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방파제에서 자유의 파도로"
'낙동강 방어전의 영웅' 워커 장군 61週忌(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필자는 이날 아래와 같은 추모사를 하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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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美8군 용산 기지 안에서 '낙동강 방어전의 영웅' 워커 장군 61週忌(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필자는 이날 아래와 같은 추모사를 하였다.
  
  
  
  우리는 오늘 '낙동강 방어전의 영웅'으로서 영원히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워커 장군 서거 6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워커 장군과 한국전 참전 미군들은, 워싱턴 한국전 기념물에 새겨진 문장처럼,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조국의 부름에 응한' 영웅들이었습니다.
  
   중공군의 不法 남침으로 한국이 다시 한번 死活의 위기로 몰렸을 때인 1950년 12월23일, 워커 8군 사령관이 지프차를 타고 아들 샘 워커 대위가 근무하던 부대로 가던중, 한국군이 모는 트럭에 받혀 돌아가신 것은 참으로 비통하고도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워커 장군이야말로 '알지로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친 분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14절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다 담겨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한 수많은 영웅들의 희생과 용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미군은 延인원으로 150만 명이 참전, 그 10%인 15만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생명을 바친 분들중엔 워커 중장 이외에도 24 사단 연대장 마틴 대령이 있습니다. 그는 천안에서 직접 바주카포를 들고 북괴군의 탱크와 대결하다가 탱크가 쏜 직사포를 맞고 전사하였습니다. 24 사단장 딘 소장은 대전을 지키는 전투를 지휘하던 끝에 부대가 흩어지면서 낙오하여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9군단장 무어 소장은 1951년 초 반격작전중 탑승한 헬기가 고압선에 걸려 추락하면서 후유증으로 서거하였습니다.
  
   밴플리트 8군 사령관의 아들은 조종사였는데, 북한지역을 폭격하다가 실종, 戰死로 처리되었습니다. 미국 CIA 부장의 아들은 프린스턴 대학 재학중 해병대에 지원, 한국전선에서 머리에 총상을 맞았습니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중 17명이 한국전선에서 戰死하였습니다. 휴전협정을 맺을 때 유엔군 사령관이던 클라크 장군의 아들은 2사단 소속 중대장으로 '斷腸의 능선'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미국으로 후송되었는데 이게 세번째 부상이었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장성들의 아들 숫자는 142명이나 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참전하였습니다. 이들중 戰死-부상자가 25%인 35명이나 되었습니다. 일반 사병들의 戰死傷率보다 두 배나 높은 것은 이들이 위험한 一線 근무를 자원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워커 중장 등 수많은 미군이 흘린 피와 바친 생명을 딛고 不死鳥처럼 일어선 한국인들은 국가를 지켜내고 진실, 정의, 자유가 꽃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건설하였습니다. 곧 망할 것 같았던 나라가 起死回生하여 번영하게 된 밑거름은 워커 장군과 그의 戰友들이 흘린 피였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매개로 하여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 되었습니다. 이 동맹에 의하여 미국은 미국에 한국을 합친 것 만큼 강하고 한국은 한국에 미국을 합친 것 만큼 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자유의 방파제'로 불리워 왔으나 이제는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휩쓸고 독재자를 넘어뜨리고, 북한 노예들을 해방시킬 힘을 갖추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 바, 그것은 '자유롭고 번영하고 통일되고 강력한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1950년 6월24일(미국 시간) 저녁, 고향인 미조리주 인디펜던스에 가 있던 트루먼 대통령은 딘 에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南侵을 보고받자말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개새끼들을 막아야 합니다."
   (We ha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이 직설적 한 마디가 한국인을 살렸습니다. 한국 역사상 민족 전체의 운명이 한 외국인에 의하여 결정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의 파병결정으로 워커 중장이 한국에 왔고, 그 뒤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들은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逆轉의 드라마였습니다. 올해 유엔개발기구(UNDP)가 발표한 세계 180여개국의 '삶의 질'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15등이었습니다. 워커 중장 등 미국의 영웅들이 지켜낸 자유와 평화가 만든 기적입니다.
  
   워커 중장을 추모하는 오늘은 따라서 슬픔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 승리의 날, 다짐의 날인 것입니다. 61년 전 있었던 한 영웅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는 길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로서 한반도에 자유와 평화의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노예보다 더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북한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자유인이 되는 날 우리는 다시 한번 모여 워커 중장의 靈前(영전)에서 자랑스러운 보고를 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호가 워커 중장의 후손들에게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1-12-02, 16: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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