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오해를 버리면 ‘새로운 인도’가 보인다!
[인터뷰] ‘知韓派 인도인’ 수미트 쿠마르 씨가 본 인도 / “인도인을 하나로 묶는 것은 종교… (종교는 인도인들의) 뼈가 아닌 DNA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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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印度)엔 인도(人道)가 없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떤 나라일까? 그것이 시작이다.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인도에 대해 모르고 있던 부분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며 인도에 관한 이야기가 잉태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도에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수미트 씨를 통해 재확인한 사실이다.”
필자(右)와 수미트 쿠마르 씨



 ‘知韓派’ 수미트 쿠마르

 흔히 야구에서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도에서 법인을 운영한 적이 있는 필자는 실제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이라면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국과 인도 모두에 애정을 가진 그는 우리의 입장에서 귀인(貴人)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하듯 한국과 인도가 상생하며 서로가 윈윈(Win-Win)하기 위해선 인도에 다가서려는 우리의 노력만큼 한국과 인도 두 곳 모두에 마음을 걸치고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인도의 조력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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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트 쿠마르 씨

 내가 만난 수미트 쿠마르 씨는 인도인으로는 드물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한파(知韓派)다. 수미트 씨는 北인도 우타르프라데시州 출신으로 서울 홍대 부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우리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했다. 그는 현재 델리에서 여행과 무역업에 종사하며, 인도와 한국 두 나라를 잇는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있다. 그를 통해 인도인의 시각에서 인도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인도는 섬과 같은 곳입니다”

 수미트 씨는 외국인이 인도를 이해할 때 먼저 인도의 지리와 기후적 여건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화두를 던졌다. “인도는 섬일까요? 반도일까요?” 뜬금없이 무슨 말일까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인도는 섬(島)과 같은 곳입니다.” 그제야 무슨 뜻인지 감이 잡혔다. 그는 사전적 의미의 ‘섬(島)’을 뜻한 것이 아니었다. 북으로는 사막과 험난한 산맥이 우산처럼 대륙의 지붕을 덮고 있고, 그 아래로는 삼면(三面)이 바다를 면해 70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이 이어지는 곳이니 비유적으로 인도는 거대한 섬과 같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기후가 그곳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에 깊숙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지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는 꼭 인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왜 그는 그런 화두를 던졌을까? 수미트 씨가 한국인에게 한국어로 비유법을 쓰면서까지 인도를 섬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이 인도를 이해할 단서이고, 이를 간과할 경우 인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지리적 요건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부터 인도로 통하는 길은 북서부의 육로였다. 그곳을 통해 유입된 문화들과의 교류가 현재의 인도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아리안의 유입을 통해 인종, 종교 및 사회체제의 근간이 자리 잡고, 알렉산더의 원정과 이슬람 시대는 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물론 여기에 더해 훗날 海路가 열리고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인도가 어떠한 문화를 수용하며 진화해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北인도 역사’에 편중되어 있는 한국

 유입된 각 문화가 인도 내에서 어디까지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도 중요한데, 정착민으로부터 밀려난 원주민들이 남으로 내려간 것이 오늘날 北인도와 구별되는 南인도의 문화가 형성되는 바탕이 되었다. 이는 인종, 문화, 종교, 언어 등 하나의 인도 속에 공존하는 다양성도 설명해준다. 수미트 씨는 이러한 인도의 지리적 여건과 역사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만 섣부른 편견이나 오해를 막고 인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인도의 역사를 배울 때, 北인도에 편중된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굽타 왕조는 알아도 南인도의 촐라 왕조는 생소하다는 것이다. 여행의 경우도 그렇다. 인도에서의 여행 경로가 다양하지 못하다고 한다. 갠지스 강은 찾아가도 정작 인더스 문명을 탐방하는 사람은 없고, 인도 전역을 두루 경험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물론 인도인조차도 인도 전역을 가보고 두루 경험하기란 어렵다. 다만 그는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인도의 면모가 있음을 인지하고 일부의 모습만으로 전체를 단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꼭 모든 것을 꿰차고 경험한 뒤에야 인도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인도를 깊고 넓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는 인도에 대해,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양파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인도인이 느리진 않아

 그는 기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인도는 더운 지방이다. 광화문에서 수미트 씨와 대면한 날, 서울의 낮기온은 봄날임에도 30도에 육박했다. 하지만 같은 날 델리의 기온은 벌써 4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인도는 폭염이 한창일 때 외부 활동이 어렵다. 하루에 겨우 한가지 일정을 소화할 만큼 사람이 느슨해지는데, 생활 방식과 문화도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왔다.

 (아마도 인도인은 느리고 게으르다는 편견에 대해) 수미트 씨는 자신은 인도인이지만 매사 행동이 빠른 한국인을 대하며 자신은 그보다 한 발짝 빠르게 행동한다고 말한다. 편견은 편견일 뿐 인도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후와 관련 한국과의 다른 인도인들의 생활 면모도 소개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대한 것인데 인도에서는 밤늦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한다. 그 이유는 날씨가 선선해지기를 기다려 식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늦게 퇴근하는 가장을 기다려 온가족이 다함께 식사하는 인도의 가족 문화도 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미트 씨도 우리와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한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르므로, ‘인도인은 이렇다’는 편견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침략은 받아도 정복된 적은 없는 나라

 다시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수미트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인도 사람을 만나면 곧잘 물어보는 질문인데 식민지 시대, 특히 영국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인도가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인 동시에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이 의외로 명쾌하다. 먼저 인도에서는 ‘지배’라는 말을 좋지 않게 본다고 한다. ‘지배’라는 단어를 인정하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그 역사를 부정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인도를 거쳐 간 세력과 그 문화적 영향은 다채롭기에 어느 특정 문화의 영향에 큰 방점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상으로 한국은 항상 일본이 보이는 반면, 인도는 영국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정 부분 영국의 제도에 영향을 받지 않았냐는 물음에도 영국 이전에 인도 나름의 교육 제도가 있었다고 답하고, 간디, 네루, 파텔 그리고 진나까지 인도의 지도자들이 영국 유학을 떠난 것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길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비록 이러한 답변만으로는 영국과 닮은 정치, 교육, 법제 등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지만, 또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있다.

 그를 통해 인도의 무슬림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다. 인도의 무슬림은 대부분 인도 사회에 기반을 두고 개종한 인도-무슬림으로 계파간 갈등이 존재하고 규율이 엄격한 정통 이슬람 사회에 비해 개방적이라고 전한다. 그 예로 그는, 발리우드 등 대중적인 유명세를 떨치는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이라고 했다(그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중 일부는 자신이 힌두이자 무슬림이라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도-무슬림들은 주류 사회인 힌두 커뮤니티에서 분리(게토化)되어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그는 넓은 인도땅에 굳이 힌두와 무슬림이 같은 장소에 공존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말한다. 그의 답변은 힌두와 무슬림 간 미묘한 갈등을 비켜간 측면은 있지만,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의 말처럼 인도의 무슬림은 인도-무슬림으로 힌두교 중심의 사회체제(카스트 제도 등) 속에 동화(同化)되어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인도엔 인도가 없다》(조갑제닷컴 刊)에서 ‘침략은 받아도 정복된 적 없는 영혼’이란 표현으로 인도의 저력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의 답변을 통해 감히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강인한 인도인의 대륙적인 기질과 담대함이 묻어난다. 


 “인도인에게 종교는 뼈가 아닌 DNA에 새겨져”

 역사를 이야기하다보니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신화(神話)로 이어졌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 역사의 뿌리는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화는 곧 신(神)에 얽힌 일화들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믿는 神도 많지만, 같은 神이 지역마다 다른 언어로 표현되고, 그 神이 화신(化身)으로 또 다른 모습이 되어 나타나며, 神과 神의 자손이 또 다른 神이 되기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으로 브라흐만(창조), 비슈누(유지), 시바(파괴)에 대해 언급하고 이들 주요 신들과 인도의 주요 종파(宗派)에 대한 이야기한 뒤 다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신들인 가네샤(코끼리神)과 하누만(원숭이神) 등에 얽힌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실 인도의 다양성은 어느 주제로 이야기하든지 한번 시작하면 쉽사리 끝날 수 없는 내용들인데 수미트 씨 또한 멈출 줄 모르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도중에 필자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인도에서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인도 직원들이 사기 진작의 차원에서 사무실에 신상(神像)을 들여놓길 희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어떤 신을 모시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어떤 神이든 크게 개의치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다. 종교, 가족, 일을 놓고 보아도 종교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에 대해 수미트 씨는, “인도인에게 종교는 뼈가 아니라 DNA에 새겨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필자에게 건네준 명함에도 神이 그려져 있었다.


 ‘수많은 언어’가 있음에도 ‘하나의 인도’로 유지되는 비결

 같은 신도 지역 언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고 하는데 다양성의 측면이라면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통상적으로 인도어라면 ‘힌디어’를 뜻하지만, 사실 인도에 가면 그밖에도 지역별로 다양한 언어가 쓰인다. 이토록 다양한 언어가 쓰이는 인도가 어떻게 지금처럼 하나로 묶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수미트 씨는 “인도를 하나로 묶는 것은 종교라고 생각한다”며 다시 한번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로는 산스크리트語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비록 현재는 사어(死語)에 속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라고 했다. 인도인의 종교와 사상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문헌들이 이 고대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고, 단순히 학문적 용도 이외의 가치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도 했다.

 힌디어는 다른 지역어들과 언어적으로 뿌리도 다르고, 영어 등 외래어도 꽤 많이 쓰인다는 질문에 대해 그는, 기존에 없었던 신조어를 들여온 것일 뿐 존칭이 있는 힌디어가 존칭이 없는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수미트 씨는 한국어와 인도어의 유사성, 특히 몇몇 단어 중 발음상의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조금 불편한 화두를 꺼냈다. 요즘 주변에서 인도는 여행하기에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거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매력적인 여행지였던 인도가 性폭력 사건 등 최근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들로 그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수미트 씨는 먼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일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잘못된 일이고, 일부의 그릇된 행동이 국가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안타까워했다.


 인도 여행엔 ‘모험’이 따른다

 그의 ‘항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인도보다 미국의 발생률이 오히려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인도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을 경시하는 곳에서 어떻게 수많은 여신(女神)을 숭배하고 여성 지도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어떻게 나오겠냐고 말한다. 더 나아가 흔히 외부에서 말하는 조혼(早婚)이나 다우리(결혼 지참금) 등 여성 차별을 상징하는 구습(舊習)들도 이미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수미트 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는 이해해볼 수 있다. ‘투어(Tour)와 트레블(Travel)의 차이를 아시냐’는 광고도 있지만, 인도 여행은 어느 정도 모험을 전제로 한 트레블이다. 종교적이고 금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하여 인도라는 나라에 낭만 일변도로 접근하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도의 그 많은 인구 중에는 악인(惡人)도 존재한다. 인도에도 범죄조직이 있다. 최근 인도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전례 없이 크게 다뤄졌다는 점은, 인도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도에 관한 미담(美談)은 그만큼 크게 다뤄진 적이 있을까? 인도가 순식간에 위험한 나라라는 오명을 얻은 것은 아쉽다. 대다수의 선량한 인도인들, 특히 수미트 씨처럼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양국(兩國)을 오가는 이들에겐 억울한 일이다. 인도는 한때 모두가 동경하는 곳이었다. 인도만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는 드물다.


 ‘輪廻의 관점’으로 본 인도

 수미트 씨는 사업상 1년에 한번 꼴로 한국에 방문한다. 이번에는 20일 이상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데 여러모로 한국에 잔뼈가 굵은 인도인이다. 그렇다고 외국인으로서 한국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에 대해 항상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만, 처음에는 실망스런 일도 겪었다고 고백한다.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이 유쾌하진 않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필자 또한 인도를 오가며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잘하고 상대방이 못해 불만스러웠는데 알고보니 나도 잘못한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수미트 씨의 이야기에 허가 찔린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서로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한 것이다. 수미트 씨 역시 향후 상호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도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최근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려는 인도다. 그는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와 만족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 중국처럼 급속한 발전과 성장은 어려워도 바람직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윤회(輪廻)의 관점을 접목해 바라본 인도의 미래였다. 그는 “인도라는 국가도 윤회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좋은 업(業)을 쌓고 다음 生을 기약하듯이 험난한 과거를 이겨낸 인도가 다시금 강성해지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인도 사람답다.


 “아름다운 인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한 수미트 씨는 거침이 없었다. 대답을 주저할만한 질문에도 되도록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인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도의 종교와 문화상 민감한 주제를 논하기가 어렵다. 자칫 코앞의 인도인에게 당신의 카스트가 무엇이냐고 대놓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지기 때문이다. 때론 몰랐던 척 순진하게 물어보고 싶은 심경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수미트 씨는 곧잘 질문을 받는다며, 스스로 계급에 대한 화두를 꺼냈고 필자가 묻기도 전에 명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는 과거에 얽매이기 보다는 미래지향적이었다. 외부의 시각에서 흔히 인도의 큰 걸림돌로 꼽히는 계급 등 구습과 악습의 잔재에 대해 그는 이미 과거의 모습이고 점차 소멸되어 가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 이야기가 사실이기 위해서는 수미트 씨 개인을 떠나 인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인도 외부의 사람들도 그 변화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수미트 씨가 말하는 인도는 희망적이고, 모두가 기대하고 지지하고 인도의 미래임에 틀림없다. 지향하는 바는 같은 것이다.

 인도에 대한 한국어 책을 출간하기를 희망하는 수미트 씨는 필자가 쓴 《인도엔 인도가 없다》의 제목을 보더니, 바로 자신이 쓰고 싶었던 책이라고 이야기했다. 인도에는 (우리가 아는) 인도가 없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떤 나라일까? 그것이 시작이다.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인도에 대해 모르고 있던 부분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며 인도에 관한 이야기가 잉태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도에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수미트 씨를 통해 재확인한 사실이다.

 능력 있는 여행 안내자이기도 한 수미트 씨는 인도 여행에 대한 추천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찾는 여행객에게 매일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가 한 말이 인상 깊다.

 “(인도엔 우리가 아는 인도가 없어도) 아름다운 인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도엔 인도가 없다
발로 쓴 인도 백과사전

鄭仁采

324페이지 | 150*225mm | 16,000원 | 2016년 4월15일 | 979-11-85701-36-3 03910
여행 > 여행에세이
여행 > 테마여행 >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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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주문 가능 02-722-9411~3




| 책 소개 |

현지 주재원의 가보고 살아보고 맛보고 생각해본 인도의 깊은 이야기

한국의 한상차림이 백반이라면, 인도에는 탈리(Thali)가 있다. 쟁반 한가득 여러 가지 음식을 담은 인도 정식이다. 《인도엔 인도가 없다: 발로 쓴 인도 백과사전》(324페이지, 1만6000원, 조갑제닷컴刊)은 저자 정인채 씨가 차려낸 ‘탈리’같은 여행서다. 초보 배낭여행자, 유학생, 주재원의 다양한 신분으로 인도에서 여행하고, 일하고, 생활하며 겪고 느낀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이로웠던 순간을 담은 여행기부터 역사, 종교, 철학 등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생생한 비즈니스 경험을 비롯한 인도 생활 체험담 등 화려하고 풍성한 인도의 풍미를 담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에 진학해 처음 인도를 접하게 된 정인채 씨는, 1998년 인도 일주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어학연수를 위해 델리 대학에 적을 두었던 2001년 두 번째 여행길에 올랐다. 2004년부터는 여행지가 아닌 일터로 인도를 방문하기 시작, 2012년에는 델리 근교 노이다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삶의 무대로 인도를 경험했다.

저자는 두 번의 여행을 큰 줄기로 삼아 여정(旅程)을 소개하고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직접 겪은 체험을 덧붙여 저자가 경험한 인도를 생생하고 솔직하게 그렸다. 본문에서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인도는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박스 기사 형태로 발견할 수 있는 ‘인도 토막 상식’으로 보충했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는 인도와 달리 인도인들도 살 만하면 행복하지만 가난하면 불행하다는 현실을 지적한 ‘가난해도 행복하다?’, 3억3000만에 이른다는 힌두교의 신(神)을 소개한 ‘신앙은 인기순이 아니잖아요?’, 12억 인구가 피우는 향과 터뜨리는 폭죽으로 차원이 다른 인도의 대기오염을 소개한 ‘중국을 넘어선 인도의 스모그’, 무더운 인도에서 전기장판에 난로까지 사용해보니 동사(凍死)하는 노숙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을 적은 ‘영상의 추위에 동사하는 인도 노숙자’, 8억 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개표에만 6주가 걸리는 선거 이야기를 다룬 ‘인도의 엄청난 선거 규모’, 보증금으로 맡긴 두 달 치 임대료를 돌려받는 험난한 과정을 소개한 ‘집주인과의 실랑이’ 등 흥미로운 소재가 많다.

대부분의 인도 여행서와 달리 《인도엔 인도가 없다》는 인문학적 영역뿐 아니라 현실적인 분야도 탐색했다. 저자는 브릭스(BRICs)가 화두가 된 이래 받아온 ‘그래서 인도는 가볼만한 곳인가’란 질문에 ‘어쨌든 마땅히 추구해야할 땅’이라고 답한다. 잠재력이 풍부한 시장, 개척해야 할 미래라는 것이다. IT 소프트웨어 강국이지만 제조업이 약한 나라 인도에서 한국이 인도 제조업의 ‘개국공신’이 되어야 된다고 조언한다. 인도 사회에 만연한 부패 문제도 저자가 겪은 경험담을 통해 애정을 담아 풀어냈다. 인도에서는 특별할 바 없는 관행인 ‘부패’의 삭막한 얘기를 나열해 인도에 대한 편견을 만들까 저어해서다. 저자는 ‘인도는 원만히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며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해도 ‘인도(印度)의 상식’에 맞춰 순응하며 융통성을 발휘하길 권했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급속한 개혁과 변화가 쉽지 않은 인도지만, 느리긴 해도 서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야말로 인도의 잠재력이라고 내다봤다. 인도는 변할 일만 남은 셈이다.

정인채 씨는 머리글에서 “인도는 이것저것 한꺼번에 모두 다루기엔 너무 광범위하다. 반면 어느 한부분만 다룰 경우 전체를 그려내지 못하고 자칫 인도에 대한 편견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내가 아는 인도를 그려낸 이 글이 인도의 윤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인도로 향하는 분들께 제대로 된 한 상 탈리를 대접하는 기회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 필자 소개·鄭仁采(정인채) |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에서 힌디어를 전공했다. 1998년 겨울 인도를 여행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인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제2전공으로 중국어를 이수하여 중국의 고도(古都) 서안에 머무르며 현지를 탐방하는 등 인도와 중국을 넘나든 아시아의 문화를 체험했다. 2004년부터 IT 업계에서 지역 전문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해외 시장 개척 등 영업 및 마케팅 실무와 기획 업무를 거치며 인도와 중국 두 지역의 비즈니스를 두루 경험했다. 북경 파견 근무를 수행하며 중국 전역의 주요 산업 도시들을 섭렵했고, 국내에서는 지식경제부 지정 R&D 연구 개발 사업인 <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ATC)> 프로젝트 실무 관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년부터 인도 생산 법인 설립 업무를 맡으며 우타르프라데시州 노이다(Noida)에서 주재한 바 있다. 인도와 관련, 각종 매체를 통해 해외 통신원 및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현지 소식을 전해 왔다. 영화 전문 잡지를 통해 인도 영화계 동향을 전하는 한편, 한국영화진흥협회에서 발간한 <한국영화 인도 현지 진출 전략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인도 관련 전문 필자로 활동 중이다.  여행·문화·칼럼 및 에세이 채널인 〈emoTure(이모쳐)〉를 운영하고 있다.



| 목차 |

시작에 앞서/ 인도에 멈춰 서서

CHAPTER 1 인도 준비운동
(1) 인도를 알려고 하면 오리무중에 빠진다!
인도, 운명에 거스르지 않는 삶 / 다양성의 난간 / 인크레더블 인디아 / 바라타의 나라
(2) 계급으로 움직이는 우주
차카들의 침입 / 인도 속의 외국인 / 이름에 새겨진 주홍글씨 / 계급 속의 타인
(3) 침략은 받아도 정복된 적 없는 영혼
히다스페스 전투 / 인더스 강을 넘어온 자들 / 영토와 정신의 지배 사이 / 지금 우리가 만나는 인도

CHAPTER 2 여행으로 인도에 다가서다
(1) 북인도 여행, 황금 삼각지부터 ‘性’스러운 카주라호까지
흥미로운 제안 / 카마수트라 / 여행의 첫 고비 / 황금 삼각지 /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을 찾아서 /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2) 바라나시, 인도에 대한 낭만적 관찰을 경계하다
인도 여행의 환상 깨기 / 바라나시 / 화장터에서의 業 / 힌두교의 죽음 의례 / 환상과 현실 사이의 인도
(3) 보드가야, 아소카왕과 불교 유적
3등석 기차칸 / 보드가야의 메신저들 / 칼링가 전투 / 아소카, 마우리아의 황금기 / 정복자와 성왕(聖王)
(4) 기차는 인도의 모든 것이다
인도인 흉내 내기 / 인도는 기차가 전부다 / 인도 대륙의 동맥 / 동인도의 끝자락, 푸리 / 38시간의 남행(南行)열차
(5) 커피와 짜이
南인도의 커피, 北인도의 짜이 / 인도의 또 다른 역사 / 여행의 반환점
(6) 三色 마드라스 이야기
식민지 시대와 南인도의 기독교 / 몬순 비즈니스 / 최고의 가능성을 지닌 최대 민주주의 / 마드라스를 떠나며
(7) 한번 맛본 인도는 잊기 어렵다
휴지를 찾아서 / 살람 봄베이 / 일곱 섬의 도시 / 두 얼굴의 뭄바이 / 간디가 떠난 항구 / 춤추는 영화관 / 첫 여행의 마침표

CHAPTER 3 모험적 표류
(1) 변치 않는 인도에 대한 기대
구자라트에서의 표류 / 서명(署名) 지옥 / 인도를 알아가는 ‘수업료’ /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늪 / “수업료는 잘 챙겨왔냐” / 부패이기 전에 관행 / 변할 일만 남은 인도
(2) 머리 좋은 인도인들이 공부도 열심히 한다!
내 이름은 ‘남자’ / 느슨한 일상과 느슨하지 않은 교육 / 인도 대학의 높은 수준과 현실
(3) 달리는 인도 기차에서 뛰어내리기
음식 망명 / 아그라의 공수부대 / 히말라야를 만나는 길, 나이니탈 / 가야할 길을 가야하는 운명
(4) 라자스탄과 인도인의 자부심, 라지푸트族
사막으로 가는 길 / 사색(四色) 도시의 향연 / 전사(戰士)들의 땅
(5) 험난한 여정(旅程) 속에서 내 의지를 시험해보다!
실패는 ‘여행’의 어머니 / 타고난 ‘싸움의 구경꾼’들 / 잘못 끼워진 단추 / 새로운 모험은 실패를 담보로 한다 / 내 의지를 시험했던 旅程
(6) 되찾은 영토 고아(Goa)에서의 여유
디우 해전(海戰) / 후추 무역계의 큰손 ‘바스코 다 가마’ /비자이 작전 / 인도의 낙원 / 고아 즐기기
(7) 다시 찾은 南인도
코발람 / 인도 교육의 시험장, 깨랄라 / 인도의 공산당 / 깨랄라의 허와 실 / 영광은 이어질 것인가? / 트리반드룸, 땅콩
(8) 깐냐꾸마리
해국(海國) / 비베카난다와 플라토닉 러브 / 꾸마리의 도시

CHAPTER 4 인도로 향한 사람들
(1) 찬디가르 여행
정복자, 구도자, 탐험가 / 내셔날 하이웨이 / 인도로 향한다는 것 / 두 개의 땅 하나의 심장 / 알아도 한 번 더
(2) 이별은 되돌아오기 위한 준비
작별 / 인도를 향한 끈질긴 외침


[ 2016-04-29, 19: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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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2016-05-01 오전 4:40
인도가 덥고 지저분한 나라 인도지
무슨 새 나라?
술 취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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