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자와 위선자에게 던진 金兌洙 변호사의 결정적 질문!
《사형을 집행하라!》 讀後記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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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카키스를 파멸시킨 질문


1988년 10월13일, 미국 대통령 선거 마지막 토론회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을 때 사회자는 CNN 앵커맨 버나드 쇼였다. 공화당 후보 조지 H.W. 부시(당시 부통령)와 민주당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지지율은 비등했다. 쇼는 첫 질문을 두카키스에게 던졌다. 

 

 “지사님, 만약 키티 두카키스(부인)가 강간당한 뒤 살해되었다면 귀하는 살인자에 대한 사형 확정 판결에 찬성하시겠습니까?”

 

토론장에 있던 취재기자들 사이에선 질문이 너무 거칠다는 중얼거림이 일었다. 보통 때 같으면 중계방송사의 카메라는 방청 중인 두카키스 부인을 보여줘야 하는데 협약에 따라 후보에게만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인들이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을 때 두카키스는 머뭇거리지 않고 사무적으로 즉답했다.

 

“버나드, 나는 (사형 판결에) 찬성 안할 겁니다. 내가 평생 사형제도에 반대한 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매사추세츠 주엔 사형제도가 없었고 그런데도 범죄율이 매우 낮았다. 두카키스의 자판기 같은 대답을 들은 기자들 사이에선 “이걸로 선거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두카키스의 대답이 잘못된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답임엔 틀림이 없었다. 문제는 그 어떤 감정의 기복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부인이 강간 살해된 경우에 대한 비정한 질문인데 어떻게 아무런 고민이나 주저함도 없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에 딱 걸린 것이다. 두카키스 지지율은 토론 직전의 49%에서 직후 42%로 떨어졌고, 이걸로 선거는 사실상 끝나버렸다. 사형폐지론자의 위선(僞善)이 여론의 심판을 받은 사례로 유명하고 기자는 질문으로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버나드 쇼는 이 역사적 질문을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전날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생각해낸 질문이었다. 나중에 그는 가혹한 질문을 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나는 미움받는 것을 겁내지 않습니다. 그 토론회에서 나는 옳은 질문을 한 것뿐입니다.”


김태수의 질문


저자(著者) 김태수(金兌洙) 변호사도 이 책에서 같은 질문을 사형폐지론자들에게 던진다. 대한민국 국민의 다수는 사형제 존치를 옳다고 믿지만 자신들의 확신을 뒷받침해 줄 이론적 근거를 찾지 못해 폐지론자들과의 말싸움에서 속 시원한 주장 한번 못해보고 번번이 깨져왔던 현실에 분노한 그는 쇼 기자처럼 들이댄다.

 

<사형폐지론의 최대 약점은 “만약 네 가족이 피해자였더라도...?”라는 질문에 일관성 있는 답변을 내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두카키스는 일관성 있는 답변을 내어놓는 과정에서 자신의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차라리 솔직하게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일관성 없는 답변을 하였더라면 시청자들의 동정을 샀을 것이고 정치적 파멸을 면했을 것이다.

 

김 변호사의 질문은 계속된다. 20여 명을 죽이고도, 사형확정 판결을 받고도, 아직 살아 있는 유영철. “유영철에 의해 큰형이 피살되자 두 동생은 자살하고 형수 조카는 행방을 모른다”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그는 묻는다.

 

<유영철 같은 살인마를 살려둠으로써 그 희생자들의 가족을 자살하게 만들어 희생자 목록을 계속 늘려가는 이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김태수 변호사는 사형페지론자들의 최대 약점인 위선성(僞善性)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형 선고를 받고도 정부의 비겁함으로 연명해가는 살인범들의 범행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이들을 감싸는 소설가, 종교인들의 순진함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특히 살인자의 인권도 중히 여긴다는 이들이 살인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에는 냉담한 점, 그 위선의 극치를 이렇게 통렬하게 드러낸 책은 일찍이 없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 식자층에서 사형존폐론을 이야기할 때 왜 피살자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가다가 목숨을 끊기도 하는 유족들에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탄식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 제기이다. 소설가나 종교인이 살인범의 팬클럽 회원 같은 말과 글을 남기려면 유족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인데 그렇게 하면 글과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선고는 있는데 집행은 없다!


사회부 기자의 경험을 살려 사형, 고문(拷問), 조작, 오판(誤判)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글을 써온 나에게도 이 책의 원고를 읽을 때는 자세가 달라졌다. 경찰 출입 기자들 말대로 인간사의 가장 큰 사건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명(人命)을 소멸케 하는 자에겐, 별다른 사정이 없다면 같은 방식의 응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인류문명을 지탱해온 공동체 존립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확립된 지 오래이다. 1998년 이후 한국 정부는 국민들의 동의를 받은 적도 없이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정의의 집행을 거부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있고 선고도 있는데 집행은 없다! 이는 국가적 타락이다. 살인 사형수를 죽일 용기가 없는 나라가 반역자를 처단하고 침략을 당했을 때 선전 포고할 배짱이 있을까?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개인적 취향이 비겁한 공무원들을 거치면서 이런 변태적 행형(行刑)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저자는, 국민 다수는 사형을 원하는데 제대로 된 토론조차 없이 국가에 의한 불법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물고 늘어진다. 지식인, 종교인, 법률가들의 위선적 논리가 다수 국민 여론을 누르고 있는 데 대한 분노가 이 책을 쓰게 만든 원동력으로 보인다.

 

아무리 악독한 방법으로 아무리 사람들을 많이 죽여도 사형 집행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범죄자들의 자신감이 더 많은 살인을 부추기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사형 선고를 해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아는 판사들이 애써 사형 선고를 피하려고 하는 그 마음에서 이미 법은 우습게 되고 있고 이런 심리가 다른 범죄에 대한 응징 의지도 덩달아 약화시킬 것이다. 사형에 대한 국가적 결단을 내릴 수 없는 나라라면 아무리 잘 살아도 미숙아(未熟兒)일 것이다. 저자는 살인범 한 명을 처단하는 것이 일곱 명을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24년간 사형 집행을 중단한 결과로 죽어간 생명은 몇이나 될까?


사형 집행 재개론에 불을 붙일 책


김태수 변호사와 책 제목을 결정하는 회의를 할 때 맨 처음 올라온 안은 ‘나는 사형 집행에 찬성한다’였다.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사형을 집행하라!’로 바뀐 것인데, 이게 가장 정직한 제목이란 합의가 이뤄졌다. 이 제목은, 사형존폐론 토론은 이미 의미가 없을 정도로 결론이 나 있다는 저자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사형존폐론을 공론(空論)의 영역에서 ‘집행할 것이냐 아니냐’의 실천 영역으로 끌어내린 이 책을 읽으면 창백한 지식인들이 즐기는 ‘논리 놀음’의 허망함을 실감할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살인의 현장과 지긋지긋한 재판, 그리고 처연한 사형장엔 그런 말장난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는 살인 사건의 진짜 피해자인 유족 문제이다. 순간적 고통으로 죽은 피살자보다 살아남은 가족의 고통이 더 길고 깊다.

 

피살자 유족에 대한 국가적 조사나 관심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살인은 치안을 책임진 국가의 실패인데, 정부가 극히 작은 관심만 기울여도 한 많은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형 집행 중단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인 이들 유족 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이 살아 있는 사형수보다 더 많지 않을까? 유족의 가장 큰 고통은 그들이 사랑한 사람은 비참하게 죽었는데 죽인 자들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집착일 것이다.

 

사형 집행은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예의이다. 사형 집행을 재개하고 미국식으로 사형 집행장에 유족들을 모셔 와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현장을 직접 보게 함으로써 마음을 정리하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징은 가장 기본적인 정의이다. 이 책이 사형존폐론이 아니라 사형 집행 재개론에 불을 붙였으면 한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사형집행 의무자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한 국법(國法)의 명령이고 그를 임명한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통첩이다. 두 사람은 이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 아래 질문에 답해보라!

 

“대통령님, 만약 부인 김건희 여사께서 강간당한 뒤 살해되었다면 귀하는 그 살인범에 대한 사형 집행도 반대하시겠습니까?”

 

 

趙甲濟(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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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9, 16: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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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korea     2022-07-01 오전 10:55
I couldn't agree more.
Execute the death penalty immediately.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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