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의 심층취재] 左派가 파놓은「도덕성 함정」에 빠진 李明博과 朴槿惠는 共滅의 길로 가고 있다 ! (월간조선 8월호)
한나라당이 두 차례 大選에서 진 것은 도덕성 검증을 안 해서가 아니다. 사상검증 공세를 포기하고 保守 대단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左派의 함정인 도덕성 검증은 무능한 자를 道德君子로 만들고, 유능한 사람을 부패분자로 몬다. 左派의 논리에 넘어가 「형제 살해」 같은 동료 죽이기에 열중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내일이 있는가? 한반도의 가장 큰 전략은 「이념」이다. 敵과 同志를 혼동하는 인간과 조직은 반드시 내분으로 自滅한다.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위원·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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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씨의 차가운 반응
기자는 2002년 11월10일 여의도 한나라당 黨舍(당사)에서 李會昌 후보와 선거일 전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독주하고 있었다. 그는 여유만만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요약하면 이러했다.
『황장엽 선생을 풀고, 對北 현금지원은 끊되, 국방비는 늘리며, 남북기본합의서로 돌아가겠다』
『불법폭력 시위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조치를 취하고, 정부內의 초법적 위원회는 정리하며, 6·15 선언 2항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대통령 명령이 부당하면 거부할 수 있도록 검찰을 독립시킬 것이다』
기자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차고 짧았다.
『그분에게 한번 여쭤봐 주시지요. 이쪽으로 올 의향이 있다면 물론 저희들은 환영합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를 40일 앞둔 시점의 月刊朝鮮 여론조사에서, 李會昌 후보는 모든 측면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수치가 나왔다. 그는 「3者 대결」과 「1對1 대결」에서 모두 큰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3者 대결에선 李후보 32.2%, 盧武鉉 후보 16.4%, 鄭夢準 후보 18.6%였고, 李會昌-盧武鉉 가상대결일 때(당시는 鄭夢準 후보와 단일화되기 전임)는 40%-26%로, 李會昌-鄭夢準 가상대결에선 37%-32%로 앞섰다.
保守 분열이 결정적 敗因
2002년 李會昌 후보가 패배한 것은 盧武鉉-鄭夢準 후보 단일화, 즉 保守 분열 때문이었다. 사진은 2002년 12월 대전에서 합동유세를 벌이는 盧武鉉과 鄭夢準 후보.
이 여론조사가 발표된 보름 뒤 盧武鉉-鄭夢準 사이에 단일화가 이뤄졌다. 그 다음날 여론조사에서 뜻밖에 盧武鉉 후보가 李會昌 후보를 7% 이상 앞섰다. 浮動票(부동표)가 단일화 드라마에 감동하여 盧武鉉 후보 지지로 선회했고, 鄭夢準 후보 지지층이 가세한 덕분이었다.
이 사실이 보여 주는 의미는 크다. 李會昌 후보가 진 것은 병역의혹 폭로 때문이 아니다. 그때는 이미 김대업의 폭로가 거짓임이 드러난 후였다. 李會昌 후보는 폭로의 충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유권자들의 65%가 李會昌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다.
李會昌 후보가 진 것은 盧武鉉-鄭夢準 단일화(보수 분열) 때문이다. 李후보가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는 鄭夢準씨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의 이탈을 허용한 때문에 진 것이다. 李후보가 나서서 鄭씨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권력을 나누어 갖는 약속을 했다면 反좌파 연합전선의 구축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했다면 수백만 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병역의혹 선동이 수십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면, 보수 분열은 수백만 표에 영향을 주었다. 李會昌 후보가 발벗고 나서서 鄭夢準 후보와 연대를 모색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 敗因(패인)이었다. 그는 57만 표 차이로 盧武鉉 후보에게 졌다. 보수 분열을 감안하면 많이 받은 표이다.
도덕성 검증은 左派의 논리이고 함정
1997년에 李會昌 후보는 39만 표 차이로 金大中 후보에게 졌다. 신한국당 競選(경선)에서 지고도 탈당하여 출마한 李仁濟 후보가 약 490만 표를 가져가고, 對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난 내각제 개헌 약속을 믿고 金大中의 신원보증자로 넘어간 金鍾泌씨가 적어도 100만 표를 가져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李會昌 후보는 표를 많이 얻은 셈이다.
지난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진 것은 도덕성 검증 때문이 아니다. 도덕성 검증을 무력화시킬 사상 검증을 하지 않아 수비만 했기 때문에 졌고, 좀더 본질적인 敗因은 보수세력의 분열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大選에서 大同團結(대동단결)은 전략이고 폭로는 전술이다. 전략은 수백만 표를 좌우하고 전술은 수십만 표를 좌우할 뿐이다.
지난 두 차례 大選에서 지고도 한나라당은 敗因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덕성 검증에서 졌다고 誤判(오판)했다. 左派가 내세우는 도덕성 검증론이 본질적으로 위선이며 함정이란 점을 몰랐다. 1997년과 2002년에 左派와 언론이 도덕성 검증을 열심히 하여 등장시킨 두 대통령은 지극히 부도덕한 정치인이었다.
도덕성 검증이 도덕적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으니 폐기 목록에 넣었어야 했다. 左派가 개발한 도덕성 검증론은 무능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이를 道德君子(도덕군자), 유능하여 많은 일을 하다가 실수를 더러 한 이를 부패분자로 모는 위선의 논리이다.
도덕성 검증이 敗因이었다고 착각한 한나라당은, 이번엔 이 도덕성 검증을 한층 강화하여 黨內의 동지를 상대로 위선의 게임을 펼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같은 黨의 동료를 상대로, 그것도 후보끼리 도덕성 검증을 하는 데는 없을 것이다. 검증은 언론이나 사법기관이 하든지 政敵(정적)끼리 하는 것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폭로게임을 변호하는 논리가 있다. 이렇게 싸워야 本選(본선)에서 여권이 폭로작전을 펼 때 면역력이 생겨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착각이다. 李明博·朴槿惠 두 사람이 단결만 하면 그런 폭로를 무력화할 수 있다. 도덕성 검증 공방으로 두 사람이 분열하고 左派가 단합하면 그런 폭로가 없더라도 진다.
도덕성 검증의 치명적 함정은 이것이 반드시 대한민국 수호 세력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권력을 잡은 남북한의 左派연합 세력과 대항하여 대한민국 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大同단결인데 도덕성 검증은 이 단결을 파괴한다. 동지들끼리 도덕성 검증을 하기 시작하면 敵對的(적대적)으로 변한다. 외부의 敵보다 黨內의 同志를 더 미워하는 사람과 조직은 분열하여 망한다.
정치판에서 동지란 상호 약점을 덮고 보완하는 사이이다. 李明博-朴槿惠 사이가 동지적일 때만 한나라당은 大選에서 이길 수 있다. 적대적인 관계가 競選 후에도 이어지면 左派의 분열공작에 넘어가는 쪽이 생길 것이다. 朴·李 캠프 안에선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左派가 당선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더러 흘러 나온다.
朴正熙는 도덕적이었을까?
기자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한나라당 競選 과정에서 소위 도덕성 검증 공방을 주도하고 있는 朴槿惠 前 대표가 李明博 前 서울시장에 대해서 들이대는 잣대를 아버지 朴正熙 前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朴正熙·李明博 두 사람은 나이는 20여 세 차이이지만 同시대인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개발연대를 만들고 뛴 상징적 인물이고, 논평자가 아니라 건설자였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朴正熙는 도덕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장교 시절 朴正熙는 청렴결백했다. 대통령 朴正熙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불법적으로 권력을 잡았고,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았으며 부정하게 사용했다. 정보부를 때로는 私兵(사병)처럼, 때로는 비밀경찰처럼 운용하여 政敵(정적)을 괴롭혔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깨끗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스캔들의 세 요소인 돈·권력·여자 문제에서 朴正熙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았다. 그는 불법·부당한 돈과 권력남용을 통해서 자신의 정권 안정을 꾀했다. 그리하여 18년간의 집권이 가능했다.
이 18년간 그는 한국인들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었다. 한국인들은 이 기간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했다.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도둑질하고 사기를 쳐야 했던 일도 없어졌다. 1977년 7월1일 의료보험이 실시된 이후엔 돈이 없어 병원 구경도 못 하고 죽는 이들이 사라졌다.
이 기간 한국인들은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았다. 먹고살 만하고 國力이 충실해지니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주적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기간 한국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물질적·제도적 기반을 갖추었다. 이런 업적만 놓고 본다면 朴正熙는 도덕적이지는 않았지만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도덕적이지 않은 정치가였기 때문에 국민들을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逆說的(역설적) 결론에 이른다.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자칭하면서 도덕을 무기화했던 金大中씨는 돈·권력남용·여자 문제에서 결코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이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좌경적 성향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권력의 힘으로써 자신의 반역적 정책을 덮었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저지른 가장 큰 부패사건은 反국가단체 수괴 金正日과의 회담을 매수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불법송금한 일이다. 송금업무를 간첩 잡는 국가정보기관에 맡김으로써 國情院(국가정보원)을 金正日의 하수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이보다 더한 부도덕과 반역은 없을 것이다. 그런 金大中씨가 대통령이 된 것은 도덕성 검증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이 左派의 무기인 도덕성 검증론을 수입하여 「형제 살해」 같은 共滅(공멸)의 동료죽이기 게임에 빠져버렸는가.
敵의 무대에서 敵의 규칙으로 싸우면 진다
한나라당 競選 과정의 가장 큰 규칙이 되어 버린 도덕성 검증과 폭로는 부도덕한 左派 세력이 한국 정치에 도입한 게임의 룰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金大中 세력은 李會昌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에 대한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했으나 李會昌 세력은 자신들의 논리와 무대를 만들지 못했다. 남이 만든 무대에서 남이 만든 규칙에 따라서 게임을 하면 진다. 지금 한나라당이 바로 左派가 만든 게임의 규칙을 수용해 共滅의 게임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李會昌 후보는 金大中씨의 좌경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활용하지 못했다. 金大中씨의 이념적 색깔에 대한 정면 공세를 펴지 못했다. 左派에 대해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면 「색깔론」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념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右派(우파) 진영은 「容共(용공)조작 세력」으로 몰릴까 봐 물러난다. 金大中씨의 반역적 국가관이나 통일관에 비한다면 李會昌씨 아들에 걸린 병역기피 의혹은 사소했다. 더구나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李會昌 본인은 軍 장교로 근무했으나, 金大中씨는 6·25 전쟁 중에 현역근무를 하지 않았고 의혹이 많다. 李會昌씨는 도덕성 검증이란 金大中 세력의 규칙을 수용해 게임을 하다가 수비로 시종했다. 李씨가 도덕성 검증 대신에 사상 검증이란 右派의 게임 규칙을 만들어 공격했다면, 선거에서 이겼을 것이고 「잃어버린 左派 10년 세월」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세력의 무기는 사상 검증
2002년 大選 기간에도 李會昌씨는 자신의 게임 규칙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盧武鉉 세력은 1997년에 써먹었던 도덕성 검증 카드를 또다시 꺼냈다.
李會昌씨 아들에 대한 김대업의 폭로가 있었다. 처음부터 사기적 폭로임이 명백한데도 여기에 어용언론과 일부 검사들이 합세했다. 李會昌씨는 盧武鉉 후보의 좌경성과 비정상적 행태를 공격하지 못했다. 사상 검증이란 必勝(필승)의 규칙을 갖고도 써먹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李會昌 본인이 한반도 상황의 본질인 이념대결 구도를 직시하지 못했다. 좌파의 도덕성 검증론엔 사상 검증론으로 대결했어야 했다.
이런 대결자세는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金正日 對 대한민국」, 「민족사의 정통국가 對 이단세력」으로 보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가진 李會昌씨였다면 필연적으로 反좌파 연합구도를 만들려 했을 것이다. 즉, 보수세력일 수밖에 없는 鄭夢準씨와 손을 잡았어야 했다.
대한민국 세력의 무기는 도덕성 검증이 아니고 사상(이념) 검증이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이념은 간단하다. 이념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자각)」이다. 공동체인 대한민국의 敵과 同志를 구분하게 해주는 논리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의 본질은 金正日 세력(및 추종세력)과 대한민국의 대결이다. 이런 인식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金正日 세력에 대해선 굴종하고 同志에 대해선 용감하게 폭로한다. 유태인의 論語인 「탈무드」에 적힌 대로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
「한나라당의 白旗투항-새 對北정책이란 코미디」
지난 7월 초 한나라당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탈무드」의 가르침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黨內의 치열한 도덕성 공방전과 한나라당판 햇볕정책 발표이다. 이 두 사건은 상호 연결성이 있다. 金正日 정권을 민족반역 세력으로 규정할 용기와 이념무장이 없는 한나라당이므로 黨內 투쟁을 더 치열하게 하는 것이다.
大義를 모르는 인간들일수록 小利를 탐한다. 金正日-金大中-盧武鉉 연합세력에 포위된 한나라당이 밖으로는 白旗투항하면서 안으로는 존속살해 같은 내부투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세 번째의 보수층 분열로 이어져 세 번째 左派정권을 등장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초에 鄭亨根 최고위원이 발표한 「한반도평화비전」이란 새 對北정책에 대해서 기자는 문화일보에 개인 의견 광고를 냈다. 제목을 「한나라당의 白旗투항-새 對北정책이란 코미디」라고 붙였다.
<한나라당은 이념무장이 부족하여 敵과 同志를 구분하지 못하는 바람에 大同단결에 실패함으로써 질 수 없는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단합된 左派에 패배했다.
이 한나라당이 또다시 기회주의적 웰빙정당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틀 전 한나라당이 발표한 새 對北정책은 이념도 전략도 없고 헌법도 무시한 투항주의의 쓰레기이다. 한나라당이 對北정책에서 左派와 닮아 간다면 굳이 이 정당을 지지할 이유도 없어진다. 對北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한나라당은 사실상 左派정권과 공조해 왔기 때문이다.
鄭亨根 의원이 발표과정에서 『헌법 제3조에 규정된 영토조항 수정 여부를 놓고 가장 큰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야말로 한나라당이 기회주의자들의 패거리임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코미디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한 헌법 제3조는 개정불가 조항이다. 이 조항을 개정하여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시키면 북한정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자유민주화해야 한다는 헌법제4조의 국가목표도 날아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 제3조를 개정하면 대한민국의 반인 북한지역을 포기하고 그곳에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사회주의 독재를 허용하겠다는 이야기가 되어 대한민국의 國體(국체)가 변경된다.
國體 변경, 영토 포기, 자유통일 포기로 이어지는 헌법 제3조 개정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반역과 애국을 놓고 고민했다는 말이 아닌가? 이런 한나라당이 지금 내부적으로 벌이고 있는 적대적 검증 공방전은, 한반도에서는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란 사실을 외면한 데서 빚어진,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전형적인 共滅 게임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자신들이 너무 심하게 對北 강경정책을 펴왔다고 반성하고 있는 듯하다. 이보다 더한 희극적 비극은 없다. 그들이 언제 對北 퍼주기를 막은 적이 있는가? 盧武鉉 대통령의 간첩비호를 비판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통일부가 利敵·反국가 세력에 대해서 국민 세금을 대주고 있는 작금의 반역적 사태에 대해서 의미 있는 항의 한 번 한 적이 있는가?
민족사의 정통성을 포기하는 遷都(천도)에 찬성한 것도 한나라당 아닌가? 우직하고 순수한 애국단체들을 「극우」라고 부르면서 외면한 것도 한나라당 아닌가?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는 나라도 팔아먹을 각오가 되어 있는 집단이 한나라당 아닌가? 정당의 가장 큰 부패는 지지층을 배신하고 국가이념을 黨利 당략보다 아래에 두는 것이다.
金正日 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對南공작을 강화하고 있어 국가보안법을 더 강화해야 할 시점에서 이것까지도 改廢할 수 있다고 나온 것이 한나라당이다. 한국인 중에서 지금 국가보안법 때문에 생활이 불편한 이들이 누가 있나? 한나라당은 간첩과 공작원의 활동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태어난 정당인가?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데 이르면 한나라당은 집단치매에 걸렸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한국인 중에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을 보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 거짓말을 읽고 보는 데 왜 시간과 돈을 써야 하나? 한나라당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북한도 남한 언론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나라당 안에 친북左派가 침투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정보 부족, 공부 부족이 부른 白旗투항이다. 좌익과 대결하는 데는 확고한 국가관과 역사관에 기초한 이념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사소한 외부변화에도 불안해하고 자신이 없어진다. 理念(이념)은 이론화된 신념이다. 독서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이념무장이다.
「야윈 늑대」 같은 金正日 세력에 먹히기 시작한 「살찐 돼지」 같은 한나라당을 믿고 사는 것은 썩은 새끼줄을 잡고 인수봉을 오르는 일과 같다>
現 정권 지지자 중 16.5%만이 승리예감
7월 초 발표된 조선일보와 「TNS-Korea」 합동 여론조사에서 李明博 지지율은 39.4%, 朴槿惠 지지율은 27.6%였다. 흥미로운 것은 朴槿惠 지지층이 「李明博씨가 더 本選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朴槿惠 지지층의 68.5%가 大選의 本選에서 「李明博씨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20.1%만이 「질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李明博 지지층의 48.2%는 「朴槿惠씨가 이길 것」이라고 대답했고, 36.5%는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李明博씨가 朴槿惠씨보다 汎여권 후보에 대한 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결과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李明博 48.3%, 朴槿惠 45%였다. 이는 李明博씨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 아닌 中道성향의 지지를 많이 얻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56.5%인 데 반해, 「집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비토층은 10%였다. 27.9%는 누가 집권하든 「상관없다」고 했고, 5.6%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汎여권 지지자들 가운데서 16.5%만이 「汎여권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에, 36.8%는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7%는 「모름 또는 무응답」이었다. 한나라당 지지자의 88.6%는 「한나라당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대답했고, 1.6%만이 「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9.8%는 「모름 또는 무응답」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盧武鉉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를 찍지 않겠다」는 사람이 78.8%나 되었다는 점이다. 盧대통령은 마이너스 효과를 부르는 변수임이 확인된 셈이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후보에 대해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그를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압도적 여론의 흐름 속에서 한나라당이 진다면 그 원인은 內紛 이외엔 없다. 한나라당을 패배시킬 세력은 한나라당밖에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서 유권자의 약 63%가 고정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약 40%는 한나라당 고정지지, 약 23%는 고정적인 한나라당 반대층이다. 나머지 37%는 流動層(유동층)이다.
한나라당 승리를 보장하는 듯한 이 여론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변수는 李明博-朴槿惠 분열과 左派 단일후보 등장이다. 위의 여론조사가 보여 주듯이 한나라당 경선이 치열한 또 다른 이유는 이 競選에서만 이기면 거의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양쪽에서 하기 때문이다. 고생을 함께 하긴 쉽지만 영광을 함께 누리기란 매우 어렵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몇 번의 사례가 있었다.
분열로 정권을 날린 네 번의 사례
정권이 눈앞까지 굴러왔는데 분열했기 때문에 이를 놓치거나 잡고 있던 정권을 빼앗긴 경우가 네 번 있었다.
첫째, 1960년 4·19 학생의거로 李承晩 대통령이 하야한 뒤 치른 총선에서 3분의 2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新派」와 「舊派」로 분열했다. 舊派 출신으로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尹潽善씨는 내각책임제하의 實權(실권)을 가진 국무총리 후보로 舊派의 金度演씨를 지명했으나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尹씨는 할 수 없이 新派의 張勉씨를 지명했고, 근소한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新·舊派 싸움이 격화되었다. 한민당에 뿌리를 둔 민주당은 反共자유민주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新·舊派라 하더라도 이념과 정책상 차이는 거의 없었다. 순전히 자리싸움이었다. 기어코 舊派는 신민당을 차려 나가 張勉 총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하에 있던 좌익들이 들고 일어나 대중조직을 만들고 파업, 횃불집회, 과거사 폭로 등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학생들이 가세했다. 그들은 판문점으로 달려가 북한 학생들과 통일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주부, 어린이들도 데모를 했다. 「데모 그만하자」는 데모도 있었다. 성숙되지 못한 민주주의가 선동세력에 악용되어 국가와 법질서를 自害(자해)하기 시작했다.
좌익의 준동으로 無정부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군인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휴전한 지 7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民心도 군인들이 나와야 한다는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민주당·신민당은 이런 사회혼란을 목도하고서도 거국적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舊派 출신 尹潽善 대통령과 新派 출신 張勉 총리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런 내분 속에서 朴正熙 장군의 쿠데타 계획은 거의 공공연하게 진행되었다. 육군본부 식당에서도 포섭공작이 이뤄졌다. 수사·정보기관에서 쿠데타 정보를 수집하여 張총리에게 보고했으나, 그는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쿠데타 계획을 분쇄해야 할 張都暎 육군참모총장이 朴장군의 거사계획을 알면서도 張총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식의 허위보고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층부의 분열은 新·舊派가 단결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新·舊派가 의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바탕에서 여론을 업고 질서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면 5·16의 명분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이 만들어 준 권력을 정치인들이 집안싸움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둘째, 10·26 사건으로 朴正熙가 사라진 뒤인 1980년 봄에 金泳三·金大中씨가 분열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허용했다. 金大中씨는 선명한 투쟁으로 대통령 有故 상황을 만든 金泳三의 신민당에 들어가지 않고, 在野세력과 손을 잡고 별도의 정당을 만들려고 했다.
만약 이때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신민당을 강화해 가면서 민주화의 열망을 이어 갔다면, 동시에 학생-노조의 극단적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상황의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단합했다면 金鍾泌의 공화당도 합세하여 민간정치 세력 주도의 改憲이 가능했다.
셋째,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12월 선거가 공고되자 金泳三·金大中씨는 또 분열했다. 이때도 金大中씨가 불출마 선언을 깨고 평민당을 만들어 후보로 나왔다. 두 金씨가 단합하여 단일후보를 냈더라면 민정당의 盧泰愚 후보에게서 樂勝했을 것이다. 12월 선거에서 盧후보는 36%의 지지율을 얻고서도 당선되었다. 兩金氏의 표를 합하면 50%를 넘었다. 金泳三·金大中 두 사람의 분열은 민주화 시기에 하나 되었던 국민들을 지역감정으로 갈라놓았다. 반면 군인 출신 全斗煥·盧泰愚씨는 6·29 선언을 기획, 주연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단합했다.
넷째,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李會昌씨가 큰 표차로 당선되었는데도 2위를 한 李仁濟씨가 탈당하여 독자 출마를 강행했다. 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신한국당 총재이면서도 이 사태를 방관했다. 李會昌 후보는 이런 金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여권의 분열 속에서 金大中 후보는 내각제 약속을 미끼로 던져 金鍾泌 자민련 총재를 끌어들였다. 분열한 여권은 패배하고 단합한 金大中씨 측은 승리했다. 보수층이 70%인 나라에서 左派 대통령이 등장한 것이다.
金泳三은 민자당을 해체함으로써 保守 분열의 단초를 만들었다. 사진은 1990년 1월22일 3黨 합당을 선언하는 金泳三·盧泰愚·金鐘泌.
좌파 宿主 김영삼의 3黨합당 구도 해체
1990년대 이후 보수층의 분열은 좌익의 영향 내지 공작으로 일어났다. 보수층이 左派의 논리를 받아들이면 분열주의자가 된다. 소수 左派의 고전적 집권전략은 右派 분열이다.
한국 보수층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섰던 金泳三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온건한 민주투사였고, 누가 봐도 한국 보수정치세력의 元祖인 한민당의 맥을 잇는 嫡子(적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고정간첩에게 피살되었고 집안이 부유했다.
대통령이 된 직후 이 사람 머리에 좌파적인 역사관이 들어갔다. 그는 취임연설을 할 때 『어떤 동맹이나 이념보다도 민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정권의 對南적화전략에서 핵심인 가짜 민족주의 선동에 넘어간 것이었다.
이 좌파적 視覺(시각)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신의 文民정부가 上海 임시정부에서 바로 연결되는 正統性의 맥을 잇는다고 큰소리 쳤다. 그가 작명한 「文民정부」란 이름이 바로 대한민국 세력 분열의 신호탄이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주도한 군인세력을 배제한 文民세력만의 보수층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출신 성분은 보수이나 공부와 이념무장이 전혀 안 되어 있던 그는 머리를 左派에게 빌려 주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左派가 원하는 일을 찾아가면서 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옛 중앙청을 親日(친일) 건물이라고 때려 부수고, 근대화 시절에 지었던 남산 외인아파트를 폭파시켰으며, 불법화되었던 전교조의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켰다.
그는 무엇보다도 3黨합당 구도를 해체시켰다. 盧泰愚 대통령이 만든 3黨합당의 민자당은 산업화 세력(민정당과 공화당)과 온건한 민주화 세력(金泳三의 민주당)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안전판이었다.
민자당이 일본의 自民黨처럼 안정적인 보수정당으로 기능했더라면 金大中·盧武鉉 정권은 나올 수 없었다. 金泳三 대통령은 분열적이고 좌파적이며 독선적인 역사관의 연장선상에서 金鍾泌 세력을 밀어 내었고, 비자금 사건을 확대시켜 盧泰愚-全斗煥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경북세력의 원한을 사더니 나중엔 李仁濟 의원의 탈당 출마를 사실상 방조했다. 그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허물고 보수 분열에 앞장선 좌파 宿主 대통령이었다.
左派 10년 시대를 위한 整地(정지)작업, 즉 보수층 때리기를 열심히 했던 金泳三씨가 중용했던 이들이 盧武鉉·李仁濟·孫鶴圭씨였다. 이들은 과거와 지금도 보수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지도자는 사람을 알아보아야 하고, 참모는 일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에선 이념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右派는 左派의 노리개가 될 소지가 크다.
金泳三 대통령이 보수층의 분열에 앞장서게 된 것은 좌파적 역사관을 받아들인 때문이듯이 지금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도덕성 검증이란 논리도 左派發이기 때문에 보수층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다. 결벽·지조·正義 등 관념적인 구호를 내걸고 이에 미달하는 이들을 모조리 부도덕한 변절자로 모는 도덕 공세는 자신도 지킬 수 없는 기준을 남에게 강제한다는 점에서 凶器(흉기)이다.
金泳三은「保守 때리기」와 保守 분열에 앞장서 온 盧武鉉·李仁濟·孫鶴圭를 중용했다.
성리학적 명분론의 위험
한국인들은 조선조 500년을 지배한 주자학적 관념론에 뼛속까지 침투당해 「도덕」이란 말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도덕이란 無所不爲(무소불위)의 무기를 든 사람은 정치적 우위에 선 것처럼 행동하면서 政敵을 罪人으로 몰고 간다.
교사나 聖職者(성직자)는 도덕적이기 쉽지만 利害관계와 利權을 다루는 정치인은 어렵다. 이들에게 상식인 이상의 도덕성을 강제하는 순간 도덕 검증은 僞善의 게임으로 변한다. 재판관은 罪人의 도덕성을 재판하지 않는다. 罪人을 인간적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罪만 평가한다. 한 인간이 남의 도덕성을 검증하려면 스스로 하느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도덕성 검증」의 과정을 보면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예외 없이 『고백하라』고 대든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숨길 권리가 있다. 때로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든지 비밀로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의무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고백하라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金南洙 주교는 『하나님도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평성의 원칙상 同志에게 도덕성 검증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 자신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신을 모범적으로 벌거벗겨야 한다. 朴槿惠씨는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 정직하게 고백한 뒤 李明博씨의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야 여론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국가관·정신·추진력 검증은 안 하나?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進路(진로)를 설정하는 자리이다. 이런 자리에 앉으려는 인물에게 따져야 할 검증 목록 1호는 국가관이다.
국가관은 역사관과 직결되어 있다. 한국의 현대사를 부정하면 한국을 부정한다. 그런 인물은 대통령은커녕 국회의원 이 될 자격도 없다. 국가관은 主敵觀(주관적) 및 對北觀(대북관)과도 깊게 관련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들에게 「국가의 敵」이라고 지정한 金正日 정권을 친구로 보는 자는 청와대가 아니라 감옥으로 가야 한다.
국가관은 헌법觀과도 직결된다. 대한민국 헌법을 우습게 여기는 자는 反국가적 민주주의 파괴자이므로 청와대가 아니라 학교로 보내야 한다.
추진력은 조직경영력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다. 시간의 단축이고 낭비 요소의 제거이다. 이 추진력은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國政운영 능력으로 연결되는 추진력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선동력은 강한데 조직경영력이 약한 盧武鉉씨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는, 한 여승이 도롱뇽이란 것을 살리겠다면서 억지 단식을 하니 멋대로 경부고속철도 공사를 중단시켜 2조5000억원을 날렸다. 무능하고 국가관이 약한 인간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역자가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하는 국가관 검증, 무능력자를 가려내는 경영능력 검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정신이상자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막는 정신감정이 그것이다. 유권자들이 선동에 넘어가기 쉬운 어린 민주주의下의 대통령 중심제에선 거짓말쟁이나 정신이상자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선관委가 후보자로 하여금 정신감정서를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
李明博·朴槿惠씨는 기업경영자·서울시장·야당대표의 경력을 통해서 기본적 자질은 실천 속에서 검증되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그들의 私生活(사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폭로식 검증을 할 때 과연 한국사회가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두 사람의 人材를 만들기 위해 들어갔던 피·땀·눈물을 생각할 때이다.
도덕성 검증을 주도하는 朴槿惠 前 한나라당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인터넷에 글을 쓰는 지지자들이 보이는 특징이 하나 있다. 朴씨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反感(반감)이 그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거나 그 경쟁자인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것이 이들의 눈에는 범죄행위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朴槿惠씨가 주도한 도덕성 검증 공방은 한나라당內를 敵對的 분위기로 몰고 갔을 뿐 아니라 극성 지지자들은 보수 시민층 사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이다. 「지지한다」는 말은 「줄을 선다」나 「편들다」라고 쓸 수 있다. 어떤 후보를 편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며, 민주국가 유권자들의 권리이고 의무이다. 이런 권리행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사회 일각에 자신이 미는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빨갱이」·「敵」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민주주의는 생각과 利害가 다른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살아가기 위하여 만든 제도이다.
누가 봐도 李明博·朴槿惠 두 사람은 盧武鉉 좌파정권을 상대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열심히 투쟁했던 이들이다. 朴 前 대표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잘 이끌었고, 私學法(사학법) 재개정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겨울에 場外집회를 주도했고 결국 이뤄 냈다. 李 前 시장은 한나라당도 동의했던 遷都 계획에 대해 違憲(위헌) 판결을 받아내 민족정통성의 말뚝인 서울을 지켜냈다.
두 사람은 같은 정당에 몸을 담았으니 同志이다. 同志의 관계인데 敵처럼 싸운다면 반드시 敵에 이용당한다. 同志를 치기 위하여 외부의 敵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共滅의 길이 열린다.
反헌법적 左派와 싸울 때는 反共만으로는 안 된다. 反共민주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반역左派에게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는 불법을 고발하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제도일 뿐 아니라 사생활과 개인의 자유를 엄격하게 보호하고 不法이 아닌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관용하는 정신이다.
論語(논어)에 나오는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를 생각한다. 君子(군자·신사)는 다르지만 화합하고, 小人은 같으면서도 不和한다.
정치에서 도덕론은 非도덕을 부른다
정치나 외교에서 도덕을 너무 강조하면 非도덕적 결과를 빚는다는 것은, 교회가 정치를 지배했던 中世 유럽과 도덕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朱子學(주자학)을 교조적으로 수용했던 조선조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1636년 後金이 淸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에 대해서 國書를 보냈다. 「앞으로는 왕이 아니라 황제라고 불러 달라」는 요지였다. 仁祖의 신하들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두 사람의 황제가 있을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明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사대주의의 발로였다.
知行合一(지행합일)을 주장하는 陽明學(양명학)에 밝았던 崔鳴吉 등은 오랑캐라도 그들이 불러 달라는 대로 불러 주면 될 것이라고 했으나 斥和派(척화파)는 大義명분이란 도덕론을 앞세웠다. 1636년 여름에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일부 신하가 『그렇다면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왕에게 건의한다. 斥和派는 전쟁을 불러 놓고도 전쟁준비엔 반대한다. 『이 여름에 전쟁준비를 하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백성들을 위한다는 도덕론이 등장했다.
할 필요도 없는 전쟁을, 비현실적 도덕론이 불러들인 게 병자호란이다. 정치에서 도덕론은 반드시 현실과 유리된다. 도덕론은 관념론이다. 관념은 항상 극단화된다. 관념의 유희에는 한도도 경계도 없다. 당시 東아시아 사정은 급변하여 明이 망해 가고 淸이 일어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斥和派의 도덕주의는 이런 현실을 떠난 관념적 大義명분론이었으므로 현실에 적용하니 파탄이 난 것이다. 斥和派는 도덕이 淸의 군대를 막아 줄 것이라고 믿은 모양인데, 전쟁에선 힘이 도덕이다. 淸의 기마군단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直進했다. 이들이 서울 근교에 도달했을 때 敵의 출현을 알게 된 仁祖는 강화도로 피하지 못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두 달도 못 되어 항복한 仁祖는 얼어붙은 三田渡(삼전도)에서 淸태종을 향해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해야 했다. 약 20만 명의 부녀자들이 淸으로 끌려갔다. 도덕론이 부른 가장 비도덕적 결과였다. 전쟁을 불러들인 道德君子 중 그 누구도 자살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 쇼를 하다가 구출된 신하는 있었다.
긍정과 건설의 논리는 패배할 것인가?
위선적 도덕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비판과 약점캐기가 유행하고 때론 덕목이 된다. 긍정과 건설은 늘 守勢(수세)로 몰린다. 한국 사회에선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누구를 비판하는 데서는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마음대로 한다. 비판자는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대통령보다 더 우월해지는 기분이 된다. 기업인을 비판하면 正義를 세우는 것으로 착각한다.
兩非論이 유행한다. 李明博·朴槿惠 둘 중 한 사람을 지지하고 싶어도 그러면 『왜 줄을 섰나』라는 욕을 먹을까 봐 李·朴 두 사람을 모두 비판한다. 그러면서 지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엽적인 비판을,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선 본질적인 비판을 한다. 한 사람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더 용감하고 양심적인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
나중에 북한 간첩으로 드러난 지식인들의 글과 말을 분석해 보면 북한정권에 대해선 지엽적인 비판을, 한국에 대해선 본격적인 비판을 하는 兩非論의 틀을 갖고 있다. 누가 『왜 북한 편을 드는가』라고 공격하면 『보라, 나는 양쪽을 다 공평하게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빠져나오기 위해서이다.
李承晩·朴正熙·李秉喆·鄭周永·李明博 같은 건설자를 옹호하는 것은 비판하기보다 어렵다. 金九, 申采浩 같은 「도덕적 투사들」을 비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판과 도전이 제1 덕목이 되는 사회는 억압과 침략을 많이 받아본 사회이다. 개인이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고 국가가 勝者가 되어본 적이 없는 곳에선 건설과 긍정과 생산의 논리는 외롭다.
대한민국은 세계 10大 경제국, 세계 8大 군사강국이고, 민주국가이다. 富國强兵의 자유의 나라이다. 자유통일만 하면 非서구-非기독교 국가로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一流국가 클럽에 들어갈 수 있는 대단한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 어울리는 一流의 논리, 생산과 건설과 긍정의 논리, 즉 성공자와 勝者의 논리가 정착될 때가 되었다. 긍정의 논리가 좌파식 부정과 비판 일변도의 논리를 이기는가 아니면 패배하는가의 여부도 이번 대통령 선거의 한 觀戰 포인트이다.
한나라당의 폭로식 검증공방은 고소사태로 비화하여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결국 내부 문제에 검찰의 개입을 자초한 셈이다. 동지끼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해결을 외부에 맡긴다는 것은 정당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부싸움의 해결을 경찰에 맡기는 가정이 깨지지 않으면 기적이다.
黨의 동료를 상대로 계좌추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동료가 아니라 수사관 같은 어법이다. 개인의 계좌를 멋대로 추적한다는 것은 私生活 침해이다. 더구나 동료를 상대로 그런 뒷조사를 하라고 盧정권에 요구하는 판이니 콩가루 집안도 정도 문제이다.
한나라당의 泥田鬪狗와 좌파의 離合集散
한국인들은 싸우기 시작하면 泥田鬪狗(이전투구)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싸움의 한계를 긋지 못하고 共滅의 길을 간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전쟁을 마지막으로 1300년 동안 한 번도 스스로 전쟁을 결심, 계획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인이다. 원천적으로 전략감각이 무디고 감정에 휩쓸린다. 한번 싸움을 한 뒤엔 원수가 된다. 싸움의 기술이 너무나 치졸하다. 더구나 정권을 눈앞에 두고 싸우는 李明博-朴槿惠 게임은 반드시 분열의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경선에서 진 후보는 출마가 불가능하지만 탈당을 막을 법은 없다. 黨에 남아서 勝者를 계속 괴롭히고 여기에 외부세력이 가세하면 탈당하는 것보다 더 파괴적이다.
李·朴 양쪽이 뱉어 놓은 극렬한 말로 보아 敗者(패자) 편에 줄을 선 정치인들은 앞으로 공천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고 自救(자구)수단을 쓸 것이다. 그 수단이 한나라당 大選 패배의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大同단결할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싸우진 않는다.
金泳三, 金大中은 이렇게 싸우지 않았다
과거 金泳三·金大中씨가 같은 黨에서 싸울 때도 이렇게 하진 않았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치명적 폭로는 하지 않았다. 이념무장에 근거한 애국심이 약하니 싸움이 도를 넘는다.
결국 여론이 승부처이다. 7월 중순 현재로선 朴槿惠씨의 지지율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李明博씨가 10%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李明博씨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깨끗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하기 때문인 듯하다. 李씨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 뒤에도 폭로는 계속될 것이다.
朴槿惠씨가 역전승하여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도 친북左派들의 본격적인 폭로가 시작될 것이 뻔하다. 특히 최태민 사건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면서 폭로의 深度(심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런 폭로엔 정권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들이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汎여권으로 불리는 左派의 離合集散(이합집산)에 대해서 「국민행동본부」는 失政(실정)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위장폐업, 야반도주, 신장개업」이라고 표현하면서 원천적으로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한나라당의 泥田鬪狗와 좌파의 離合集散. 올해 與野가 보여줄 어지러운 게임은 유권자들을 흥분시키고, 짜증나게 하고, 종국에 가서는 냉담하게 만들 것이다. 정권을 놓고 이 정도로 싸운다는 것은 그래도 발전이다.
정권의 향방을 말싸움으로 결정하는 관행이 정착된 것은 한국의 경우 20년밖에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면 정권은 암살·쿠데타·전쟁 등 폭력을 동원해 빼앗아 오는 것이 보통이다. 총으로 하는 정권싸움을 말로써 하니 치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유권자들의 얼굴이다. 盧武鉉 대통령은 한국 유권자들의 수준을 반영한다. 보통선거에선 李健熙 회장도 한 표이고 노숙자도 한 표이다. 碩學도 한 표이고 19세도 한 표이다. 결국 유권자들의 평균 수준에 맞는 대통령이 뽑힌다.
결국 국민 수준이다!
보통사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사업가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정치인은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농담이 있다. 李承晩·朴正熙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도 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격동시켜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대중정치 시절엔 그런 위대한 인물이 대통령으로 뽑히기 어렵다.
1993년 金泳三 정부 이후 한국사회를 분열로 몰고 갔던 좌경화의 흐름이 15년 만에 反轉(반전)되고 있다는 통계는 많다. 이런 변화를 몰고온 것은 左派의 위험성과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이었다. 한나라당은 이 각성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애국세력은 이 각성이 反核反金의 여론으로 대세화되었다고 좋아하는데 한나라당은 불안해한다. 상황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
한나라당의 두 후보 지지율은 약65%, 左派 후보군 지지율은 다 합쳐도 15% 이하이다. 전교조 회원수가 줄고 있다. 폭력시위나 불법파업에 대한 여론의 압력이 주동자들을 주눅 들게 하고 있다. 40代의 反좌파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래도 한나라당이 자신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희미한 對北정책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투항주의를 선택한 것은, 애국심(이념무장) 부족과 여기서 기인한 내분 때문이다. 여론의 大勢化는 이뤄졌으나 한나라당의 기회주의성과 분열성이 절호의 찬스를 차버리려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 외롭다. 대한민국 수호를 다짐한 黨이 대한민국의 敵인 金正日세력에 추파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성한 유권자들만이 이런 답답한 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다. 투표날까지 계속될 선거판의 泥田鬪狗를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투표장으로 들어가서 결정적 한 표를 던질 때 역사가 움직일 것이다. 1945년에 李承晩이 귀국 직후 한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고는 아직 유효하다. 올해는 「뭉치면 살고 속으면 죽는」 해이다.●
左派가 파놓은「도덕성 함정」에 빠진 李明博과 朴槿惠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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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30, 0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