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는 나라
서울-束草를 오고가면서 느낀 것들. 표지판의 地名을 한자로 표기했더라면 고향 가는 車中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좋은 대화가 오고 갈 것인데...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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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연차 강원도 束草(속초)를 다녀왔다. 초가을 날씨에 山河가 탐스러웠다. 벼이삭이 누렇게 익었고, 나무들은 단풍이 물들기 직전의 마지막 綠色을 뽐낸다. 잘 뻗은 도로, 스위스의 취락을 연상시키는 마을들, 그리고 맑아지는 계곡물은, 한국이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이들 덕분에 충실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다. 나쁜 마음을 갖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가 없는 나라이다. 행복해지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는 나라이다.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고 불행의 원인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나쁜 마음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힘이 세어도 하루에 수십 번씩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런 한국에서 불행해지는 사람은 일단 자신을 탓해야 한다.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릴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김일성, 김정일의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超人的인 의지력으로 마음만 착하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한가위를 맞아 故鄕을 찾는 이들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서울-속초를 오가면서 도로표지판을 讀書했다. 글을 읽으면 의미가 전달되어야 한다. 대부분이 암호이고 소리였다. 漢字地名을 한글로 표기한 탓이다. 束草, 昭陽江, 洪川, 麟蹄, 橫城이라고 써놓으면 뜻도 알고, 이름을 지은 유래가 궁금해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속초, 소양강, 홍천, 인제, 횡성이라고 표기하니 뜻이 증발해 버렸다. 한자 地名을 한글표기한 순간 地名은 낱말이 아니라 소리가 된 것이다.
  
  언어가 소리로 돌변했다는 말은 한국어가 파괴, 훼손되었다는 뜻이다. 地名, 人名 등 고유명사는 漢字語로 쓰지 않으면 '아우칵칵'하는 소리와 같아진다. 한자어는 가치가 있지만 소리는 가치가 작다. 束草라고 하면 '풀 묶음'이란 뜻이다. 우리 선조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지었을 수가 없다. 인터넷에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를 간직한 束草라는 地名을 '속초'라고 표기하여 전통과 전설을 없애버리는 것이 바로 역사 파괴이다. 地名의 한글표기는 역사파괴이자 민족적 문화적 기억 지우기이다. 反민족적, 反문화적 행패이다. 역사, 전통, 유래, 이야기꺼리는 공장보다 더 비싼 정신적 유산이다.
  
  도로 표지판엔 漢字 대신에 영어표기를 해놓았다. 漢字는 우리 낱말 중 70%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표기하는 우리 글자이다. 우리 글자를 추방하고 외국글자를 불러들였다. 이것이 사대주의이다. 한글, 漢字, 영어를 같이 쓰든지 漢字, 영어를 써야 한다.
  
  표지판 地名을 한자로 써놓으면 한가위에 고향으로 가는 車中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地名 풀이를 놓고 정다운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이게 자연스러운,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다.
  
  
  <속초(束草)지명의 유래>
  
  1987년 속초문화원(束草文化院)에서 향토사료 제2집으로 간행한 《속초(束草)의 민속(民俗)》 중에 '속초 (束草)' 지명 전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속초(束草)는 '묶을 속(束)'자, '풀 '초(草)'자라고 써서 이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영금정(靈琴亭)과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으로, 영금정(靈琴亭) 옆에 솔산이 있을때 바다에서 이 포구를 들여다 보면 그 솔산이 소나무와 풀을 묶어서 세워 놓은 것 같은 형태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풍수지리적으로 속초(束草) 지형이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서 풀을 먹고 있는 형국이므로,누워서는 맘대로 풀을 뜯지 못하므로,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도 한다.
  
  또 1983년 뿌리 깊은 나무 발행 《한국의 발견》 강원도 속초시편에 보면, 울산 바위 전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면서, '속초(束草)' 지명 유래를 그것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잘 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에 모이도록 불렀다. 경상남도 울산 땅에 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는데,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서 느릿느릿 가다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다 빚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속초시 땅인 설악산의 한쪽에 눌러 앉고 말았다는 바위가 둘레가 4㎞에 이르는 울산바위이다.
  
  이 바위 때문에 속초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에 따르면 설악산에 구경하러 왔던 울산 고을의 원이 울산 바위 아래에 있는 절인 신흥사의 중에게 울산 바위는 제 고을의 바위이니 남의 바위를 차지하고 있는 댓가로 세금을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금을 받아 갔는데, 어느 해에 신흥사의 어느 동자승이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울산 고을의 원이 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곧 지금의 속초 시가지가 자리잡은 땅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 바위를 동여 맨 새끼를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울산 고을의 원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도 없었으려니와 세금을 내라는 말도 더는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漢字)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로 적는 속초(束草)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이상의 것은 모두 속초(束草)라는 한자(漢字) 지명의 뜻에 입각하여 풀을 묶은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편자들도 이미 지적하였듯이, 그것은 모두 전설적인 얘기로 신빙성이 희박하다.
  
  1967년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총람》 강원도 속초시 편에 보면 「속초(束草)를 일명 속새, 또는 속진(束津)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천군(洪川郡) 동면(東面)에도 속초리(束草里)가 있는데, 앞에 인용한 《한국지명총람》에 보면「속초리(束草里)는 속새울, 속새골이라고도 했는데, 속새가 많은 데서 유래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평창군(平昌郡) 도암면(道岩面) 병내리(屛內里)에도 속새골 일명 속상동(束上洞)이 있는데, 《한국지명총람》에 「속새 풀이 많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추정하여 볼 때, 속초(束草)는 속새라는 풀을 한자(漢字)로 기록한데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586년 이 영택(李 泳澤)이 지은 《한국(韓國)의 지명(地名)》음운(音韻) 지명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속사(束沙): 속시(木賊), 속새(어욱새)를 이두(吏讀)로 속사(束沙)라 표기한다. 황무지, 원야(原野) 등에 나는 속새과(木賊科) 식물을 말하는데, 사근(沙斤)이나 원야(原野)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속새 지명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속사곶리(束沙串里) : 김포군(金浦郡) 금단면 왕길리(旺吉里)
  
  ·속사리(束莎里) : 진양군(晋陽郡) 금산면(琴山面)
  ·속사동(束沙洞) : 김화군(金化郡) 원북면(遠北面) 당현리(堂峴里), 회양군(淮陽郡)
  
   상북면(上北面) 신명리(新明里), 회양군(淮陽郡) 내금강면(內金剛面) 병이무지리(竝伊武只里), 곡산군(谷山郡) 이녕면(伊寧郡)
  
   추전리(楸田里), 고원군(高原郡) 운곡면(雲谷面) 운흥리 (雲興里)
  
  ·동속사동리(東束沙洞里) : 회양군(淮陽郡) 내금강면(內金剛面)
  
  ·속사참(束沙站) : 영원군(寧遠郡) 대흥면(大興面) 사창리(社倉里),강계군(江界郡)
  
   입관면(立棺面) 운송동(雲松洞)
  ·속사리(束沙里) : 평창군(平昌郡) 용평면(龍平面), 문천군(文川郡) 운림면(雲林面)
  
   마한리(馬汗里), 장진군(長津郡) 상남면(上南面), 장진군(長津郡)
  
   동문면(東門面), 삼수군(三水郡) 금수면 (襟水面)
  
  
  이것을 보면 속새라는 풀이 많은 데서 유래된 지명이 적지 않은 수효인 것을 알 수 있고, 속초(束草)도 속새가 많으므로 황무지, 원야(原野)의 의미로 속새, 또는 한자(漢字)로 표기하여 속초(束草)라고 하여 함께 사용되다가, 속초(束草)라는 지명만 남고
  
  속새는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나이 많은 토박이들은 속초(束草)를 속새라고 불렀음을 기억하고 있다.>
  
  
  
  <기린면>
  
   군(君)의 동쪽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 본래 고구려의 기지군(基知郡)으로 신라 진흥왕(眞興王)(540∼574) 때에는 신라의 영토에 속하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춘주군(春州郡) 속현으로 기린현(麒麟縣)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 춘주군(春州郡) 속현으로 현내동(縣內洞), 광조전(光助田), 구을정(仇乙井), 오리동(五里洞), 답동(畓洞), 어리(於里), 하남(下南), 죽천(竹川), 신전(薪田), 김포(金浦), 상남(上南), 왕동(王洞), 문현동(文峴洞), 동리(東里), 방동(芳東), 북리(北里), 치전동(雉田洞)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광식(光式) 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남리(上南里)의 일부를 남면(南面) 김부리(金富里)에 넘겨 주고 군내면(郡內面)의 하추동(下楸洞) 일부를 편입하여 진동(鎭洞), 상남(上南), 하남(下南), 현(縣), 서(西), 북(北), 방동(芳東), 7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45년 38˚선이 그어짐에 따라 진동리(鎭東里)와 북리(北里)의 일부와 상남(上南), 하남(下南), 현(縣), 서(西), 방동(芳東) 5개리는 남면(南面)의 신풍(新豊), 어론(於論), 갑둔(甲屯), 신월(新月), 정자(亭子), 김부(金富), 부평(富平)의 7개 리와 인제읍(麟蹄邑) 관대리(冠垈里)와 함께 그 해 9월 18일 홍천군(洪川郡)에 편입되어 신남면(新南面)의 일부가 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 행정 이양에 따라 인제군(麟蹄郡)에 환원되어 진동(鎭東), 상남(上南), 하남(下南), 현(縣), 서(西), 북(北), 방동(芳東) 7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73년 7월에는 홍천군(洪川郡) 내면(內面)의 미산리(美山里)를 편입(編入)시켰으며 1983년 기린면 관할이었던 상남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면서 미산리(美山里), 하남(下南)과 상남(上南)이 상남면(上南面)으로 편입되어 현재는 5개 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행정리(行政里)는 15개 리다. 동쪽은 양양군(襄陽郡) 서면(西面), 서쪽은 남면(南面)과 홍천군(洪川郡) 내촌면(乃村面), 남쪽은 홍천군(洪川郡) 내면(內面)과 인접해 있다.
  
  
  <현리 >
  
   본래 기린면 지역으로 현(縣)이 있었던 곳으로 현동(縣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리와 하남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현리라 하였으며 행정리로는 6개리다.
  
   ● 가래곡 : 가래나무가 번성한데 기인한 이름이나 가래(加來)로 잘못 표기되어 왔다.
  
   ● 기린(麒麟) : 고려시대 춘주군 속현으로 있을 때 기린현(基麟縣)으로 개칭하였다.
  
   ● 기린(麒麟) : 태종13년(1413) 춘천군의 관할로 있으면서 기린현(麒麟縣)으로 개칭하였다.
  
   ● 광대버덩 : 잔다리 서쪽에 있는 넓은 들로 경지면적이 3만여평에 이른다.
  
   ● 나팔고개 : 매화동 고개에서 6.25당시 중공군이 나팔을 불었다고 해서 나팔고개라 부른다.
  
   ● 남전곡(南田谷) : 덕교 남쪽에 발달한 골짜기에 비옥한 밭이 있어 지은 지명
  
   ● 냉천(冷泉) : 백암동 서남쪽 산골짜기에 있는 샘으로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 덕교(德橋) : 덕다리
  
   ● 덕다리1 : 하마로 남쪽에 있는 마을로 다리가 있다.
  
   ● 덕다리2 : 덕다리 마을에 있는 다리
  
   ● 도곡(桃谷) : 복숭아 나무가 많은 골짜기라서 지은 지명
  
   ● 두루미골 : 조롱고개를 지나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1㎞가량 들어서면 위치한 골로 예전에 두루미가 도래한데 연유하여 지은 지명
  
   ● 매화동(梅花洞) : 용포 동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못자리가 있다 하여 불러온 지명
  ◆ 박원굉묘(朴元宏墓) : 하마로에 있는 고려 말엽의 판결사 박원굉의 무덤으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려면 말굽이 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 말에서 내려서 지났다고 한다.
  
   ● 방태교(芳台橋) : 덕다리2
  
   ● 백암(栢岩) : 잣바우
  
   ● 백암동(栢岩洞) : 잣바우가 있는 마을
  
   ● 상덕교(上德橋) : 상덕다리
  
   ● 상덕다리 : 덕다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서바수 : 현리 서쪽 강가에 있는 마을
  
   ● 서호(西湖) : 서바수
  
   ● 수진암(水鎭岩) : 덕다리에서 조롱동 동쪽으로 500여미터 지점 기암괴석에 한 스님이 '수진암(水鎭岩)'이라 새겨놓고 언젠가 이곳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떠난 후에 수진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의 예언대로 1930, 1965, 1966년에 대홍수로 이곳까지 물이 찼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수진암(水鎭岩)'이라 조각된 기암괴석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시양곡(始陽谷) : 햇빛이 맨 먼저 비치는 골짜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기린중고교에서 내린천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 어은동(魚隱洞) :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어 어디서 보나 인가가 있을 것 같지 않아 피난처로 적합하여 강물에 약을 풀어 고기를 잡아도 살아 있는 고기가 있듯이 병란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은골이라고도 하고 어은동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용포(龍浦)1 : 용포 옆에 있는 마을
  
   ● 용포(龍浦)2 : 내린천에 있는 소로 용이 살고 있다고 하여 가물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 우정거리 : 소시장이 있었다고 하여 지어진 지명
  
   ● 은골 : 어은동
  
   ● 이교(泥橋) : 진다리
  
   ● 잣바우 : 백암동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잣고 비슷하다
  
   ● 조롱고개1 : 현리 장터에서 남동쪽으로 방태산을 향하여 양쪽으로 약 2㎞에 자리잡은 마을
  
   ● 조롱고개2 : 조롱고개에 있는 고개로 약 500m의 오르막 고개여서 단숨에 넘기 힘들어 사람을 조롱하는 고개라 하여 지은 이름이나 지금은 훤하게 도로가 나 있어 자취를 감추었다. 유
  
   ● 진다리 : 마을 어귀에 있는 다리
  
   ● 창동(昌洞) : 창말
  
   ● 창등 : 창동 북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조선시대에 미창(米倉)이 있었다.
  
   ●창말 : 하마로 동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기린현의 창고인 기린창이 있었던 것에 연유하여 지은 이름
  
   ● 창말배터 : 창말에서 서리로 가는 나루터
  
   ● 하덕(下德) : 하덕다리
  
   ● 하덕다리 : 덕다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하마로(下馬路) : 현리 남쪽에 있는 마을
  
   ● 현동(縣洞) : 현리
  
   ● 호암동(虎岩洞) : 마을 어귀에 위치한 바위의 모습이 마치 호랑이에 유사한데 연유하여 지은 이름
  
  
[ 2008-09-11, 10: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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