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소련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10월 28일(日) - 13일차>
13일 간 진행된 쿠바 미사일 사태는 이날로 종료됐다. 약속대로 미국은 쿠바를 침략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다. 물론 비공개적으로 미국은 터키의 미사일을 없애기로 했다. 모스크바 라디오는 소련이 협상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며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공개했다.
이날 케네디 대통령은 후버∙트루먼∙아이젠하워 전직 대통령에게 유선으로 쿠바 사태 종료를 보고했다. 케네디는 이들에게 소련이 터키 미사일 철수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통해 협상을 이뤄냈다고 거짓말을 했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두 사태가 원만히 해결돼 다행이라며 케네디를 격려했다. 그는 현 상황을 계속 주시하겠다고 밝히며 쿠바 협상은 끝났지만 독일의 베를린 등에서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전문이다.
<케네디: 여보세요?
교환원: 네.
케네디: 혹시 장군님…
교환원: 네 바꾸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케네디: 여보세요?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장군입니다. 대통령님.
케네디:여보세요, 장군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번 사건에 대해 궁금해하셨을 것 같아 추가 사항을 보고드리겠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흐루시초프로부터 우리가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 쿠바의 소련 미사일과 기술자들을 철수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오전에 그는 우리가 터키에 있는 미사일을 철수하면 쿠바 미사일을 제거하겠다는 내용을 전해왔습니다.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성명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또 메시지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결될지 조금 검토해 봐야 합니다. 그들이 기술자와 미사일을 제거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젠하워:그럼요. 대통령님 그런데 그가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았나요?
케네디:아닙니다. 우리가 쿠바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유일합니다.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쿠바를 침략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미사일만 없어진다면 우리가 훨씬 성공적입니다.
아이젠하워:잘됐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그냥 그가 그의 약속을 지킬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약속을 해놓고 우리를 망신시키지는 않을지.
케네디:맞습니다.
아이젠하워:내가 볼 때는 그가 매우 회유적으로…
케네디:네 맞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할 일은 계속…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직 쿠바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권을 챙길…
아이젠하워: 그게 내가 원한 전부요.
케네디:그들이 또다시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면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제 생각에는 다음 달 말 즈음에는 우리가 베를린 문제와 관련해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흐루시초프가 한 발 뒤로 물러나기도 했고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약속을 지킬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젠하워:대통령님, 제 경험상 이들을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注 사람이나 각종 문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베를린이나 쿠바나 어떤 것이든 말입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하려고…
케네디: 맞습니다. 계속 상황을 주시하겠습니다.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장군님.
아이젠하워:고맙네. >
아이젠하워의 “그런데 그가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았나요?”와 “혹시 약속을 해놓고 우리를 망신시키지는 않을지…” 등의 발언은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도를 보여준다. 다음은 케네디 대통령이 트루먼 대통령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케네디:여보세요.
트루먼:네 여보세요, 해리 트루먼입니다.
케네디: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트루먼:나는 아주 잘 지내고, 이번 결과에 매우 만족…
케네디:네 우리는 지금 계속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진행 상황을 알려드리려 연락드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그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매우 긍정적이었는데 12시간쯤 지난 토요일에는 터키의 미사일을 언급하는 전혀 다른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기존에 제안한 것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아직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곳의 미사일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흐루시초프가 그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문제가 베를린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가 쿠바에서 한 발 물러났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더욱 강경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상황보다는 지금이 낫습니다.
트루먼: 제대로 하고 있군요. 계속 그렇게 하기를..(통신 불량) 그리고 혹시 조언이 필요하다면 제게 연락해주십시오. 미국의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라면…
케네디:(웃음)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트루먼:연락해줘 감사합니다.
케네디:감사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음은 케네디 대통령과 후버 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케네디:금요일 밤에 메시지를 받았고 토요일에는 터키 문제에 대해 언급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그들이 좀 더 타당했던 기존의 제안을 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제 상황을 지켜볼 건데 추가 사항을 말씀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약간의 진전은 있습니다. 후버:(통신 불량)
케네디:제 생각에는 지금 리듬을 이어가면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면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후버:…
케네디: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안녕히 계세요. >
녹음 상태가 좋지 않지만 통화 내용으로만 보면 당시 88세로 晩年(만년)을 보내던 후버 대통령은 쿠바 사태와 관련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흐루시초프, “정찰기로 도발하면 戰爭 불가피”
28일 흐루시초프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쿠바 사태 관련 마지막 성명을 전달한다. 다음은 이 성명의 전문이다.
< 친애하는 대통령님:
당신이 27일 보낸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당신의 책임감과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과 미국 국민들이 공격용이라고 주장한 무기들에 대한 우려를 잘 이해합니다. 실제로 이 무기들은 어마어마한 무기들입니다. 저와 당신 모두 이 무기들이 어떤 무기들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분쟁을 빨리 해결하고 미국인들과 평화를 원하는 저와 소련 국민들이 모두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공격용이라고 주장하는 무기들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소련으로 다시 운송될 겁니다.
대통령님, 제가 전에 편지를 통해 전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하려고 합니다. 소련은 군사물품을 비롯해 쿠바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쿠바 정부와 국민들이 침략의 위협에 처해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적선들이 아바나에 공격을 가했습니다. 이 같은 공격은 무책임한 쿠바 망명자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어디서 공격을 가했는가입니다. 이 쿠바인들은 자신들만의 영토도 없으며 그들 국가로부터 도망을 다니는 사람이고, 군사 작전을 펼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즉, 이는 누군가가 이들에게 아바나를 공격할 무기를 쥐여줬고 쿠바 영해에서 해적 활동을 하게 했다는 겁니다. 우리 세대에서 해적 활동을 하는 선박을 발견하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카리브해의 미국 선박들이 집중된 것이 모두 확인되는 것처럼요.
이러한 상황에서 해적선들이 쿠바를 공격하고 평화로운 화물선에 해적 행위를 했습니다. 그들이 영국 화물선을 공격했다는 것도 알려졌습니다. 즉, 쿠바는 쿠바를 침략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단체로부터의 공격 위협을 받았습니다.
쿠바 국민들은 외부 개입 없이 그들만의 삶을 추구하고 싶어합니다. 이는 그들의 권리입니다. 그들이 자국에서 일을 해 얻은 과일들을 마음대로 먹고 싶어하는 것을 누구도 욕할 수 없습니다. 쿠바로의 침략 위협과 쿠바 주변에서 발생한 긴장 상태는 쿠바 국민들로 하여금 안보 불안감을 갖게 하고 새로이 평화로운 삶을 꾸려가려는 그들의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소련 정부는 침략 행위를 막기 위해 방어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방어적인 목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당신은 공격용이라고 주장하지만 방어용인 물품들을 보냈습니다. 쿠바가 침략을 막을 수 있도록 이를 지원한 겁니다.
당신이 1962년 10월 27일 당신은 물론이고 서방세계 어느 곳도 쿠바로의 어떠한 공격이나 침략을 가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존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쿠바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저는 당신에게 모든 상황은 소련 관계자들에 달려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군인들에게 앞서 언급된 곳의 추가 공사를 멈추고 소련으로 철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27일 편지에서 말했듯 유엔 관계자들이 미사일 기지가 확인하게 할 준비가 됐습니다.
당신이 제가 약속한 것과 우리가 미사일 기지 해체 명령을 내린 것을 통해 현재 분쟁을 해결할 모든 조건이 충족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위험한 현재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핵무기와 로켓 등을 비롯한 위험한 무기들이 넘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당신과 제가 서로 협력한다면 이러한 긴장 상태를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또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 국가 간의 데탕트에 대해 몇 가지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눠왔고 합리적인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 계속 논의할 준비가 됐습니다. 우리는 원자와 핵폭탄 등의 추가 생산을 하지 않는 방안과 국제사회의 긴장을 완화할 방법을 계속 논의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제가 당신 말을 믿기는 믿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쿠바를 침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더라도 쿠바 국민들에 대한 지원과 책임감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주려고 합니다.
대통령님 당신을 비롯한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저희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화 이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소련은 지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평화로운 노동의 과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10월 혁명 이후 놀라울 정도의 성장과 물질∙정신∙문화적 가치를 이뤄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가치를 즐기고 있으며 꾸준한 노동을 통해 평화와 사회적 성장을 이어가길 원합니다.
대통령님, 軍 정찰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이에는 여러 의견이 오고 갔습니다. 1960년 우리는 영공을 침범한 미국의 U2기를 격추했습니다. 이와 관련 당신은 과거 정부의 위법 행위였다고 밝히는 올바른 입장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임기가 시작된 이후도 미국 U2기가 사할린 지역을 침범하는 행위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에 항의하는 의견을 8월 30일에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위법 행위가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발생했으며 재발 방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의 날씨가 실제로 좋지 않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신이 우리 영공에서 비행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더라면 날씨가 안 좋아도 우리 영공을 침범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즉, 이는 펜타곤에서도 다른 나라 영토를 침범하는 위법 행위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더 심각한 사건은 10월 28일 발생했습니다. 당신의 정찰기 한 대가 추코트카 반도쪽의 우리 영공을 침범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이게 뭡니까? 도발입니까? 당신의 정찰기는 우리 모두 전투준비태세를 갖춘 긴장 상태에서 이 같은 행위를 범했습니다. 침범한 이 비행기를 핵 폭격기로 오인할 수도 있던 것 아닙니까? 미국 정부와 펜타곤은 꾸준히 핵 폭격기 순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으니까 말입니다.
당신은 이를 통해 지금과 같은 긴장 상황에서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쿠바 국민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희망 사항을 전달하겠습니다. 당신은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쿠바에 있는 저희 측 사람들 보고에 따르면 미국 비행기가 쿠바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전쟁이 없고 쿠바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게 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우리 사람들이 쿠바에 있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협정을 통해 우리는 쿠바 정부에 장교들과 교관들을 비롯해 기술자∙농학자∙동물원 관리자∙트랙터 운전사 등의 민간인 등을 파견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걱정됩니다. 대통령님, 미국 비행기가 쿠바 영공을 침범하는 행위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리는 양국이 분쟁에 다시 휘말리지 않게끔 서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쟁은 매우 짜증 나고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별력을 갖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 우리는 어떠한 나라 국민보다 평화를 중요시할 겁니다. 우리는 히틀러와 참혹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 국민은 정부를 믿으며 정부는 국민과 국제사회에 소련이 도발을 당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줍니다. 이런데도 만약 누군가가 우리를 도발한다면 그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죽음에 이르는 전쟁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理性(이성)이 결국은 승리해 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의 안전이 보장될 것을 확신합니다.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과 소련∙미국∙쿠바 대표부 간 진행되는 현재 협상과 관련해 소련은 쿠즈네초프 외무차관을 뉴욕으로 파견해 현 상황을 해결하려는 우 탄트 총장의 노력을 돕기로 했습니다.
흐루시초프>
극명히 갈리는 케네디의 對蘇∙對國民 성명
케네디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은 뒤 흐루시초프에게 電報(전보)를 보냈다. 다음은 전보의 일부다.
<추코트카 반도쪽 영공을 침해했다는 미 항공기에 대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어떠한 무기도 장착되지 않았으며 사진 촬영 장비만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알래스카 지역에서 북극 등을 정찰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소련 상공을 날게 됐습니다. (중략) 이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예방 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사태 해결을 알리는 對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 설치 계획을 중지하고 유엔 감시하에 공격용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합니다. 이는 평화를 위한 매우 중요하고 건설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카리브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추가 사항을 유엔 사무총장과 논의할 계획입니다. 저는 국제사회가 쿠바 사태의 교훈을 통해 군비 경쟁을 멈추고 국제사회의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길 바랍니다. 이는 바르샤바 조약과 나토 국가 간의 군사적 대치 상황뿐만 아니라 중요한 자원들을 무기로 만드는 데 낭비해 긴장을 심화시키는 모든 국가들에 통용됩니다.>
로버트 케네디와 도브리닌의 만남, 8년 뒤에야 공개
이상이 쿠바 미사일 사태 13일 간의 기록이다. 이 13일간 68세의 노장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과 45세의 젊은 케네디 대통령은 수차례 편지를 나누며 氣싸움을 펼쳤다. 흐루시초프의 편지는 훈계를 하는 인상을 주고 케네디의 편지는 그의 절박함도 전해지지만 형식적인 문구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브라운 대학 국제관계학 연구소는 1987~1992년 사이 케네디의 보좌관들과 소련 당국자, 피델 카스트로 등을 비롯한 쿠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당시 쿠바에는 소련제 핵탄두도 도착해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소는 카스트로가 흐루시초프에게 “이 미사일들을 쏘거나 잃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이 주피터 미사일을 쿠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철수했다는 사실은 1980년대 후반 들어서야 대중에 공개됐다.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27일 저녁 아나톨리 도브리닌 駐美 소련 대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케네디는 口頭(구두)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케네디 법무장관과 도브리닌 대사가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역시 쿠바 사태가 발생한 지 8년 후의 일이다. 민주당 大選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던 케네디 법무장관은 1968년 암살당한다. 그가 숨진 지 1년 후인 1969년 그의 자서전 성격의 책 ‘13일: 쿠바 미사일 사태 회고록’이 발간됐다. 이 책에서 케네디 법무장관은 도브리닌 대사와 27일 저녁 만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주피터 미사일 철수가 논의는 됐지만 거래 조건은 아니었다고 했다.
러스크 국무장관이 터키 미사일 철수 제안
1970년 서방세계로 유입된 흐루시초프 서기장의 회고록에도 이날 회담 내용이 상세하게 언급되지는 않았다. 1974년 발간된 그의 두 번째 회고록 ‘흐루시초프의 기억: 최후 증언’에도 이날 회담은 아주 짤막하게 다뤄졌다.
로버트 케네디-도브리닌 회담의 결정적 증거는 소련이 ‘개방’을 뜻하는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펼친 뒤인 1989년 1월 공개됐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던 시어도어 소렌슨 케네디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연설문 작성자)는 자신이 직접 주피터 미사일 철수 내용을 담은 협상안의 교정을 봤다고 밝혔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비밀문서 해제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당시 회담 문서를 종합해 본 결과 27일 딘 러스크 국무부 장관이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자고 처음 제안했다. 이날 모임에는 케네디 대통령∙맥조지 번디 특별보좌관∙러스크 국무장관∙맥나마라 국방장관∙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로즈웰 길패트릭 국방부차관∙조지 볼 국무부 경제국장∙르웰린 톰슨 전 駐소련 외교관(흐루시초프 전문가)∙시어도어 소렌슨만 동석했으며 이들은 모두 이 사실을 오랜 기간 비밀에 붙였다. 맥조지 번디는 1988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비밀은 새어나가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우리 9명 중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이날 논의된 내용을) 발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는 (주피터 미사일 철수 제안이) 동맹국을 배반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소련에게도 외부 발설을 금지하라고 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도브리닌 대사에게 이 같은 제안을 할 시 소련이 만약 이를 공개하면 모든 약속을 철회할 것이라고 전달하도록 지시받았다”고 했다.
실각 위기에도 비밀 지킨 흐루시초프
실제로 이날 케네디-도브리닌 密約(밀약)은 20여 년간 비밀로 유지됐다.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1964년 후임자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派에 의해 실각을 당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숨겼다. 당시 실각 이유 중에는 쿠바 사태에서 소련이 미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난과 흐루시초프가 소련을 전쟁 위기로 몰았다는 양쪽의 비판이 큰 요소로 작용했다. 실각의 주원인은 농지개혁 실패와 그가 스탈린의 이념을 계승하지 못한다는 강경론자들의 비판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소련에서 실각은 정치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명까지도 위협했다. 하지만 흐루시초프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정계를 떠나는 大人(대인)의 모습을 보였다. 흐루시초프는 퇴임 연설에서 “나는 늙고 지쳤다.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해라. 나는 중요한 일들을 했다. 스탈린에게 그의 이념이 우리와는 더 이상 맞지 않으며 퇴임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걸 꿈이라도 꿔본 사람이 있었겠는가? 이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공포는 사라졌으며 우리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한 일이다. 나는 싸울 마음이 없다”고 했다.
소련 개방 후 공개된 문서에는 흐루시초프의 성격이 자세히 드러난다. 그는 의사결정에 있어 그의 보좌관이나 KGB의 첩보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모스크바에 있던 미국인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고 쿠바에 전략 핵을 보내기로 결정을 내릴 때 만났던 사람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였다. 프로스트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自作詩를 낭송하는 등 대표적인 親케네디 인사였다.
흔히 쿠바 미사일 사태 해결의 主役(주역)을 케네디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전쟁을 불사한 대범함과 보좌진의 치밀한 계획이 쿠바 미사일 철수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自國(자국) 안보만을 놓고 보면 미국이 실질적 승리자인 것은 맞다. 케네디 대통령과 보좌진은 미국이 氣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선전했다. 이는 모두 터키의 주피터 미사일 철수 계획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딘 러스크 당시 국무장관은 쿠바 사태와 관련 “우리는 눈싸움을 벌였고, 상대가 눈을 먼저 감았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13일간의 쿠바 사태 기록들을 보면 소련 역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았다. 미국 본토로의 선제공격 카드를 잃기는 했지만 터키의 미사일을 없애게끔 했기 때문이다. 문서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自國 안보를 위해선 우방국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국가다.
이상 소개한 쿠바 사태 13일 간의 기록은 끝까지 비밀을 숨기려던 首腦部(수뇌부)와 이를 파헤치기 위해 수십 년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史料(사료)다.
내용들은 존 F 케네디 도서관 자료와 당시 협상의 중심에 나섰던 고위 관료들의 회고록, 소련 기밀 문서를 검토한 미국 역사학자들의 논문 등을 토대로 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