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신설 초기의 교육은 처음부터 엄격했다. 그래서 중도 탈락자가 많았다.

제1기생은 1946년 2월8일~3월18일까지 3차에 걸쳐 총 113명이 입학하여 1947년 2월7일 61명이 졸업했다. 제2기생은 1947년 2월7일 오후에 86명이 입교하여 1948년 12월15일 48명이 졸업했다. 제3기생은 1947년 9월2일 136명이 입교하여 1950년 2월25일 54명이 졸업했다.

이렇게 입학생 대비 졸업생 비율이 낮은 것은 성적불량, 적성불량, 교칙위반 등의 벌칙으로 퇴교당하는 생도도 많았지만 그 당시에는 생도들 가운데도 좌익 프락치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몇 년 후에 현실로 밝혀졌다.

북한의 명령을 받은 남로당은 해군 좌익 승조원들에게 1948년 5월10일 남한의 총선거를 전후하여 함정 납북을 지령했다. 그해 5월7일 JMS-311(통천)에 이어 5월15일 YMS-517(고원)을 납북했다.

정부수립 이후에는 1949년 5월11일, YMS-508(강화) 부장 이송학이 정장 이기종과 정대사령 황운서를 사살하고 함을 북으로 몰고 갔다.

JMS-307(단천), 301(대전), 302 (통영)도 좌익 승조원들에게 납북 위기에 처했으나 승조원들의 저지로 성공하지 못했다. 같은 해 5월. PG-313(충무공) 정을 비롯하여 JMS-305(두만강), 307(단천), YMS-502(경주), 505(김해), 506(강계), 510(강경) 등 무려 7척의 부장들이 모의하여 집단으로 함정을 북으로 몰고가려다 사전에 발각되었다.

바로 그 무렵인 5월4일, 육군 제8연대 제1대대장 표무원 소령과 제2대대장 강태무 소령이 훈련을 빙자하여 대대병력을 이끌고 월북한 사건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후 1962년 4월28일, 동해 해상에서 경계 근무중이던 PC-707(오대산)함에서 납북 미수사건이 발생했다. 01시 45분경 북한 공작원으로 잠입해 기회를 노리던 최방순 수병이 권총을 들고 조타실에 난입하여 함수를 북으로 돌려라고 협박했다.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최성모 대위(부장 해사 9기)가 복부관통상을 입고 전사하고 3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범인은 납북에 실패하자 권총으로 자살했다.

해사 1기생부터 3기생 사이에는 생도들 가운데 좌익 프락치가 아주 많았다. 학교 당국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혼란한 시국이라 '빨갱이'들을 가려낼 수 없었다. 좌익 프락치가 얼마나 많았는지 밤중에 실종된 생도가 날이 새면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시체가 되어 발견될 정도였다. 북한에서 공산주의가 싫어 내려와 사관학교에 입교한 생도들은 "여기도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자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2기생들 가운데 좌익 프락치가 많았다. 그래서 2기생 가운데는 임관도 하기 전에 '전사'한 생도가 많다고 한다. 2기생 박무호 생도(대령 예편)의 증언이다.

故, 박무호 대령은 예편 후 싱가포르로 이민을 가서 1970년~1990년대에 선식업을 경영했다. 그때 배를 타던 필자가 이 증언을 들었다. 필자도 해군 출신이다.

추석이 되었는데 고향이 먼 생도들은 외출을 해도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학교 급식은 부실했고 배가 고프니 고향 생각은 간절했다. 특히 이북 출신 생도들이 더 외롭고 쓸쓸했다. 어느 진해 생도가 그런 동기생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평양일고를 졸업한 박무호 생도도 초대를 받았다. 진해 생도의 집은 여좌동에 있었다.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가옥 2층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피끓는 생도들을 저마다 조국의 앞날을 걱정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한 생도가 일어나서 이런 제안을 했다.

"동기생 여러분! 조국의 앞날을 위한 우리들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하여 우리 다같이 이 종이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읍시다!"

그러자 몇몇 생도가 "좋소! 찬성이요!" 하면서 박수를 짝짝 쳤다. 아무런 반대 없이 연판장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무호 생도는 뭔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양에서 많이 보았던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반대는 할 수 없엇다. 그랬다가는 언제 목이 졸려 변기통에 거꾸로 처박힐지 몰랐다. 연판장이 박무호 생도 앞에 왔다. 박무호 생도는 연판장에 이름도 쓰지 않고 훌러덩 바지를 벗어내렸다. 그러고는 껄껄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사내자식들이 손도장이 다 뭐냐! 남자는 거시기 도장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딨어! 나는 거시기 도장을 찍겠어!"

박무호 생도는 털방망이를 꺼내 공이 끝에 인주를 벌겋게 묻혀 연판장에 꾹 눌렀다. 그 꼴을 보고 멋모르는 몇몇 생도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좌익 프락치들은 속으로 이를 갈았겠지만 그 후에 다른 위해는 없었다. 그날의 모임에 대해서 함구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대하민국 정부 수립 후 함정 납북 사건이 다발하자 그날 연판장에 서명을 하고 인장을 찍었던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동창회 명부에 '전사'라는 기록만 남기고. 언제 어느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기록도 없이…그러나 박무호 생도는 대령으로 예편을 했다. 거시기 도장이 박무호를 살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