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쇠망과 一流복귀
전성기에 상공업을 기피하고, 전쟁 문화 예술에 과잉 투자. 착취와 반발의 악순환. 독재자 프랑코가 국가再建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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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2세의 功過
  
  한국의 국가적 목표는 자유통일을 이룩하여 북한지역까지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고 一流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一流국가는 西유럽의 나라들, 유럽이 개척한 식민지에서 생긴 네 나라(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일본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스페인은 한때 一流국가였다가 쇠망하기 시작, 수백년간 유럽의 落後지역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선 左右內戰을 겪었고, 이를 수습한 프랑코의 독재가 오래 계속되었다. 프랑코의 死後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30여년 만에 一流국가의 반열에 복귀하였다. 현재 一流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들은 거의가 과거 一流국가였던 적이 있다. 一流국가였던 나라가 쇠망의 길을 선택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한국에 대하여서도 他山之石이 될 것이다.
  
  
   서양사에서 16세기는 ‘스페인의 세기’라고 일컬어진다. 17세기는 新해양강국 ‘네덜란드의 세기’, 18세기는 ‘英佛의 세기’, 19세기는 ‘英獨의 세기’, 20세기는 ‘미국의 세기’, 21세기는 아마도 ‘美中의 세기’가 될 것이다.
   1492년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가 기독교軍에 함락됨으로써 770년에 걸친 스페인의 이슬람 시대가 끝났다. 이 해에 스페인 王家에서 후원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 이뤄졌다.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대항해 시대-식민지 개척시대’를 열었다. 스페인의 모험가들(피사로, 코르테츠)은 南美의 아즈텍, 마야, 잉카 文明을 파괴-접수했다.
   신대륙에서 채굴된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면서 거대한 國富가 쌓이기 시작했다. 1556-1598년 사이 42년간 왕위에 있었던 펠리페(영어로는 필립) 2세가 스페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508년에 그는 포르투갈의 王位까지 차지하여 서양의 2大 해양국을 통합했다. 그의 治下에서 스페인은 지금의 포르투갈, 베네룩스 3국, 南美, 中美, 플로리다 지역, 멕시코, 캐러비안 海 주변지역을 차지했다.
  
   그는 신교도와 터키 군대로부터 카톨릭을 수호하는 챔피언을 自任했다. 1571년 스페인-베니스 연합함대는 지중해의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세계의 챔피언 오스만 터키 해군을 격퇴하여 지중해 制海權을 지켜내고 이슬람의 東進을 저지했다. 1588년에는 스페인의 無敵함대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징벌하러 갔다가 거의 전멸하여 스페인의 衰亡期(쇠망기)를 열기도 했다.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진압하는 데도 실패했다.
   스페인이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유럽의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데는 약 400년이 걸렸다. 스페인의 地主와 귀족들은 전성기 때도 商工業을 기피했다.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은 외국인에 의해 이뤄졌다. 스페인의 지배층은 아메리카 경영으로 생긴 國富를 주로 전쟁과 건축에 썼다. 펠리페 2세가 지은 궁전 에스코리알은 마드리드에서 車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데, 화강암으로 만든 ‘여덟 번째의 불가사의’라고도 불린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여온 銀(은)을 돌로 바꿨다는 평을 듣는다.
  
   유태인 축출의 부작용
  
   스페인의 17세기는 건축과 예술의 세기였다. 국가 소득의 약 5%를 매년 건축(교회, 기념물), 그림, 조각 등에 썼다고 한다. 요사이 보통나라의 국방비 비중보다 더 많은 돈이 문화, 예술에 투자됐다. 이렇게 생긴 문화유산들이 지금 스페인을 세계 1등가는 관광 大國으로 만들고 있다.
   17세기 스페인의 地主, 귀족, 교회는 국가 생산물의 약 10%를 차지하여 부유한 생활을 누렸으나 농민들과 평민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고 스페인을 수복한 기독교 세력이 잘못한 게 있었다. 유태인과 이슬람 교도를 박해한 것이다. 당시 이 두 세력은 유럽 사람들보다 開化되었고 돈과 기술이 있었다. 스페인은 종교 재판소를 만들어 개종하지 않는 유태인과 이슬람 사람들을 추방했다. 약 100만 명의 알짜배기 人力, 즉 당시의 전문층-중산층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 뒤 스페인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착취와 반발의 관계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 정치 불안과 內戰(내전)의 씨앗이 뿌려졌다. 스페인 지배층은 귀족층, 軍 장교, 교회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상공업보다는 종교, 문화에 탐닉했고, 농민, 평민층은 열심히 일할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16세기에 벌어놓은 國富를 까먹으면서 스페인은 政變, 전쟁, 내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고, 그 클라이맥스가 1936년~1939년의 스페인 內戰이었다.
   1701년 합스부르그 王家의 카를로스 3세가 스페인 왕위를 프랑스 계통의 부르봉 王家 펠리페 5세에게 넘겨주자 유럽의 열강들이 개입하여 11년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벌였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는 스페인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편이 되어 두 나라 연합함대가 영국을 치려다가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배했다. 이로써 300년에 걸친 스페인의 해양강국 시대는 막을 내린다.
  
  
   內戰의 나라
  
  
   스페인 지배층은, 18~19세기 유럽이 산업혁명과 부르조아 혁명을 거치면서 혼란 속에서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을 때 이런 新사조에 눈과 귀를 닫고 中世的 침체 속을 헤맸다.
   나폴레옹이 1807년에 스페인으로 군대를 보내 왕을 밀어내고 동생을 앉히자 스페인 민중은 오랜만에 지배층과 손잡고 게릴라戰으로 대항했다.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이 對프랑스戰을 승리로 이끌어 나폴레옹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 뒤 스페인은 王位 쟁탈전에 휩싸인다. 1830년대와 1840년대 그리고 1870년대 세 차례 12년간의 內戰이 일어났다. 두 번째 內戰 끝에 스페인은 공화국이 되었으나 지방의 반란으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군대가 다시 알폰소 1세를 복위시켰다.
   스페인 內戰에서는 귀족, 왕가, 地主, 군대가 항상 한 편이 되고, 농민, 지식인, 노동자, 사회주의자, 분리주의자가 반대편에 섰다.
   19세기 말부터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의 사상이 스페인 노동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착취만 하는 정부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주의도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러시아 공산당식 계급혁명을 반대했다. 동시에 바스크와 카탈루니아 지방(바르셀로나가 수도)에서 분리운동이 일어났다. 스페인은 계급적으로, 지역적으로(인종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모로코 주민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스페인 군대는 苦戰했다. 1923년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뒤 6년간 온건한 독재를 했다. 알폰소 王은 1931년 지방선거에서 공화파가 압승하자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제2공화국이 들어섰다.
   정권은 좌파와 우파 사이를 오고갔다. 파시스트 정당이 생기고 노동자들이 경찰과 군대를 공격했다. 카탈루니아는 독립을 선언하고 암살, 테러가 사회를 휩쓸었다. 스페인은 左右로 갈라졌다. 이런 가운데서 1930년대의 內戰이 일어났다. 이 內戰엔 소련과 서구 지식인들이 좌파를, 독일, 이탈리아가 프랑코軍을 편들면서 개입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쌍방에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식인들이 좌파를 편드는 바람에 프랑코 군대의 학살만 주로 소개되었지만 좌익에 의한 학살도 그에 못지 않았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좌파 편에 서서 참전하였다가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이 파시스트와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1984'와 '동물농장'은 공산주의자들의 위선적 정체를 고발한 소설이다.
  
   프랑코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내전에서 승리자가 되었으나 2차 대전 때는 중립을 지켰다. 히틀러가 프랑코와 담판을 갖고 참전을 압박하였으나 프랑코는 말려들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코는 재빨리 親美노선을 선택,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찍암치 후계자로 현재의 카를로스 왕을 지명, 지도자 수업을 받게 하였다. 프랑코의 독재가 스페인이 다시 一流국가로 복귀하는 길을 연 셈이다. 스페인이 가진 위대한 역사와 전통과 문화의 힘이 정치를 一流수준으로 밀어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 2009-04-21, 11: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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