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 사정해도 ‘개죽음’이라며 꼼짝 않는 경찰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11)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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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적고 괴롭심더…”

 

방 안엔 술상이 차려져 있다. 방종덕 씨와 한명규 씨가 우에게 술을 권한다. 우범곤도 술을 따라 마시고 방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잔씩 권한다. 그들은 그들이 최후의 만찬을 벌이고 있는 줄을 우범곤을 빼곤 아무도 몰랐다. 우범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진규 씨는 그때 우가 아주 늠름했었다고 기억한다. 술이 한순배 돌자 서 씨가 방에 놓인 총 두 자루를 보면서 묻는다.

 

“총은 우째 두 자루가 있능교?” 우는 시치미를 딱 땐다.

“한내는(하나는) 안 순경 건데, 안 순경이 저 밑에 있어서 내 개왔심더.”

한명규 씨가 통을 툭 치며 껴든다.

“실탄두 없는데 뭘로(뭐하러) 가지고 당기노?”

우는 픽 웃는다.

<실탄이 없다구? 내 제일 먼저 너한테 먹여 줄 테니 조금만 참그래이.>

 

그리고 나서 그는 푸념을 한다.

“괴롭심더.”

서 씨가 맏는다.

“와 그카노?”

“월급도 적고.”

“월급이 얼매요? 한 20만 원 안 받심니꺼?”

“돈 10만 원도 안됨더.”

 

희대의 대학살극을 앞두고 서진규 씨와 우범곤 간의 이 평화로운 서막은 서 씨가 여기서 자리를 뜸으로써 끝난다. 잠시 후 그들 둘은 서 씨의 생명을 놓고 두 번째의 극적인 대결을 벌인다.

서 씨가 나간 뒤 주전자가 비자 우범곤은 큰사위 이정오 씨를 찾아가서 술을 더 가져오라고 한다. 그래서 문 씨의 셋째딸 문경순(25) 씨가 주전자를 받아가지고 막 돌아설 때 “탕, 탕!” 방안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함께 농담을 해가며 술을 마시던 박종덕(朴鍾德) 씨와 한명규 씨가 쓰러진다.

<빈 총이라고, 실탄도 없다고 그랬지? 맛이 어때?>

 

그는 민첩하게 안채로 돌아가다가 주전자를 들고 술을 가지러 가던 문경순 씨 옆구리에 한 발을 쏜다. 문 씨는 총 맞은 상처를 손가락으로 틀어막고 7시간을 혼자 버텨 살아난다.

우범곤은, 막 비가 그쳐 마당에서 내일 출상 준비를 하던 사람들에게도 총탄을 퍼붓는다. 이때 죽은 문두출 씨의 이질 이종백(李鍾栢, 34) 씨가 마당에 있다가 엉덩이에 총을 맞는다. 이 씨는 총을 맞고 상여 뒤에 숨었다가 죽음을 모면한다.

 

서진규 씨는 사랑방에서 첫 번째 총성이 12시 조금 지나 5분쯤에 났다고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사랑방에서 나와 마루에 앉아, 문 씨의 처가 쪽 친척 조용덕, 박호제 씨 등과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사랑방에서 “탕, 탕!”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임을 직감한 그는 얼른 시신이 모셔진 안방으로 뛰어든다. 안방에는 친척들이 가득 모여 있다. 총소리는 또 금방 마당에서 탕탕거린다.


한 살된 어린아기도 확인사살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펄떡펄떡 뛰어 달아나고, 머리를 쑤셔박으며 숨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서 씨는 후닥닥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앞문 쪽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우범곤은 마침내 마루에 올라서서 윗목 병풍 뒤로 관이 놓여 있는 방안에다 총을 쏘아댄다. 이어 또 웃방으로 가서 연속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곤 다시 안방과 웃방을 왔다 갔다 하며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확인사살한다. 서 씨 앞에 바로, 이 집 딸 문수이 씨가 있었는데 총을 맞아 피가 서 씨 몸에까지 배어든다. 놈이 하나하나 확인사살을 하는 걸 보고 서 씨는 방구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얼른 몸을 일으킨다. 마의 총구가 방구석에 바짝 붙어 서 있는 서 씨에게로 온다. 서 씨는 잽싸게 총구를 두 손으로 잡고 뛰쳐나오면서 확 밀어제친다. 놈은 깜짝 놀라 “억”하면서 뒤로 주춤 물러선다. 그 사이 서 씨는 걸음아 날 살려라 집 밖으로 뛰쳐나가 골목에 숨는다. 죽은 문 씨의 장모 함차순(咸次順, 77) 씨와 아들 문천웅(28) 씨, 그의 부인 이순이(李順伊, 27) 씨 등은 시신이 모셔진 병풍 뒤로 숨어 총 한 방 안 맞고 화를 면한다. 그는 방 안에 있던 한 살짜리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게까지 총을 쐈다. 다 죽었다 싶어 돌아서려는데 아홉 살짜리 이 집 손자 병돈 군이 꿈틀거리자 돌아서서 “아직도 안 죽었군”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한 방을 쏘았다.

서진규 씨 부인 박봉순(朴鳳順, 41) 씨는 집에 돌아갔다가 난데 없는 총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으로 겁도 없이 들어섰다가 총을 맞는다. 

 

이 집에서, 문두출 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 준비 중이던 14명이 문 씨의 뒤를 따른다.

사랑방에선 함께 대작하던 (34)박종덕(34), (35)한명규(53) 씨가 숨졌고, 부엌 앞에선 문두출 씨 부인 (36)조을순(趙乙順, 56) 씨가 숨졌다. 그리고 안방과 웃방에선 조을순 씨의 여자형제인 (37)조맹률(59), (38)조귀남, 친척 (39)조용덕(46, 남), 큰 사위 이정오 씨의 한 살짜리 어린 딸 (40)류량(柳良) 양, 둘째 사위와 장녀 (41)하정재(5) 양, 손자 (43)문병돈(文炳敦, 8) 군, 손녀 (43)문세정(文世貞, 2) 양 등이 숨졌다. 또 마루에선 사위 (44)이판수(李判洙, 50)와 그의 부인 (45)문순이(44) 씨가 서로 꼭 끌어안고 숨졌고, 뜰에선 서진규 씨의 부인*46)박봉순(41) 씨와 (47)허이중(許二仲, 23) 씨가 숨을 거두었다. 이 자리서 총상을 입고 진주제일병원서 치료중이던 문천웅 씨의 생후 1개월된 아들 (56)명석 군은 5월8일 끝내 사망함으로써 의령사건의 최후이자 56번째의 희생자가 된다.

 

47명째 살인을 감행한 우범곤은 문 씨 집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웃집 사람들이 총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여기저기서 뛰쳐나온다. 그는 용서할 줄을 모른다. 골목에서도 “탕, 탕, 탕!” 총소리가 울린다. 이때 (48)서형수(徐亨洙, 28), (49)성소남(成小南, 51, 여), (50)최경조(崔敬祚, 43, 여), (51)이타순(李他順, 46, 여) 씨 등이 목숨을 빼앗긴다.

서진규 씨는 골목 위쪽에 숨어 있다가 가가이서 또 총소리가 나는 걸 듣고 앞산으로 달아나 숨는다. 술도 한 잔 들어갔것다, 우범곤은 지칠 줄을 모른다. 그는 허차석 씨 집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불을 켜놓고 술을 마시고 있던 (52)서회석(徐會錫, 20) 씨를 쏴죽이고 허을동(28) 씨에게 상처를 입힌다. 총소리를 듣고 자다 깨어 문을 연 허차석 씨에게도 총상을 입힌다. 그는 다소 화난 듯이 집에 수류탄 한 발을 던진다. 그러나 터지지 않는다.


개죽음과 참죽음의 짧은 차이


여기서부터 우범곤이 스스로 사건을 마무리짓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우왕좌왕하던 경찰이 겨우 좀 질서를 잡는다. 그 이름도 근사한 기동타격대, 선발진압부대, 후속지원부대.

27일 새벽 1시 30분.

부산에서 전세 택시를 몰고 최재윤 의령경찰서장이 사건 발생 4시간 만인 새벽 1시 30분에 궁류지서에 도착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잘못한 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최 서장은 그러지를 못한다.

 

새벽 2시쯤 평촌리 주민 김진학(40) 씨와 오수환(48) 씨가 숨이 턱에 찬 모습으로 궁류지서를 찾아온다. 그들은 평탄한 길을 두고도 무서워서 산을 넘어 지서로 신고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다짜고짜 평촌리에 ‘난리가 났다’고 그 상황을 표현한다. 최 서장은 비로소 그들로부터 평촌리의 사고를 상세히 듣는다.

궁류 농협 단위조합장 박평진(朴坪鎭, 47) 씨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최 서장 등 지서에 있던 사람들에게 함께 사건 현장으로 들어가자고 사정했으나, 최 서장은 ‘밤이 어두워서 움직일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해 봐야 모두 개죽음을 할 뿐’이라며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개죽음? 그럼, 만약 작전 중에 최 서장이 죽었다면 모든 신문은 이 장한 순직이 경찰의 귀감이라고 연일 떠들어댔을 것이다. 훈장도 추서될 것이고, 성급한 사람은 평촌리에 동상을 세우자고 촐싹거렸을는지 모른다.

 

농협 단위조합장 박 씨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계속한다.

“또 우리가 선발대로 평촌리로 들어갈테니 옆에서 도와달라고 재차 사정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사건이 범인의 자폭으로 끝날 때까지 우리는 이런 상태로 지서에 머물러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운계리에 사는 주민 장원근(張元根, 25) 씨는 말한다.

“우 순경이 운계리에서 난동을 피우고 평촌리로 들어가 평촌 쪽에서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총소리가 그친 후까지도 출동한 경찰들은 운계리 신계부락 앞 다리 밑에 잠복한 채 꼼짝 않고 있었다. 다리 밑에 잠복하고 있던 경찰들은 5~6명 정도였다. 하도 답답해서 그들에게 다가가 빨리 평촌으로 들어가 손을 쓰라고 했지만 경찰관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의 얘기는 ‘우리는 여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27일 새벽 2시 10분.

류구환(柳九桓) 경남 도경국장이 현지에 나와 ‘우가 투항하지 않을 경우 사살해도 좋다’고 지시한다.

새벽 3시 5분.

마산 경찰서 제1기동대, 진주 제2기동대가 현지에 도착한다.

경찰은 새벽 3시 범인이 숨어 있는 평촌리에 접근했으나 어디에 있는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구체적인 작전을 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 자료는 제공되지도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다.

 

 

(계속)

 

[ 2021-11-04, 11: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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