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에게 기사회생의 기적을 일으켜준 해병대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36)/ 한강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6군단 포병단 지휘부의 초조와 불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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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출동
  
  김포 해병여단장 金潤根(김윤근) 준장은 부관이 시간에 맞춰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 보니 밤 11시였다. 인사참모 崔龍琯(최용관) 소령, 통신참모 文成泰(문성태) 중령이 기다리고 있다가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여단 내 미군 고문단도 눈치 채지 못하고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최 소령은 전차 중대의 출동문제를 제기했다. 원래 출동 계획에는 전차 중대를 출동시키면 그 굉음으로 한강 다리를 넘기 전에 폭로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제외되어 있었다. 최 소령은 주력 부대가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에 맞추어 전차 중대가 출발하도록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자정을 넘어서 5월16일로 넘어간 뒤 드디어 吳定根(오정근) 대대장이 전화로 보고해 왔다.
  
  “지금 부대의 선두가 출발했습니다.”
  
  지휘반은 주력 부대의 後尾(후미)에 붙게 되어 있었다. 김윤근 여단장은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軍宗(군종) 참모 金廣德(김광덕) 대위를 찾아 나섰다. 그는 여단 내의 교회로 들어가서 軍牧(군목)을 모셔오라고 했다. 자다가 일어난 김광덕 대위는 옷매무새를 고쳐 입으면서 들어왔다. 김윤근은 한밤중에 깨워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거사계획과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 막 거사 부대의 선두가 서울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잘 하는 일이라고 믿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일이라면 우리가 하려는 일을 쳐부수어 주시겠지만, 출동 목적을 모르고 나가는 많은 장병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놀란 표정이 된 김 군목은 곧 침착함을 되찾더니 뜨거운 기도를 올려 주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김윤근은 교회를 나왔다. 그는 지프를 타고 전차 중대로 향했다. 이미 주력 부대의 트럭 縱帶(종대)가 엔진소리를 우르렁거리면서 김포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중대본부에 도착한 김윤근은 정문 보초에게 “지금 중대장을 보러 가니 전화로 깨우라”고 명령했다. 중대장 막사에 들어가니 金鉉浩(김현호) 대위가 옷을 입고 있었다. 김윤근은 그에게 또 거사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
  
  “여단장님이 나가신다면 기꺼이 나가겠습니다.”
  
  “오전 4시에 출발할 수 있소?”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출발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좋소. 오전 4시에 서울로 출발하시오.”
  
  김윤근의 후미에 붙은 60여 대의 트럭 종대는 대대병력을 태우고 김포가도를 달렸다. 달은 없었지만 별빛이 영롱한 밤이었다. 해병대가 염창교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가에 박정희 장군과 일행이 서 있는 모습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들어왔다. 김윤근은 급히 차를 세우고 내렸다. 철모를 쓴 김 장군은 박정희에게 뛰어오더니 거수경례를 붙이면서 보고했다.
  
  “해병대 이상 없이 출동했습니다.”
  
  “수고 많았소.”
  
  박정희는 김 장군의 손을 잡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장군, 30사단에서 거사 계획이 탄로가 났소. 그래서 30사단, 33사단, 공수단 다 나올 수 없게 되었소. 이제는 해병여단만 가지고 강행하는 길밖에 없게 되었으니 김 장군만 믿소.”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는 수 없지요. 해병여단만 가지고 강행해 봅시다.”
  
  김윤근은 담담하게 말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때의 심정을 김윤근은 이렇게 고백했다.
  
  <다시 지프에 올라 강변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앞을 비추고 있었지만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기분이었다. 굵직한 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처음부터 잘못되면 죽게 된다는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육군부대가 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엄청난 차질에 부딪치게 되니 이것저것 모두가 후회되었다>(회고록 《해병대와 5·16》)
  
  김윤근은 한강으로 다가가면서 어제(5월15일) 아침에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출근하려고 삼각지를 지날 무렵이었다. 해군 참모총장 차가 앞질러 가기에 들여다보니 李成浩(이성호) 총장 옆에 함대사령관 李孟基(이맹기) 소장이 동승하고 있었다. 김윤근은 손짓으로 앞차를 세우게 한 뒤 이맹기 소장을 내리도록 했다.
  
  “내일이 D일인데 알고 있소?”
  
  “D일? 그게 무슨 말이오?”
  
  “金東河(김동하) 장군에게서 무슨 말 듣지 못했소?”
  
  “글쎄, 아무 말도 들은 것이 없는데….”
  
  “내가 무슨 착각을 한 것 같으니 용서하십시오.”
  
  김윤근 준장은 정중히 사과드리고 인사를 한 뒤 김동하 장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김동하는 ‘이맹기 장군도 거사에 찬동했고 거사일에는 해군 함정 수 척을 인천항에 배치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강으로 접근하면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다가 김동하 장군을 떠올린 김윤근은 선배를 너무 믿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고 했다.
  
  박정희와 장교들은 염창교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해병대 차량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지축을 울리면서 출동하는 해병대는 박정희에게는 그야말로 기사회생의 기적이었다. 한때 “부대가 나와야 산 속에 들어가서 게릴라전을 하다가 협상이라도 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박정희는 이젠 성공의 확신까지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염창교에는 6관구 사령부에 모였던 육군 장교들 10여 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박정희와 해병대를 만났다.
  
  박정희는 이들 장교에게 “이제는 부평 33사단으로 가서 출동을 독려하라”고 명령했다. 단호하고 자신감이 붙은 말투였다. 박정희 차는 해병대를 뒤에서 따라갔다. 해병대 뒤에는 출동이 늦었던 공수단 트럭이 따라붙었다. 이로써 해병대는 선두부대가 되었다. 이는 김윤근이 피하고자 했던 상황이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병대는 육군으로부터 당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해병대와 공수단은 5월16일 새벽 3시30분경 한강 인도교의 남단인 노량진 쪽에 도착했다. 남한강 파출소의 경찰관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오는데 해병대 병사들이 공포를 쐈다. 경찰관들은 달아났다.
  
  6군단 포병단의 당황
  
  해병대와 공수단 병력이 한강 인도교의 남단인 노량진에 도착한 시각,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은 육군본부가 아닌 서울지구 방첩대 사무실(조선호텔 건너편)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취한 조치를 회고록에서 이런 요지로 설명했다.
  
  <나는 김재춘 대령과 15일 저녁부터 16일 새벽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통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김 대령은 내 명령대로 6관구 사령부에 집결한 장교들을 해산시켰으며 관구 소속 예비사단들의 출동도 엄금시켰다고 보고해 왔다.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김재춘 대령이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김 대령의 ‘여기는 조용하다’는 말을 믿고서 안심했다.
  
  그러나 일부 소수 부대라도 서울로 들어오려 하지 않을까 해서 육본에 비상 대기시켜 둔 헌병 50명을 한강교로 급파, 미군 차량을 제외한 모든 육군 차량의 통과를 엄금시키라고 명령했다. 조금 뒤 충격적인 보고가 올라왔다. 헌병들이 한강 다리 위에서 해병여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도영 총장은 새벽 3시30분이 넘어서까지도 해병대와 공수단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김재춘의 허위보고에 속았고 자신이 박정희에게 ‘집에 돌아가서 잠이나 자시오’라고 지시한 것이 지켜지고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당시 장도영을 관찰하고 있었던 부하들의 증언은 다르다. 육본 직할 제15범죄수사대(CID)의 方滋明(방자명) 부대장은 자정 무렵 수색의 30사단으로 달려가 반란 주모자인 작전참모 李白日(이백일) 중령을 야반도주하게 하고 상황을 평정한 뒤 장도영한테 돌아와 대기 중이었다. 이때 해병대가 공수단과 함께 한강교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장도영은 직접 전화통을 들고는 육본 직할 헌병중대장 金錫律(김석률) 대위를 부르더란 것이다.
  
  “병력 50명을 카빈으로 무장하고 GMC트럭 여덟 대를 동원하여 한강 다리를 봉쇄하라.”
  
  장도영은 곁에 있던 방자명 중령에게 지시했다.
  
  “귀관도 육본에 가서 헌병대의 배치를 지휘, 감독하고 중간보고하라.”
  
  방자명은 소수 병력으로 대병력을 상대한다는 것이 불안하여 이렇게 건의했다고 한다.
  
  “각하, 남산엔 1개 공병단이 주둔하고 있고 각 헌병대는 중화기를 갖고 있습니다.”
  
  장도영은 “아니 됐어, 우선 그것으로 될 거야”라고 말한 뒤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더라고 한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희영 서울방첩대 대장도 방자명이 그런 건의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확인해 주었다. 장도영 총장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제대로 쓰지 않고 일부러 소수 병력을 투입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때 공병단 병력과 기관총을 동원하여 한강 다리 위에 몰려 있는 해병대와 공수단을 공격했더라면 서울 진입을 저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방자명 중령은 한강 다리에 트럭을 八(팔)자로 놓는 차량 바리케이드를 3중으로 쳤다. 방 중령과 김 대위는 김포가도 쪽을 바라보았으나 근접 물체는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방 중령은 “김 대위, 필요하면 발포하시오”라고 명령한 뒤 서울방첩부대로 돌아와 장도영 총장에게 보고했다.
  
  이때 장도영은 전투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었다. 玄錫虎(현석호) 국방장관과 육본의 주요 참모들도 나와 있었다. 방자명은 다시 육본으로 갔다. 연병장에 병력이 꽉 차 있는 게 아닌가. 장병들의 부대 표시를 보니 6군단 포병단이었다. 방자명은 ‘진압군이 들어왔구나’ 하고 안심했다.
  
  5·16 혁명사를 자세히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날 서울 시내로 처음 들어온 부대가 해병대와 공수단이라고 오해한다. 사실은 그들이 한강 다리를 넘기도 전인 새벽 3시30분에 文在駿(문재준) 대령이 지휘하는 6군단 포병단의 전 병력이 육본에 진주했던 것이다.
  
  포병사령관(문재준) 이하 5개 대대장 전원이 쿠데타에 가담하고 있었으므로 이 부대는 차질 없이 의정부─미아리를 거쳐 새벽에 점령 목표지에 도착했다. 장교 68명, 사병 1283명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문재준 사령관은 이틀 전 확정된 계획대로 서울 시내가 혁명군에 의하여 이미 점령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왔는데 너무나도 조용한 데 경악했다.
  
  ‘새벽 3시에 서울 시내로 들어와서 주요 목표물을 점령하기로 했는데 이거 우리가 박정희 장군한테 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문재준 대령은 6군단 작전참모 洪鍾哲(홍종철) 대령과 참모들을 데리고 혁명군 지휘소로 결정된 남산으로 가 보았다. 거기에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6군단 포병단 병력을 실은 트럭들은 새벽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육본으로 계속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문재준의 담배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담배를 거꾸로 피워 물기도 했다.
  
  “오늘이 확실히 16일이야? 맞아?”
  
  “틀림이 없습니다.”
  
  “뭐가 잘못된 거 아냐?”
  
  “그렇다고 도로 물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젠 다 폭로된 겁니다. 이건 훈련이었다고 해서 돌아갈 수도 없고요.”
  
  이런 대책 없는 대화를 나누고 육본으로 돌아온 문재준 대령은 작전 참모부장 宋錫夏(송석하) 소장과 맞닥뜨렸다. 송 소장은 서울지구방첩대에서 장도영 총장을 만나고 육본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귀관, 어디서 출동한 병력인가.”
  
  “육본 지시에 의해서 출동한 6군단 포병단입니다.”
  
  “잘 됐다. 지금 해병대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한강으로 가서 진압하라.”
  
  “알겠습니다.”
  
  문재준은 기겁을 하고 돌아와서 참모들과 상의했다. 申允昌(신윤창) 대대장은 “당장 잡아넣어버리자”고 했으나 문재준은 “좀 두고 보자”고 했다. 작전 참모부장이 주번 사령을 보내 병력 배치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신윤창은 주번 사령에게 쏘아붙였다.
  
  “여보, 우리가 왜 출동했는지 아오? 군사혁명하러 왔소. 여러 말 말고 가시오.”
  
  이때 한강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6군단 포병단 지휘부의 초조와 불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 2011-03-07, 16: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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