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로 해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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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순간 행복했네
  
  버스에서 李美子를 들을 때, 난 역시 한국인이란 느낌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나는 한 20년 전에 부산에서 鎭海로 가는 시외버스 속에서 가수 李美子를 만났다. 해저석유 시추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운전기사가 李美子의 가요 메들리 테이프를 틀어놓았던 것이다. 의자를 뒤로 젖혀놓고 반쯤 누워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늦가을 경치들을 감상하면서 듣는 흘러간 옛노래들은 감미롭기도, 처연하기도, 아련하기도, 그리고 신나기도 하였다. 한 시간만에 진해에 도착했는데 테이프는 끝나지 않았다. 내리기가 싫었다. 그 뒤 5년이 흘렀다. 나는 月刊朝鮮 1985년8월호에 「40대 旗手論」을 쓰면서 李美子씨를 인터뷰했다. 강남구 청담동 빌라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목을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요. 가만 놔두어도 變聲이 안되고 키도 아직 그대로예요』
  『지금까지 한1천5백 곡을 취입했어요.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신곡만 열다섯 곡을 녹음했으니까요. 다방에서 제가 부른 노래가 나오면 얼굴이 화끈거려 나와버립니다』
  『노래 연습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너무 하면 순수성이 사라집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李美子씨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수줍어하는 듯했다. 그때 마흔네 살이던 李美子씨는 무대가 아닌 私席에선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서 노래를 권하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 무렵 人名사전을 찾아보았더니 李美子씨 이름은 없었다.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 신문사 논설위원들, 소설가들의 이름은 다 실려 있는데 稀代의 가수 李美子가 한국인 인명사전에서 빠지다니, 은근히 화가 났다. 마침 그때 한국일보에서 광복 40년 특집으로 지난 40년을 빛낸 100대 인물을 뽑았는데 李美子가 들어 있었다.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가수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이 깔려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가수가, 무대에 올라 수천, 수만, 많을 때는 수십만 관중 앞에서 熱唱하고 터져나오는 박수와 환호를 현장에서 받아낼 때의 그 생생한 쾌감과 환희를 영화배우나 화가는 직접 느낄 수가 없지 않은가. 노래처럼 감정과 기분을 넓고도 쉽게 전염시키는 예술은 달리 없을 것이다. 李美子씨 덕분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슬퍼했으며 신났고, 행복했던가.
   月刊朝鮮은 李美子씨가 노래 30년 기념 공연을 할 때나, 40년 기념 공연을 할 때 기사를 썼다. 무슨 계기만 있으면 李美子씨를 기사로 다뤘다. 「의사들이 말하는 李美子 목소리의 비결」「설문조사: 한국의 歷代 최고의 가수」등등.
   지난 11월3일에 月刊朝鮮 직원 20여 명은 관광 버스를 한 대 빌어 충남 홍성으로 야유회를 떠났다. 운전기사가 노래 테이프를 하나 트는데 천박한 노래였다. 뒷자리의 젊은 직원들이 당장 그만두라고 불평을 했다. 버스가 서해 대교 밑에 있는 오션 파크 휴게소에 도착하여 쉴 때 나는 「이미자 공연 실황」테이프를 한 장 샀다.
  「노래는 나의 인생」「황혼의 블루스」「삼백리 한려수도」「눈물이 진주라면」「흑산도 아가씨」「황포돛대」「울어라 열풍아」「칠갑산」「여로」순서로 노래가 흘러나오니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저마다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써 李美子의 노래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저마다의 기분을 내고 있었다. 李美子의 위대성은 어려운 노래도 편하게 부르고 듣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16년 전 李美子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노래한다는 것은 뼈에다가 살을 붙이는 것과 같은데, 너무 힘을 주면 살이 곱게 붙지 않고 군더더기같이 붙는답니다』
   홍성에서 돌아올 때도 李美子를 틀었으니 이날 우리는 세 번씩 같은 노래를 들었다. 50대에서 20대에 걸친 버스 속의 관중들은 만족했다. 李美子 노래엔 男女老少가 없다는 것이 實證된 것이다. 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멀리서 서해 대교의 장관이 보였다. 푸른 조명과 빛기둥으로 채색된 기나긴 다리를 차창 바깥으로 바라보면서 李美子가 노래를 불렀다.
   <1.옛날에 이 길은/꽃가마 타고/말탄 님 따라서/시집 가던 길/여기든가 저기든가/복사꽃 곱게/피어 있던 길/한 세상 다하여/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에/노을이 설구나
   2. 옛날에 이 길은/새색시 적에/서방님 따라서/나들이 가던 길/어디선가 저만치서/뻐꾹새 구슬피/울어대던 길/한 세상 다하여/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설구나>
   한 여인의 인생을 노래 하나로 녹인 문학이다. '아씨'의 가사는 임희재 씨의 작품이다. 그 순간 나는 역시 한국인이구나, 그래서 행복하고, 李美子씨로 해서 더 행복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 2001-11-13, 17: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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