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조국이 아닌 敵과 惡 편이었다는 걸 論證(논증)한다!
그는 재임중 서울 청와대에 있었으나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평양 김정일의 하수인 역할에 더 충직하였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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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과 선동꾼의 말은 거칠지도, 딱딱하지도 않다. 부드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巧言令色(고언영색)이다. 그래야 속을 것 아닌가?
  
  <비오는 달밤에 단 둘이 홀로 앉아 지나간 미래를 추억한다.>
  달밤, 단 둘이, 홀로, 추억 등 감성적인 말이 많아 좋은 것 같지만 이 낱말들을 연결하면 쓰레기가 된다.
  
  노무현이 2008년 10월1일에 서울 힐튼 호텔에서 한 강연록을 예로 든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을 더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이나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화, 협상, 신뢰는 좋은 뜻을 지닌 단어이다. 이런 좋은 것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戰時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유는 북한을 불신과 두려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럴 듯하지만 헛소리이고 거짓말이다. 노무현은 북한정권이란 존재에 대한 善惡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北은 惡(학살집단-戰犯집단-테러집단)이고 敵(反국가단체)이다. 그렇다면 北이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존재, 즉 미국은 우리 편이고 善이다. 유사시에 북한이란 惡과 敵을 더욱 두렵게 하는 미국의 작통권은 좋은 것이 된다. 우리에게 좋은 작통권을 없애버리려는 노무현은 惡과 敵의 편이란 결론에 이른다.
  
  노문현식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善과 惡, 敵과 同志(동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는 게 理念, 즉 이론화된 신념이다. 이념은 두 가지 작용을 한다.
  공동체의 利害관계에 대한 自覺을 도와준다. 즉 누가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敵이고 동지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 이념이다. 이념은 또 자기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준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돕는다. 내가 북한정권을 敵과 惡으로 간주하고, 미국을 친구와 善으로 보는 게 정당하다는 확신이 바로 이념이다. 이런 이념은 헌법정신,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한국 현대사, 대한민국의 正體性 등에 대한 올바른 視角(시각) 정립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이념으로 무장할 때 비로소 노무현식 선동의 허구를 간파할 수 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위해서는 다자 안보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 대화 체제에서 미국이 너무 커보이게 되고 이것은 다자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란 교묘한 거짓말이다. 유사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아니라 韓美연합사 사령관이 미국과 한국 대통령의 합의된 지침에 따라 행사한다. 韓美연합사 사령관은 미군 장성이지만 그는 韓美 두 나라 국가지도부가 내린 지침 안에서만 戰作權을 행사한다. 노무현은, 이를 미국이 한국군을 지휘하는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자신이 가진 50%의 지분을 없는 것처럼 죽는 시늉을 한 뒤 戰作權을 환수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자기 것을 어떻게 환수하나?
  앵벌이가 멀쩡한 사지를 붕대로 칭칭 감고 동정을 구걸하는 꼴이다.
  
  사실관계가 어긋 나니 '미국이 너무 커보이게 되고 이것은 다자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란 표현도 허위에 기초한 억지가 된다. 敵과 惡인 북한정권을 제외하고, 동북아의 어느 나라도 한국에 대하여 韓美연합사를 해체하고, 戰作權을 전환하라는 요구를 한 곳이 없다. 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한 게 노무현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작통권의 환수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진하였습니다.>
  
  '작통권의 환수'란 말은 사기용어이다. 남북간의 신뢰구축은 惡과 善 사이의 신뢰구축을 뜻한다. 惡이 나쁜 짓을 다시는 저지르지 못하게 하여 善이 안심하는 상태가 惡과 善 사이의 신뢰이다. 惡이 그렇게 되도록 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惡이 改過遷善(개과천선)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惡이 善을 두려워하여 나쁜 짓을 못하도록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 억지력의 표상이 바로 韓美연합사였다. 善惡 및 彼我 구분능력이 마비된 노무현은 惡과 敵에 대한 억지력을 없애는 것을 善과 惡 사이의 신뢰 구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강도와 부자집 사이에 신뢰구축을 하려면 먼저 부자가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는 노무현이 조국이 아니라 敵과 惡의 편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는 재임중 서울 청와대에 있었으나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평양 김정일의 하수인 역할에 더 충직하였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친구인 미국을 괴롭힌 걸 자랑하고 敵인 북한정권을 편든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전략적 유연성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두었으며 PSI 또한 북한과 물리적 충돌가능성이 있는 조치에 대해서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M.D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작계 5029도 반대했습니다. 한미 군사 훈련도 최대한 축소하려고 노력했고, 남북 간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면 최대한 사리를 밝혀서 북한을 변론했습니다. 개별 정상회담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 상해도 참았습니다. 이 모두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동맹국엔 악랄하게, 敵엔 비겁하게 대하였다는 걸 자랑하는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고, 그 路線(노선)을 이어받은 이가 지난 大選에서 1470만 표를 얻었다!
[ 2013-01-12, 2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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