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손학규의 저축은행 수사건 논의를 반대한다!
두 사람은 이 사건의 利害당사자이다. 民亂을 각오하지 않고선 저축은행 사건을 덮을 순 없을 것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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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민주당은 27일로 예정된 李明博(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회담과 관련, 6개 民生의제 가운데 가계부채와 저축은행 비리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26일 뉴데일리가 보도했다. 회담 실무협의를 위한 양측 3인 대표 중 청와대 장다사로 기획관리실장과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와 민주당사에서 각각 브리핑을 갖고 이 같이 설명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與野 수뇌부가 진행중인 수사 사건에 대하여 논의를 하는 일은 없다. 저축은행 비리件에 연루되어 수사 대상이 된 인물들 중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그리고 현재의 이명박 정권과 관련이 있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손학규 씨는 이 수사와 관련하여 利害당사자이다. 그런 사람이 大檢(대검) 중수부가 진행중인 建國(건국) 이래 최대의 권력형 부정사건에 대하여 논의한다니 이는 法治(법치)국가의 운영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연히 두 사람을 의심할 것이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 수사를 적당히 마무리 하기로 野合(야합)하는 게 아닌가 의혹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을 聖域 (성역)없이 수사하기를 바라는 국민들, 특히 예금을 날리게 된 피해자들의 의심을 가볍게 보고 이상한 합의를 한다면 이명박, 손학규 씨는 逆風(역풍)을 맞을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광주일고 출신 10여 명의 금융마피아들이 이 은행을 범죄조직화하여 부패한 공직자들의 비호 아래서 최고 7조 원을 날리고, 착복하여 수십 만 명에게 폐를 끼친 사건이다. 국민행동본부, 조갑제닷컴, 올인코리아, 뉴데일리의 집중적인 문제 제기로 부산시민들도 이제 진상을 알고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수사를 적당히 하도록 합의, 검찰을 압박하면 수사대상이 된 사람들로부터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겠지만 검찰이 죽는다. 검찰이 正義(정의)를 구현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역시 검찰은 권력의 走狗(주구)이구나"라고 실망, "차라리 경찰에도 수사권을 주어 경쟁을 시키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民亂(민란)을 각오하지 않고선 저축은행 사건을 덮을 순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청와대 회담에서 저축은행 수사件을 논의해선 안 된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야당인 공화당의 하원의장을 초청, IMF 前 총재 칸 씨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대하여 논의한다면 두 사람은 1주일 내로 탄핵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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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기록할 盧泰愚 대통령
  
  
  
  *민주주의 실천 시대를 연 사람
  
  盧泰愚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웬지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나는 盧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비판적 기사를 가장 많이 쓴 기자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盧泰愚 정부 5년간이 나의 40년 기자 생활중(그리고 한국 언론史上) 가장 자유스러웠다고 斷言할 수 있다.
  盧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과 업적에 대하여 정리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퇴임후의 취재를 통해서이다. 비자금 사건으로 고생하고 세간의 비난이 쏟아질 때 이분에 대한 나의 평가는 오히려 높아졌다. 盧대통령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민주화 시대를 열었고, 공산권 붕괴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의 새로운 활동공간을 만들어낸 사람>
  盧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대를 열었다. 한국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이들에 비하여 민주화를 실천한 이들에 대한 평가가 낮다. 요구는 비장하고 장렬하게 할 수 있으나 실천은 끈질기고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盧대통령의 생애는 '성격이 운명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분의 온유하고 끈질긴 성격이 민주주의 실천이란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게 만든 게 아닐까?
  안으로는 민주화의 소용돌이, 바깥으론 공산권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大轉煥期에 盧대통령이 국가 대전략을 바로 세운 그 利得을 한국인 모두가 누리고 있으나 고마워하는 이들은 드물다. 盧대통령이 업적에 비하여 과소평가되는 이유중 가장 큰 것은 이분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갔던 이들이 담대하게 설명하지 않고, 세력화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盧대통령을 가장 많이 비판하였던 내가 요사이는 가장 많은 변호를 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에선 반박되지 않는 거짓이 사실로 유통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홍보되지 않은 진실은 거짓 취급을 받거나 무시될 가능성이 있다.
  
  *음악적 감수성
  
  盧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1987년 大選 때 있었던 관훈클럽 토론회장에서였고,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초 연희동 자택에서였다. 1999년에 月刊朝鮮에 다섯 차례 연재된 인터뷰를 편집장이던 내가 진행하여 긴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뒤 책의 출판 관계 등으로 자주 뵙게 되었다. 2년 전엔 生家와 공산 국민학교에 다녀온 적도 있다. 팔공산 기슭에 있으나 산은 보이지 않는 마을의 맨 위쪽에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옛집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인격의 기본이 형성된 곳이 이 집인데, 소년 시절을 회상한 그의 手記는 정감이 넘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으로 바깥채에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채, 그리고 아버지의 書齋, 방앗간, 창고가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 안채에는 부엌과 할머니가 계시던 큰방, 마루, 어머니 방 등이 있었다. 집은 서남향(西南向)인데 마루에 앉아 바라보면 앞산이다. 해가 뜨면 앞산의 얼굴이 보이고, 해가 질 때는 앞산의 그림자만 보였다. 팔공산은 집 뒤쪽에 있는데다가 너무 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팔공산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팔공산을 보게 된 것은 집에서 멀리 나다닐 수 있게 된 후의 일이다.
   집 옆으로는 조그마한 개울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저녁 무렵 아버지가 걸어서 올라오시는 모습을 사랑채에 앉아 열린 대문을 통해 바라보곤 했다. 개울 옆길을 따라 올라오시는 아버지께선 늘 책이나 유성기판을 끼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서재로 불러 무릎에 앉히고 새로 사 온 유성기판을 틀어 노래를 들려주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에도 그 방에 들어가 유성기와 책, 퉁소 같은 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盧泰愚 소년이 만 여섯 살이 채 안 된 1938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스물아홉 살에 별세하였다. 동생과 함께 막내 숙부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 守節(수절)하면서 살다가 1999년에 90세로 별세하였다.
   盧대통령을 이해하는 데는 노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혼자서 부른 휘파람과 노래는 아버지를 그리는 望父歌였을지 모른다. 이분의 음악적 감수성이 아버지가 무릎에 앉히고 들려준 유성기판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대격변의 轉換期를 덜 살벌하게 해주는 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다정한 아버지를 일찍 여읜 흔적을 70代의 盧대통령 모습에서 느끼곤 하였다. 외로움의 흔적 같은 것이다. 盧대통령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도 답답하게 생각할 만큼 감정 표현을 아낀다. 화를 내야 할 때도 화를 내지 않는다. 나의 짐작으론 두 가지 감정을 가슴 깊이 품고 있지 않을까 한다. 全斗煥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 金泳三에 대한 배신감.
  
  *한국 정치의 최고봉 6.29 선언
  
   全斗煥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만나 보면 대체로 盧 전 대통령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1988년 與小野大 이후의 격동기를 가까이서 취재하였던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盧대통령이 전임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했어야 한국의 건설 세력이 교두보를 지켜내고 맥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盧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요사이 하는 이야기는 '그때 그분이 백담사로 가지 않았으면 민란이 났을 것이다'는 취지이다.
  이는 과장이고 합리화일 것이다. 당시 집권세력이 값싼 인간적 義理가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걸고 평화적 정권 이양을 하고 떠난 전임 대통령을 지켜냈다면(나는 그럴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 뒤의 한국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盧 전 대통령으로선 1995년 비자금 사건의 여파로 5.18 수사가 재개되고 全 전 대통령까지 옥살이를 하게 만든 데 대하여도 미안한 마음이 많았겠는데 문제는 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금전적으로 전폭 지원하여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그 金泳三씨는 좌파적 역사관의 포로가 되어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비자금 사건이 나자 청와대 비밀금고 운운하면서 모든 책임을 전임자에게 전가하였다. 그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12.12 사건과 광주사태까지 역사의 무덤에서 불려나와 관련자들이 단죄되는 시기를 가장 고통스럽게 통과한 이가 盧 전 대통령일 것이다. 요사이 건강이 좋지 않은 것도 이런 마음 고생과 관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한다.
   나는 1989년과 1992년에 월간조선에 6.29 선언의 내막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한 글이었다. 朴哲彦 전 장관의 회고록을 읽어보니 盧대통령이 화를 많이 내었고, 조선일보에 불만을 전달한 과정이 소개되었다. 조선일보 경영진은 그런 항의를 받고도 내색을 하지 않아 나는 朴씨 회고록을 통하여 비로소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6.29 선언은 전두환 연출, 노태우 주연의 합작품이고 그 약속을 실천한 이는 盧대통령이다.
  
   1. 대통령 직선제 개헌
   2. 공명한 선거관리
   3. 김대중 사면 복권
   4. 국민 기본권 보장
   5. 언론규제 철폐
   6. 지방자치와 사회단체의 자율 보장
   7. 정당활동의 보장
   8. 사회淨化
  
   이상의 8개항은 한국 정치사에선 매우 드문, '지켜진 약속'이다. 말의 힘으로써 역사의 물줄기를 벼랑 끝에서 反轉시켰다는 점에서 6.29 선언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다. 全, 盧 두 분 측근들이 사이가 나빠진 원인중 하나가 6.29 선언의 진짜 주인공을 따지는 싸움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제3자인 나의 시각으론 두 사람의 역할을 한덩어리로 합칠 때 더 크게 보일 것 같다. 역사는 두 분 사이의 갈등을 사소한 것으로 덮어버릴 것이고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것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나라를 자유의 초석 위에 세우고, 지켰고, 朴正熙 대통령은 나라를 키웠고, 全-盧 두 분은 나라를 잘 꾸몄다. 이런 '대한민국 만들기'는 민족통일이 이뤄져야 완성됨으로 아직은 과정속에 있다. 후세 사람들은 全, 盧 두 사람을 지금보다는 훨씬 따뜻한 視線으로 볼 것이다.
   두 분에 대한 世評, 특히 먹물 먹은 이들의 평가는 억울할 정도로 낮지만 역사는 제대로 알아줄 것이다. 두 사람이 이끌던 1980~1993년의 한국은 年평균 경제성장률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두 陸士 동기생은 그런 경제의 힘을 바탕으로 민주화-서울올림픽-북방정책을 성공시켜 한국인의 활동공간을 몇 배로 넓히고,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盧 대통령이 주도한 전면적 민주화와 북방진출은 1948년 建國, 1961년 군사혁명에 이은 세 번째의 國家改造(국가개조)이고 구조개혁이었다. 이 개혁에 의하여 대한민국은 소란하지만 活力(활력)이 넘치는, 生動(생동)하는 ‘민주․자유․번영’의 국가로 거듭 났다. 盧대통령은 1987년 大選(대선) 구호대로 보통사람들이 역사의 主役(주역)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청와대를 떠났다.
  
  *아직도 제6공화국
  
  
   한국의 대통령은 싫으나 좋으나, 잘 하나 못하나 현직으로선 역사와 마주하고 퇴임한 후엔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全, 盧 두 대통령이 퇴임후 미국의 전직 대통령처럼 생활하지 못하고 감옥살이를 한 것은 당사자로선 원통한 일이었지만 세계사적 흐름에선 그렇지만도 않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마지막 단계가 정권의 평화적 교체이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에선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대장전)에 의하여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 1688년의 명예혁명에 의하여 정권 교체를 피 흘리지 않고 하기로 약속하는 데 473년이 걸렸다. 한국은 1948년에서 1987년까지 40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만큼 어린 민주주의여서 실수를 많이 하지만 민주주의는 실수를 견디는 힘이 있다.
   지금은 영국의 영웅으로 추앙 받는 크롬웰의 死後 수난 이야기가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에게 다소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크롬웰은 죽은 후 300년간 안식처를 구하지 못하였던 이다. 그는 청교도 혁명으로 집권한 뒤 현직 王(찰스 1세)을 처형한 사람이다. 왕을 사형한 것은 영국역사상 前無後無한 사례이다.
   크롬웰이 죽은 뒤 왕으로 복귀한 아들 찰스 2세가 맨첨 한 일은 복수였다. 일종의 국립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던 크롬웰의 屍身을 꺼내 剖棺斬屍를 하였다. 찰스2세는, 아버지가 처형된 날인 1월30일에 크롬웰의 머리를 잘라내 창에 꽂아 웨스트민스터 홀의 바깥에 세워 두게 하였다. 이 해골은 24년간 걸려 있었다. 1685년 이후 크롬웰 머리는 여러 사람 손을 거치고 경매에 붙여지기도 하였다. 이 해골이 캠브리지에 있는 시드니 서섹스 대학(캠브리지 대학의 일부. 청교도가 세운 학교. 크롬웰이 다닌 적이 있다) 교회에 묻힌 것은 剖棺斬屍 약300년 뒤인 1960년이었다.
  미국의 건국정신을 기초한 위대한 민주정치가 토마스 제퍼슨조차도 "자유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마시면서 자란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였다. 링컨은 인구 3000만 명이던 미국에서 남북전쟁을 촉발시켜, 內戰으로 60만 명이 죽게 하였다. 이 사망자는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 월남전, 이라크전쟁에서 죽은 미군 숫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링컨을 독재자로 기억하지 않고 분열을 막고 통일을 유지한 위인으로 기린다.
  이런 격변에 비교하면 한국의 민주화는 최소한의 人命희생으로 성공하였다. 李承晩,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 네 분의 인간됨과 마음고생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盧대통령을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아직도 제6공화국이란 사실이다. 盧泰愚 대통령이 문을 연 그 시대를 살면서 飮水思源(음수사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걱정이다.
  
  
  
  
  
  
  
  
  
  民主化 시대를 연 盧泰愚 대통령 이야기
  
  
   1. 어린 시절
  
   대한민국의 제13代 대통령 盧泰愚(노태우)는 1932월 8월14일(음력 7월16일), 팔공산의 자락에 있는 慶北 達城郡 公山面 新龍洞 596(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 596번지)에서 長男(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아버지 盧秉壽(노병수), 어머니 金泰香(김태향)은 결혼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자식을 보게 되었다. 盧 대통령은 生家(생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이렇게 추억하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편으로 바깥채에 할아버지가 계시던 사랑채, 그리고 아버지의 書齋, 방앗간, 창고가 있고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 안채에는 부엌과 할머니가 계시던 큰방, 마루, 어머니 방 등이 있었다. 집은 서남향(西南向)인데 마루에 앉아 바라보면 앞산이다. 해가 뜨면 앞산의 얼굴이 보이고, 해가 질 때는 앞산의 그림자만 보였다. 팔공산은 집 뒤쪽에 있는데다가 너무 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팔공산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팔공산을 보게 된 것은 집에서 멀리 나다닐 수 있게 된 후의 일이다.
   집 옆으로는 조그마한 개울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저녁 무렵 아버지가 걸어서 올라오시는 모습을 사랑채에 앉아 열린 대문을 통해 바라보곤 했다. 개울 옆길을 따라 올라오시는 아버지께선 늘 책이나 유성기판을 끼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서재로 불러 무릎에 앉히고 새로 사 온 유성기판을 틀어 노래를 들려주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에도 그 방에 들어가 유성기와 책, 퉁소 같은 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盧泰愚가 만 여섯 살이 채 안 된 1938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스물아홉 살에 별세하였다. 그 뒤 盧泰愚는 동생 載愚(재우)와 함께 막내 숙부 盧秉祥(노병상)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 守節(수절)하면서 살다가 1999년에 90세로 별세하였다. 1972년에 달성군으로부터 孝婦賞(효부상)을 받았다.
   국민학교 시절 盧泰愚 소년은 운동, 음악, 독서를 좋아하였다. 특히 피리와 휘파람을 잘 불렀다.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는 일본인 교사 사토 아키라(佐藤彰)씨가 있었는데, 盧 대통령은 1988년 5월에 일본 구라사키에 살던 선생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을 대접하고 환담하였다.
  
  2. 將校의 길
  
   盧泰愚는 1945년에 公山(공산)국민학교를 졸업, 대구공립공업학교(뒤에 대구工高로 이름을 바꿈)에 應試(응시)하여 전기과에 입학하였다. 6학년 105명 중 진학한 사람은 盧泰愚를 포함, 4명이었다. 盧泰愚 학생은 대구공립공업학교로 진학하면서 生家(생가)를 떠나 대구 칠성동 막내 숙부 집에 머물면서 학교를 다녔다. 이 무렵 그는 洪思容(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즐겨 暗誦(암송)하였다.
   盧泰愚 학생은 대구공업학교에서 3학년을 마친 뒤 경북중학교에 편입시험을 쳐 합격, 4학년에 입학하였다. 1950년 6? 남침 직후 경북중 6학년이던 그는 학도병으로 육군에 자원입대, 헌병부대 교수부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다가 1952년 정규 육사 1기(통산 11기) 시험에 합격, 진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동기생은 200명이었고 全斗煥(전두환) 생도도 있었다. 盧 생도는 럭비부를 만들어 3士체육대회에서 우승하였다. 陸士(육사)는 1954년 초여름 화랑대로 이전하였고, 盧泰愚 생도는 1955년 졸업, 소위로 임관된 후 5사단에 부임하여 사단장 朴正熙 장군의 총애를 받았다.
   盧泰愚 대위는 1959년 5월31일 同期生(동기생) 金復東(김복동)의 여동생인 세 살 아래 金玉淑(김옥숙)과 결혼식을 올렸다. 式(식)의 사회는 全斗煥(전두환) 대위가 보았다. 신혼 생활중 渡美(도미)한 盧泰愚 대위는 1959년 11월에 미 육군 특수전 학교 심리전 과정을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3. 제5공화국 出帆, 서울올림픽 主導
  
   盧 대위는, 196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ROTC 창설 및 교관 요원으로 근무중 朴正熙 소장이 지휘한 5󈸠 군사혁명을 맞이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朴正熙 장군은 盧 대위를 특명조사관으로 쓰는 등 특별히 아꼈다. 盧泰愚는 육군방첩부대 보안계장, 최고회의 연락장교, 육사졸업생들의 총동창회 북극성회 4代(대) 회장, 방첩부대 정보과장을 지냈고, 육군대학에서 공부한 뒤 1968년엔 20사단(사단장 윤필용) 60연대 1대대장으로 부임하였다가 그해 11월 초 맹호부대에 소속되어 越南(월남)전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재구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戰功(전공)을 많이 세운 뒤 1969년 10월 귀국하였다. 육군 참모총장 수석 부관, 8사단 21연대장 등을 거쳐 1974년 1월1일 준장으로 진급, 공수 여단장으로서 9여단을 창설하였다.
   1978년에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근무한 뒤 소장으로 진급, 수도권을 방어하는 9사단장으로 근무중 朴 대통령 弑害(시해)사건(10󈸪 사건)과 12󈸜 사건을 겪었다.
   1980년의 격동기에 수도경비사령관 및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全斗煥(전두환) 장군을 도와 혼란을 수습하고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盧泰愚 장군은 1981년 대장으로 轉役(전역), 정무제2장관에 임명되어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작전을 지휘하였고, 체육부장관, 내무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올림픽 준비사업을 主導(주도)하였다.
  
  4. 6? 선언으로 대통령 당선
  
   그는 1985년 2?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民主正義黨(민주정의당)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집권여당을 이끌면서 12代 총선으로 분출하기 시작한 국민과 야당의 민주화 욕구에 대응하고 올림픽 준비와 경제성장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難題(난제)를 맡았다.
   1987년 6월10일 민정당은 盧泰愚(노태우)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이날부터 시작된 학생, 야당, 종교인을 주축으로 한 민주화 대시위에는 중산층까지 加勢(가세)하여 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정면 대결하는 局面(국면)으로 치달았다.
   6월29일 盧泰愚(노태우) 대표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그는 ‘국민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6·29선언)을 발표, 대통령 직선제 改憲 등 전면적인 민주화를 약속, 극적으로 局面을 전환하고 그해 12월18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6? 선언 8개항
  
   1. 대통령 직선제 개헌
   2. 공명한 선거관리
   3. 김대중 사면 복권
   4. 국민 기본권 보장
   5. 언론규제 철폐
   6. 지방자치와 사회단체의 자율 보장
   7. 정당활동의 보장
   8. 사회淨化
  
  
  5. 전환기의 국가 大戰略: 민족의 活力을 드높이고 활동공간을 드넓히다
  
   1988년 2월에 취임한 盧泰愚 대통령은 1987년 6·29 선언에서 약속한 8개항의 실천을 國政의 중심과제로 삼았다.
   盧 대통령 在任(재임) 5년간은 국내외의 전환기가 겹친 시기였다. 國內(국내)에서는 민주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國外(국외)에서는 소련 및 東歐(동구) 공산권이 무너졌다. 대통령은 전면적 민주화와 북방정책이란 국가 대전략으로 세계사적 전환기에 창의적으로 對應(대응)하였다. 국회를 정치의 중심무대로 삼고, 민간부문의 자율과 경쟁을 촉진하였으며, 공산권 붕괴의 호기(好機)를 이용해 서울올림픽 성공을 이어받은 북방정책으로써 국가의 활로(活路)를 열었다. 盧 대통령은 튼튼한 韓美(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고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내었다.
   언론자유가 滿開(만개)하고 사회 各(각)부문의 자율성이 획기적으로 提高(제고)되었으며, 권위주의적 관행이 완화되고,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되었다.
   盧 대통령은, 東歐(동구), 러시아, 중국 등과 修交(수교)하여 냉전시대 禁斷(금단)의 땅이던 유라시아 대륙을 한국인의 새로운 활동공간으로 활짝 열어놓았다. 특히 1992년 韓中(한중) 수교는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13억 중국시장을 한국 경제와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韓中(한중)무역액은 수교 17년 만에 韓美(한미)-韓日(한일)무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盧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회간접자본에 집중 투자하였다. 영종도 신공항, 경부고속전철(KTX), 서해안 개발 사업을 시작하였다. 특히 주택 260만호 및 수도권 신도시 건설로 주택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였다.
   盧 대통령은 1988년 총선으로 국회가 與小野大(여소야대)가 된 상태를 극복하여 國政(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1990년 초 三黨(삼당)합당을 단행하였다.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재출범하였고, 이 안정된 보수연합 구도 덕분에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 金泳三(김영삼)이 당선될 수 있었다.
  
  6. 달라진 나라, 달라진 삶
  
   *1987년에 3200 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5년 사이 7200 달러로 늘어났다. 노사분규가 늘었지만 근로자의 소득도 5년간 倍增(배증)하여 내수시장이 커지고 중산층이 충실해졌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1987년 53%에서 1991년엔 60%로 늘었다.
   *1987년 224억 달러였던 우리나라 순외채가 1992년에는 110억 달러로 줄었다. 무역규모는 이 기간 거의 배로 늘었다.
   *1977년부터 시작된 국민의료보험제도를 1989년 7월 도시지역 일반주민에게까지 확대‧적용했다. 1987년 51%에 지나지 않던 의료보험 수혜자가 1992년에는 95%로 증가했다. 극빈층에 대한 의료보장 제도도 확대하여 1990년엔 모든 대상자가 혜택을 보게 되었다.
   *국민연금제도를 확대했다. 1988년에 10인 이상 고용사업장을 가입시키고 1992년에는 5인 이상 사업장에까지 확대‧실시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개발 및 지원예산이 1987년의 1조6000억 원에서 92년엔 4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36만7000호 건설하였다.
   *1988년 67개소이던 노인시설이 1992년 123개로 증가하고 수용 인원도 1만7000명에서 2만5022명으로 늘어났다. 9만1000명에게 사상 처음으로 老齡(노령)수당이 지급되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洞(동) 단위로 3000여 명을 고용했다.
   *전교조를 해산시켰다. 법적으로 엄정하게 대응하여 1만2000명이던 가입자가 1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잔류를 고집한 교원들을 해직시켰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경찰관 2만4400여명을 증원,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民生(민생)치안을 확보하였다.
   *언론자유를 보장함으로써 6?선언 이전에 32개이던 일간신문은 121개로, 7개 방송사는 14개로, 1404개이던 주・월간지는 6570개로 급증하였다.
  
   7. 약속을 지킨 대통령
  
   盧泰愚 대통령은 6? 선언에서 국민과 약속한 정책을 충실히 지킨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在任(재임) 기간의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통령 직선제 개헌(민정당 총재 및 후보 시절)
   2.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
   3. 언론자유 확대: 신문 출판의 자유화
   4. 사회단체 자율적 운영 보장
   5. 勞使(노사)관계 자율화: 노조에 대한 정부 개입 금지
   6. 여성권익 보호 및 사회참여 확대: 가족법 모자보건법 保育法(보육법) 제정 및 개정. 공무원 채용 남녀구분 폐지
   7. 지방자치 시작
   8. 서울올림픽 성공
   9. 유엔 가입
   10. 韓中(한중)-韓蘇(한소)수교
   11. 東歐(동구)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
   12. 남북대화의 진전과 기본합의서 도출
   13.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4. KTX, 영종도 공항,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15. 서해안 개발 시작
   16. 5대 신도시 및 주택 260만 호 건설
   17. 토지 공개념 도입
   18. 全국민 의료보험화
   19. 국민연금 확대
   20.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
   21. 전교조 불법화 및 해산
   22. 범죄와의 전쟁 선포
  
   盧 대통령이 주도한 전면적 민주화와 북방진출은 1948년 建國, 1961년 군사혁명에 이은 세 번째의 國家改造(국가개조)이고 구조개혁이었다. 이 개혁에 의하여 대한민국은 소란하지만 活力(활력)이 넘치는 生動(생동)하는 ‘민주․자유․번영’의 국가로 거듭 났다. 盧泰愚 대통령은 1987년 大選(대선)의 구호대로 보통사람들이 역사의 主役(주역)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1993년 2월25일 퇴임, 청와대를 떠나 한 시민으로서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盧 대통령의 호는 陸士(육사) 생도 시절의 스승이기도 한 趙淳 부총리가 지어준 庸堂(용당)이다. 盧泰愚 대통령은 부인 金玉淑 여사와의 사이에 딸 素英(소영?년 출생), 아들 載憲(재헌?년 출생)을 두었다.
  
  8. 盧泰愚 대통령 年譜
  
   1932월 8월14일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 596번지에서 出生 (음력 7월16일)
   1951년 7월 경북고등학교 졸업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 (제11기) 졸업, 육군소위에 임관
   1974년 10월 제9공수특전여단장 (준장)
   1978년 1월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준장)
   1979년 1월 제9사단장 (소장)
   1979년 12월 수도경비사령관 (소장)
   1980년 8월 국군보안사령관 (중장)
   1981년 7월 전역 (대장), 정무제2장관
   1981년 9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에 임명
   1982년 3~4월 체육부장관
   1982년 4월~1983년 7월 내무부장관
   1983년 7월~1986년 5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1984년 10월~1985년 4월 대한체육회 회장
   1985년 2월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1987년 6월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됨
   1987년 6월29일 ‘국민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6·29선언) 발표
   1987년 9월14일 백악관으로 레이건 美대통령 방문(한국의 정치발전, 韓美 통상마찰 해소 등 안보협력 등에 관한 광범위한 의견교환)
   1987년 12월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투표
   1987년 12월18일 중앙선관위, 盧泰愚 후보를 제13대 대통령선거 당선자로 확정, 공고
   1988년 2월11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前 일본 수상 예방 받음(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방안 등 공동관심사 논의), 李賢宰 국무총리 내정자·洪性澈 비서실장 내정자 발표
   1988년 2월19일 새정부 내각명단 발표(부총리 羅雄培, 외무 崔侊洙, 내무 李相熙, 재무 司公壹, 법무 丁海昌, 국방 吳滋福, 문교 金永植, 체육 曺相鎬, 농수산 尹勤煥, 상공 安秉華, 동자 李鳳瑞, 건설 崔同燮, 보사 權彛赫, 노동 崔明憲, 교통 李範俊, 체신 吳明, 문공 鄭漢模, 총무처 金容甲, 과기처 李寬, 통일원 李洪九, 정무2 趙敬姬, 법제처 玄鴻柱, 보훈처 全錫洪)
   1988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
   1988년 2월26일 제6공화국 제1차 국무회의 주재
   1988년 3월10일~4월22일 각 부처 및 道政 업무보고 청취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1988년 5월 7일 개각(안기부장 裵命仁, 내무부장관 李春九)
   1988년 5월 9일 청와대 국무회의 주재(4대 國政지표 제시 )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발표
   1988년 9월17일 올림픽 개막식 참가(개회선언), 訪韓한 다케시타 일본수상과 韓日 정상회담
   1988년 10월15일 서울 장애자올림픽 개회식 참석
   1988년 10월19일 제43차 유엔총회 연설: ‘한반도에 화해와 통일을 여는 길’
   1988년 10월21일 레이건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88년 11월3일~14일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방문
   1988년 11월 4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
   1988년 11월 7일 호크 호주 수상과 정상회담
   1988년 11월10일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1988년 11월12일 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정상회담
   1988년 12월 5일 개각(국무총리 姜英勳, 부총리 趙淳 등)
   1989년 1월30일 訪韓한 호크 호주 수상과 정상회담
   1989년 2월27일 訪韓한 부시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89년 3월20일 중간평가에 관한 담화 발표
   1989년 7월19일 개각(안기부장 徐東權, 내무장관 金泰鎬 등)
   1989년 9월11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천명 특별연설
   1989년 10월18일 미국 상·하 兩院 합동회의 연설: ‘전진의 동반자-변화하는 세계 속의 韓美 관계’
   1989년 11월18일~12월4일 유럽巡訪(독일, 헝가리, 스위스, 영국, 프랑스)
   1989년 11월21일 콜 독일연방 수상과 정상회담
   1989년 11월22일 쉬로시 헝가리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1989년 11월23일 헝가리 의회 연설: ‘화해와 새 시대를 함께 여는 동반자’
   1989년 11월25일 들라므라즈 스위스 대통령과 비공식 정상회담
   1989년 11월28일 대처 영국 수상과 정상회담
   1989년 12월27일 신설 3부 장관 임명(문화 李御寧, 환경 曺京植, 공보 崔秉烈)
   1990년 1월22일 신당창당 합의문 발표
   1990년 3월17일 개각(부총리 李承潤 등 15개 부처)
   1990년 5월9일 3黨 합당으로 민주자유당 총재 취임
   1990년 5월25일 일본 국회 연설: ‘변화하는 세계 속의 새 韓·日 관계’
   1990년 6월5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0년 6월6일 부시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0년 9월19일 개각 (농수산 曺京植, 건설 李相熙, 환경 許南薰)
   1990년 12월14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 모스크바대학 연설: ‘냉전의 벽을 넘어, 평화와 번영을 향하여’
   1990년 12월27일 개각(국무총리 盧在鳳 등)
   1991년 1월9일~10일 訪韓한 가이후 일본 수상과 정상회담
   1991년 2월18일 개각(부총리 崔珏圭, 건설 李鎭卨, 서울시장 李海元)
   1991년 4월20일 訪韓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제주)
   1991년 5월24일 국무총리에 鄭元植 임명
   1991년 5월26일 개각(재무 李龍萬, 동자 陳稔, 보사 安弼濬)
   1991년 6월29일~7월7일 미국, 캐나다 공식방문
   1991년 7월2일 부시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1년 7월4일 멀로니 캐나다 수상과 정상회담
   1991년 9월17일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1991년 9월20일~30일 유엔 및 멕시코 방문
   1991년 9월23일 부시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1년 9월24일 유엔총회 연설: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 공동체를 향하여’
   1991년 9월25일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1년 11월8일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선언’ 발표
   1991년 12월18일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한 특별발표
   1992년 1월5일 부시 美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2년 1월16일 訪韓한 미야자와 일본 수상과 정상회담
   1992년 3월24일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1992년 6월5일 국가환경선언 선포
   1992년 8월14일 回甲
   1992년 8월24일 ‘韓中 수교에 관한 특별담화’ 발표
   1992년 8월27일 세라노 과테말라 대통령과 정상회담
   1992년 9월18일 중립선거관리내각 구성 결단과 관련한 청와대 대변인 발표
   1992년 9월20일~25일 유엔 방문
   1992년 9월21일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총리와 정상회담
   1992년 9월22일 유엔총회 연설: ‘평화와 번영의 21세기를 향하여’
   1992년 9월24일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아시아협회 초청 연설: ‘새로운 세계질서와 韓美 동반관계’
   1992년 9월27일~30일 중국 방문
   1992년 9월28일 楊尙昆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1992년 9월29일 李鵬 중국 총리 내외 접견, 江澤民 중국 黨 총서기 면담
   1992년 10월9일 개각 (국무총리 玄勝鍾, 내무 白光鉉, 법무 李正雨, 공보처 柳赫仁, 정무1 金東益), 공정선거관리를 위한 중립내각 출범에 즈음한 대통령 담화문 발표
   1993년 2월25일 대통령 퇴임
  
  
  Free Democratic Party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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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 Democratic Party
  Freie Demokratische Partei
  
  Leader Philipp Rösler
  Founded 11 December 1948
  Headquarters Thomas-Dehler-Haus
  Reinhardtstraße 14
  10117 Berlin
  Youth wing Young Liberals
  Foundation Friedrich Naumann Foundation
  Ideology Liberalism
  Internal factions:
   · Economic liberalism [1]
   · Social liberalism[2]
   · Classical liberalism [3]
   · National liberalism [4]
  Political position Centre-right[5][6][7]
  International affiliation Liberal International
  European affiliation European Liberal Democrat and Reform Party
  European Parliament Group Alliance of Liberals and Democrats for Europe
  Official colours Yellow and blue
  Bundestag 93 / 622
  Regional Parliaments 165 / 1,859
  European Parliament 12 / 99
  Website
  http://www.liberale.de
  Politics of Germany
  Political parties
  Elections
  The Free Democratic Party (German: Freie Demokratische Partei), abbreviated to FDP, is a centre-right classical liberal political party in Germany.[8][9][10] It is led by Philipp Rösler and currently serves as the junior coalition partner to the Union (Christian Democratic Union and Christian Social Union) in the German federal government. The FDP fraction has 93 members and is currently the third largest in the Bundestag.
  
  It was founded in 1948 by members of the former liberal parties existing in Germany before World War II, the German Democratic Party and the German People's Party. Since then, the FDP has been in federal government longer than any other party, as the junior coalition partner to either the CDU/CSU (1949󈞤, 1961󈞮, 1982󈟎, and since 2009) or the Social Democratic Party (1969󈞾).
  
  The FDP strongly supports human rights, civil liberties, and internationalism, but has shifted from the centre to the centre-right over time. Since the 1980s, the party has firmly pushed economic liberalism, and has aligned itself closely to the promotion of free markets and privatisation. It is a member of the Liberal International and European Liberal Democrat and Reform Party, and is the joint-largest member of the Alliance of Liberals and Democrats for Europe group in the European Parliament.
  
  Contents [hide]
  1 History
  1.1 2005 federal election
  1.2 2009 federal election
  2 Policies
  2.1 Economic policy
  2.2 Social policy
  2.3 Domestic policy
  2.4 Foreign policy
  3 Federal election results
  4 Leadership
  4.1 Party chairmen
  4.2 Leaders in the Bundestag
  5 See also
  6 Notes
  7 Footnotes
  8 References
  9 External links
  
  
  [edit] History
  
  Walter Scheel served as Foreign Minister, Vice Chancellor, Acting Chancellor and President of GermanyThe FDP was founded on 11 December 1948 through the merger of nine regional liberal parties formed in 1945 from the remnants of the pre-1933 German People's Party (DVP) and the German Democratic Party (DDP), which had been active in the Weimar Republic.[Note 1] The FDP's first Chairman, Theodor Heuss, was formerly a member of the DDP and after the war of the Democratic People's Party (DVP).
  
  In all federal election campaigns since the 1980s, the party sided with the CDU and CSU, the main conservative parties in Germany. An exception to the party policy was made in the 2002 campaign, in which it adopted a position of "equidistance" to the CDU and SPD. Following German reunification in 1990, the FDP merged with the Association of Free Democrats, a grouping of liberals from East Germany and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 During the 1990s, the FDP won between 6.2 and 11 percent of the vote in Bundestag elections. It last participated in the federal government by representing the junior partner in the government of Chancellor Helmut Kohl of the CDU.
  
  [edit] 2005 federal election
  In the 2005 general election the party won 9.8 percent of the vote and 61 federal deputies, an unpredicted improvement from prior opinion polls. It is believed that this was partly due to tactical voting by CD and Christian Social Union of Bavaria (CSU) alliance supporters who hoped for stronger market-oriented economic reforms than the CDU/CSU alliance called for. However, because the CDU did worse than predicted, the FDP and the CDU/CSU alliance were unable to form a coalition government. At other times, for example after the 2002 federal election, a coalition between the FDP and CDU/CSU was impossible primarily because of the weak results of the FDP.
  
  The CDU/CSU parties had achieved the 3rd worst performance in German postwar history with only 35.2 percent of the votes. Therefore, the FDP wasn't able to form a coalition with its preferred partners, the CDU/CSU parties. As a result, the party was considered as a potential member of two other political coalitions, following the election. One possibility was a partnership between the FDP, the Soci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 (SPD) and the Alliance 90/The Greens, known as a "traffic light coalition", named after the colors of the three parties. This coalition was ruled out, because the FDP considered the Social Democrats and the Greens insufficiently committed to market-oriented economic reform. The other possibility was a CDU-FDP-Green coalition, known as a "Jamaica coalition" because of the colours of the three parties. This coalition wasn't concluded either, since the Greens ruled out participation in any coalition with the CDU/CSU. Instead, the CDU formed a Grand coalition with the SPD, and the FDP entered the opposition. FDP leader Guido Westerwelle became the unofficial leader of the opposition by virtue of the FDP's position as the largest opposition party in the Bundestag.
  
  
  Philipp Rösler is FDP chairman, having succeeded Guido Westerwelle, the party's second-longest serving chairman, in May 2011.[edit] 2009 federal election
  In the national vote on September 27, 2009 the FDP increased its share of the vote by 4.8% to 14.6%, an all-time record so far. This percentage was enough to offset a decline in the CDU/CSU's vote compared to 2005, to create a CDU-FDP governing coalition in the Bundestag with a 53% majority of seats. On election night party leader Westerwelle said his party would work to ensure that civil liberties were respected and that Germany got an "equitable tax system and better education opportunities."[11]
  
  The party also made gains in the two state elections held at the same time, acquiring sufficient seats for a CDU-FDP coalition in the northernmost state, Schleswig-Holstein and gaining enough votes in left leaning Brandenburg to clear the 5% hurdle to enter that state's parliament.
  
  Westerwelle stepped down as party leader in 2011 after bad state election results in Saxony-Anhalt, Rhineland-Palatinate, and Baden-Württemberg. He was replaced on 13 May 2011 by Philipp Rösler. Since this switch, FDP received 2.4% of the vote in Bremen, failing to receive the 5% required to get into the Bürgerschaft.[12]
  
  [edit] Policies
  The FDP adheres to a classical liberal ideology,[8][9][10][13] advocating liberalism in both the economic sphere and social sphere.[14] The current guidelines of the FDP are enshrined in the principles of Wiesbaden. A key objective of the FDP is the "strengthening of freedom and individual responsibility".
  
  [edit] Economic policy
  The FDP espouses the most economic liberal ideas of the parties represented in the German federal parliament.[citation needed] The main goal is the creation of jobs by creating incentives for private investments.[citation needed] This shall be achieved, among other measures, through reduced bureaucracy, privatisation, deregulation, through removal of subsidies, and reform of collective bargaining.[citation needed] The national debt shall be reduced.[citation needed] The party supports globalisation.[citation needed]
  
  In the tax policy a simple tax code is called for.[citation needed] The party supports a bracket income tax system, as opposed to the current 'linear' system, and, in the long-term a flat tax.[citation needed] Through tax cuts, the purchasing power of employees will be increased and the economy will be stimulated.[citation needed]
  
  In social policy, the FDP aims for the introduction of a citizen's dividend (Bürgergeld), which collects all the tax-financed social welfare and social security funds of the state.[citation needed] The social security funds should be supplemented through privately-funded schemes.[citation needed]
  
  In energy policy, the FDP calls for a combination of nuclear, coal, oil and gas and renewable energy for electricity production.[citation needed] The phasing out of nuclear power is seen critically by the FDP.[citation needed]
  
  [edit] Social policy
  The common view in the party is a critical attitude towards the state and to conservative and egalitarian social policies.[citation needed] Under the slogan "As much government as necessary, as little government as possible," the FDP tries to limit the state involvement in the life of the individual as far as possible.[citation needed] The unifying stance for them is the idea of "creating and maintaining the freedom of individuals". Thus the party supported nearly all social liberalizations that have been implemented in the federal republic.[citation needed]
  
  Throughout its history, the FDP's policies have shifted between emphasis on social liberalism and economic liberalism. Since the 1980s, the FDP has maintained a consistent pro-business stance.[citation needed] The FDP supports strong competition laws and a minimum standard of welfare protection for every citizen.[citation needed] In addition, the FDP endorses to complement the social welfare and health care systems with laws that would require every employed citizen to invest in a private social security account.[citation needed]
  
  The FDP supports gay rights former party leader Guido Westerwelle is openly gay.[citation needed]
  
  [edit] Domestic policy
  The FDP traditionally declines laws which it considers restrictions of fundamental rights.[citation needed] The party is opposed to wiretapping, although the FDP originally supported 'Großer Lauschangriff'. It also rejects data retention in the phone and internet.[citation needed] The FDP is opposed to a tightening of the penal code, and instead supports for the recruitment of more police officers, judges, and prosecutors to improve security and speed up trials. In addition, improved rehabilitation is called for, especially for young offenders.[citation needed]
  
  One objective of the FDP is the promotion of pre-school education.[citation needed] There shall be mandatory language tests at the age of four to detect linguistic weaknesses of children with immigrant backgrounds and train them in time for school.[citation needed] Half-day childcare shall be free, in accordance with the legal right to a kindergarten place, from the third year of life and school enrolment. Language teaching shall constitute an integral part of the curriculum from grade one onwards.[citation needed]
  
  The FDP calls for the establishment of full-day schools and the high school diploma after twelve years of schooling.[citation needed] In addition, the Liberals are opposed to all-day schools, because they believe that those schools are not performance-oriented enough and individual student support is not sufficiently guaranteed.[citation needed] The FDP supports tuition fees to fund the universities. It also calls for the abolition of laws and regulations to improve research conditions. The FDP opposed the 1996 spelling reform as a result, their election manifestos are written in the previously conventional spelling.[citation needed]
  
  [edit] Foreign policy
  The FDP describes itself as the pro-European party, although the minority national liberal faction is soft eurosceptic.[15] The FDP wants a politically-integrated EU with a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but supported a referendum on the Treaty of Lisbon. The FDP advocates the accession of Turkey to the EU, although this would require Turkey to fulfil all criteria.[citation needed]
  
  [edit] Federal election results
  Below are charts of the results that the Free Democratic Party has secured in each election to the federal Bundestag. Timelines showing the number of seats and percentage of party list votes won are on the right.
  
  Year Vote % Seats Place[Note 2]
  1949 11.9 52 3rd
  1953 9.5 48 3rd
  1957 7.7 41 3rd
  1961 12.8 67 3rd
  1965 9.5 49 3rd
  1969 5.8 30 3rd
  1972 8.4 41 3rd
  1976 7.9 39 3rd
  1980 10.6 53 3rd
  1983 6.9 34 3rd
  1987 9.1 46 3rd
  1990 11.0 79 3rd
  1994 6.9 47 4th
  1998 6.2 43 4th
  2002 7.4 47 4th
  2005 9.8 61 3rd
  2009 14.6 93 3rd
  
  
  
  
  
  [edit] Leadership
  
  Hans-Dietrich Genscher served almost continuously as Foreign Minister and Vice Chancellor from 1974 to 1992.[edit] Party chairmen
  Leader From To
  1st Theodor Heuss 1948 1949
  2nd Franz Blücher 1949 7 March 1954
  3rd Thomas Dehler 7 March 1954 24 January 1957
  4th Reinhold Maier 24 January 1957 29 January 1960
  5th Erich Mende 29 January 1960 29 January 1968
  6th Walter Scheel 29 January 1968 1 October 1974
  7th Hans-Dietrich Genscher 1 October 1974 23 February 1985
  8th Martin Bangemann 23 February 1985 9 October 1988
  9th Otto Graf Lambsdorff 9 October 1988 11 June 1993
  10th Klaus Kinkel 11 June 1993 10 June 1995
  11th Wolfgang Gerhardt 10 June 1995 4 May 2001
  12th Guido Westerwelle 4 May 2001 13 May 2011
  13th Philipp Rösler 13 May 2011 Present day
  
  [edit] Leaders in the Bundestag
  Leader From To
  1st Theodor Heuss 1949 12 September 1949
  2nd Hermann Schäfer 12 September 1949 10 January 1951
  3rd August-Martin Euler 10 January 1951 6 May 1952
  4th Hermann Schäfer 6 May 1952 20 October 1953
  5th Thomas Dehler 20 October 1953 8 January 1957
  6th Max Becker 8 January 1957 November 1957
  7th Erich Mende November 1957 22 October 1963
  8th Knut von Kühlmann-Stumm 22 October 1963 23 January 1968
  9th Wolfgang Mischnick 23 January 1968 15 January 1991
  10th Hermann Otto Solms 15 January 1991 26 October 1998
  11th Wolfgang Gerhardt 5 October 1998 30 April 2006
  12th Guido Westerwelle 30 April 2006 25 October 2009
  13th Birgit Homburger 25 October 2009 10 May 2011
  14th Rainer Brüderle 10 May 2011 Present day
  
  [edit] See also
  Liberalism in Germany
  Friedrich Naumann Foundation
  Liberal Students Association
  [edit] Notes
  ^ These nine regionally organised liberal parties were the Bremian Democratic People's Party (BDV) in the Free Hanseatic City of Bremen, the Democratic Party of Southern and Middle Baden (DemP) in the State of South Baden, the Democratic Party (DP) in the State of Rhineland-Palatinate, the Democratic People's Party of Northern Württemberg-Northern Baden (DVP) in the State of Württemberg-Baden, the Democratic People's Party of Southern Württemberg-Hohenzollern (DVP) in the State of Württemberg-Hohenzollern, the united Free Democratic Party (F.D.P.) of the British zone of occupation, the Free Democratic Party (F.D.P.) in the Free State of Bavaria,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in the State of Hesse, and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of Berlin (West). Cf. Almut Leh and Alexander von Plato, Ein unglaublicher Frühling: erfahrene Geschichte im Nachkriegsdeutschland 1945 - 1948,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ed.), Bonn: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1997, p. 77. ISBN 3-89331-298-6
  ^ Counts Christian Democratic Union and Christian Social Union together for purposes of comparison.
  [edit] Footnotes
  ^ nachrichten.de. 6 April 2011. http://www.nachrichten.de/panorama/HINTERGRUND-Unterschiedliche-Stroemungen-in-der-FDP-aid_CNG.ba4a108b8bbdedd05a8e9a338e436acf.171.html.
  ^ "FDP sehnt sich nach Erneuerung". Wiener Zeitung. 31 March 2011. http://www.wienerzeitung.at/DesktopDefault.aspx?TabID=3862&Alias=wzo&cob=552963.
  ^ "Unterschiedliche Strömungen in der FDP". nachrichten.de. 6 April 2011. http://www.nachrichten.de/panorama/HINTERGRUND-Unterschiedliche-Stroemungen-in-der-FDP-aid_CNG.ba4a108b8bbdedd05a8e9a338e436acf.171.html.
  ^ . 1988. http://books.google.co.uk/books?id=9IrE08SV1wEC.
  ^ Dymond, Johnny (27 September 2009). "Merkel heading for new coalition". BBC News. http://news.bbc.co.uk/1/hi/8277526.stm.
  ^ Peel, Quentin (9 May 2010). "Germans take weeks over coalition pacts". Financial Times. http://www.ft.com/cms/s/d12ca9b2-5b91-11df-85a3-00144feab49a.html.
  ^ Boswell, Christina Hough, Dan (April 2008). "Politicizing migration: opportunity or liability for the centre-right in Germany?". Journal of European Public Policy 15 (3): 331󈞜. doi:10.1080/13501760701847382.
  ^ a b Gunlicks, Arthur B. (2003). The Länder and German federalism.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p. 268. ISBN 9780719065330.
  ^ a b van Dijk, Ruud (2008). Encyclopedia of the Cold War, Volume 1. London: Taylor & Francis. p. 541. ISBN 9780415975155.
  ^ a b Zimmer, Matthias (1997). Germany: Phoenix in trouble?. Edmonton: University of Alberta. p. 114. ISBN 9780888643056.
  ^ Merkel to head new center-right government Deutsche Welle 27 September 2009.
  ^ [1] Stern 26 May 2011.
  ^ Kommers, Donald P. (1997). The Constitutional Jurisprudence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p. 31. ISBN 9780822318385. http://books.google.co.uk/books?id=sHZfkgxtoZQC.
  ^ Kesselman, Mark (1997). European Politics in Transition. Durham: D.C. Heath. p. 247. ISBN 9780669244434. http://books.google.co.uk/books?id=cwckAQAAIAAJ.
  ^ Taggart, Paul Szczerbiak, Aleks. The Party Politics of Euroscepticism in EU Member and Candidate States. SEI Working Paper. 51. Sussex European Institute. p. 11. http://www.sussex.ac.uk/sei/documents/wp51.pdf.
  [edit] References
  Kirchner, Emil Broughton, David (1988). "The FDP in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In Kirchner, Emil. Liberal Parties in Western Europ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62󈟉. ISBN 9780521323949. http://books.google.co.uk/books?id=9IrE08SV1wEC.
  Roberts, Geoffrey K. (1997). Party Politics in the New Germany. London: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ISBN 9781855673113. http://books.google.co.uk/books?id=baa_OhYsv6wC.
  Aguilera de Prat, Cesáreo R. Rosenstein, Jed (2009). Political Parties and European Integration. New York: Peter Lang. ISBN 9789052015354. http://books.google.co.uk/books?id=ctGllqdyg7oC.
  [edit] External links
  Official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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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gentina: Recrear, PPG • Costa Rica: PML • Guatemala: MR • Mexico: NA • Peru: Justicia Nacional
  
  
  [hide]v · d · ePolitical parties in Germany
  
  Christian Democratic Union (194) • Social Democratic Party (146) • Free Democratic Party (93) • The Left (76) • Alliance '90/The Greens (68) • Christian Social Union (45)
  
  Portal:Politics - List of political parties - Politics of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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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7, 10: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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