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보다 개인이 우선이다
FREEDOM 교양영어 (19): For king, then country-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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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 author also offers a corrective to later Indian accounts that have exaggerated the strength of pro-independence feeling and glorified the Japanese-sponsored Indian National Army, made up of Indian POWs and defectors. No more than 9,000 of these soldiers actually fought against the Raj in Japan’s ill-fated invasion of India in 1944, Mr Raghavan notes. More remarkable in retrospect was the loyalty shown by many Indian soldiers: a British censor’s log from Tunisia records a soldier’s letter to his family declaring proudly, “Our beloved king (God save him) has conquered this country.”


Both books argue persuasively that the war not only consolidated India’s sense of self, but generated many of the institutions and attitudes that framed independent India. Mr Raghavan quotes a British staff officer of the 19th Indian division describing its drive to capture the Burmese capital, Rangoon: “Twenty races, a dozen religions, a score of languages passed in those trucks and tanks. When my great-great-grandfather first went to India there had been as many nations: now there was one—India.” Sadly, this would not be so true by 1947, and the Raj cracked into two parts.〈The Economist May 5th 2016〉


그러나 저자는 또한 독립찬성 감정의 강도를 과장하고 인도인 포로와 전쟁포로와 탈영병으로 구성된, 일본이 지원한, 인도국민군을 찬양하는 전후(later)인도인들의 말(accounts)에 교정을 제공한다. Mr Raghavan은 1944년 일본의 불운한 인도침공에서 이들 인도국민군 병사 중에서 겨우 9000명이 인도제국군에 대항해서 싸웠다고 기술한다. 회고해 보면, 많은 인도제국군 병사들이 보여준 충성심은 더 놀라울 정도다: Tunisia전선의 영국 검열관의 日誌(일지)는 “우리의 사랑하는 국왕(신이여 폐하를 보호해 주소서!)께서 이 나라(튀니지)를 정복하셨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면서 가족에게 보내는 한 병사(인도인)의 편지를 기록하고 있다.


두 저서는 전쟁(2차 세계전쟁)은 인도의 자신감을 공고히 하였을 뿐 아니라 인도 독립의 뼈대를 만든 많은 제도와 마음가짐을 생성하였다. Mr Raghavan은 제19인도사단의 버마 수도 Rangoon 점령 작전(drive)을 기술하고 있는 영국인 참모장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20개의 종족, 12개의 종교, 20(score)개의 언어가 저들 트럭과 탱크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나의 고조부가 인도에 처음 갔을 때는 20개의 나라가 있었다. 지금은 하나의 인도가 있다.” 슬프게도, 이것은 1947년경에는 사실이 아니게 될 것이었고 그리고 인도제국은 두 부분(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졌다.



*해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하였을 때 인도의 인구는 3억이었다. 그런데도 거대국가 인도를 통치하는 인도행정청의 영국인 관리는 1000명에 불과하였다. 영국인 한 명이 인도인 공무원들의 보좌를 받아가며 30만의 인도인들을 다스렸던 것이다. 영국 행정관들은 인도인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언어와 종족과 종교와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다양한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렸다. 영국은 또한 경찰과 군대도 병력의 대부분을 인도인들로 충원하였다.


인도인들은 300년 동안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국인들과 사이 좋게 잘 지내고 있다. 인도에서는 식민시대 인도의 수천만의 인도인 공무원들과 수백만의 인도인 참전군인들을 친영 반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영국군 지원병 간디는 인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거룩한 정치인으로 숭상받고 있다. 런던에는 간디를 기리는 동상도 있다.


일정시대에 다수의 한국인들도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공직에 종사하였다. 공무원으로 경찰로 군인으로 종사하였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고등문관이 되고 군장교도 되었다. 기술자로서 군수공장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대의 한국인들은 일본천황의 신민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대로 살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인도인들이 대영제국의 신민으로서 나름대로 생업에 종사하였던 것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식민지 사람이라 해서 伯夷(백이)-叔齊(숙제)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굶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는 것이 친일이었다. 그것이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자유민으로서의 개인은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와 국가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의 생존이 민족이나 국가보다 선행한다. 민족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 민족이나 국가는 개인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일정시대에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 사람들을 친일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타인을 음해하려는 자들의 범죄행위이다. 친일은 생명활동이었고 생명활동은 神도 저지할 권리가 없다. 저지할 수도 없다.

 

 

[ 2021-11-04, 1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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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korea     2021-11-05 오전 11:50
Thanks for your kindness with such a nice article.

As you say, life comes first in humans.
So we are faithful to the conditions of life.

Because if we get out of this condition, we can't keep our lives.

What I think is unfortunate is that Koreans don't even understand
this most essential and basic common sense.

Thanks.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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