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다짜고짜 이런 말을 했다.

“폭우가 쏟아졌잖아? 강남 내 빌딩 주변에 물이 찼어. 정강이까지 물이 차 올라오길래 건물을 돌아보다가 맨홀에 빠졌어. 역류하는 물의 압력 때문에 뚜껑이 없어진 게 안 보였지. 빠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양팔을 벌리고 버텼지. 지나가던 사람이 부축해서 올려주는 바람에 살았어. 무르팍이 다 까졌어.”

우리 같은 노인은 넘어지기만 해도 혼자 일어나기가 힘든데 그는 운이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인 그와 나이 칠십이 넘어서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다.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독서실 칸막이 책상 앞에서 나란히 앉아 공부를 했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면 고비마다 운이 엄청 좋은 것 같았다. 대학입시 일차시험에서 그가 떨어졌다. 실망한 그가 풀이 죽어 있을 때였다. 대학에서 그에게 연락을 했다. 바로 앞의 학생이 등록이 취소됐으니 그 보고 입학하라는 것이었다.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운이라고 할까.

대학 졸업 후 그는 자영업자로 나섰다. 그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것 같았다. 손을 대는 것마다 엄청난 황금이 됐다. 그가 사둔 땅에 지하철역이 따라왔다. 그는 그런 정보를 미리 알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점쟁이 같은 예지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가 여기저기 산 땅들은 개발시대에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어 올랐다. 남의 복도 그에게 굴러 들어왔다. 망해서 외국으로 도망을 가는 기업가가 그에게 자기 땅을 사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마지못해 그 땅을 사주었다. 강남의 그 땅 가격이 백배로 뛰었다.

그는 증권도 취미같이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동해 바닷가에 있는 나한테 놀러왔을 때였다. 내가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도 내 옆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펼쳐놓고 주식을 사고 팔았다. 그를 보면서 몇년 전 그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야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 증권으로 하루에 5억을 벌기도 하고 10억을 버는 날도 있어. 너무 많이 버는 날은 정신이 없어.”

운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운은 평생 상승세 같아 보였다. 그가 가족과 살려고 산 집도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되어 버렸다. 칠십이 넘은 지금 그의 재산은 상당한 것 같았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진 재산의 볼륨이 커지니까 그 자체만으로 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들이 내 앞에서 기가 죽고 나를 깔보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나보고 회장님이라고 존칭을 붙이는 거야. 웃기지 않아?”

그는 건강복, 가족복도 있었다. 얼마 전 그가 간 이식수술을 받게 됐었다. 자식들이 앞다투어 간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는 친구인 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에게 수술 전에 하얀 공책에 시편 23편을 천 번 필사하라고 권했다. 그는 내 말대로 했다. 그런 친구였다. 따지지 않고 내 말을 우정으로 받아 주었다. 그가 수술 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수술 도중에 정신이 돌아온 느낌이었어. 아프더라구. 그 와중에도 네가 시킨 대로 시편 23편을 중얼거렸지. 그리고 다시 혼절했다고 할까. 중환자실에서 깨었을 때 의사가 하는 말이 내 혈관이 정말 튼튼하고 깨끗하더라는 거야. 내 나이면 혈관 때문에 수술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적이래.”

그가 받은 복들이 어디서 온 것일까를 생각했다. 그를 오랫동안 옆에서 관찰해보면 그는 낙관적이었다. 자신의 불행도 실패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항상 감사했다. 웃는 얼굴에 복이 오고 찡그린 얼굴에 벌레가 붙듯 그런 게 아닐까. 그는 검소했다. 불필요한 돈을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술 후 그의 서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수천만 원을 줬다. 그 돈을 받은 서기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절을 하더라고 했다. 동네 친구인 우리는 초등학교 육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디킨즈의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를 같이 외웠다.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이 서기에게 돈을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수술 후 그는 내게 최고급 전자드럼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수술 후 손이 떨려서 네 말대로 시편 23편을 쓰지는 못하지만 산책할 때 입으로 웅얼거리면서 계속 기도하고 있어. 친구야.”

이 글의 내용은 모두 내가 체험한 실화다. 젊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부자는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 같다. 인간이 갈망해도 이루어 주시는 건 그분이 아닐까. 돈에 갈급하는 분들에게 친구 같은 복이 따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