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섯>은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반디라는 필명을 가진 소설가가 국내에서 발표한 단편소설집 《고발》에 실려 있는 일곱 개의 단편소설 중의 하나이다.
흔히 體制(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은 비록 문학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더라도 그 주제가 주는 영향력, 상징성, 역사성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이 소설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주제가 다소 한정되어 있는 단점은 있지만 충분한 예술성을 가진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선 연상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장편소설 《의사 지바고》였다. 이러한 연상 작용은 공산정권하에서 지상낙원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권력의 폭력에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고 마는 개인의 철저한 무기력을 다룬 주제의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야기 진행에 앞서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에 대한 敍景的(서경적) 묘사를 시도한 부분이 몹시도 닮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느낌은 이내 소설에 스쳐지나가는 ‘馬牙木(마가목)의 열매’라는 단어로 더욱 확인된다. 《의사 지바고》에 등장하는 그 무수한 배경에 대한 멋진 묘사들을 다 기억할 수 없음에도 유독 마가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그 부분만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단어의 생경함 때문에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마가목이 반디의 단편소설 <빨간 버섯>에도 등장하는 것이다. 반디는 《고발》 253쪽에 이렇게 서술하였다.
“사람들이 가을 새라고 불리는 때까치가 빨간 마가목(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열매를 쫓느라 길가 덤불에서 푸드득거렸다.”
서가에 꽂힌 《의사 지바고》를 꺼내 마가목이 서술된 부분을 찾아 다시 읽어 본다.
“산마가목의 가지에는 피리새와 박새 등 엄한의 노을처럼 산뜻한 빛깔의 깃털에 싸인 작은 겨울새들이 커다란 나무에 앉아 열매를 하나하나 고르듯이 쪼아 물고 조그만 머리를 뒤로 홱 젖히고 목을 길게 늘여 가까스로 삼키고 있었다.” (박형규 역. 열린책들, 425쪽, 2013년)
공산체제를 비판하는 두 소설가의 시선에 이 나무가 함께 붙잡힌 것이 나로서는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마가목이 맺은 열매들이 굶주린 새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먹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도 춥고 긴 북녘 겨울을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땔감. 이 필수품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하는 그 기막히고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서경적 묘사로 암시해 둔 것일까.
두 번째로 받은 인상은 문장을 읽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북한 소설에는 처음 접하는 남한 독자들을 위하여 편집자가 생소한 단어의 뜻을 괄호 안에 넣어 표기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어휘와 표현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행히도 그러한 표현들이 난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수한 함경도 방언으로 쓴 鄭芝溶(정지용)의 詩(시)를 읽는 느낌을 주어 작가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까지 하였다.
<빨간 버섯>은 일곱 번째의 작품이다. 앞선 여섯 단편 소설들을 통하여 북한 체제의 추악상을 은연중에 묘사하던 작가는 이 소설에 와서는 더 이상 간접적인 방법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작가 심중에 감추었던 마음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들을 큰 소리로 외친다.
작가가 피토하듯 외친 말들이 무엇이었던가. 겉보기에는 화려하게 보이나 먹으면 죽게 되는 빨간 독버섯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잔혹한 악마적 본성을 가진 북한 공산체제를 뿌리채 뽑아 버리자는 절규가 아닌가.
이 부분에 와서 반디는 스스로 작가라는 옷을 벗는다. 이제는 문학성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차라리 문학성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을 외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이 외침으로 말미암아 잃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자유를 구속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생명을 무시하는 독재 체제를 하루 속히 허물어 달라고 처절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반디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남한 사회와 지구촌에 던져준 이 무거운 숙제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가?
늘 가져왔던 질문을 또 해본다. 나는 지성인인가? 지성인이라면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하고 있는가. 그 반응에는 행동도 포함되어 있는가. 포함된다면 그 행동은 무엇인가. 소설가 반디는 그의 목숨을 걸고 빨간 독버섯을 어서 뽑아달라고 한국과 세계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데.
다시 마가목의 열매로 돌아가자. 마가목 열매가 붉은 것과 독버섯이 붉은 것은 같다. 빨간 마가목 열매는 눈 덮인 산과 들판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한 겨울새들에게 생명을 주는 먹이이다. 허기진 이들의 눈앞에 드러난 붉은 버섯은 먹음직하게 보이나 그것은 결코 허기를 채워주지 않는다. 죽음을 줄 뿐이다.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릴 것인가. 무슨 생각을 더 해보아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빨간 독버섯을 먹고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어서 가서 빨간 독버섯을 뽑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네가 할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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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담보로 몸보다 먼저 탈북시킨 작품
북한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풍자한 북한 현역작가의 단편 소설 모음집 《고발》(332쪽, 1만2천원, 반디著, 조갑제닷컴)이 출간됐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의 공인公認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인 저자 ‘반디’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을 지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체제 고발을 위한 펜을 들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수집하여 작품에 녹였다.
원고 입수 과정: 《김일성 선집》에 싸여 넘어오다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작품을 하나둘씩 쌓아나갈 즈음, 평소 반디와 교분을 나누고 있던 친척 중 한 명이 탈북 결심을 털어놓는다. 처자식이 있는 반디는 자신이 움직이기에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해 친척의 탈북에 자신의 작품을 맡기기로 한다. 원고를 받아든 친척은 지금은 자기도 빠져나간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으니 탈출할 길을 마련하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떠났다.
수개월이 지난 후 낯선 청년 한 명이 반디의 집으로 찾아와 말없이 편지를 건네주었다. 탈북에 성공한 친척이 쓴 편지로, 청년에게 원고를 건네주라는 내용이었다. 반디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원고 뭉치를 꺼내 주었고, 그의 작품은 《김일성 선집》 등에 싸여 중국을 거쳐 자유와 희망의 땅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최고의 문학적 선동
반디는 일곱 편의 단편을 <탈북기>에서 시작, <빨간 버섯>으로 끝나도록 배열했다. 탈북이라는 소극적 저항에서 독재타도의 외침으로 발전하도록, 의도적으로 순서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대물림되는 ‘출신 성분제’에 절망하며 탈북을 결심하는 <탈북기>,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덧커튼을 달았다가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유령의 도시>, 해방 후 첫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던 ‘마차 영웅’이 공산주의의 미래가 신기루였음에 좌절, 아끼던 느티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고 죽는 <준마의 일생>,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여행 제한’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사연을 다룬 <지척만리>, 길을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어버이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그린 <복마전>. <무대>는 보위부원 눈에 비친 북한 체제의 연극성이 주제다.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서 반디는 본색을 드러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산실産室인 당사黨舍를 타도하자고 외친다. 적어도 반디의 상상 속에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타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피눈물에 뼈로 적은’ 소설
《고발》의 가장 큰 의미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비판정신의 소유자가 목숨을 건 글쓰기를 했다는 점이다. 반디가 《고발》 때문에 체포된다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은 반디가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글을 쓴 동기가 분노였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이 소설은 북한 사람들이 읽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북녘 상황에 분노하는 문학인이 적었다는 점, 소설과 시의 소재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점은 한국 지성사知性史의 가장 큰 오점일 것이다. 서구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비호한 것이었듯,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은 김일성을 비호하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디의 《고발》은 잔인한 압박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문학의 존재증명이며, 북한체제뿐 아니라 남한 지식인에 대한 고발장이다.
| 책속으로 |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鐵印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은 물론, 민혁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44페이지 <탈북기> 나도 모르게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결혼 후 뒤늦게이긴 하지만 새 생명이 움터 자라고 있었다. 부끄러워 아직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어미는 그 생명이 복되기만을 바랄 것이다. 한평생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만약 그런 어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이기 전에 죄인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죄인이 될 것이다. 오늘 내일 중으로 꼭 산부인과에 가야겠다.
-45페이지 <탈북기> “저기 저 마르크스가 내놓은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 …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이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이오.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게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가 ‘토영삼굴兎營三窟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69~70페이지 <유령의 도시> 이밥이며 기와집이며 주렁지게 달린다는 열매들을 바라고 한뉘를 허위단심 달려온 자기에게, 그 열매들 대신 차디찬 쇠붙이만을 이마빡에 달아준 병신 같은 저놈의 느티나무를 선로공들에 앞서 자기가 요절내고 싶었노라고….
-111페이지 <준마의 일생> 송아지 눈처럼 순박해 보이는 그의 눈자위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글썽거렸다. 솔뫼라는 고향이 그 어디 도쿄나 이스탄불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 나라 제 땅 안에 있는 고향이 이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곳이 되었다니…. 허락한다면 천리든 만리든 걸어서라도 떠나보련만 그마저 허용하지 않는 ‘여행 질서’였다.
-125~126페이지 <지척만리> 갑자기 치미는 자격지심에 심장의 피가 왈칵 끓어올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도둑질을 했나, 살인을 했나? 내 나라 내 땅에서 어머니 병문안 가는 게 이리도 죄란 말인가, 이리도!’
-134페이지 <지척만리>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 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180페이지 <복마전> “지금 저 조의장弔儀場에선 벌써 석 달이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214페이지 <무대> 홍영표는 바로 남편이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는 큰 숙이 어머니나, 제일 굶는다 죽는다 하는 해주댁 같은 사람들의 조의弔意 모습을 특히 눈여겨보고자 조문객들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218페이지 <무대> 허윤모의 질척한 시선은 조금 전 고인식이 군중의 머리 너머로 바라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시당 청사-빨간 버섯-를 직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독소毒素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禍根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으스러지게 주먹을 들어 쥐고 ‘벽돌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허윤모의 가습 속에는 고인식이 미처 외치지 못한 절규가 처절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277페이지 <빨간 버섯>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반디 ‘서시序詩’)>
-307~308페이지 |

추천사 | 어둠의 땅, 북한을 밝히려는 반딧불이 되어_도희윤都希侖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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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 유령의 도시 준마의 일생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빨간 버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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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비화│북한현역작가의 북한체제 비판 소설은 이렇게 넘어왔다_김성동金成東 월간조선 기자 해설│피눈물에 뼈로 적은 고발장_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독후기1│읽기가 불편한 소설_이지영李知映 조갑제닷컴 기자 독후기2│불쌍한 사람들_김청솔 독후기3│솔제니친 vs 북한의 반디_김광진金光進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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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어·북한말 소사전 |

| 저자·반디 | 1950년 生.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