듣는 데서 ‘굴종적’이라니. 문재인은 ‘반일’을 자기 정치에 이용했고 ‘의병’을 말하며‘죽창’ 운운했다. 이재명은 ‘주한미군’과 ‘반미’를 무기 삼을지 모른다. 혹 현실화되면 반미를 애국으로 포장할 것이다. 반미국가 치고 안 그러는 나라도 없다. 변방 노생의 눈에도 지금의 이재명 처지에선 반미밖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와의 회담이 잘 안 풀린 데다가 미국과 잘 부합되지도 않으니 트럼프에게 분을 품고 저 말을 한 성싶은데 어쨌거나 트럼프에 대한 감정이 반미 태도가 되면 나라에 불행이다.

주한미군은 6·25를 통한 동맹군으로서 주둔하고 있다. 그럼에도 ‘굴종’ 운운하면 동맹에도 흔단(釁端.서로 사이가 벌어지게 되는 실마리)이 생기고 화단(禍端)이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군은 가려고 했다. 가고, 가고, 또 가고 한 나머지가 현재의 주한미군이다. 그때는 붙잡아 두는 게 애국이었는데 지금도 역시 붙잡아 두는 게 이득일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주한미군을 정치에 이용하려 들면 트럼프의 성격상 기다렸다는 듯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들지 모른다. 이어서 미국이 “그럼, 동맹 그만하자.”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우리가 대비는 다 해놨나?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우리 같은 작은 반도국조차 무시하지 않고 필요적 동맹을 하는 마당에 우리가 잦아서 동맹을 깰 이유가 없거니와 한미동맹의 강고함은 날이 갈수록 더하면 더 했지 변함이 없었다. 이제 이재명 代에 와서 동맹이 깨진다면 이재명 본인의 면목 없음은 놔두고라도, 민심이 오오(嗷嗷.많은 사람이 원망하고 떠듬)하고, 국가의 안위가 갈릴 텐데 그 위망을 어찌 능히 당하겠나.

제행무상이라 했다. 동맹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만사(萬事)가 흐르고 변하는 가운데서 치자(治者)는 위로 천명(天命)을 살피고 아래로 인심을 살펴 천시(天時)를 천운(天運)으로 맞아야 비로소 명군(明君)이 된다. 그래서 임금자리를 천위(天位)라 하고, 백성을 천민(天民)이라 하고, 잘 다스리는 것을 천공(天工)이라 한다. 치자가 명군이냐 혼군(昏君)이냐는 오로지 치세(治世)를 이루느냐 난세를 부르느냐에 달려 있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경제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외국계 기업⸱투자⸱주식도 따라 나간다는 게 통설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도 버티기 힘들게 된다. 미국 같은 나라도 자기 나라에 투자하라고 조르는 때에 우리는 있는 기업마저 나가라고 등 떠미는가. 대통령이 저런 말을 하여 중외(中外)에 불안을 심고 그런 환경을 만들 일은 아니다. 안 그래도 서양인이 한국에서 근무하면 위험지 근무수당을 받는다잖은가. 국가의 흥망치란(興亡治亂)이 걸린 문제에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내지르고 보는 게 전략일 수도 없다.

옛날에도 임금이 새로 즉위하면 크게 덕음(德音)을 펴서 만백성을 위무(慰撫)하며 성덕(聖德)으로 다스리려 했고 자신은 덕기가 되고자 다짐했다. 이것이 치자가 된 第一步일 텐데 왜 여기서 '굴종적'이란 말을 썼을까? 듣기에 따라 굴종을 면하려 싸워라는 독책(督責)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