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사고를 단순히 표현해내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도구입니다. 5천년 동양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한자는 우리의 미래세대가 인성(人性)을 함양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문명의 도구입니다. 한자는 조어력(造語力)과 축약력(縮約力)이 뛰어나고 語彙를 풍부하게 하는 문자이며,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想像力)을 불러일으키는 글자입니다. 예를 들어, 벼 화 禾, 고를 화 和, 가을 추 秋, 시름 수 愁를 가만히 보기만 해도 그 뜻이 절로 떠오르고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에 아데나워는 그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나 연료만큼 학교와 책, 영화, 음악, 극장 그리고 젊은이에게 ‘상상력’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상상력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그 뒤 서독의 초대 수상이 되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 등이 보편화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은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바로 '상상력'이 풍부한 인간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동안 선진국의 뒤를 쫒아가던 시대를 뛰어넘어, 창의적인 사고력으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나가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 시대적 과제는 우리의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思考를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풍부한 語彙力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자 교육이 필수입니다. 한글이 우리말의 ‘고유어’를 표기하는 문자로는 더 없이 훌륭하고 과학적인 문자이지만, 우리말의 ‘한자어’를 표기하는 문자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제 이 객관적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 미래세대에게 한자 교육을 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국가사회와 기성세대에게 있습니다.

한자는 중국이 만든 문자임에 반하여 한글은 우리가 만든 문자이므로 오로지 한글만을 써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밭을 경작하는 데에 곡괭이와 호미가 모두 필요한 것임에도 농부가 ‘호미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곡괭이는 다른 나라가 개발한 것이니 곡괭이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글과 한자가 공생(共生)할 수 있는 규범적 길을 열어야 합니다.

한글과 한자는 서로 상충하는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 관계이며, 한글과 한자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문자문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현대과학은 무지(無知)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지식보다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인 지식체계가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가 한글과 고유어만으로는 불완전한 것임을 기꺼이 인정하고, 漢字와 더불어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토를 조성하여 우리말과 글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때입니다.

문화(文化)란, 그 기원과 발생지와 관계없이, 하나의 문화공동체에 의하여 수용되어 다른 문화와의 경합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함으로써 그 문화공동체의 고유한 문화로 새롭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라틴어가 서부 및 중부 유럽에 퍼져 나간 뒤 지역별 방언으로 쪼개져, 각각이 각국의 언어가 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청구인들은 국가가 ‘한글과 한자가 조화롭게 공생하는 문화풍토’를 조성되도록 규범적 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는 더 이상 漢字를 외국문자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한글과 동등한 共用문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는 적절한 漢字교육을 통하여 한자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우리 국어의 어휘를 질량(質量) 양면에 걸쳐 풍성하게 하여 자신의 인격을 마음껏 발현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그리고 적정 수준의 한자가 들어간 교과용도서를 통해 한국어의 정확한 이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자를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 주어야 합니다.

한자는 우리말 속에 뜻이 녹아 있는 글자여서 배우기 어려운 글자가 결코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한자는 초‧중‧고등학교의 학습을 쉽고 재미있게 해주는 기초이며, 그렇게 배운 1,800자 정도의 漢字 지식은 인생 100년의 시대에 평생에 걸쳐 활용할 수 있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의 자원입니다. 국가는 이 좋은 문명의 도구를 버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게 하여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하여 창조적 문화를 꽃 피울 수 있도록 법적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1970년에 한글전용을 지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 당시 문교부장관에게 친필로 공교육과정에서 한자수업을 하도록 지시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2016. 4. 29.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 문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