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회는 문만 열었다 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무법천지 서부활극의 술집에서나 일어날 엽기적 행동으로! 100% 참가, 100% 찬성이라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와 겉모습은 정반대처럼 보이나, 속을 들여다보면 똑같다. 북한은 1명이 휘두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뼛속까지 주눅 들어 독사의 독에 중독된 개구리처럼 수백 명이 고분고분 폭군의 뜻만 따르고, 한국은 소수의 적나라한 폭력과 폭언에 장악되어 독사가 우글거리는 굴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어린이나 샌님들처럼 수백 명이 이리저리 떼 지어 몰려다니며 저마다 제 한 목숨 살려고 발버둥치며 여론의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맹활약하던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아니, 그 때보다 더 심하다. 그 당시는 민주의 깃발을 든 김영삼과 김대중의 직접 지시대로 움직이면 되었다. 지금은 그들의 간접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서 저마다 서로 어르신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떠벌리며 폭력과 폭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절대다수가 여당이 제출하면, 실은 대부분 정부 입법이지만, 야당이 결사반대하여 토론과 토의는 원천봉쇄되고 다수결이란 거수기에 의해 합법화될 수밖에 없었던 무더기 통과 법률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일부는 위헌소지를 일으키면서 김영삼과 김대중과 김대중의 대리인에 의해 개정되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법률 자체가 민주국가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 외에는 그대로 존속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김영삼과 김대중이 입만 떼면 암담한 독재시절이라고 단죄하는 한강의 기적 시대에 만들어진 법률은 대부분 선진 민주 국가에 걸맞은 법률이어서 그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일부 개정하는 것 외에는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의 세 정부에서 정부 주도로 입법한 법안은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나무랄 데가 없는 법이었다. 따라서 야당이 제대로, 아니 최소한의 협조만 해 주었으면, 날치기 통과할 필요가 원천적으로 없어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오순도순 여야가 이성과 논리와 합의에 의해 입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정부의 법률안이 훌륭하다는 것과 손볼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단지 그들이 독재정권이라고 단정한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법률안이었기 때문에 토론 자체를 거부하고 어쩌다 크게 선심 쓰는 척 대화의 문을 연다고 합의해 놓은 다음에는 시시콜콜 의사진행 방식이나 위원회 구성 문제에 대해 딴죽을 걸어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가게 만들어 시간에 쫓긴 정부와 여당이 어쩔 수 없이 그들끼리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도록 덫을 놓은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는 모든 잘못을 정부와 여당에 덮어씌우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장외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동네 반상회나 초등학생의 학급회보다 못한 그들의 국회운영에 넌더리가 나서 정부가 정치활동을 규제하면, 그것은 바로 독재의 명명백백한 증거가 되어 무한투쟁과 폭력시위와 대(對)한국 원조 중단의 거룩한 명분이 되었다. 그들에게 국익은 없었다. 민주도 없었다. 오로지 인기영합주의와 이전투구 식 선거에 의한 정권 쟁취, 그것만이 목적이었다. 야당은 국회의원 선거나 의정활동이나 김영삼과 김대중만 잘 받들어 모시면 되었다. 무조건 반대와 결사 반대, 폭언과 폭력이면 만사형통이었다. 공천도 그들의 마음에만 들면 되었고, 당선도 그들의 지원유세만 받으면 되었고, 의정활동도 그들의 마음에만 들면 되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 박정희와 전두환은 독재--365일 이것만 외치면 되었다. 정부의 엘리트들이 더 이상 손볼 필요 없는 법안을 들고 나오면 그것은 읽을 필요도 없었다. 제목만 쓱 훑어보고 꼬투리를 잡아 당장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듯 결사 반대하면 되었다.
제대로 된 국회의원은 무슨 법은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해야 한다. 30년이니 40년이니 민주투쟁이니 의정활동이니 자랑하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이 제안하여 입법한 법률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팔뚝과 어깨들이 입법한 법률로 어떤 게 있는가. 율사 출신도 학자 출신도 많고 많았지만, 그들은 상품의 번드레한 포장지밖에 안 되어 일단 김영삼과 김대중 아래로 들어가면 입에 거품을 물고 독재타도만 외치면 그만이었다. 민주의 탈을 쓴 두 독재자의 눈에만 들면 되었다.
그들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헌법에 저촉되고 건전한 상식에 동떨어진 것이라도 그들의 아첨꾼들이 만들었다 하면, 일방통행의 공청회와 친여 시민단체의 여론몰이와 밀실담합의 작전과 방송의 선전선동으로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뚝딱뚝딱, 꽝꽝 악법을 양산했다. 특히 김대중과 그의 대리인 노무현은 남북관계법에서 북한의 유일무이한 자유의지 소유자 1명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률을 양산하고, 그에 따라 필히 국회에서 여야가 국익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예산 문제를 아예 국회에는 가져가지도 않고 대통령의 지시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귀신도 모르게 또는 노골적으로 마구 퍼 주었다. 결과는 편지 한 통 오가지 못하는 냉전과 2천만 영양실조의 현재진행형이다.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의 과거완료형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아랫것들을 시켜 제대로 민주를 실천한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 때는 여야가 정말 화기애애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아랫것들에게 씌운 족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바로 노태우의 6·29 선언 후에 새로운 헌법을 만들 때였다. 왜 그랬을까. 5년 단임의 대통령제 때문이었다. 그러면 틀림없이 둘이서 언젠가는 한 번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아랫것들에게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5년 단임의 대통령제 그것뿐이었다. 나머지는 여야가 알아서 하면 되었다. 과연 그들은 한 번씩 청와대 주인이 되었다. 그 후에는 이들이 정치에서 손을 뗐는가? 천만에!
여전히 그들은 왕관 없는 왕이다. 그들이 평생 쌓은 명예가 조금이라도 훼손될라 치면 반드시 나서서 국회의원 299명보다 영향력이 크고 현직 대통령보다 무게 있는 말씀을 들려 준다.
--직접 민주주의의 촛불이 타오르도다!
--민족화해의 황금 항아리에 금이 가다니!
--민주당의 근성을 보이도다!
--독재의 딸이 무신!
--나는 민주의 화신!
독재타도라는 미명하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무소불위의 봉건영주 역할을 양분하여 대한민국의 국회를 전세계에서 가장 한심한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이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도 국회에 관한 한 한국보다 훨씬 낫다.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도 한국의 국회보다는 낫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폭력과 폭언에 대한 면책특권으로 악용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 있으랴! 김영삼과 김대중의 유산을 정리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국회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다.
(2009.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