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北核 문제와 非核化 선언 내막

「핵 보유하면 우리 안보에 손해」로 판단

<단순히 국가안보라는 논리만을 놓고 보면 재래식 무기보다 최첨단 핵무기가 좋으냐 아니냐 하는 데 대한 해답은 너무나 간단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국제사회 추세를 보면 집단 안전보장이 강조되어 어느 한 나라가 자기네만의 안전보장을 확보할 수는 없다.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정세는 집단 안전보장의 중요성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도 국제사회 여건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역학관계 등등을 고려해서 내려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를 위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핵무기를 보유했을 때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의 안전보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맹방관계로 구축된 집단안보체제에 의해 확립된 것이고, 그 틀 속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고 있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우리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어느 나라가 갑자기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게 되면 이런 힘의 역학차원에서 균형이 무너져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위험한 돌발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대단히 많은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지역에 가장 큰 힘을 갖고, 집단안보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이 이런 위험한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는 한, 설사 우리가 핵무기를 갖고 싶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로 인해 예기치 못할 큰 위험이 닥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서는 요즘에도 「핵무기를 왜 갖지 않느냐」고 말하거나 심지어 「북한이 가져도 같은 민족이니까 우리가 갖?것이 아니겠느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매우 걱정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의 안전보장을 독자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地政學的)인 국제관계에서 독불장군식으로는 절대 안되기 때문이다. 안전보장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에 있어 남의 의사를 무시하고 우리만의 이익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현실 아닌가. 나는 1991년 7월 부시 대통령과의 韓美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우리입장을 정식으로 제기했다. 나는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핵위협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어 한반도뿐 아니라 東北亞 지역 전체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며 『때문에 한국은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될 경우 駐韓 미군 핵무기의 철수를 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시의 약속:『핵우산 계속 제공』

여기서 세 가지 요건이란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의 지속적이고 확실한 제공
▲북한의 모든 핵관련시설 및 물질에 대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 사찰
▲북한의 핵재처리 시설의 건설 중단 및 폐기 등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낸 후 우리가 검토해 온 「비핵화선언안」을 설명했다. 1991년 9월27일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에 배치된 모든 전墟摹ケ綬?철수하겠다』는 「新핵군축선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발표가 있기 나흘 전인 9월23일, 나는 유엔총회 참석중에 부시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가졌다. 다른 주제는 없이 핵문제에 관해서만 논의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이라크의 후세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이라크의 후세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하고『북한이 한국을 통하지 않고 美日과 직접 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남북간의 신뢰구축, 협력, 평화통일을 저해할 것이므로 미국의 對北 직접접촉은 남북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안보문제는 한국이 선도해야 한다』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계속 제공될 것』이라고 재다짐했다. 핵문제는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도 전부터 제기되었다. 북한측은 모든 미군기지를 동시에 사찰하자고 주장했는데, 미군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부했다. 이 때문에 북한측은 『왜 우리 것만 사찰하자고 요구하고, 너희 것은 덮어 두느냐』고 따졌다.

나는 金宗輝 수석에게 『결국 핵이 문제가 되므로 북한이 사찰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세계적인 추세가 반핵(反核)으로 나가고 있고, 한반도에서 핵이 나가더라도 미국의 전술핵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어 급할 때는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핵우산을 항상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만들면 문제는 달라지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미국보다 먼저 비핵화선언을 하고,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기로 결론지었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1991년 9월, 부시 대통령이 「新핵문축선언」을 하기 직전,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후에 비핵화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의 비핵화선언과 관련하여 金宗輝 수석은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비핵화 선언」의 논리

『당시 문제가 된 것 중 하나가 「핵우산」이었는데, 미국은 핵우산을 계속 제공하겠다고 보장했다. 즉 한반도 내에 핵이 없더라도 한반도 밖의 비행기나 함정에서 핵우산을 제공해 한국 안보에는 지장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핵무기 철수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신문들은 핵무기가 여러 군데 배치되어 있던 것처럼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한 군데뿐이었다.

盧대통령이 비핵화선언을 하기 전날 오전, 리스카시 美8군 사령관은 내게 미국의 한국내 핵무기 철수계획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 내용을 盧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미리 준비했던 선언문을 다듬어 그 다음날 「비핵화선언」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핵문제와 관련해 고려한 또 하나의 요소가 북한이었다. 당시 북한은 NPT(핵확산 금지조약), IAEA(국제원자력 기구)의 안전협정에 가입을 했으면서도 비준을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IAEA가 사찰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한을 사찰하려면 비준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일이 과제였다.

또 하나는 사찰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우리만 사찰할 게 아니라 미군도 사찰하자』고 나온 것이다. 미군측은 북한측의 요구를 거절했지만 미국측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아야 명분이 서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신중한 검토 끝에 우리가 비핵화선언을 하게 되었지만 그 후 정부가 들어와 우리가 빠진 핵문제에 대한 협상을 북한과 미국이 직접 하게 된 것이다.

비핵화선언 당시 韓美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 원칙은 「북한과의 모든 협상은 한국의 주도하에 韓美간 협의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핵화선언」과정에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안기부장, 국방부장관, 외교안보수석 외에 외무부장관 등 관계 장관들도 전부 참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느 부처도 이의가 없었다』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으로 돌아가 본다.

<6·25의 고통을 경험하고 우리 한국의 안보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미군이 핵무기를 갖고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야 북한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미군의 핵무기 철수는 불안을 유발하는 요인이었다. 만일 우리와 미국간의 관계가 나빴다면 그 불안은 걷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보따리 싸서 이민(移民) 가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비핵화선언이 핵의 평화적 이용의 길을 막았다는 주장은 핵문제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핵 재처리 시설에서 핵무기가 나오는데 그것만 빼고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핵의 평화적 사용」과 관련하여 金宗輝 수석은 다음과 같이 보충증언을 한 바 있다.

재처리 시설 포기는 불가항력

『비핵화선언이 평화적인 이용의 길까지도 막아버렸다는 비판이 지금도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평화적 이용을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盧대통령 재임중에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련된 연구 개발 예산은 과거 어떤 정권에 비해서도 계속 확충되었다』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데 있어서도 재처리시설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단 재처리 시설을 갖게 되면 핵무기로 직결된다.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킬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金宗輝 수석의 보충 증언을 들어본다.

『핵 재처리 시설은 이미 朴正熙 대통령 때 우리가 가지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프랑스와 맺었던 재처리 시설 도입 협정까지 파기한 일이 있다. 全斗煥 대통령 때는 연구팀을 해체한 일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우방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 재처리 시설을 가지려고 시도했을 때 북한의 핵 재처리 시설 보유를 막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韓美간의 안보관계에도 엄청난 소용돌이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핵 재처리 시설을 가지려 했을 때 원자력 발전소 원료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태 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NPT 체제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다섯 나라뿐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은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핵 재처리 시설을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만 갖고 있는데 10여 년 전에 겨우 허락을 받고 지금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재처리시설을 가질 수 있으려면 미국이 뭐라 하든 경제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 칠 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기술이나 재처리 시설을 프랑스나 미국 등에서 들여오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세계 어떤 나라가 보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심을 살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

<핵 재처리 시설을 갖는다 해도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찰은 받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 및 핵확산 금지조약의 서명·비준국이었다. 핵무기를 미국 등 강대국의 의사에 반해 만들려고 했던 나라들은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다. 동맹관계건 경제관계건 다 깨지고 경제 외교적인 제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로 이라크를 들 수 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핵 문제를 잘 운영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하고 미국의 핵우산 밑에서 안보에 지불해야 할 비용을 미군들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부문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나는 일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일본과는 다르다. 우리가 핵 재처리 시설을 갖겠다고 하면 韓美간의 동맹관계가 깨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북한·소련·중국·일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金宗輝 수석의 보충증언. 『핵문제에 대한 비판을 가만히 들어보면 두 부류가 강한 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보수는 핵무장을 해야 하는데 포기했다고 비판하고, 일부 진보는 미국의 압력을 받아 포기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재처리시설과 핵무기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부내 협의나 추진과정에서는 별로 이의가 없었다』

미국은 우리 허가받고 對北 접촉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 <당시 북한은 우리를 제외시키고 미국과 직접 회담하려고 했다. 그것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우리가 주도해서 하는 것으로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핵문제든 뭐든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다 내가, 한국이 주도한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지원한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다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金宗輝 수석은 이렇게 보충 증언했다. 『북한의 일관된 정책은 한국을 제외시키고 미국과 직접 駐韓 미군 문제를 이야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정 못하면 남한, 북한, 미국 3者회담을 해서 한국은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기가 직접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시종일관 「안된다. 한반도 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해결한다. 너희는 이 해결을 위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여건조성에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직접대화 제안에 미국이 응하려는 것을 우리가 못하게 한 것이다. 단 한번 예외가 있었다. 캔터 국무부 차관-김용순 회담이었다. 처음에 미국은 캔터 차관과 북한 외교부 강석주 차관과의 회담을 갖고 싶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왔다. 나는 盧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양해를 받아 「좋다, 단 한번이다. 그러나 상대는 강차관이 아닌 김용순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한 차례 허용했다』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을 들어본다. <나는 미국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핵무기가 한국내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쪽에 있는 것을 놓아두고 북한 것을 모두 사찰하자고 해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던 차에 金宗輝 수석이 「미군이 핵무기를 철수할 것 같다」는 전망을 하면서 내게 건의를 한 것이다. 나는 그 건의를 받고 「그러면 됐다. 미군의 핵무기 철수를 활용하자」고 했다> 이에 대해 金宗輝 수석은 이렇게 보충 증언했다. 『우리는 비핵화선언을 11월에 하고, 핵부존재(核不存在) 선언을 12월에 확인한 것은 철수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핵화선언을 구상하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가져나가는 시점을 기다렸다가 철수한 다음날 발표한 것이었다. 우리가 미국의 핵철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핵문제에 대한 태도조차 명확히 정해놓지 못하고 있었다면 무척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핵무기가 배치되고 철수되는 것도 모른다는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상의 카드로 활용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盧 전 대통령의 증언. <나와 부시의 생각이 일치한 것도 중요한 점이다. 나는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미군이 배치한 핵무기를 내보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全세계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기 위한 정책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미국측은 이 문제를 내가 주도해서 선언을 내놓기까지 전폭적으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핵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우리나라 입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뒤 북한에 대한 핵관련 협상이 우리 주도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우리는 제외된 채 미국과 북한이 지지부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국정(國政) 책임자로서 핵 보유에 대해 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를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은 보유하는 것이 국익(國益)에 손해라는 것이었다. 朴正熙 대통령도 핵을 갖고 싶어했고, 나 역시 갖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갖는 것이 도리어 불이익이라는 판단에 따라 보유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대한 金宗輝 수석의 보충 증언. 『국제관계를 놓고 볼 때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안보가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많았다. 韓美관계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해 만들기도 전에 북한이 남침하려 들 것이 뻔했다. 이랬을 경우 중국·소련·일본의 태도는 또 어떻겠는가. 따라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노력 자체가 안보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이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북한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안보가 나빠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양면이 있지요.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우방들이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북한 안보가 나빠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너 죽고 나 죽자」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우린 그냥 죽지 않는다」이런 것을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봐요』

한반도 전술핵 배치상황 보고 받았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 구체적인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 핵무기를 쓰게 됩니까.
『兩國에서 합의한 구체적 조건은 없을 거구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적이 사용해선 안될 무기를 사용한다든가 그랬을 때 이걸 친다는 것이지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쓸 때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는 조건은 당연히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당연하지요』

―한국內 미군의 핵 배치 상황에 대해서는 대통령에 취임하신 직후 미국측으로부터 보고 받으셨죠.

이 질문에 孫柱煥 전 장관이 답했다.

『戰術核이 남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것을 정식으로 확인한 것은, 金宗輝 수석의 증언에 의하면 대통령 취임 며칠 후 메네트리 美8군 사령관실에서 金수석에게 전화가 왔답니다. 메네트리 美8군 사령관과 릴리 대사가 「매우 중요한 사항에 대해 盧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리겠다. 여기에는 金수석이 통역을 하고 일체 다른 배석자를 두지 말아달라」고 연락이 왔답니다. 그래서 메네트리 美8군 사령관과 릴리 대사가 와서 「대한민국에 전술핵무기가 어디에 있습니다」하고 보고했습니다. 국방부장관에게도 공식으로 남한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해주지 않고, 대통령에게만 보고를 합니다』

―돈 오버도퍼가 쓴 기사를 보면 한반도에 전술핵무기가 1972년에 7백63기가 있다가 1989년에 1백개로 줄었고, 마지막에는 폭격용 90개만 군산에 남아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사실이 맞습니까.

『숫자는 내가 확인하기 어렵구만. 군산 한 군데에만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盧 전 대통령 말씀 중에 「그 후 정권이 실수해서…」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주요 國政을 후임 정권이 계승 발전시키게 하려면 현임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에게 잘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정 인수인계는 金泳三 대통령 당선자를 직접 만나서 하셨습니까.

『서류로 하는 게 아니고 金泳三 대통령의 경우는 그 전에 주례회동을 계속 했잖아요. 그 때 국가경영에 필요한 분야별 얘기를 한번씩 다 거쳤습니다』

―국정(國政)을 인수인계하기 위해서 金泳三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신 적은 없습니까.

『물러나는 대통령과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이 國政을 직접 인수인계하는 전례가 없어요. 도장을 찍고 뭐하는 게 아니라 비서설이나 정부 각료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서류를 인계하는 것이지요』

―결국 盧대통령께서도 金泳三 대통령의 능력이나 그 분의 역사관을 誤判하신 것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誤判도 많이 한 거지. 그런데 저 양반 좋은 장점도 많이 있구나 하고 느꼈단 말야. 저래서 단점을 보완해 가는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대통령 될 수 없었겠지요』

盧 전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다. 『참 묘하게 됐어. 國政운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취약점이 노출됐지요. 그렇다면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이 보완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클린턴 정부도 역시 취약점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金日成이 이 점을 이영한 거야. 그게 참 운이 나쁘지요』

부시 대통령의 장단점

―부시 대통령과는 인간적으로 잘 통했습니까.

『그런 폭이지요. 자연히 그렇게 되더구만. 1987년에 내가 후보 때 미국 방문해서 부시 후보를 처음 봤지. 나중에 둘 다 당선되어 부시 대통령이 먼저 한국을 방문했어요. 특히 안보문제는 뭐 어짜고 할 것 없이 둘이가 척척 맞아갔지요. 미국은 자유진영이 지도국 아니냐. 혈맹(血盟)의 입장에 서게 되면 우리가 모자라고 부족해도 취약점은 묻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가 골치 아픈 것은 통상문제였어.

단독회담 할 때는 통상문제가 전혀 안나오는데 확대회담 할 때 장관이 이걸 가지고 나온단 말이야. 심지어 미국 농업장관이 문제를 엄청나게 갖고 확대회의에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부시 대통령에게 「농업장관 참석시키지 맙시다」하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뺐더라고.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그래서 둘이서 조크도 하는 사이가 되었지. 점심 먹고 난 뒤에 내 귀에다가 「2층에 올라가보자」그래요. 2층을 덮쳐서 부인네들 깜짝 놀라게 하자고 해서 둘이 살금살금 올라가 놀래키기도 했지. 이렇게 되니까 나중에 테니스 같이 치고 그렇게 친밀도가 두터워지더라고요』

―부시 대통령도 외유내강(外柔內剛) 한 분이죠.
『그렇지요. 통상문제에 대해서 부시 대통령이 많이 카버를 해주었어요』

―金宗輝씨 이야기를 들으니까 통상문제가 정상회담 주제였던 것을 안보문제로 바꾼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 일도 있었어요』

―평양에서 세계 청년학생축전이 벌어졌을 때 朴哲彦씨가 참석해서 시끌시끌한 적이 있었습니다.
『축전에 참석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고 자기들끼리 채널이 있잖아요. 이것을 하다가 참석하게 됐을 거구만.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북한 인권 문제 제기는 신중하게

―요즘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현상이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임지를 보면 金正日을 폴 포트와 같은 살인마라는 식으로 나오고, 유럽에서 지식인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국제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일어나 어느 단계에 가면 북한을 히틀러나 폴 포트처럼 공격하는 여론이 형성될 것 같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남북대화하는 입장이라서 그렇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문제, 정치범 수용소라든가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언젠가는 민주시대 관행에 맞게 가야겠지. 다만 내가 정부 입장을 이해한다 할까, 이런 점은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불행한 일을 서로 자초하는 일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봐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어떤 방법으로 저 엄청난 사람이 희생되고 고통받는 것을 건져낼까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 이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부기구(NGO)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바람직해요』

―現代그룹이 5∼6년에 걸쳐서 북한에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9억5천만 달러를 현금으로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金正日 비자금으로 들어가 어떻게 쓰여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어떻게 보십니까.

『그것도 걱정하는 사람이 많더만. 내가 듣기에는 관계 각료들 사이에서도 그런 것이 논의됐다고 들었는데. 그런 걱정스런 점이 한편 있고, 그렇더라도 돕는 입장을 가져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입장이 있어요. 북한이 이제 다 굶어 영양실조가 되어 가지고 엉망진창 상태가 되어 있는데 어느날 무너져서 통일이 된다 했을 때 「남한도 너무 했다. 저걸 왜 제대로 놔뒀나. 어떤 방법이든 먹여서 저런 꼴을 안 만들었어야지」이런 원성을 듣지 않겠느냐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입니다.

이게 참 착잡한 거요. 우리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해서 원조를 했는데, 엉뚱한 데로 가버렸다는 것을 1백% 믿어 가지고 「그러면 주지 말자. 식량을 줘도 도움이 안된다」하고 나서면 또 굶어죽는 문제가 생긴다 이 말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원조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에 현금이나 비료 같은 전략적 물자를 주면 이게 뭐가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르니까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런 걱정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요. 지금 결국은 관광료 받아서 그대로 (북에) 들어가니까, 저런 방법밖에 없을까 하고 염려가 되지요』

―퇴임하시고 나서 6년여가 흘렀습니다. 6년 동안 북한은 아래서부터 서서히 붕괴되어 올라오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정책 기본전략도 평화공존이 아니라 통일 대비쪽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1988년 이 무렵은 평화공존, 남북화해, 교류가 맞는 것 같은데, 그 뒤에 너무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 평화 공존하면 분단고착이고, 붕괴중인 북한을 연명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면 결국 분단이 오래 가는 것 아닙니까. 차라리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통일지향 쪽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체제를 강화시킬 필요는 없고, 큰 유혈 없이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내가 옛날에 당에 있을 때 어려움을 겪는 데도 뾰족한 수가 안나와요. 그래서 내가 당직자들에게 참고 기다리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문제도 장기적 안목과 종합적 관점으로 유연하게 대응해야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독일도 통일 과정을 보게 되면 서독 정보기관이 동독에 침투해서 뭘 한 경우는 없었거든요.

독일의 어떤 전문가들도 한 두 달 전에 동독이 저렇게 무너진다고 예상한 사람이 없었어요. 형태는 다르지만 역시 북한에도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겠느냐 이렇게 봐요. 유일하게 통제력을 갖고 있는 것이 군대인데, 만약 휴전선에 군인이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돌발했을 때는 수백만의 피난민이 넘어올 거야.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내가 이야기한 것이 있어요』

지휘체제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붕괴

盧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북한 체제의 특성과 인민군의 성격상 장단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역시 문제는 저렇게 굶어죽으면서도 최고 상관 金正日에게 총부리를 갖다 대는 일은 아직 없어요. 이걸 가만히 보면 日帝시대 생각이 나요. 세뇌교육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일본인들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고취시켜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경을 사람 잡아먹는 흡혈귀로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서양 사람들 상륙하면 여자고 뭐고 다 죽인다는 식으로 교육시켰는데 우리는 어릴 때 그렇게 믿었어요. 북한은 이보다 더하다 이 말이오. 그러기에 지난번 KAL기 폭파 사건 일으킨 김현희(金賢熙)도 어버이 수령을 위해서는 목숨을 던질 수 있다고 하는 상태거든』

盧대통령은 『그러한 충성심이 언제 무너지느냐. 이게 키』라고 말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 독재국가도 마찬가지지만 통제하는 수단, 지휘체제가 있는 한은 절대 안 무너져요. 이라크도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휘체제가 무너지면 질서가 없어 보이는 자유진영보다도 더 약해져 버립니다. 그걸 6·25때 우리가 목격했어요. (인민군은) 국군이 북진(北進)할 때 와르르 무너져 버렸어. 헌병 둘이서 7백여 명의 인민군 포로를 이끌고 2백리 떨어진 포로 수용소로 가는데, 헌병이 다리가 아파 절룩절룩 절고, 총을 포로에게 맡기고, 포로에게 교대로 업혀서 2백리 행군해서 포로수용소로 갔어요.

그 강했던 인민군대가 그 모양이 돼버린 것은 지휘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여러 가지 전례에서도 볼 수 있어요. 2차대전 때 독일군대와 미국군대가 싸울 때 지휘체제가 확립돼 있으면 독일군이 강하고, 지휘체제가 무너지면 미국군이 더 강한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났어요. 북한 인민군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金正日을 중심으로 하여 지휘체제에 놓여 있는 간부들이 북한체제가 무너지면 자기들이 완전히 죽으니까 공포심을 조장시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고 봐요』

―황장엽(黃長燁)씨는 제일 싸게 치는 통일은 金正日 암살이라는 겁니다. 金正日만 암살하면 다 끝난다는 것이죠. 그 내부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심만 제거되면 북한은 하루 아침에 무너진다는 겁니다. 무슨 도덕적 기반도 없고, 윤리도 없는 마적집단이라는 것이죠. 黃長燁씨 한번 만나보십시오.

『그럴 기회가 있겠지요. 내가 부르면 또 뉴스가 되니까』

盧 전 대통령은 자신의 증언이 혹시나 다른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지나 않을까 조심하는 입장이었다. 본인의 증언이 누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국가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했다. 孫柱煥 전 장관은 「심장질환으로 입원」운운한 보도를 염두에 둔 듯 『그런데 오늘 심장이 나쁘신 분이 장장 여덟 시간 동안 말씀을 하신 겁니다』하고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