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이상(理想)이고 그것이 시행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세계의 역사에서 많은 惡法(악법)을 볼 수 있다. 악법이란 순기능(順機能) 보다 역기능(逆機能)이 많은 법을 말한다. 그 예는 굳이 애를 써 찾을 것도 없이 많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한 법은 모두 악법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독립의지를 가진 우리의 애국지사들에게 족쇄를 채운 ‘조선 사상범 보호관찰령’ 같은 것이 한 예가 될 것이다.

1920~30년대 미국의 금주법도 그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었던 금주법은 술의 밀거래가 성행하고 갱의 발호를 방조, 미국 사회를 무법천지의 암흑세계로 몰아넣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자유당 정권 때의 ‘사사오입 개헌’ 같은 것이 전형적인 악법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법은 프랑스 혁명 후 소위 공포정치 때의 몇 몇 법들이다. 당시에는 ‘공화정(共和政)을 반대하는 자는 죽인다. 공화정을 위해 한 일이 없는 자는 죽인다’는 것이 법이었다 한다. 지금도 기록에 나타나 있는 ‘혐의법(嫌疑法)’은 ‘누구든지 반혁명, 반공화의 혐의가 있는 자는 처형한다’고 되어 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누구든지 ‘찍히면 바로 죽는판’이었으니 매우 소름끼치는 법이다.

그리스에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법이 있었다. 나는 소년시절부터 그리스하면 찬란한 문화의 나라, 민주주의의 발원과 이성과 합리, 합법의 전범(典範)과 같은 나라로 생각해 왔었다.

그런 그리스에서도 司法殺人(사법살인)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賢者(현자) 소크라테스의 처형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기원전 399년 그리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모호하고 막연한 죄를 씌워 사형을 선고했다. 항간에는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도피를 권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악법도 법이다’ 라고 하면서 독배를 들었다고 하나 최근에는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죽으라면 죽어 주마, 더러운 세상!’ 하고 저주를 퍼붓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어쨌든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두고두고 그리스 법의 만행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또 한 가지, 지난 날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이 그 나라의 ‘陶片追放(도편추방)’이라는 것이다. 기원전 480년부터 시행된 陶片追放은 법이 아니고 하나의 제도(制度)였다.

기원 전 561년, 그리스에는 귀족과 평민 간의 대립 상태를 이용하여 僭主(참주)가 등장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라는, 이 독재 권력자는 폭정(暴政)을 하고, 더욱 그 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기까지 했다. 그 僭主政治(참주정치)는 반 세기 만에 시민들의 힘으로 무너졌지만 그리스인들은 시민 위에 군림하는 참주가 다시는 출현하지 못하도록 묘안을 강구했다.

즉, 僭主가 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써 내, 그 숫자가 6천 개가 넘는 사람을 10년간 국외로 추방을 한 것이다. 이 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는 법이 아닌 시민 일방의 명령으로, 기소와 재판은커녕 당사자는 자기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았다.

페르시아를 상대로 한, 살라미스 해전 때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싸워 아테네 뿐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구한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도 이국땅에서 자살로 최후를 맞은 것도 陶片追放이 빚어낸 비극 중 하나였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 陶片追放 제도를 그리스인들의 피해망상이 부른 해프닝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지금의 우리 현실을 보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 제도의 운용이 잘못 되어 일부 피해자가 있었고 병폐가 있었지만 그리스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만큼은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從北(종북)이라는 문제로 상당히 소란스러운 것 같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체제와 자유, 민주주의를 저해하거나 위협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나의 持論(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