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武士집단의 源流인 신라 도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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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武士와 신라 渡來人 이야기
  
  스키타이 황금미술전시회 圖錄에는 완전무장한 스키타이 戰士의 사진이 실려 있다.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하여 再現한 것이다. 이 모습은 「라스트 사무라이」에 나온 19세기 일본
  무사들의 武裝과 너무나 흡사하다. 몇년 전에 내몽골에서 찍은 징기스칸 영화에 나오는 기
  마군단의 重裝 기병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삼국시대의 장수 모습과도 비슷하다.
  우선 투구가 꼭 같다. 머리를 감싸는 쇠모자 양쪽에 가죽으로 보호막을 붙여놓은 식이다.
  갑옷도 두꺼운 가죽판에다가 쇠판을 여러 개 붙인 기마용 札甲(찰갑)이다. 바지, 즉 胡服을
  입고 있는 점도 그렇다. 칼도 신라고분에서 많이 나오는 環頭大刀型이다.
  
  스키타이족은 기원 전 7세기경부터 지금의 이란,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를 누볐던
  인류역사상 최초의 유목기마 戰士 집단이었다. 이들이 만든 騎馬문화가 동쪽으로 확산되어
  흉노, 鮮卑, 투르크, 위구르, 거란, 몽골로 이어지는 북방기마문화의 典型이 되었다. 그 흐
  름속에 북방기마민족집단이 고대국가를 세웠던, 한국과 일본의 군사문화가 존재한다. 스키
  타이 戰士의 軍裝을 보면 일본과 한국의 군사문화, 그 뿌리는 북방초원의 주인공인 기마민
  족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키타이와 마지막 사무라이 사이엔 2700년의 세월이 존재하지만 戰士들의 武裝이 근본적
  으로 같은 이유가 바로 이런 문화권의 공유에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문화도 13세기 몽골의 침입 이전에는 일맥상통했던 것 같다.
  일본 무사집단이 정권을 잡아 幕府를 운영하면서 교토의 천황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國政을
  전횡한 것은 12세기 카마쿠라 막부가 처음이었다. 이 카마쿠라 막부를 세운 무사집단은 源
  氏인데, 이들은 新羅에서 건너온 渡來人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라 도래인들이 지금의 도
  쿄 지방, 즉 關東 지방에 웅거하여 무사집단으로 컸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源氏라
  고 하여 신라계의 무사집안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도쿠가와가 정립한 武士道는 화랑도와 같이 儒佛仙의 합작품이다. 그 내용도 매우 비슷하다.
  神道(仙道)에서는 국토사랑을, 불교에서는 생명에 대한 초월적인 자세를, 유교로부터는 仁
  義의 정신을 뽑아내 종합한 것이 무사도이고 화랑도라는 것이다.
  
  武士道와 花郞道는, 북방기마민족의 군사문화를 지녔던 일단의 세력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건너가 농경문화와 융합하면서 만들어낸 가치관이자 습관일 것이다. 즉, 神道(仙道)는 유목
  민족의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것이고 불교와 유교는 중국에서 수입한 외래 사상이다. 신라와
  일본의 군사문화는 기마민족 고유의 요소들과 중국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한 차원 발전시킨
  것이다.
  
  삼국사기의 삼국통일기 記事를 읽어보면, 일본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철학을 가진 무사들의 행태가 비슷하니까 그런 모습이 아닐까. 大義를 위한
  희생, 상하간의 의리, 명예심, 자살적 특공 등등.
  
  신라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가사 사무라이 집단을 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경주에서
  신라 군사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李鍾學씨이다. 그는 신라와 일본 무사 계통을 이렇게 연결
  시키고 있다.
  
  1. 일본인들이 모시는 하츠만신(八幡神)은 신라 도래인과 관련이 있는 바다의 신이다. 가마
  쿠라 막부를 세운 源씨 집안에선 하츠만신을 氏神, 즉 씨족의 신으로 모셨는데 하츠만신은
  신라계통일 뿐 아니라 武神이라고 한다.
  2. 신라 渡來人들은 주로 도쿄 근방 關東 지방에 살았다. 집단 거주지는 新羅郡이라 불리기
  도 했다. 그런 지역중의 하나인 甲斐의 源氏 후손이 16세기 일본 全國 시대의 맹장 다케다
  신켄(武田信玄)이었다. 甲斐源氏인 다케다신켄은 스스로 조상을 「新羅三郞義光」이라고 자
  칭하면서 자랑스럽게 여겼다.
  3. 일본 武士집단의 본류는 關東 무사이다. 이 관동 무사들은 新羅후손들인 源氏를 중심으
  로 하여 무사집단을 형성하여 그 뒤 일본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源氏 집안 출신이다.
  
  일본 무사의 源流는 두 갈래라고 한다. 귀족을 지키는 경호병 출신과 새로운 농토를 개척한
  在地武士가 그들이다. 이 무사집단의 핵심이 신라에서 건너온 渡來人들이었다면 이들이 화
  랑도 정신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화랑도는 동아시아 최초의 장교(그리고 국가 엘리트)
  양성기관이었다. 이 화랑도는 무술만 연마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도 정진하고 국토순례도
  했다. 화랑도의 애국심은 경직된 명령체계나 탁상공론이 아니라 국토순례와 遊戲에서 나온
  부드럽고 포용성이 큰 생동하는 애국심이었다.
  
  金春秋, 金庾信, 金欽純(김유신의 동생) 등 삼국통일의 주역들은 화랑도의 대표, 즉 風月主
  출신들이었다. 화랑도는 그러나 삼국통일을 성공시킨 이후에는 쇠락하여 슬며시 역사의 현
  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 화랑도의 실종은 통일신라가 급속도로 唐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기의 고유한 풍습과 가치관을 잃어가는 과정과 겹쳐진다. 화랑도의 뿌리는 신라지배층인
  흉노족 등 북방기마민족의 샤머니즘과 닿아 있는 것인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유교적인 사
  상체계가 이 화랑도의 원래 마음밭을 변질시키니 그 토양에서 꽃핀 화랑도는 서서히 枯死
  (고사)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인들이 북방기마민족의 魂을 잃어간 과정이기도 하
  다.
  
  이 화랑도의 전통이 신라 渡來人을 통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의 사회체계와 사상적
  기반 위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린 것이 武士道란 것이다. 일본은 바다로 대륙과 隔(격)해 있
  는 관계로 해서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덜 받았고, 고유의 샤머니즘을 神道라는 하나의 종교
  의식에 담아 보존해갈 수 있었기에 이 토양에서 샤머니즘을 모태로 한 화랑도 정신을 살려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북방기마민족의 군사문화를 농경적으로 발전시켜 계
  승한 花郞道가 일본에 건너가서 무사도로 변신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무리
  가 아닐 것이다.
  
  
[ 2004-01-19, 18: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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