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인가, 김훈 작가가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목소리를 많이 냈다. '꽃은 피었다'로 쓸까, '꽃이 피었다'로 쓸까. 이를 두고 며칠씩 고민했다는 소위 문장의 '탐미주의자'에 가까운 작가가 어느 날부터 TV에 출연해 문학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사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명안전 시민넷'이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김훈은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문제의식과 분노는 옳은 것이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을 보면 김훈이 떠오른다. 그때 김훈의 영향을 받았나 싶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산재사망 사고가 잦았던 SPC삼립공장에 가서 회장을 앉혀놓고 “월급 300만 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그 목숨 값이 300만 원은 아닐 것"이라고 질책을 했다. TV에 생중계도 됐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 행사 뒤 고용노동부와 검경, 국세청 등에서 SPC삼립에 칼을 들이댔을 게 뻔하다. SPC삼립는 곧바로 '밤에는 기계를 안 돌리겠다'는 초과야근 중단 등을 내놓았다.

당시 본지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그때까지 외부행사 중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행사이지만 자주 하면 대통령이 민간 부문까지 일일이 개입한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얼마 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건설노동자의 감전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엔씨'를 실명으로 직격했다. 담당 장관에게는 고용노동부 징벌적 배상제와 건설면허 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포스코이엔씨 사장은 즉시 사임했다.

이 대통령은 한번으로 부족했던지 며칠 뒤 국무회의에서 같은 건을 또 언급하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 사고는 대통령실 '직보’를 지시했다.

바로 이날 경찰과 노동부는 총 70여 명을 투입해 포스코이엔씨 본사와 건설현장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포스코이앤씨의 전국 103개 건설 현장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건설 현장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포스코이앤씨의 협력업체는 2,100곳에 달한다. 지난해 포스코이앤씨가 협력·장비·용역업체 등에 쓴 외주비용은 5조 9,550억 원이라고 한다.

'시공 능력 7위'인 포스코이앤씨가 부도나는 것은 물론이고 협력·장비·용역업체들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의미다. 거기서 일해온 직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의 가족 생계가 벼랑끝으로 몰리게 됐다는 얘기도 된다.

이들의 숫자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103개 건설 현장과 2,100곳 협력업체라면 대략 수만 내지 수십만명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밥그릇을 잃게 된 것이다. 이게 이 대통령의 '정의로운 분노'가 낳은 연쇄적인 파급 효과다. 곧바로 전개될 이런 장면이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보였는데 이 대통령과 그쪽 참모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나.

작가 김훈의 분노와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분노 표출 방식은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고재해자가 가장 많이 나온 건설사는 대우건설(1,931명), GS건설(1,390명), 현대건설(1,239명), 롯데건설(961명), SK에코플랜트(884명), 삼성물산(837명), 현대엔지니어링(676명), DL이앤씨(649명), 포스코이앤씨(567명) 순이다.

최근 5년간 사고사망자도 현대건설(17명), 롯데건설(15명), 대우건설(14명), DL이앤씨(13명), 현대엔지니어링(9명), GS건설( 8명), HDC현대산업개발(8명), SK에코플랜트(7명), 삼성물산( 5명), 포스코이앤씨(5명) 순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사고재해사 수에서 9위, 사고사망자 수에서 10위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에게 '시범 케이스'로 찍힌 것이다. 이 건설회사가 단지 재수가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정권이 포스코에 대해 어떤 의도가 작용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포스코이엔씨의 감전당했던 외국인노동자는 8일 만에 의식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