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南의 장례식 비교>

북한에서 태어나 기억나는 유년기 때 즉 1960년대 장례식을 보면 곡소리를 내며 침울한 분위기였다. 장례식 가서 웃으면 정신이상자로 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상가집에서 밤새며 술먹고 장기나 주패를 뜨며 시간을 보냈지 옛날처럼 그러지 않았다. 배고픈 공산당 세상에서 그래도 술과 고급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990년대 남한에 와서 장례식을 보니 장례식 같은 느낌을 들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잔치하는 분위기처럼 웃고 이야기 나누고 한다. 천국에 먼저 가고 뒤늦게 가서 만나겠으니 뭐 그리 슬프게 굴 것 없다는 기독교적 식이어서만도 아니다.

저를 미국 농무성 초청 한국대표단 일원으로 추천해주어 최고의 농업대국을 잘 볼 기회를 준 한미곡물협회 박영인 회장 장례식에서이다. 등산을 썩 좋아하셔 70대 나이에 탄자니아 켈리만자로 산에 올라갔다가 저산소증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기독교식이 전혀 아니었다. 고인과 대학 동창이었던 한 연사가 얼마나 웃기는 얘기들을 하는지 장례식장이 웃음 바다가 된다. 아무튼 남한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불고 침울한 분위기를 본 적은 없다. 마치 오랜 만에 서로 만나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반가운 장소였다.

나 역시 오늘 탈북자로서 30년 전 남한에 왔을 때 따뜻히 대했던 고 최종걸 교수 집안과 친지들을 다시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그 중 30년 전 만났다가 이번에야 다시 만난 자매이다. 농담 반 진담 반 혼사 말까지 있었던 처녀였다.

당시 대학생으로 너무 어려서 성사될 형편이 아니었지만 대신 잊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온갖 봉사를 하느라 정신없는 자매를 30년 만이지만 즉시 알아보았다. 그 자매도 나를 알아보자 너무 반가워 한다.

탈북자를 난생 처음 만났는데 자기 보고 <처녀 동지!>라고 했다고 웃기는 기억을 한다. 사실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매가 그럼 말을 첫 마디로 할 정도이면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고인과 사모, 그 친지들은 하나같이 좋은 분들이었다. 기독교적이었지만 그 전에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들이었다. 그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남한 정착에서 북한 사역을 30년이 지난 지금껏 일편단심 이어지게 한 동력이라고 할 정도이다.

고인이 72세, 별세는 아직 젊은 나이이다. 중학교 교사에서 대학 교수, 박사 학위와 창조 과학회, 예비역 장교 협회 등 많은 활동의 증거로 헤아릴 수 없는 화환들과 조문객들로 증명된다. 이런 것을 보면 짧은 인생만은 아니다.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하신 것이다.

건강식과 환경을 주장하는 교회에서 착실하게 사셨지만 뜻하지 않은 암으로 운명하셨다. 불건전한 생활이었으면 더욱 빨리 암이 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주어진 운명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하신 장수 인생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