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그 처절한 운명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2005년에 아베 신조 당시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인터뷰했다.
  
  ―정치인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계시는 말이 있습니까.
   『저의 고향은 야마구치현, 도쿠가와 시절엔 조슈한(長州藩)입니다만 명치유신의 志士들을 많이 길러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란 선생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인용한 孟子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誠意를 다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는 말씀입니다』
  
   그가 말한 요시다 쇼인은 일본의 근대화 혁명인 明治유신의 주체세력을 길러낸 스승으로 불린다. 政界 거물 이토 히로부미, 軍의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같은 明治 시기의 주역들이 그의 제자였다. 아베 수상은 야마구치(明治유신 전엔 조슈한) 출신으로선 여덟번째 총리이다. 요시다 쇼인이란 선생이 있었기에 이 작은 지역이 일본 역대 정권의 핵심인물들을 배출한 것이다.
  
  요시다 쇼인은 그러나 만30세에 처형된 사람이다. 그는 도쿠가와 幕府를 타도하고 서구식의 근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르쳤다. 조슈한에서 서당 비슷한 松下村塾을 열어 문하생들을 교육한 지 4년째 되는 해, 즉 1859년 막부에 의해 역모죄로 몰려 처형된 것이다. 그가 가르친 조슈한의 제자들이 지금의 가고시마(규슈), 고치(시고쿠) 무사들과 손잡고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중심의 근대 국민국가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명치유신이 일어난 것은 그가 죽은 9년 뒤였다.
  
  이런 통계가 있다. 그가 松下村塾에서 가르친 43명의 제자들이 亂世에 어떤 운명을 맞았는가? 할복자살 6명, 戰死 1명,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되어 사망(討死) 4명, 참수형 1명, 옥사 1명. 13명이 요사이 말로 하면 非命橫死한 것이다. 요시다의 제자들중 명치유신의 성공으로 출세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 등 5명 정도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데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志士들의 희생이 요구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계이다.
[ 2022-07-11, 03: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무학산     2022-07-11 오후 1:15
저런 거룩한 죽음. 의로운 죽음. 강개한 죽음이 없었다면
오늘날 일본이 일등국가가 돼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화지상주의자들은 저런 죽음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한다
귀한 통계이고, 귀한 자료이다 좀 퍼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기를.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