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제 중령, 장도영과 ‘계급을 초월한 담판’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51)/ “혁명이 아이들 장난입니까. 우리가 계급 가지고 혁명한 줄 아십니까. 한강 다리를 넘어올 때 우리는 이미 계급의 위계질서를 벗어났습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張都暎의 울분
  
  매그루더는 6월2일 金鍾泌과의 요담에서 후임 육군참모총장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본인의 추천을 받겠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귀측에서 지명한 사람에 대해 본인의 동의를 받겠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최고회의에 두세 명의 적임자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후에 박정희 장군이나 장도영 장군께서 귀하와 상의할 것입니다. 본인의 생각도 최고회의에 반영될 수 있으니까 귀하가 누구를 추천한다면 그를 지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배려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 문제는 귀측 사람들을 잘 알고 있는 하우스 고문단장과 상의한 뒤 추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금 중인 장성들에 대해서는 귀하가 좀 더 애쓸 수는 없습니까.”
  
  “그들에 대해서 귀하보다도 더 걱정하시는 분이 바로 박정희 장군입니다. 이한림 장군과는 동기생이기 때문입니다. 귀하가 이렇게까지 우리 장성들을 배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실세인 14명의 분과위원에는 육사 8기 출신이 다섯 명이었다. 행정 분과위원에 오치성 대령, 내무에 박원빈 중령, 법무에 이석제 중령(8특기), 보건사회 길재호 중령, 체신 옥창호 중령. 이석제 중령은 기능이 정지된 헌법을 대체할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장도영의 처리였다. 성격이 깔끔하면서도 단호한 면이 있는 이석제 중령은 장도영을 찾아가서 ‘계급을 초월한 담판’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의 고향도 신의주입니다. 각하도 고향을 버리고 월남했듯이 저도 부모를 고향에 놔둔 채 혼자만 빠져나왔습니다. 목숨 걸고 월남해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가 공산화를 막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보자고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은 어차피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장군이 총칼을 들고 나와 정권을 빼앗은 것이 아닙니까. 이 혁명은 각하가 주인공이 아니라 박정희 장군이 계획하고 실행한 겁니다. 저희들에게 협조하시면 각하의 위상에 어울리는 대접이 꼭 있을 것입니다. 각하 혼자서 네 가지 직책을 다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장도영은 “일개 육군 중령이 참모총장을 협박하는 건가” 하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석제는 이렇게 말하고 나왔다고 한다.
  
  “혁명이 아이들 장난입니까. 우리가 계급 가지고 혁명한 줄 아십니까. 한강 다리를 넘어올 때 우리는 이미 계급의 위계질서를 벗어났습니다.”
  
  이석제는 비상조치법안에 ‘최고회의 의장은 겸직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안에는 상임위원회의 의장은 부의장, 즉 박정희가 맡는다고 써넣었다. 분과위원장으로 구성된 이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최고회의의 실권을 장악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장도영은 실권을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당시 박정희와 김종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두 사람의 법정 증언이 참고가 될 것이다. 장도영 일파에 대한 反혁명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박정희는 이런 진술을 했다.
  
  “장 총장의 태도가 애매하다고 하여 젊은 장교들이 처치하자고 하는 것을 무마한다고 생땀을 뺐다. 젊은 장교들이 과격한 이야기를 하기에 ‘혁명에도 의리가 있다. 처음부터 장 장군을 내세우자고 한 이상 그대로 해야 한다. 우리들이 장 장군을 잡아넣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일부 장교들은 始終(시종) 반대했다.”
  
  김종필도 이런 요지의 증언을 했다.
  
  “문재준 대령이 장도영 장군을 가까운 시일 내에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본인은 박 장군의 뜻이 그것이 아니란 것을 누누이 설명했다. 본인은 문 대령에게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혁명 주체 세력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채명신 장군한테도 했다. 박 장군은 자신의 권한을 장 장군에게 다 드리고 장 장군 중심으로 혁명 과업을 수행하자고 주장해왔다.
  
  어느 때인가 최고회의를 열고 있을 때, 최고위원들이 ‘장 장군이 너무 많은 직책과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좀 덜어야 한다’는 제의를 하자 박 장군은 노발대발했다. ‘내가 그분에게 그런 권한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반대하는 놈이 누구냐’ 해가지고 혼을 낸 적이 있다.”
  
  1961년 6월3일 아침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비상조치법을 통과시켰는데 ‘최고회의 의장은 他職(타직)을 겸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장도영은 흥분했다. 오전 10시쯤 최고회의 의장실을 찾아온 이주일 소장, 김윤근 준장, 金振暐(김진위) 준장, 유원식 대령 앞에서 신경질을 냈다.
  
  “당신들은 나를 로봇으로 만들 생각인가. 최고위원들 총회를 소집하여 박 장군과 나를 놓고 신임 투표를 해볼까. 만약 박 장군이 지지를 받으면 내가 물러나면 될 것 아닌가.”
  
  장도영은 이날 밤에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유원식, 송찬호 준장, 문재준 육군헌병감, 박치옥 공수단장을 불렀다. 장도영은 이들에게 하소연 비슷한 불평을 털어놓았다.
  
  “당신들은 혁명을 무엇 때문에 한 것인가. 정말 우리 1 대 1로 해볼까. 나도 대비책이 있어. 서울 시내가 피바다가 된다. 불바다가 된단 말이야.”
  
  유원식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장도영은 책상을 치고 유리잔을 던지기도 하는 등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장도영 의장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일단 통과된 의장의 겸직 금지 조항을 완화하자고 최고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많은 위원들은 반대했으나 박정희는 최고회의 의장이 내각수반만은 겸직할 수 있도록 비상조치법안을 수정하도록 했다.
  
  6월8일 밤 김형욱 중령과 홍종철 대령은 겸직 금지 완화 내용을 설명하고 달래기 위해서 장도영 총장의 공관을 찾았다. 장도영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괴로운 표정이었다고 한다. 장도영은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이번 혁명에서 중대한 일은 모두 이북 사람들이 다 하고 가담자도 많은데 당신들은 속고 있는 것 같아.”
  
  “속고 있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혁명 주체 세력 안에는 불순분자들이 들어 있다는 뜻이야.”
  
  최초의 인터뷰
  
  혁명주체인 김형욱(중앙정보부장 역임) 중령과 홍종철(문공부 장관 역임) 대령은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과 같은 이북파였으나 장도영에 동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장도영을 찾아간 자리에서 “의장과 내각수반을 겸직할 수 있으면 되었지 참모총장과 국방장관까지 겸직하려는 것은 무리다”고 거듭 설득했다. 장도영은 단념하지 않고 최고위원들을 한 명씩 불러 육군참모총장직을 계속 겸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행동이 박정희·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에게는 자기 세력 구축 작업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의 증언을 듣는다(<장도영 일파 反혁명 사건> 재판 때의 증언).
  
  “장도영 의장은 자신이 참모총장을 꼭 겸직해야겠다고 주장하면서 이주일 장군을 불러 놓고 울기도 하여 과거의 장 장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장 장군을 만나서 ‘내각수반이 참모총장까지 겸해 가지고서는 군을 바로잡기가 곤란하니 군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사람에게 시키자’고 했더니 장 장군은 ‘박 장군 당신이 내각수반을 하시오. 나는 참모총장으로 돌아가겠소’라고 말했다. 심지어 장 장군은 최고위원들을 관사로 한 사람씩 불러 별별 소리를 다하고 발악하면서 나와 1 대 1로 해보자고 선전포고를 했다고 들었다.”
  
  장도영은 설사 최고회의 의장 자리를 내놓더라도 육군참모총장 자리는 고수하고 싶어했다. 혁명 주체의 핵심인 문재준 대령이 보기엔 ‘군사정권의 민정 이양 시기를 금년 11월로 구상하고 있는 모양으로 그렇게 되면 민정 이양 후에도 자기가 계속해서 참모총장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김종필은 이미 활동을 시작한 중앙정보부를 동원하여 6월1일에 장도영의 측근인 김일환 전 대령 등 3명을 구속했다. 김씨는 육사 5기 출신으로서 신의주 동중학교를 졸업한 장도영의 후배였다. 육사 5기인 그는 인천지구 첩보부대장으로 있을 때인 1960년 4월 모종의 사건으로 해서 파면되었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있으면서 민주당 쪽과 접촉, 장도영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도록 하는 데 힘을 썼다고 한다.
  
  학교 선배인 장도영이 최고회의 의장이 되자 김일환은 <타임>지에 실린 박정희의 좌익 전력에 대해 발설하고 다니면서 장도영을 밀어줄 인맥을 구축하다가 6월 초 김종필의 지시로 구속되었다. 혐의는 反혁명 음모. 김종필은 중앙정보부 조직안에 대해서 장도영이 결재를 미룰 때 장도영이 김일환 같은 사람들을 정보부에 심으려고 한다는 판단을 하여 일종의 선제공격을 한 것이다. 장도영은 박정희를 불러 “그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은 나를 구속하는 것과 같으니 내 얼굴을 봐서 풀어 달라”고 하여 김일환 등은 3일 뒤 석방되었다.
  
  김종필은 김일환과 정보국에서 함께 근무해서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대단한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일환 구속 사건은 박정희와 장도영을 더욱 멀리 갈라놓는 단초가 된다. 김일환 등은 석방된 뒤에도 박정희 세력이 장도영 장군을 거세하려고 한다는 불평을 하고 다닌 혐의로 또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박정희의 법정 증언.
  
  “(그들은) 장도영이 참모총장직을 놓으면 허수아비가 될 염려가 있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라도 군의 실권만은 자기들이 쥐겠다 등등 별별 말을 다하고 돌아다니면서 육군의 실권만 쥐고 있으면 자기들 마음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장도영 측이 군을 장악하였더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유혈사태가 생길 뻔하였다.”
  
  군 상층부에서 권력 투쟁의 양상이 보이기 시작할 때인 6월3일 오후 4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박정희 부의장은 대구 <매일신문> 서울분실 鄭景元(정경원) 기자와 단독 회견을 가졌다. 5월23일에 외신기자들과 회견한 이후 처음이었다. 최초의 단독 인터뷰를 대구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한 것은 고향에 대한 배려인 것처럼 느껴진다. 박정희의 인간성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인터뷰 기사의 전문은 이러했다.
  
  <기자=오늘은 同鄕(동향) 선배를 대하는 마음에서 좀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대구 淸水園(청수원) 아주머니의 안부도 전해드리고요.
  
  박정희=좋습니다. 청수원 아주머니한테는 신세도 많이 졌는데 편지라도 한 장 해주어야겠는데…. 또 취재하러 왔소? 나는 고향 친구라기에 이야기나 좀 하고 싶었는데.
  
  기자=박 장군이 군사혁명을 결심한 동기는?
  
  박정희=과거 25년간의 군인 생활을 통해서 나는 누구보다도 군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기성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맡겨 놓으니까 꼭 망할 것만 같았어요. 아, 그래 국가 민족이 망해가는 판에 군이라고 정치에 불관여한다는 원칙만을 고집할 수 있겠소? 그래서 최후 수단을 쓴 것뿐입니다.
  
  기자=李(이) 정권하에서도 군사혁명의 기운이 있었다는데 이번 5·16 혁명의 직접적 동기를 좀….
  
  박정희=하기야 이승만 정권 때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흥분한 일부 영관급 장교단이 들고 나서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4·19 혁명이 일어나 학생들에게 맡긴 셈이지요. 그건 그렇다 하고 이번 군사혁명의 직접적인 동기야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장 정권이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팽개치고 무능과 부패로 일관해서 도저히 그들로서는 긴박한 위기를 타개할 힘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국민을 기아로 몰아넣은 그들의 무능도 무능이려니와 장면 씨의 리더십이란 게 말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혁명 구호에도 있지만 이북 공산당의 간접 침략은 눈에 보일 정도였고 부패와 무능으로 인한 경제 파탄은 결국 국민을 극도의 불안과 浮黃症(부황증)으로까지 몰아넣지 않았소. 이래 가지고야 군대인들 안심하고 국토방위에만 전념할 수 있었겠소? 아닌 게 아니라 이러다간 1년 후에는 공산주의가 시골 농촌까지 침투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판단했소.
  
  기자=간접 침략을 분쇄하자는 혁명 구호를 내걸 만큼 張 정권은 반공에 무력했던가요.
  
  박정희=무력 정도가 아닙니다. 놀라지 마시오, 망할 놈들. 허, 이번에 조사해 보았더니 붉은 마수는 이미 張 정권의 장관급까지 뻗치지 않았겠소(흥분한 박 소장의 두 눈에는 순간 불꽃이 인다).
  
  기자=아니 그게 정말입니까?(어안이 막힌 기자는 숨을 죽이고 박 장군의 입만 지켜본다)
  
  박정희=그 鮮于宗源(선우종원·전 조폐공사 사장)이란 놈하고 김영선(전 재무장관), 金善太(김선태·전 무임소 장관) 같은 자가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서 공산당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니 더 말해서 뭘 하겠소. 더구나 선우란 놈은 간첩임을 자백하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어. 이 따위 놈들이 정권을 맡았으니 백성이 살 게 뭐요? 2, 3일 후에는 사건 전모를 공표하겠지만 그밖에도 나는 감투와 돈과 이권에 눈알이 뒤집힌 그들의 흑막을 낱낱이 천하에 공개할 방침이오>
  
  박정희가 말한 반공 검사 출신 선우종원 씨 관련 간첩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다.
[ 2011-03-28, 11: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