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욕하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놈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2)

吳効鎭(월간조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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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26일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한밤 새에 경북 의령군 궁류면의 한적하던 4개 부락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벌어졌다. 현직 우범곤(禹範坤) 순경의 잔인한 극한난동으로 남녀노소 56명이 살해당하고 34명이 불의의 총알과 수류탄의 세례를 받고 다쳤으며 우범곤 자신은 수류탄으로 자폭, 방안에 있던 3명의 주민을 강제 동반자살했다. 월간조선은 이 끔찍한 현장에 현역 작가를 긴급 특파해 사건 내막과 경위를 샅샅이 추적, 심층취재했다.

되는 일 하나 없는 못난 사내


그러나 돈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돈이 없다는 것과의 차이가 이처럼 엄청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결혼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당신은 자격이 없어요.”

그래 난 자격이 없다. 남자면 다 얻는 마누라를 얻을 자격이 없다. 세상엔 돈도 흔하건만 그 흔한 돈이 없어 결혼식도 못 올리는 나는 그래, 자격이 없다.

어떤 놈은 팔자 좋아 뚱땅거리며 살건마는, 아버지는 일찍 죽고, 어머니는 늘그막에 개가하고, 형제들은 단칸방에 살고, 나는 왜 이렇게 기구하단 말이냐.>


그는 한번 기를 펴고 살고 싶었다. 에베레스트도 정복하고 싶었고, 시인도 되고 싶었고, 뭐든지 노력해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선 특등사수가 됐고, 사회에 나와선 태권도 유단자가 됐다.


<청년아!

여자를 조심하고

중년아!

물질에 결백하고

노인아!

명예와 공포심에 초연하라.

-낙서 모음->


<그런데 이게 뭔가? 여자한텐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동네 사람들한텐 손가락질을 받고, 그래 이게 뭐란 말인가! 집은 전문학교 등록금 내느라고 처분해서 셋방 신세를 못 면하고 있고, 아버지 유언을 따라 순경이 됐건만 서울에서 벽지로 쫓겨 와야 했고, 이 구석에 와서도 사람 대접을 못 받고, 글쎄 나라는 놈한텐 왜 이렇게 안 되는 일만 많은가?>


의령 쪽에서 궁류면 행정관서가 집결해 있는 토곡리 석정부락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오른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 농협이 나선다. 거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궁류면 사무소 흙담이 오른편으로 보인다. 게시판엔 ‘쥐를 잡자, 4월27일 오후 7시, 궁류면’이란 공고가 철없이 붙어 있다. 면사무소라곤 하지만 옆에 선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보다 마주 보이는 농촌지도소 건물이 눈에 띄는 한식 기와집이고, 오른쪽에 있는 양수기재보관창고가 돌과 함께 흙을 쌓은 토담집이어서, 마치 옛날 관가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면사무소를 곁에 두고 앞으로 조금 더 나가면 벽에 노란 페인트를 칠한 빨간 양철 지붕집 우체국이 왼쪽에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더 위쪽, 왼편으로 마지막 건물이 지서다.

토곡 사람들은 2백여 년 전부터 병풍을 만들어 팔았다. 요즘엔 이곳이 너무 외져서 장사가 잘 안되니까 모두들 큰 도시로 나가서 표구일을 한다. 그래서 이 토곡의 표구사들이 전국에 퍼져있다. 병풍을 만들다 보니까 화가도 많이 나왔다 한다. 김종옥, 김정수, 이형두, 오능주, 임외식 같은 이름들을 이 고장에서는 꼽는다.

지서로 들어가는 입구 야트막한 담 위론 철근으로 만든 아치가 있다. 지서의 건물 벽엔 베이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출입구 위에 붙어 있는 ‘정의사회구현’이란 커다란 글씨가 천연스러워 보인다.


소주 한잔에 “까불면 모두 죽여”


우 순경은 지서에 들어선다. 반은 허탈하고 반은 화가 난 그는 지서에 들어서서 동료 안승섭(安承燮, 32) 순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사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순경 노릇 못 해 먹겠다.”

그러면서 그는 안 순경에게 “술이나 먹자”고 한다. 그러나 안 순경은 거절한다. 보통 땐 멀ᄍᅠᆼ하다가도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리는 그의 술버릇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술먹자고 했다가 딱지를 맞은 우 순경은 심통이 조금 더 사나워져 지서 바로 앞 구멍가게에 가서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그는 거기서 소주 한 병을 홀짝홀짝 마신다. 한 병을 다 마시고 나서 지서에 근무중인 방위병 박상찬(朴相贊, 23) 씨를 불러 소주 한 병을 더 시켜 놓고 나누어 마신다. 그날 지서에 근무중이던 방위병은 박 씨와 김해군(金海群, 22), 성석현(成石鉉, 23) 씨 등 3명이었다.

 

우 순경은 술을 마시면서 모든 걸 마땅찮게 생각한다. 세상, 순경 노릇, 마누라, 동네사람…. 술이 오름에 따라 그의 감정은 더욱 격해진다.

그는 방위병 박 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누라가 동네 사람들이 나한테 손가락질을 한다고 했어. 지서 순경이란 작자가 결혼식도 않고 동네 처녀하고 동거하는 게 좋게 보일 리 없지.”

그는 자기가 왜 이 좁은 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원인을 제거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답답하고, 또 그래서 술을 마신다. 그는 현실적인 불만도 이렇게 토로한다.

“전문대학까지 다니고 서울에서 근무하던 내가 이 촌구석에 근무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어.”

 

그는 이 철벽 같은 현실의 벽을 뚫고 싶다. 결혼할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는 이 촌구석의 말단 순경이란 현실은 짜증스럽다. 그는 이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 술을 자주 마신다. 그렇다고 폭음은 하지 않는다.

일단 술이 한 잔 들어가면 그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처럼 호탕해지고 때론 난폭해진다.

‘죽여 버리겠다.’

술만 취하면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그렇다고 누구를 딱 꼬집어 죽이겠다는 그런 건 아녔다. 그러나 그날만은 달랐다.

“나를 욕하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놈들은 다 죽여 버리겠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죽여 버리겠다’는 말의 의미가 총을 쏴 ‘목숨을 끊겠다’는 걸 뜻하는 건 아녔다. 그저 혼을 좀 내주겠다는 데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지서에 들어가 안 순경을 들어가게 하고 매곡부락 꼭두리네 집으로 갔다.


철옹성(鐵甕城)을 부순다… 첫 번째 亂動


저녁 7시30분.

술에 취해 난폭해진 우 순경은 식식거리며 꼭두리네 집으로 들이닥친다. 평형이 깨진 그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방안에 들어선 그는 다짜고짜 꼭두리를 때리고 세간을 때려 부순다. 그는 철옹성 같은 현실의 벽을 기분 좋게 꿈속에서 허물기라도 하는 듯이 닥치는 대로 세간을 때려부수고 사람을 때린다. 꼭두리의 코에서 피가 주르르 흐른다. 동생 범호 씨도 와서 싸움을 말리려 했으냐, 미친 듯 날뛰는 건장한 남자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안채가 이렇게 왁자지껄하자 건너채에 사는 전경자 씨가 뛰어왔다.

 

“그래 내가 뭐 잘못했노? 내가 잘못한 게 뭐고?”

그가 이렇게 씨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경자 씨는 피투성이가 된 꼭두리를 사내의 손아귀에서 때내려고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든다. 그러자 우 순경은 말리는 전경자 씨 뺨을 후려친다.

“너는 뭐고? 너도 나 욕했제? 썅 다 죽여 버리겠다!”

 

이때 누군가가 동네에다 대고 소리친다.

“여기 큰 싸움 났심더. 빨리들 와서 싸움 말리소.”

이 소리를 듣고 반상회하려고 전용출(田溶출, 56) 씨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람들은 “뭐 그까짓 걸 갖고 그카노?”하고 말리기도 하고, “저런 사람하고 우찌 결혼하노” 하면서 수군거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마당에 가득 몰려들자 싸움이 끝나 우 순경은 지서로 가고, 꼭두리는 동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피를 닦았다.


그 싸움통에 호마이카 장롱문이 떨어져 나갔고, 화장대에 놓여 있던 화장품 그릇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때 흘린 꼭두리의 피가 마룻바닥에 엉겨 붙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꼭두리는 기가 막혔다. 고생 끝에 낙이라는데 이건 갈수록 태산이었다. 생각하면 그놈의 닭이 원수였다. 2년 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조용히 집에 있다가 시집이나 가자던 게 이 모양이 됐다. 꼭두리는 동생들 공부시키겠다고 마산에 나가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집은 경자언니가 건너채에 살면서 지켜주고 있었다.

 

지난 1월14일,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식구들과 함께 고향에 온 것이 화근이 됐다.

집에 와서 보니 누가 닭서리를 해간 것이었다. 그래서 꼭두리는 지서로 신고를 하러 가게 됐고, 그 신고를 받은 것이 공교롭게 우 순경이었다. 그 후 우 순경은 그 닭 문제로 집에 찾아오게 됐고, 그러다가 그들은 지난 2월8일 첫 데이트를 하게 됐다. 악마의 장난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만남이었다. 그는 3월 들어 동거할 것을 고집했고, 동거를 시켜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생각하면 결혼을 반대하던 어머니 말이 다 맞는 것 같다. 어머니는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 순경은 장모 재목한테도 존대말을 쓰지 않고 불손하게 반말 지거리를 했다. 동네 사람들도 다들 눈꼬리가 사납고 성질이 거칠다면서 좋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두 달이나 살을 맞대고 같이 살아 온 지금, 이제 와서 난 어쩌란 말이냐! 꼭두리는 이참저참 마산에 있는 어머니한테 전화나 걸어야 되겠다고 아래쪽에 있는 전용출 씨 집으로 갔다. 그 집에 전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엔 아까 싸움을 말리러 왔던 사람들이 반상회를 한다고 한방 가득 모여 있었다.

 

 

(계속)

 

[ 2021-09-23, 09: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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