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 지 열흘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열흘을 생각해보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불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자신은 역사적 회담을 했는데 ‘미국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길 것입니다. 김정은을 믿고 ‘이제 핵위협은 사라졌다. 미국 국민들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됐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국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언론은 일방적으로 김정은에게 당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믿고 있던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 그리고 부시 공화당 정부에서 일했던 전문가들까지 비판을 쏟아 부으니, 난감한 정도가 아니라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습니다.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들의 말이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트럼프의 말도 들쑥날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북한으로부터 미군 유해 200구를 송환받았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김정은과 통화할 예정이다”라고 지난 17일 말했지만 현재까지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김정은은 마치 회담결과를 상관에게 보고하듯 중국의 시진핑에게 달려가, 2박3일 동안 후한 대접을 받으며 시진핑의 노리개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김정은은 “중국과 한 가족이 되었다. 같은 참모부다”라는 얘기를 하니, 트럼프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김정은에게 잘해주면 김정은도 성의를 보일 줄 알았는데 현재까지는 그런 표시가 전혀 없다, 이러다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고 선거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이 그런 분위기를 요약해서, ‘북한이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트럼프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인내심이 이제 바닥으로 가고 있다’는 칼럼을 썼습니다. 강인선 지국장은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국내에서 제일 먼저 보도했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 처음 보도한 기자입니다. 워싱턴 내부의 돌아가는 사정을 아주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트럼프가 현재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합의문에 CVID, 즉 완전하고 검증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핵군축 회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문 내용도 ‘비핵화의 방향으로 노력해보자는 것’일 뿐 전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나 폼페이오나 계속 ‘김정은이 완전한 CVID를 약속했다’고 하면서 문서에도 없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합의 문서에 기록된 내용 말고, 면전에서 ‘나를 믿으라’는 식의 비핵화 약속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트럼프와 부하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 세 사람의 말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트럼프는 근거를 대지 못하고 ‘김정은이 핵폐기를 약속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오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합의문에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추궁하면 신경질을 내고 있고, 볼턴은 최근 다시 등장해 옛 주장을 반복하며 ‘시간 끌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들이 보이는 증세는 ‘불안감’으로 진단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라는 사람의 행태를 보면, 자존심이 강합니다. 거짓말을 수없이 하는데, 이것 또한 강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 같습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만인 앞에서 창피당하는 것 아닐까요? 트럼프는 모든 면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마치 강박관념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좋아합니다. 푸틴, 시진핑, 김정은, 필리핀의 두테르테, 현재 독재화되어 가고 있는 터키의 에르도안 등. 이런 성격의 사람이 ‘김정은에게 당했다’라는 생각에 미치고, 이것이 공론화가 되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평소 트럼프와 아주 친한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회담 전, “김정은이 트럼프를 갖고 놀려고 하다가는 죽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현재까지는 김정은이 트럼프를 ‘갖고 놀려고’하는 상황입니다. 트럼프는 이 상황에 편승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서 김정은을 갖고 놀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자기 소신을 벗어나 ‘김정은이 유능하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을 사랑한다. 북한 주민도 그를 사랑한다. 앞으로 그는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이다. 나와 김정은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관계가 생겼다’는 식의 극찬을 해왔습니다.

김정은이 이제 보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유해송환? 유해송환은 비핵화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유해를 보내주면 미국에서 이를 크게 보도해서 몇 달은 이 이슈로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또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북한은 이미 수명이 끝난 것을 폐쇄하지, 절대 쓸모 있는 것을 폐쇄할 리 없습니다. 지난 4월 20일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 결정서에도 분명하게 쓰여 있습니다. 김정은은 ‘풍계리 실험장은 사명을 다했으므로 폐쇄한다’고 했지, 앞으로 핵무력을 발전시키지 않기 위해 폐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은 최소한 핵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거짓말 한 것은 없습니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말을 오해했던지 아니면 자신의 희망사항이 보태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김정은이 완전히 핵을 없애기로 결심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때입니다.

이제 북한이 쓸 수단은 과거와 똑같습니다. 회담을 하기는 하는데, 아주 지루하게 끌 것입니다. 북한은 회담을 질질 끄는 데 선수입니다. 2003년에 6자회담이 시작되어 6년 계속되는 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9.19 합의라는 문서는 하나 나왔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모든 북한과의 회담의 종착점은 ‘검증’입니다. 그런데 ‘우리 미국 팀이 들어가서 과연 핵 실험장을 제대로 폐기했는지 확인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때부터 진행이 안됩니다. 검증을 하려면 목록이 있어야 하는데 목록 제출 단계부터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트럼프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는 겁니다. 지금 확실한 것은, 북한은 분명 시간끌기를 할 것이라는 것. 그러면 트럼프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트럼프는 이미 모든 얘기를 다 해버렸습니다. ‘핵 위협이 사라졌다. 여러분 안심하고 주무셔도 됩니다’는 말까지 했는데 되어가는 모양이 ‘속았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말을 해서 이것을 거둬들이기 어렵다’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것이다’하면서 북한이 하는 쇼에 맞춰주기 위해 끌려가는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의 인질이 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고 인정하면 망신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이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화를 내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경질을 내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초강경 쪽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보는 전문가들이 꽤 있습니다. 다음단계는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것. 즉,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對北(대북)제재를 강화하고 그야말로 군사적 옵션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도 곤란해집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는 문재인 정부를 치켜세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5월, 한 달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습니다. 5월 20일 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에게 와서 한 말이 사실과 다른 것 아닌가. 북한에서 나오는 얘기와는 너무 차이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로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 상황이 회담국면으로 가버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믿는 형식이 돼버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비핵화 실천단계로 들어갔을 때는 ‘역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사실이 아니었구나. 김정은에게 속은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트럼프는 화를 낼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한반도에서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1938~39년에 있었습니다. 1938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만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냥 히틀러에게 갖다 바치는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영국의 쳄벌레인 수상은 ‘이제 평화가 왔다’고 자랑하고, 영국의 언론과 여론은 열광합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는 독일인 거주지역만 장악한다고 약속했는데 아예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장악하고 괴뢰국가로 만들고 일부 영토는 다른 나라에게 떼어줘서, 아예 한 나라를 사실상 지도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영국의 쳄벌레인은 완전히 낭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여론도 돌아서 버렸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렇게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히틀러가 한 가지를 더합니다. 폴란드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드러냅니다. 폴란드를 침공할 태세를 갖추게 되니, 그제서야 영국은 ‘이 이상은 안된다’며 선을 긋습니다. 한 번 속은 것으로 충분하니 앞으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선전포고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합니다.

과연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원래 폴란드를 침공하게 되면 이를 도와줄 나라가 원래는 ‘소련’이었습니다. 소련은 히틀러와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입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원래는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불구대천의 원수인데, 폴란드를 침공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손발을 묶어야겠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침공 1주일 전에,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습니다. 영국은 깜짝 놀랍니다. 영국으로서는 독일을 치려고 할 때 소련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폴란드는 완전히 고립됩니다. 독일이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됩니다. 뮌헨 평화협정 딱 1년 만에 전쟁으로 들어가버린 것입니다. 이런 쳄벌레인의 역할을 만약 트럼프가 하게 된다면, 그 다음의 상황은 끔직한 사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군사적 옵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정리해보면, 첫째 제재망을 다시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對北(대북)제재를 재개하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국제사회가 따라줄까요? 더구나 우방국으로부터 현재 불신을 받고 있는 트럼프입니다. 중국은 협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재가 안 먹히면 군사적 옵션만 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트럼프가 속았다고 판단할 때 폭발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상황을 주시해야 합니다. 이 상황을 김정은도 알 것입니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너무 잘해주게 되면 김정은도 부담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뭘 하긴 해줘야 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핵은 절대 포기 안할 겁니다. 그렇다면 속임수밖에 없는데 속임수가 한국에는 통해도 미국에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감시하고 전문가들이 있고 강력한 민주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김정은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김정은이 지금은 최고조로 기분이 좋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현실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한반도 핵 게임이 흥미진진한데 문제는 한국민들의 안전입니다. 제3자로서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더구나 핵 전 무장해제 상태인 한국민들이 걱정입니다. 각자 도생의 길을 각자가 생각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