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간에 붙이는 머리글

 가장 힘 센 職群인 언론인과 법률가에게 바친다

 북한엔 1명의 존엄, 남에는 5000만의 존엄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의 한 主題(주제)는 고문이었다. 경찰, 검찰, 안기부, 보안사 등 공안기관의 고문과 조작이 자주 폭로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인권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다.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의 全斗煥(전두환) 정권을 몰아붙여 그해 6월29일의 ‘민주화 선언’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4·19 혁명이 최루탄을 맞고 죽은 김주열 학생의 屍身(시신) 사진이 기폭제가 되었듯이 1987년의 민주화는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이 경찰에서 물고문을 당한 데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主 동력원이었다. 한국 현대사는 두 학생의 ‘억울한 죽음’에 의하여 두 차례 전환점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수백 만 명의 ‘억울한 죽음’에도 끄떡 않는 북한정권과의 차이는, 2013년 10월에 통일부가 북한정권의 對南(대남)비방에 관하여 낸 짧은 성명이 요약해준다.
 <북한의 對南 비방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 허황된 비난에 일일이 대응하고 싶진 않지만 한가지만은 꼭 지적하고자 함. 북한에 단 1명의 존엄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5000만의 존엄이 있음.>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단위는 개인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腦髓(뇌수)에 해당하는 제10조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가권력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가진 개인이 모여서 만든 대한민국은 5000만 개의 왕국이 있는 나라이다. 인간답게 사는 이가 한 명뿐인 북한과는 5000만 對 1의 게임이다. 기적과 逆轉(역전)의 드라마인 한국의 발전을 뒷받침한 힘의 원천은 이런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고문은 국가 권력으로 이런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는다는 점에서 가장 反민주적이고 反국가적이며 反문명적이다.

 법정에서 만난 독자

 1971년부터 기자 생활을 해왔고, 사회부에서 경찰 출입을 하면서 고문과 誤判(오판)과 조작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1980년대의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인권이 시대적 話頭(화두)가 되고 그런 흐름에 맞추어 고문과 오판을 소재로 한 기사와 책을 썼다.
 
 1. 1981~82년 사이 월간마당에 연재하였던 김근하 군 살해 사건 수사의 조작 과정은 ‘신화 1900’이란 연극이 되었다.
 2. 日帝(일제) 때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고문과 조작의 악습을 남긴 고등계 한국인 경찰의 인맥을 정리한 논문은 그런 부분의 거의 유일한 자료이다. 1987년 한길사에서 펴낸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 수록되었다.
 3.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오휘웅 사건을 추적한 것이 이 책인데, 1986년 한길사에서 출판되었다.
 4. 1989년 3월호 月刊朝鮮에 내가 쓴 ‘李穗根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가 계기가 되어 이른바 위장귀순 사건에 대한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와 재심이 이뤄졌다. 2008년 12월29일 서울고등법원 제6 형사부(재판장 박형남, 판사 박선준 김상규)는 관련 피고인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상고를 포기 확정되었다. 이수근은 간첩으로 몰려 사형이 집행된 뒤였고 조카 배경옥 씨는 징역 20년을 살고 나온 후였다.
 
 이수근 사건 재심 재판정에 나는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재판장은 증인 신문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젊은 판사이던 시절에 읽었던 책의 著者가 증인으로 나왔으니 평소 궁금하였던 점을 물어보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례적 풍경이었다.
 가끔 좌파성향의 언론 매체 기자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오면 그 책을 거론한다. 그런 책을 썼던 기자가 요사이는 왜 그렇게 달라졌나 하는 식의 질문도 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사형폐지론자들에 의하여 자주 인용되는데 이 책에서 나는 贊反(찬반)을 유보하였다. 이 책은 꽤 유명해진 문장으로 시작된다.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본 사람들은 死刑存置論者(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지금 나는 사형존치론자이다. 형법에 死刑이 규정되어 있는데도 김대중 출범 이후, 즉 1998년부터 지금까지 몇 사람들의 恣意(자의)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수사 관행도 나아져 고문과 조작에 의한 오판과 이로 인한 ‘억울한 사형’ 가능성도 줄었다. 60여 명의 생존 사형수가 죽인 사람 숫자가 200명이 넘는다. 이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상 받는가?

 아직 살아 있는 책

 이 책을 다시 내기로 한 이유는 ‘아직 살이 있는 책’이라서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흥미로운 독후감이나 논평이 검색된다.

 1.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1986년 한길사에서 출간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등은 사실 한국 언론사에 남을 탁월한 탐사보도.”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2013년 7월 한겨레 인터뷰

 2. '그나마 법학과 관련 있어 보이는 재미있는 책들을 발견한 것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극우파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조갑제 기자가 우리 법 현실의 일부인 고문을 깊이 있게 고찰한 이 두 권의 논픽션은, 저자가 나중에 보여준 눈에 띄는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률가들이 필독해야 할 훌륭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김두식(경북대 교수),  《헌법의 풍경》(2004)

 3. '흉악범에 대한 분노의 감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흉악 살인범의 공판기록을 보면서 능지처참을 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 분노가 치민 경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형 폐지를 찬성하는가?
 1: 오판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피해자는 어찌해야 하나요? 동서고금 세계 곳곳에 법원/인간이 잘못 판결해 사형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그런 사례가 적잖았습니다. 조갑제씨가 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런 억울한 피해자입니다. 대한민국은 오휘웅이라는 한 존엄한 인간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
 2: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사형제도가 흉악범 발생을 줄인다는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법무부장관 때 먼저 사형제의 범죄예방 효과 여부에 대해 실증적 연구를 깊이 한 다음 폐지 문제를 결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천정배 전 법무장관의 페이스북 인용, 2012년 9월 5일 게재

 4. '사건이 있은 지 10년도 더 지난 후에 기사를 취재하는데 마치 어제 일어난 특종을 취재하는 것 마냥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발로 뛰면서 얻은 정보를 머리로 다시 한 번 종합하는 기자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단행본이다. 수사와 재판의 진행, 검사와 재판부의 허술한 논리를 반박하는 부분은 잘 짜여진 형사 추리소설 같아 실화만 아니라면, 그리고 무고한 이의 사형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소설이라 해도 좋을 뻔했다.'
- 등푸른 (대학교 신방과 학생으로 추정)

 5. '법과대학 시절 읽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늘 나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오휘웅은 사귀던 유부녀와 함께 그 남편과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사형집행 직전 최후진술에서 '엉터리 재판을 집어치워라. 내가 죽어 원혼이 되더라도 고문하고 조작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이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만약에 그가 고문과 조작으로 살인죄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살인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불행하고 끔찍한 결과의 밑바닥에는 '엉터리 재판'이 있다. 그곳에도 판사의 '오만과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조영호 판사(광주지법)의 수필 '오만과 편견'에서.

 넉 달 만에 쓴 책

 한국의 가장 힘 있는 職群(직군)인, 기자, 검사, 판사, 그리고 기자 지망생과 법률학도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책’이라면 29년만의 재출간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통하여 기자들에겐 심층취재의 방법론을, 법률가들에겐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행위’의 엄중함을, 그리고 모두에게 사실 확인의 한계와 어려움을 전해줄 수 있다면 목적 달성이다.
 이 책은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이 흐른 1986년의 넉 달 동안 써졌다. 41세 때였다. 그때 조선일보 출판국 소속 월간조선부 기자이던 나는 세 번째로 해직 기자가 된 신분이었다. 그해 2월호 월간조선에 ‘韓國 내 美 CIA'라는 긴 기사를 썼다. 미국 대사관에서 張世東 안기부장에게 항의를 하여 조사가 시작되었다. CIA 서울지부의 인원과 조직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었다는 불평이었다. 나는 사흘간 안기부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1976년, ‘포항 석유는 경제성이 의문시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쓴 후, 1980년 全斗煥(전두환) 정권에 의한 反정부 기자 정리 때에 이어 세 번째로 실업자가 된 것이다. 나는 복귀를 기다리면서 모처럼 얻은 여유로운 시간에 “책이나 한 권 쓰자”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취재와 집필을 동시에 해갔는데 넉 달 정도 걸렸다. 긴 글을 빨리 쓴 셈이다.
 1971년에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선배 한 분이 ‘기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하였다.
 “기자는 市長을 대하는 태도와 시청 수위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한다. 기사문은 짧고, 쉽고, 정확해야 한다.”
 여기에 나는 하나를 덧붙인다. 
 “글은 잘 쓰기보다는 많이 빨리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홈런을 치려면 스윙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죽은 오휘웅을 숨쉬는 인간으로 되살리다

 29년만의 재출간을 위하여 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독자들은, 나 자신이 대견해보이기도 하였다는 自畵自讚(자화자찬)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1. 200자 원고지 약200장에 볼펜으로 써넣은 글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사건의 深淵(심연)에 도달한, 입체적인 심층취재였다는 느낌이 새롭다.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쓴 기사일수록 좋은 글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1963년 11월23일 케네디 암살 사건을 즉석에서 기사화한 UPI 알버트 멜리먼 스미스 기자의 특종(전화로 부른 것)이 천하名文(명문)인 것은 절박함 속에서 全力(전력)을 쏟은 덕분이다.
 이 책에는 다른 사례들도 소개되어 있지만 모두가 본건을 돋보이게 하는 소재이다. 글이 흐르다가 지류로 빠지기도 하지만 항상 本流로 돌아와 주제를 강조하는 구조이다. 잘 써진 글은 잘 설계된 건축물 같이 美的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   

 2. 이 책은, 죽은 오휘웅을 숨 쉬는 인간으로 살려냈다. 나는 산 오휘웅 씨를 만난 적이 없다. 간접 취재로 '인간 오휘웅'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얻었다. 가족, 이웃, 변호인, 증인들, 형사, 판사, 교도소 직원들, 敎化(교화) 집사, 목사, 사형 집행인 등등. 검사, 판사는 사형이 확정되기까지의 오휘웅 씨만 보았지만 확정된 후 집행을 기다리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의 뒷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증언이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오휘웅을 활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복원하였다는 느낌이 든다.
 “저희들은 또 다른 재판관이란 생각을 한답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서류만 보고 선고를 내리지만 우리는 그의 운명이 확정된 뒤, 순수해진 인간의 모습에서 그의 인간됨을, 판사보다도 더욱 오래 관찰하면서 판단을 합니다. 오 씨가 억울하다는 데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생각이 있으니 저도 교화시키기가 참 힘들더군요. 참회하고 천국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요.”(김순자 집사)

 3. 이 사건이 좋은 예인데, 수사와 재판에서는 극단적으로 다른 類型(유형)의 사람이 만나는 경우가 많다. 엘리트와 힘없는 사람이다. 평생 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과 수시로 당하는 이들, 권력을 누리는 이와 권력에 눌리는 이들 사이엔 사물에 대한 이해의 斷層(단층)이 생긴다. 나는 이 점을 重視(중시)하였다. 경찰, 검찰, 정보부, 안기부에서 조사를 당해본 필자의 경험도 반영되었다. 

 한 세대만에 수천 년의 고문 악습을 제거하였지만

 4. 이 책의 키워드는 역시 拷問(고문)이다. 拷는 ‘매 때릴 고’인데, 매 앞에선 장사가 없다고 한다. 매를 견디는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매를 맞아본 적이 없는 판사들이 “뭘 그 정도를 가지고”라고 가볍게 보면 한 인간의 운명이 골짜기로 떨어질 수가 있다. 이 책에 실린 29년 전의 내 목소리는 이러하였다. 
 <고문을 이 땅에서 제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문에 의한 수사의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판사들과 수사관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인일 것이다. 이 두 집단이 제 구실을 하려면 사법권과 언론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민주화 없이는 고문도, 억지 수사도, 억울한 사형수도 사라질  수 없다는 얘기다.>

 5. 민주화의 진전으로 개인의 인권보호가 강조되면서 육체적 고문 풍조는 수사기관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감동하였던 대목이 이 부분이었다. 한 세대 만에 수천 년간 이어져오던 고문의 惡習(악습)을 휴전선 남쪽에서 거의 근절하였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라고 미화할 만하다.

 6. 하지만 정말 한국에서 고문이 사라진 것일까? 왜 검찰 수사를 받던 이들이 그렇게 여러 명 자살하는 것일까? 비행기 태우기, 물고문, 고춧가루 고문은 없어졌지만 정신적으로 피의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파괴하는 다른 종류의 고문, 별건수사로 불리는 먼지 털기 식 수사, 대통령의 지침이나 언론의 선동 보도에 끼워 맞추는 수사 관행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대통령, 언론, 여론, 선동은 고문만큼 정상적 수사와 판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인민재판이나 마녀사냥식 수사는 고문수사보다 더한 인간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육체적 고문과 조작의 악습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직 유효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인간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그 확신에 도달하는 절차를, 현대에서는 형사소송법으로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절차야말로 인간이 오판을 피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그 수많은 누명 썼던 사람들의 恨과 피가 스며 있는 지혜의 보따리다. 고문, 국가권력의 전횡, 재량권의 남용으로 이 절차가 무시된다면, 아무리 20세기에 이뤄지는 재판이라도 그 본질은 중세 암흑기의 재판과 같아지고 만다.>
 위의 글에 덧붙여야 할, '강요된 자백'에 못지 않는 誤判의 조건은 선동이다. 선동하는 기자와 선동당하는 여론과 선동에 영향을 받거나 굴복하는 판, 검사가 정상적 판결의 장애물이다. 특히 '법정구속'이 남발되고 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재발견한 아래 장면은 그림 같다.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긴 오씨가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사형장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 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검사는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고 한다.>

 이 순간엔 그 어떤 인간도 밧줄을 끊을 수 없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조차도. 제도가 구르면 멈출 수 없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趙甲濟
 2015년 7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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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저 자 : 趙甲濟 펴낸곳 : 조갑제닷컴 판 형 : 신국판 페이지수 : 448 쪽 출판일 : 2015년 7월24일 판매가격 : 20,000 수 량 : 1 2 3 4 5 6 7 8 9 10 15 20 30 40 45 50 60 70 80 90 100 250 10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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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와 언론인들에게 고전이 된 冊의 재출간! 기사를 쓰기 전에, 판결문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드는 책 “법과대학 시절 읽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늘 나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_판사 “한국 언론사에 남을 탁월한 탐사보도.”_기자 “잘 짜여진 형사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_학생 “대한민국은 오휘웅이라는 한 존엄한 인간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_법무장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사법제도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드물게 보는 공개 도전장이다. 저자는 참으로 놀라운 집념을 가지고 이 사건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_趙英來 변호사 기자, 검사, 판사, 기자 지망생과 법률학도들에게 古典(고전)이 된 조갑제 기자의 르포르타주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448페이지, 2만 원, 조갑제닷컴)가 29년 만에 재출간됐다. 1979년 9월13일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으로 끌려나와 돗자리 위에 앉혀진 오휘웅(당시 34세)은 “遺言(유언)이 있으면 하십시오”라는 집행관의 말이 떨어지자 마지막 말들을 쏟아놓았다.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알고 계십니다. 저의 유언을 가족에게 꼭 전하여 제가 죽은 뒤에라도 누명을 벗도록 해주십시오. 여기 검사·판사도 나와 있지만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엉터리 재판 집어치우십시오! 죽어서 원혼이 되어서라도 위증하고 고문하고 조작한 사람들에겐….” 1974년 12월30일 밤, 아버지와 두 아이가 목 졸려 숨진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다음날 두이분 여인과 오휘웅을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두이분 여인이 평소 정을 통해 오던 총각 오 씨를 시켜 남편과 두 아이(남매)를 죽였다는 것이다. 오 씨는 법정에서 두이분 여인과 경찰·검찰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항변한다. 두 여인은 1심 재판 도중에 자살했다. 오 씨는 1, 2, 3심에서 연달아 사형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된다. 진실을 향한 집념 10년 후, 오 씨의 유언을 전해들은 趙甲濟 기자는 수십 명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세월 속에 파묻힌 이 사건의 진상을 캐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드러난 수사와 재판의 적나라한 모습을 이 책에 담았다. 神의 법정에서 피고인석에 앉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조갑제 기자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한국의 가장 힘 있는 職群(직군)인 기자, 검사, 판사, 그리고 기자 지망생과 법률학도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책’”이어서 재출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기자들에겐 심층취재의 방법론을, 법률가들에겐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행위’의 엄중함을, 모두에게 사실 확인의 한계와 어려움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책속으로 |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긴 오 씨가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사형장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 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검사는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고 한다.＞ 이 순간엔 그 어떤 인간도 밧줄을 끊을 수 없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조차도. 제도가 구르면 멈출 수 없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p15, 재출간에 붙이는 머리글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 存置論者(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p22, 1장 집행장에서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오 씨가 왜 좀 대차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느냐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16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주로 경찰서 출입을 했고, 한 번도 경찰이 두렵다는 것을 실감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수도검침원이란 직업을 가진 한 서민이 경찰, 검찰, 법원이란 막강한 조직과 부딪쳤을 때 느꼈을 공포감과 무력감을 모르고 내뱉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p197~198, 4장 공판과 자살 필자에게는 지리멸렬의 극치로 보이는 이 말들이 오 씨에게 사형을 안겨줄 만큼 힘이 있었던 것은, 재판부가 그 말들을 ‘믿기로 했다는 점’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누구 말을 믿든지, 그것은 오 씨의 신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판사가 어느 쪽 말을 믿는가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명이 죽고 산다. -p213, 5장 재판장의 고민 자백이 어떻게 이뤄졌는가, 그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놀라운 무관심은, 상고심이 아무리 서류만으로의 판단이라 해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결핍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것 같다. -p266, 6장 사형 확정 오휘웅 씨 사건을 판단하는 상징적 낱말은 증언과 자백, 그리고 고문과 위증이다. 사형을 선고한 쪽의 논리는 공판정에 검찰 측이 증거로 제시한 증언과 자백이 신빙성 있다는 것이고, 피고인과 변호인 측의 주장은 고문과 위증에 의한 증언과 자백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문, 증언, 자백은 이 사건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길잡이 구실을 하는 세 낱말이다. 이것은 또 한국 경찰 및 검찰의 수사 풍토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p342, 10장 고문과 자백 한 인간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그 확신에 도달하는 절차를, 현대에서는 형사소송법으로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절차야말로 인간이 오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수많은 누명 썼던 사람들의 한과 피가 스며있는, 지혜의 보따리다. 고문, 국가권력의 전횡, 재량권의 남용으로 이 절차가 무시된다면, 아무리 20세기에 이뤄지는 재판이라도 그 본질은 중세 암흑기의 재판과 같아지고 만다. -p428, 12장 법정의 진실과 형장의 진실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토해내는 絶句(절구)가 있다. “하느님만은 아십니다.” 하느님이 아신다는 것은 영혼의 구원에 영향을 줄 뿐이지, 육신의 구원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나는 취재가 잘 안 풀려 답답해질 때마다, 가장 완벽한 증거인멸은 사형집행이라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오 씨가 살아있다면 이 대목의 이 의문점을 풀어줄 텐데…”하고 안타까워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 씨는 그의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생각해 보면, 한 인간이 죽음으로써만 자신의 무고함을 증거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 형장에서 진실이 드러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시화 씨와 그의 두 아이들, 그리고 오휘웅 씨의 명복을 빈다. -p431~432, 12장 법정의 진실과 형장의 진실 | 차례 | 재판 머리글│가장 힘센 職群(직군)인 언론인과 법률가에게 바친다 초판 머리글│ 1_ 집행장에서 2_ 경찰 수사 3_ 검찰 조사 4_ 공판과 자살 5_ 재판장의 고민 6_ 사형 확정 7_ 사형수의 神, 사형수의 法 8_ 항변과 저주 9_ 誤判(오판)의 조건 10_ 고문과 자백 11_ 하느님은 아신다 12_ 법정의 진실과 刑場(형장)의 진실 당돌한 도전의 기록―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_조영래 변호사 카틴 숲 학살사건과 ‘간첩’ 이수근과 조갑제 편집장_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趙甲濟(조갑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전 13권)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