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가 친일파인가

이천이십사년 팔월십오일자 조선일보에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제목의 사설을 봤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많이 모인 광복회와 그 회장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광복회는 새로 임명된 독립기념관장이 식민지 근대화를 지지하는 뉴라이트 친일파이기 때문에 임명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는 것 같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이 광복회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정치화했다. 광복회는 물론 야당 의원들과 국회의장까지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여할 것을 거부하고 있다. 다시 친일파 척결의 열풍이 부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친일파 척결의 폭풍이 일고 위원회가 생겨 많은 죽은 영혼들이 무덤에서 파헤쳐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고 그들 자손의 재산이 국고로 귀속됐었다. 나는 당시 친일파를 색출해 재산을 환수하는 법이 급조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 청문회장의 모습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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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원회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위원장석에 최연희 의원이 앉아 있었고 주호영의원, 넓은 이마의 노회찬 의원도 보였다. 몇 명의 토론자가 나와 있었다.

“최근 친일파의 재산을 그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는 걸 빼앗자는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주제와 관련되어 전문가 몇 분을 모셨습니다. 민경식 변호사님 의견을 말씀하시죠.”

“저는 친일파에 대한 논의가 그 기본정신을 벗어나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법률 실무가로서의 의견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법률가로서 이 법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금지하는 헌법을 위반해서 법을 만드느니 차라리 정면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임시로 만드는 대통령 산하의 위원회가 친일파를 결정하고 그 자손들이 가진 재산을 환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헌법정신과 법체계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주호영 의원이나 김재경 의원 헌법학회의 김백유 상임이사 등 모두가 위헌이라는 의견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동현 상임연구원은 이런 말을 했다.

“친일파에 관한 특별법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합니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위헌시비 등을 생각하면 그 법의 적용대상을 매국형 친일파에 국한한다면 매국행위의 댓가에 대해 환수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구한말 이등박문이 거액을 가지고 들어와 대신들에게 뇌물을 주는 매수공작을 벌였습니다. 을사조약에는 외교권을 파는데 찬성하고 정미조약의 경우에는 군대에 관한 권한을 넘기는 데 찬성하고 한일합병 조약에서는 주권을 넘기는 데 찬성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금품수수를 했다던지 공로로 작위를 받았다던지 이런 것이 매국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일본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신들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일제 통치기 동안에도 그들은 각종 지위를 보장받고 일제와의 유착을 통한 이권개입, 각종 경제단체의 참여를 통해 재산을 지속적으로 축적한 점에서 이들이 일제 때 축적한 재산도 역시 그들의 매국행위의 본원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제의 ‘귀족령’을 보면 그 제삼조에 ‘공로가 있는 조선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죠. 그런 정확한 근거와 기준에 의한다면 위헌시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회는 몇 가지 기준을 추가 보완해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자 사회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일제시대 아버지 할아버지가 판사였다고 가문을 자랑하던 친구들의 말이 입에서 사라졌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친일파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건국한 한민당의 당수 김성수 선생도 친일파가 됐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연일 친일파로 지목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일제시대를 살았던 무용가 최승희도 나오고 화가, 음악가, 시인, 만담가 등 친일파가 많기도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억울하게 친일파로 지목이 된 사람들의 절규를 들었다. 민족정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한 친일파 척결이 새로운 저항층을 만드는 것 같았다.

요즈음 일제시대 근대화가 되었다는 것에 동조하면 친일파라는 말들이 돌고 있다. 지나친 국수주의 같기도 하다.

팬덤 정치의 세상에서 그게 시대의 조류로 만들어질 위험성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이승만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여러 자료를 통해 일제시대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친일파일까. 친일문제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적을 파괴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더 이상 악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