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朴正熙·全斗煥과의 인연

청와대 탈출작전

盧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이렇게 말을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군』하면서 잠시 쉬자고 했다. 盧 전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마주앙을 한 잔씩 따라 주면서 청와대 시절의 에피소드를 한 가지 소개했다.

『청와대 들어가서 첫 번째 맞이하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인가 그랬어요. 달구경을 하고 싶어서 뜰에 나왔지. 혼자서 달을 보기 서운해 집사람을 불렀는데, 불현듯 두 사람이 똑같이 집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둘이서 도망치자…. 처음에 한 5분 동안은 살짝 나왔으니까 몰랐지만 5분이 채 못돼서 경호원들이 감시를 하는 거야. 그래서 들어갔다 다시 나와도 감시를 하고…. 한두 시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나 연구하다 안되어 가지고 포기한 일이 있어요. 청와대 탈출하려고 허허허』
盧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말을 안하다가 오래 말을 하니까 목이 아프고 힘이 드네』했다. 지친 표정이었지만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全斗煥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구공고) 때는 서로 모르셨습니까.

『그때는 몰랐지. 저 양반이 나이는 내보다 하나 많아도 학교는 내 후배야. 어릴 때 아버지가 만주로 이주를 해서 거기 있다보니까 학교가 늦었어. 학교도 나보다 한두 해 아래일 거구만. 陸士에는 밤에 「연등」이라는 제도가 있었지요. 소등을 한 후에 남아서 공부를 하도록 빠짐없이 남아서 공부를 하고, 또 기상하기 한두 시간 전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았어. 나는 지금까지 全斗煥 대통령만큼 노력을 많이 하는 분은 본 적이 없어요』

―盧 전 대통령께서는 군인 시절에 朴대통령의 10월유신(維新)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나를 비롯한 軍 장교들은 10월유신을 민족자존이자 자주국방이라고 생각했楮? 민족주의 색채가 강했지요. 그때가 연대장 시절이었는데 국방부장관을 지낸 오자복(吳滋福)씨가 사단은 달랐지만 같이 연대장을 할 때야. 군사령관이 10월유신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 질의 토의로 들어갔는데 吳滋福씨가 일어나더니 군사령관에게 「金日成도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金日成의 민족주의와 10월유신의 민족주의는 뭐가 다릅니까」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군사령관이 「그것도 모르나. 金日成 저놈아 꺼는 다 가짜고, 우리 것이 진짜야」이러는 거라』(일동 웃음)

―朴대통령은 하나회 만드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하나회라는 말이 언제 생겼는지 우리도 잘 몰라. 후배들이 지어냈는지 잘 몰라요. 陸士 출신 장교들이 중심이 돼서 청년장교의 건전한 핵심들이 잘 자라고 있다 이 정도로 알고 있었고. 초기에 軍의 주도권은 평안도 함경도 출신들이 좌우했어요. 李承晩 박사가 그 조정을 잘했지요. 이 주류가 5·16 혁명이 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이북(以北)이 고급간부의 다수였는데 이남(以南) 출신들이 다수니까 자연현상이야.

이렇게 되고 以南 출신중에는 경상도가 절대 다수야. 6·25 사변 전후해서 경상도의 젊은이들은 전부 軍에 갔단 말이야요. 다른 지역은 피난가고 해서 그 수가 적었지요. 그래서 軍 간부의 3분의 2가 그야말로 경상도야. 그러니까 자연히 軍의 주류가 경상도로 간 것입니다. 朴대통령도 경상도니 그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지요』

盧泰愚 소위와 朴正熙 사단장

―盧 전 대통령께서는 陸士 11기 중에 朴대통령을 제일 먼저 뵈었죠. 당시 朴대통령이 5사단장을 할 때 소대장을 하셨지 않습니까.
『陸士 졸업하고 소대장 첫 부임지가 5사단이에요』

―朴사단장이 그때 육군대학으로 가기 직전에 盧소대장을 방문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나는 당시 초급장교였기 때문에 사단장이 나를 특별히 아낀다거나 이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다만 일반적으로 우리(陸士 11기)에 대해서 고급 지휘관들이 굉장한 관심을 갖고 우리만은 깨끗하고 올바르게 육성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이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꿀린다든가 하는 것 없이 서슴없이 얘기를 하고 그랬어요. 내가 부임할 때 선배로부터 「어디 가느냐」해서 「5사단에 부임하게 됐다」하니 「朴正熙 준장이 5사단장이지. 참 잘 됐다」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 선입감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아끼고 길러주는 분이 계시다는 믿음에서 소신 있게 일을 했지요.

그러던 차에 사단장이 나에게 밥 먹자고 연락이 왔어요. 사단장이 소대장을 불러서 밥 먹자 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그래 이상하다, 황공하기도 하고. 그때 내가 대대 사격장을 닦는 작업을 감독하고 있을 때인데 가서 같이 밥을 먹었어요. 朴대통령이 초급장교 생활 어떻게 하고 있나 등을 많이 물었지요.

점심 먹고 이제 헤어지게 됐어요. 「잘먹었습니다. 가겠습니다」하고 경례를 척 붙이니까, 그때 내가 아마 중위였을 거야. 그랬더니 나를 좀 보자 그래요. 당시 내 부대 위치가 간성이었어. 사단장이 「내가 바닷가에 오리 사냥을 하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그래서 내가 「저는 임무가 있습니다」했지. 「무슨 임무?」그래서 「사격장을 닦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못 가겠습니다」그랬더니 「할 수 없지. 잘 가게」그래서 「예」하고 돌아서는데 또 불러. 그래서 가니까 朴대통령이 「내가 사단을 떠나게 됐어」그래서「그렇습니까. 어디로 가십니까」그러니까 「아마 육대(陸大)로 가게 될걸세」했어요.

착잡한 심정이 순간적으로 우러났지만 그때 신분에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잘 가십시오」하고 경례를 하고 헤어졌어요. 돌아오면서 어린 마음이지만 「아 이거 따라갈 것을…」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이분하고 헤어졌는데, 혁명이 나가지고 어느 시기에 나와 독대를 했는데 朴대통령 하시는 말씀이 「야 임마. 그때 내가 서운했다」이러시는 거야』

『나는 정승화씨를 좋아한 사람』

―저는 12·12 사건의 원인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朴대통령 서거 후 우리 軍 안에 『김재규(金載圭)가 저렇게 한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朴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생각과 함께 의리론 입장에서 분개하던 세력이 있었고, 朴대통령의 통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쪽에서는 『유신체제를 바꾸자』면서 민주화의 기회로 생각한 두 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결국 12·12 사건으로 충돌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그 당시 느낀 상황으로는 朴대통령 서거가 민주주의로 가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軍部 내에서는 거의 없었어요. 가해를 한 金載圭는 朴대통령이 능력 이상으로 아끼고 길러준 사실을 전부 알고 있었다 이 말이요. 그런데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이게 기본 정서였어요.

그런데 한참 시기가 흐르歐?이상한 얘기가 나오고, 金載圭를 변호하는 변호사측에서 검사측에 공갈도 치고. 「지금 세상이 바뀌었는데 당신 상관의 뜻을 제대로 아느냐」하고 金載圭의 죄를 추궁하려는 검찰측에 압력도 가하고. 이렇게 되니까 우리는 「金載圭도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구나」이렇게 됐어요.

나는 鄭昇和씨 입장을 철두철미하게 믿었지요. 나는 鄭昇和씨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鄭昇和씨도 나를 아꼈고. 나를 아껴서 鄭昇和씨가 일부러 나에게 지시해서 내가 고 朴대통령 문상도 한 거야. 옛날에 방첩부대 대장으로 모신 적도 있고. 군에서 내가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이에요. 그런데 이분의 위치가 고약하게 되어간단 말이야. 자기가 직접적 책임은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金載圭가 자기 부하에게 「육군참모총장도 와 있다」이렇게 용기를 주어 엄청난 일을 저질렀으니 군의 상식으로는 도의적으로라도 「책임져야 한다」이게 그때 여론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존경하던 鄭昇和 장군의 이미지를 더 이상 더럽히지 않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들이 순수하게 우러난 거요』

孫柱煥 전 장관은 12·12 사건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장이었다. 孫장관은 기자입장에서 당시 시국의 흐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당시 내가 기자로서 지켜 본 시국상황으로는 朴正熙 대통령 이후 권력의 핵은 군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朴正熙 1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력이 갑자기 진공상태가 되니까 힘의 원리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조직화되어 있던 軍이 권력의 공백상태를 메울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 정치권은 국민 역량을 조직화하거나 스스로 통제하며 혼란을 수습하여 권력의 공백을 메우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 과정에 12·12 사건을 거시적으로 본다면 軍이라는 세력이 권력의 진공상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누가 이를 메울 것이냐. 당시만 해도 정규 陸士 출신이 軍의 핵심 엘리트 그룹이니까 정예화된 이 그룹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봅니다. 12·12의 과정 자체는 단순했습니다. 수사선상에 육군참모총장이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본인이 저항하고, 또 그를 지지하는 일부 軍 지휘관이 있고. 그래서 충돌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12·12가 없었더라도 그 이후의 軍은 정규 陸士 출신에 의해서 주도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7. 韓中수교와 대만 문제

天安門 사태 뒤 중국편에 서서 부시 설득

잠시 휴식 후 盧 전 대통령은 韓中수교에 대한 육성증언을 시작했다.

<韓中관계의 진전은 지역감정 해소와도 무관하지 않다. 1982년 내가 광주에 내려갔을 때 나는 고질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 우리의 발전축이 서울-대전-대구-부산 축에서 서울-인천-군산-광주-목포 축으로 바뀌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 인구의 10배가 넘는 12억 이상의 인구가 있는 중국의 엄청나게 큰 시장이 열리게 되므로 우리의 서해안이 발전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발전하는 곳에 사람이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이 바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실질적인 길이 트이는 것』
이라고 역설했다.

나는 그전부터도 중국과의 수교문제를 관심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1989년 6월 북경에서 천안문(天安門)사태가 발생하자 세계 도처에서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외교관계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나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수상, 슐츠 美 국방장관 등 여러 사람에게 천안문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그들은 인권문제라는 차원에서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었고, 미국 의회에서도 강경론이 거세게 나왔다. 나는 그것을 많이 누그러뜨리도록 노력했다.

부시 대통령과 대처 수상, 슐츠 장관 등에게 나는 동양과 중국의 역사 문화 국민성 등을 설명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설득했다. 『우리가 자유 민권문제만을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의 깊은 문화와 전통 관습들을 감안해 참고 기다려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측이 알았다면 상당히 고마워했을 이야기를 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내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1990년 중국에서 아시안 게임을 할 때도 나는 중국을 지원했다. 1991년 11월12일 제3차 APEC 총회 참석차 서울에 온 전기침(錢其琛) 외교부장의 예방을 받고 나는 韓中간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임진왜란 때 우리의 全국토가 황폐화되다시피 하는 수모와 역경을 겪으면서도 중국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일본에게 明을 치는 길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우리 선조들이 애썼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5천년 역사를 가진 양국이 과거에는 단 몇 년간이라도 관계가 단절된 적이 없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반세기라는 긴 기간 동안 관계를 끊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조상과 せ玲?대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단절을 하루빨리 끝맺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런 나의 뜻을 중국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대만과의 단교 哀史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데 있어 미국의 슐츠 전 국무장관은 개인적으로도 깊은 관심을 갖고 내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노력에 따라 중국과의 수교는 錢其琛 외교부장이 1992년 4월13일 아태(亞太)지역 경제사회위원회 총회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李相玉) 외무장관에게 비밀리에 수교를 제의해 옴으로써 이루어졌다.

원래 우리 정부는 소련보다는 중국과의 관계 진전이 먼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측은 민간 기업인의 중국 방문은 환영하면서도 정부 관리의 방문에는 난색을 표하는가 하면, 먼저 북한이 일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자신들도 한국과 관계개선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때문에 양국관계는 진전을 이룰 수 없었다.

중국과의 수교를 이야기할 때 나는 어김없이 대만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 대만입장에서는 동북아(東北亞)에서 자신들과 정식 외교관계를 갖고 자신들의 입장을 살려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해주는 한국이 자신들과 단교(斷交)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국제정세의 변화와 국가 이익을 따지는 입장에서 나는 어쩔 수없이 나름대로의 논리를 세웠다.

『대만이 원하는 통일과 우리 대한민국이 원하는 통일은 이념적인 차원에서 똑같은 것이다. 중국 본토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정치적으로 자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되면 대만측은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우리가 북한을 흡수한다든다 북진(北進)을 한다든가 하는 힘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시장경제체제, 자유 민주주의만 받아들이면 통일하는 것과 똑같다. 나의 남북통일 기본개념은 이를 토대로 이룩되는 것이다. 대만 역시 무기를 갖고 대륙에 침공해 들어가 통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본토의 이념을 바꾸게 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다』

게다가 국제정세로 본 현실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다. 당시의 국제관계로는 일본도 그러했고 미국도 그러했다.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우리가 대만과의 정식 외교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의 우방들이 다 그렇게 해왔는데 우리라고 해서 그들과 다르게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국과 수교해 그들을 시장경제 체제와 자유 민주주의로 빨리 발전할 수 있게 촉진작용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도 대만을 돕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중국측이 수교에 대한 보안 요구

나는 대만측이 서운해하면서도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대만에서 온 특사(特使)들을 만났을 때 나는 이런 심정으로 통일에 대해 논의하고 대화했다. 특히 충분한 시일을 두고 사전통보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더욱 마음이 아프지만 중국측이 북한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우리측에도 강력하게 보안을 당부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비밀협상과정에서 중국측은 『우리도 북한에 사전통보를 안 하겠으니 한국측도 어느 나라에건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때문에 대만이나 일본측에 알려주지 못했다. 만약 사전에 알려지게 되면 북한이 난리 쳐서 중국 내에서도 문제가 생기게 되고, 특히 대만측에 알려주면 비밀을 지킬 리 없는 것은 물론 크게 말썽이 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수교하면서는 경제협력에 대해 전혀 거론한 일이 없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韓中수교 당시에 우리의 교역량은 이미 대만보다 중국쪽과 더 많아 30억 달러 이상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추세가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볼 때에도 2∼3천만의 인구를 가진 대만 시장과 12억 인구의 중국 시장은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다. 특히 대만은 우리와 경쟁적인 측면이 많아 수출 수입이 별로 늘어날 가능성이 없었지만 중국과는 잠재력이 엄청나게 컸다. 결국 金泳三 대통령 정부와 들어와 우리가 모든 지역에서 무역 적자를 보면서도 북방과의 교역에서는 흑자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1991년도에 우리 철강산업, 특히 포철(浦鐵)을 살린 게 중국에 대한 철강수출이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외교철학과 입장은 기본적으로 소련과 달랐다. 중국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金日成을 만나 친하다고 하면서 도와줘 온 사이였다. 그러나 소련에 새로 등장한 지도층, 특히 고르바초프 이후에는 金日成과 면식이 적어 그렇게 의리를 따질 사이는 아니었다.

결국 안보에 있어 우리에게는 중국이 더 중요했다. 소련은 면적이 큰 데다가 기본적으로 유럽쪽에 가까운 나라였다. 중국은 한국과 수교하고 싶어하면서도 먼저 나서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나라가 먼저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소련과 먼저 수교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하며 원교(遠交)를 완성한 것이다.

우리가 북방 외교·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었다

북방정책에 있어 우리가 의미를 부여해야 할 점은 우리 외교가 능동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건국 이래 우리의 외교정책은 줄곧 수동적이었다. 어떤 사태, 예를 들면 駐韓 미군이 철수한다, 북한이 비동맹국 회의에 들어간다고 해야 움직이는 그런 외교였다. 그러던 것이 우리가 동구권 국가나 소련 중국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맺고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회담을 해서 기본합의서를 끌어내게 한 것 등이 우리가 처음으로 선수를 치고 나간 것이다.

중국과의 수교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 꾸준히 외교적인 노력을 경주해 온 결과 얻어진 것이다. 게다가 우리 기업들의 중국진출이 상당한 촉매작용을 했다. 특히 서울올림픽은 우리와의 관계개선에 있어 중국측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중국은 86 아시안 게임 때 서울에 와서 1등을 차지했다. 그 두 행사를 우리가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해 친근감을 표시하고 그것이 1990년 북경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도 연결돼 수교하지 않으면 안될 여건이 완전히 성숙된 것이다. 서로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상황이 되었는데 그것을 일부러 늦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외무부, 유엔가입 비관

중국은 당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국을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韓美관계와 韓日관계 모두 순조로운데다가 韓蘇 양국이 가까워지고 남북회담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東北亞의 장래를 내다볼 때 全세계가 승인하고 있는 한국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게 되어 있었다. 韓中수교의 가능성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한국의 유엔가입 때문이었다. 유엔가입 문제를 추진하도록 외무부에 지시하자 외무부가 『무모하다, 안된다』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틀림없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우리가 다시 신청하면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더구나 소련이 찬성하는데 중국이 찬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중국은 우리의 유엔가입을 받아들였다>

韓中수교에 대한 증언 말미에 盧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퇴임하고 나니까 「중국 수교는 金泳三 정권에 넘겨줄 것이지 왜 그것까지 다 했는가」하고 비판하는 이야기가 있었지』

동석(同席)했던 孫柱煥 전 장관이 말을 이었다.
『韓中수교의 특징은 중국이 서둘러서 수교일자가 정해진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일부러 늦출 필요가 없었어요. 盧대통령 임기가 1년도 안 남았다 해서 수교를 미룬다면 대통령 취임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선서한 것에 反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韓中수교를 너무 서둘렀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기침(錢其琛)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 盧대통령께서 임진왜란을 설명한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우리는 明나라 도움을 받아서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盧 전 대통령 말씀은 우리가 明나라를 지켜주었다는 것 아닙니까.

『내가 양상곤(楊尙昆) 국가 주석을 만나 확인해보니 錢其琛씨가 그대로 전했더구만. 사실 역사에 그렇게 나오잖아요. 일본측이 明나라 치기 위해 길을 좀 빌려달라. 협조하면 전리품도 나눠주겠다 이런 입장이었거든요. 그 대목에서 錢其琛 외교부장이 상당히 감동하는 표정이었어요』

―중국을 방문하셨을 때 양상곤(楊尙昆), 강택민(江澤民), 이붕(李鵬) 이런 분들을 만나셨는데 江澤民이란 분은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원만한 분이야. 합리적이고 모가 나지 않은 분이지요. 뒤에 내가 책을 보면서 느꼈는데 등소평(鄧小平)씨의 사람 기르는 원칙은 모가 난 사람, 협력관계를 훼손시키는 개성이 강한 사람은 다 제끼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를 계획적으로 선발해 길러내드만.

중국의 많은 인재들은 조직을 통해 걸러서 모아요. 이들을 지방에 보직을 주어서 한번 거른다고. 이 과정을 거쳐 잘한 사람은 중앙으로 불러들여 중국의 정책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게 하고, 이것을 되풀이해서 인재를 길러내드만. 일본 사람들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일본보다 훨씬 앞서 있고, 자기들도 배워야겠다고 썼어요. 江澤民씨도 그렇게 길러낸 대표적인 인재라고 생각해요』

―盧 전 대통령께서는 역사적인 사례로써 외교적 설득을 하는 논리를 어떻게 개발하십니까.

『내가 부시 대통령에게 「당신들은 맹방을 꼽는다면 누가 뭐래도 영국 아니냐. 내 얘기가 당신에게 어떻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이 東北亞의 영국이라고 생각한다」이렇게 말하니 부시가 「맞다」그랬어요. 이런 얘기는 어지간한 친밀관계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 그 얘기를 만날 때마다 확인을 하는 사이니까 북방정책에 비판하고 어쩌고 하지만 내가 배짱을 단단히 갖고 미국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지. 미국과의 관계가 불안해지면 북방정책이 힘들어요』

―그런 논리를 만들려면 혼자 생각을 많이 하셔야 되겠는데요.

『물론 생각도 많이 해야 하지만 부딪쳐야 돼요. 궁하면 뭐가 나온다고요. 뉴욕타임스와 미국 상원 등이 서울올림픽을 반대했을 때 내가 워싱턴에 뛰어가서 내가 아는 미국 친구들을 총동원해서 매일 저녁 상원의원들을 초청해다가 「당신들 이래서 되겠느냐. 내가 당신들과 함께 피를 흘렸다. 6·25 때 당신들 피 흘린 것 내가 누구보다 고맙게 생각한다.

그 갚음은 아니지만 혈맹(血盟)의식에서 내가 월남에 가서 싸웠다. 월남에서 나도 부상도 당했고 우리 군인들도 죽고 그랬다 말이지. 그렇게 자유를 지킨 우리가 나라의 발전에 계기를 삼으려고 올림픽을 개최한 건데 당신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여러분들이 金日成이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아는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가」하고 피를 토했다고. 그러자 상원의원들이 무릎을 치고 가슴을 치고 하는 일을 목격했습니다』

조용한 통일을 중국이 반대할 리 없다

―중국은 북한을 설득할 때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인정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불가피하게 한국과 수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더군요. 그러니까 중국은 한국이 대만을 지원하는 것을 차단시키기 위해 수교를 한다고 나온 겁니다. 이걸 보면 중국 외교력이 상당히 차원 높게 보입니다.
『중국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본 거지요』

―그래서 오히려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기 위해 한국과의 수교를 서두른 감이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중국이 韓中수교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는데 수교 막바지에 가서는 우리가 소련과 수교한 것이 자극제가 된 거지요. 원래 전략대로 된 거야』

―앞으로 대만이 북한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그렇게 안 봐요. 대만도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쓴 맛 단 맛 본 나라기 때문에 북한과 수교해서 무슨 이익을 볼 것인가. 전에 한동안 핵 폐기물 가져간다 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 없던 일로 흐지부지됐는데. 수교라는 것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이해관계를 따져야 돼요』

―韓中수교의 연장선상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통일과정에서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또 어떤 역할을 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될 것인지 하는 점입니다.

『중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관여는 하지 않을 거요. 다만 중국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가졌던 연분으로 봐서 북한이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거고. 한반도가 벌써 세계 열강이 연관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가 시끄럽게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북한이 불행한 가운데 뭔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고, 북한도 불행을 극복하고 함께 안정을 찾고 번영하는 가운데 일이 진행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재원(盧載源) 초대 중국 대사가 작년에 통일 과정의 좋은 아이디어를 발표했습니다. 통일 과정에 들어갔을 때 남한의 주권하에 북한을 다스리면서 DMZ(군사분계선)는 국경선처럼 유지해 남북을 분리시켜놓고 북한에 지원을 해서 자생하도록 만든다. 동시에 駐韓 미군은 38선 위로 가지 않고 북한 지역을 일종의 완충지대로 만들면 중국을 안심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아이디어입니다.

『그건 중국이 통일을 방해한다는 전제가 붙는 것 아니겠어요. 중국이 통일을 방해한다는 것은 흡수통일이라든가 북한이 아우성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지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통일을 방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국은 한반도에 미군이란 말뚝을 원한다

―요즘 우리의 일부 식자층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이용한다, 즉 남북한을 분리시켜 남북을 적절하게 유지해 중국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일종의 음모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요. 미국이 과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미국은 한반도에 미군의 말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외정책입니다. 해방 이후 애치슨 라인이 한반도를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반성하고 전략이 수정된 상태거든. 크게 나누어 대서양, 태평양이고 태평양의 중요 포스트가 東北亞인데, 여기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것이 불변(不變)의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우리가 그 힘과 이해를 함께 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해에 상치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불행해지는 거고.

그 힘이 우리의 국력증강과 번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해나간다는 것을 우리의 외교전략으로 구상해야 합니다. 예컨대 북방정책의 최종목표인 시베리아, 연해주에 발전권역을 크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 혼자 힘으로는 버겁고 또 불안합니다. 이것을 적절하게 미국과 콘소시움을 만들어서 가면 상호 이익이 보장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이 함께 있어야지요.

이북에서 주장하듯 미군철수다 뭐다 해서 떨어져 있으면 어렵게 될 겁니다. 또 미국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 금세기를 마감함에 있어 어느 나라가 제일 침략적이고 상대방 나라에 불행을 안겨주었으며, 반대로 어느 나라가 우리를 돕고 혜택을 주었는지를 분석해 보면 역시 미국이라는 나라가 후자에 속한다 이 말이야. 東北亞를 위시한 태평양권의 안정과 번영도 미국이라는 힘이 주축이 됐을 때 보장이 되는 것이지요. 만약 미국이 빠지면 중국과 일본의 충돌, 인도와의 충돌 등 불안한 요소가 있어요』

―우리 역사에서 큰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면 항상 한반도가 불안하고 한국이 약화됐을 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삼국시대 때도 우리가 분열되어 있으니까 당나라 군대도 오고 왜군도 상륙하고 해서 국제전쟁이 됐습니다. 몽고에게 우리가 먹히니까 몽고가 우리를 기반으로 일본으로 쳐들어갔고, 임진왜란이나 淸日전쟁, 러일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충돌되는 지점이 한반도입니다. 때문에 해양세력은 한반도를 통해 대륙으로 상륙하려 하고, 대륙세력은 한반도를 기점으로 해양으로 나가려 하고』

―결국은 한반도가 강해야 한국이 편할 뿐 아니라 東北亞 전체가 안정이 되고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는 뜻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반도가 약해지면 균형이 깨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된 이후에도 상당한 자주국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