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ekette bereket var.'
'하레케테 베레케트 발'은 '移動(이동)에는 풍부함이 있다'는 뜻이다. 유목민족인 투르크 족이 세운 오스만 터키의 후손들답게 '이동'의 생산성을 요약한 말이다. '이동'의 또다른 의미는 '자유'이다. 인간의 자유는 이동을 통하여 표현된다. 공간적 이동뿐 아니라 계층 이동, 의식 구조의 변화,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정신적 이동도 포함된다. 개혁의 본질도 좀 더 나은 수준으로 옮겨가려는 노력이므로 이동의 일종이다.
대한민국이 조선조나 북한보다 잘 사는 이유는 더 자유롭고 더 많이 이동한 덕분이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이 세계를 이끈 힘도 이동에서 나왔다. 물론 '이동'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역, 식민지 개척, 정복이다.
올해 89세인 전 유엔대사 朴槿(박근) 선생이 '자유 민주 보수의 길'(기파랑, 1만3500원)이란 책을 냈다. 지난 달 애국활동가 모임에서 朴 대사는 '나라가 걱정이 되어서 이 나이에도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진주사범, 서울대 철학과 출신인 老외교관은 자신의 책을 설명하면서 '요사이 중국에 대한 과대평가가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 되었다' 고 했다. 그는 과학 기술력의 한계와 자유의 제약이 중국의 결정적인 약점이라면서 절대로 세계 지도국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朴 대사의 책 뒷 면엔 이런 문장이 있다.
<구름같이 희미해지면서 사라져가는 각종 집단 위에 밤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이는 것이 있다. 바로 인류 역사의 주인공인 자유로운 개인이다.>
朴 대사는 名言을 남겼다.
'세계 역사를 훑어보면 당대의 패권국가는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습니다. 아테네, 영국, 미국을 보세요.'
아테네, 로마, 唐, 사라센,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무굴(인도), 프랑스, 영국, 미국의 역대 최강국은 각각 當代의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다. 한반도에서도 두 번의 전성기를 연 통일신라와 대한민국은 當代의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다. 몽골도 전쟁은 잔혹하게 하지만 통치는 너그럽게 하였다. 부패한 나라와 깨끗한 나라가 싸우면 前者가 이기고, 자유로운 나라와 부자유한 나라가 싸우면 자유로운 나라가 이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소련에, 영국이 독일에, 신라가 고구려에 이겼다.
국가에서 자유는 몇 가지 행태로 표현된다. 자유의 속성인 개방, 경쟁, 관용, 기동성이다. 개방하고 경쟁하면 외국과 교류하면서 돈을 벌게 된다. 돈이 있어야 强軍(강군)을 유지할 수 있고, 강군이 있어야 자유와 독립을 지킨다. 富國强兵하는 나라는 과학기술과 행정력이 발달하고 국민들도 실질 강건해진다.
세계사는 말을 잘 타는 민족(몽골, 투르크 등)과 배를 잘 모는 민족(바이킹, 네덜란드, 영국 등)이 정복전쟁이나 무역을 통하여 패권을 이어갔다. 속도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 속도는 말, 배, 소총, 전투기, 미사일, 인터넷으로 표현 방법이 변해갔지만 본질은 같다. 속도는 시간과 공간을 장악하게 하는 媒質(매질)이다. 속도는 자유가 없으면 달성할 수가 없다.
역사의 주인공이 된 '자유로운 개인'은 다 존엄한 존재이다. 北에는 존엄한 존재가 한 사람이지만 남한엔 5000만 명이 있다. 50,000,000 vs 1의 대결구도이다.
........................................................................................
*일류국가의 공통점과 본질(2007년 12월, 강연록 요약)
一流국가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대통령부터 입만 열면 一流국가, 一流국가,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一流국가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一流대학, 一流대학 하다가 이제는 一流국가, 一流국가라고 하니 2류도 좋은 것인데, 한국에서는 一流가 아니면 다 못난 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 二流야’ 하면 화 안내는 사람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전부 一流 지향이에요. 야심이 많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한 덕분이죠. 一流국가를 제가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공통점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공통점이 전쟁을 많이 해 본 나라라는 겁니다. 전쟁을 많이 하지 않고 一流국가가 된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을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1868년 이후에 명치유신(明治維新·메이지유신)을 하는 과정에서 內戰이 큰 것만 세 번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청·일(淸·日)전쟁 했죠, 러·일(露·日)전쟁, 태평양 전쟁까지 한 여섯 번 했습니다.
독일은 후발국가(後發國家)입니다. 독일어를 같이 쓰면서도 분열되어 있다가 통일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독일통일의 주체세력이 된 프러시아는 나폴레옹과 전쟁했죠, 통일을 하기 위해 덴마크와 전쟁을 했죠, 오스트리아 하고 전쟁을 했죠. 그래서 독일 민족의 패권국가(覇權國家)가 된 다음에는 불란서로 쳐들어가서 普佛 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했죠. 통일한 뒤에는 그 엄청난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불란서와 영국은 말할 것도 없죠. 17, 18세기, 19세기에 온통 전쟁으로 세월을 다 보냈어요. 네덜란드 또한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상하게 전쟁을 많이 한 나라들이 一流 국가가 되었단 말이에요. 한국도 一流 국가를 내다 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 있었기 때문이죠.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一流국가 꿈도 못 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왜 전쟁을 통해서 一流국가가 만들어지는가? 여기에 국가나 인간의 상당히 오묘한 진리가 있는 거죠.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생존투쟁의 문제입니다. 인간이든, 군대든, 국가든 ‘나는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자신에 대하여 엄격해지고 진실해집니다. 말장난이나 명분론, 즉 헛소리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집니다. 내가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누가 친구이고 누가 敵인가를 먼저 가려 야 하고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고 모자라면 길러야 하며, 혼자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면 동맹을 해야 합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실력은 군사력뿐 아닙니다. 과학, 기술,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전쟁은 사람을 실용주의잘 만들고, 외교, 과학, 경제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전쟁을 하려면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라는 게 왜 생겼는가? 인간은 혼자서는 용감할 수 없는 거죠. 중대, 사단, 군단 이런 식으로 조직을 딱 만들어 놓아야 싸우지 혼자서 싸우라고 하면 다 도망가지 누가 싸웁니까? 그래서 군대란 조직이 생긴 거죠. 따라서 전쟁을 하면 사람들이 조직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이런 조직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키며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교육합니다. 전쟁을 많이 하면 조직을 운영하고 조직에 적응하는 人力이 생기게 됩니다. 이게 바로 기업과 연결되죠. 산업화와 기업은 사람을 조직하는 겁니다. 농사 짓고, 날품팔이 하고, 고기 잡고, 구멍가게 하던 시절에는 큰 조직이 필요 없었습니다. 조선조(朝鮮朝)말에는 단 50명의 월급을 주는 기업도 없었어요. 큰 조직이 없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6.25 전쟁을 거치면서 조직을 알고,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라는 일본계 미국인 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쓴 ‘신뢰(Trust)’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원래 유교 문화권에서는 사회적 신뢰가 잘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큰 기업이 생기지 않는다. 그 신뢰라는 게 가족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는 서로 믿습니다. 父子 사이에 차용서 쓰는 사람 있습니까? 가족만 벗어나면 살벌한 풍경이 전개되어 약속도 안 지키는데 가족 안에만 들어가면 약속 안 해도 다 지킨다는 거죠. 이런 데서는 절대 큰 기업이 생길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대기업이 대단하다.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사람이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서 커진 군대란 조직, 두 번째는 사회적 신뢰를 넓힌 기독교가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전쟁을 많이 해 본 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우선 전쟁을 하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 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오죠. 그럼 세금을 거두는 행정기관, 국세청 같은 게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세금을 걷어갈 수 있습니까? 국민들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경제를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맨땅에 머리 박듯이 해서 경제가 키워지고, 물건이 팔립니까? 과학이 있어야 되죠. 과학으과 기술을 발전시켜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되죠. 이렇게 되면 과학도 발전하고, 경제도 발전하고, 군대도 발전하죠.
그 다음에 전쟁을 한 나라는 전쟁을 해보지 않은 나라와 뭐가 달라지느냐? 외교(外交)를 잘하게 됩니다. 나라가 생존하려면 친구가 많아야 됩니다. 동맹외교(同盟外交)를 잘하게 되죠. 우리도 6·25를 거치면서 외교를 잘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이전에는 외교라는 건 오로지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 외교 하나밖에 몰랐는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6.25 전쟁이 끝날 때 韓美동맹을 맺는 아주 슬기로운 외교정책을 썼고, 또 朴正熙 대통령이 韓日 수교를 했고, 중동에 진출할 때도 우리 외교가 뒷받침을 잘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골수에 사무친 명분론(名分論)이 약화되고 실용주의(實用主義)가 강해지고, 또 사람들도 경제, 과학, 기술, 외교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강하게 되었다는 말이죠.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1950년대에 한국 사람과 약속을 하면 보통 30분 정도 늦는다고 해서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요사이는 10분도 못 기다리는 바쁜 사람들로 바뀌었죠.
一流국가는 다 전쟁이 만들어내었습니다. 전쟁이 적었던 나라, 예컨대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아프리카 나라, 동남 아시아(베트남 전쟁은 빼고), 남미(南美)에는 전쟁이 적었습니다. 전쟁이 제일 많았던 곳이 유럽 아닙니까. 그러니까 유럽에서 一流국가가 많이 만들어졌죠.
일류국가(一流國家)를 여행해보면 이류국가(二流國家)와 제일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一流국가에 가면 거리도 사람도 대체로 조용합니다. 二流국가, 三流국가에 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시끄러워요. 목청이 높습니다. 一流국가 사람들은 조용하고, 절도 있고, 말을 정확하게 하고, 글도 정확하게 쓰고 정직하고 깨끗하죠. 이것도 군사(軍事)문화와 전쟁을 많이 한 것 하고 다 연관이 됩니다.
우선 목청을 높여서 득 될 게 없죠. 미국에서 교통사고 났다고 해서 목청을 높이면 득 되는 게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그래도 목청 높이면 좀 득 되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요새는 차 세워 놓고 싸움박질하는 게 줄어들었습니다. 왜냐? 자동차 보험이 보편화되니 싸우지 않아도 보험이, 즉 제도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니까요. 미국은 총기소지가 자유로우니 목소리를 높여 싸우다가는 총을 맞을 수 있어요. 악수하는 습관도 우럽에서 ‘나는 총이나 칼을 가지고 있지 않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 아닙니까.
一流국가에는 또 국가 엘리트층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른 아주 엄격한 행동 윤리를 가지고 있어요. 얼마 전 일본에서 후쿠다(福田康夫)라는 사람이 새로 총리가 되고 내각이 출범했는데, 그 쪽도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죠. 일본의 장관들이 등록한 재산이 한국 장관들의 등록 재산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한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배나 되는 나라에서 장관들의 평균재산 등록액수가 우리보다 3분의 1밖에 안 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진국이란 돈과 권력과 명예가 다 분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권력을 탐하면 안 되고,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만 탐해야지 명예와 돈을 탐하면 안 된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권력을 탐내면 안 된다는 식이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성직자, 지식인들이죠. 문화 하는 사람들, 시인 이런 사람은 가난하죠. 가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영향력이 큰 것이죠. 기업인들이 명예와 권력까지 탐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거죠.
一流국가는 일류의 魂(혼)이 있습니다. 국가魂이 뭐냐? 사람에 정신과 혼이 있듯이 국가에도 魂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하면 큰 욕이죠. 무슨 일을 해도 두서가 없고, 천박한 상태를 혼이 없다, 정신 나갔다고 하죠.
일본의 國家魂은 무사도(武士道)이고, 미국에서는 플리머스에 도착했던 청교도 정신일 것이고, 독일은 게르만족의 어떤 신비한 생각일 것이며, 불란서는 박애(博愛)정신, 영국은 신사도(紳士道)겠죠. 이런 국가의 혼을 유지해 가는 그룹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별로 여론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여론에 의해 생각이 좌우되지 않고 어떤 고매한 이상과 국가이익 또는 종교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 그룹이 국가의 혼, 즉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의 큰 進路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고민합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傾聽을 하는 거죠. 일본에서 총리대신이 높은 것 같지만, 총리 대신이 무슨 연설문을 쓰려고 하면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한테 가서 꿇어 앉아가지고 ‘좋은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연설문을 부탁합니다. 국가, 국익만 생각하는 깨끗한 엘리트 그룹이 강해야 一流국가가 됩니다. 한국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엘리트 그룹이 형성되려고 하다가 좌파가 집권하는 바람에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중앙을 장악하지 못하고 사회 주변에 가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일본의 노보리베츠(登別)라는 마을에 갔더니 그 옆에 노보리베츠 다테 지다이무라(登別伊達時代村)라는 민속촌이 있었습니다. 이게 에도시대(江戶時代), 즉 도쿠가와 막부시대(德川幕府時代)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에요. 거기 가니까 사무라이館이 있는데 거기에 무사도(武士道), ‘Spirit of Samurai'라고 영어로 써놓았어요. 그 영어문장이 아주 근사해서 제가 번역을 해보았어요. 일본의 정신이 사무라이라고 하는데 사무라이, 무사도라는 게 뭐냐? 일본사람들에게 무사도가 뭐냐고 물어보면 ‘무사도란 죽는 것이다’ 이렇게 답을 합니다. 무사도는 어떻게 죽느냐라는 주제를 갖고 고민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반대가 뭡니까? 어떻게 사느냐죠. 즉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 자세를 무사도라고 한다’ 이런 뜻인데, 여기에선 꽤 길게 써 놓았어요. 한 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무사도(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신성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무사도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체현(體現)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무사도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선(禪)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禪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심사묵고(深思默考)에 의해 지(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조선(祖先)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 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무사도를 체현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 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 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대국(對局)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신(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이 마지막 문장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신(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사람이 신에 다가간다는 이 말이 종교적인 말인데,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짐승과 같은 야수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처럼 아주 자비롭고 온화한 마음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즉 인간은 짐승과 하느님 사이의 중간적 존재라는 거죠.
그러나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서, 하느님처럼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계속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것 이게 바로 종교성 아닙니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서 하느님을 닮아라, 또는 부처님을 닮아라, 알라신을 닮아라 하는 게 종교의 공통적인,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있는 가운데서 만들어 낸 예술, 건축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죠. 로마에 가면 항상 보는 성 베드로 사원, 피렌체에 가면 우리를 압도하는 두오모라 불리는 거대한 성당, 거기 가서 느끼는 게 뭡니까? ‘이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떻게 14, 15, 16세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이런 산더미 같은 건축물이 완벽한 디자인과 디테일과 마감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인간이 만들 수가 있는가? 불가능하다.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통해서 만드신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즉 사람이 하느님과 같은 절대자(絶對者·절대자란 것은 완벽한 존재란 의미입니다)에 다가가려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때로는 결투하는 심정으로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죠.
이런 종교적 심성(心性)을 가진 인간은 완벽한 수준으로 오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합니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고급종교가 없으면 一流국가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죠. 無宗敎 국가에서 一流국가가 된 사례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살했던 공산주의 국가가 망했습니까, 흥했습니까? 기독교의 뿌리를 잘라낸 북한은 야만상태가 되고 기독교, 유교, 불교가 공존하는 한국은 一流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이해할 때 이 武士道의 정신을 놓치면 이해가 안 되죠. 기독교를 모르고 유럽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어보면 ‘이 무사도가 종교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성(神聖)이라고 하는데 영어로 말하면 신성함 즉 ‘holiness’죠. 일본의 무사들, 그리고 그 무사들의 후손인 지금 일본의 지도층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어떤 마음 자세로 하느냐 하는 것을 이 말이 암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결투하듯이 최선을 다하는 거죠. 이런 절대와 완벽을 추구하는 종교성은 사무라이 정신과 바로 통합니다. 얼마 전에 캐이블 텔레비전 프로에서 일본 칼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게 있었어요. 마사무네(正宗)라는 장인(匠人) 집안이 代를 이어서 칼만 700년 동안 만들어오고 있더라고요.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000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데가 바로 도요타 아닙니까? 도요타가 올해 들어와서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가 되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GM을 능가하는, 매출액 규모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었어요. 도요타의 성공 비결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나온 책이 지금 서점에 가면 수십 권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 중에 한 권을 봤는데 거기서 느낀 게 바로 이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결투를 하든지 칼을 만들든지 회사를 운영하든지 뭘 하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最善을 다하고 책임진다는 그 자세가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들어내고 일류국가를 만드는 겁니다. 이게 종교적 심성이죠.
혹시 북경(北京)의 이화원이라는 데 가보셨습니까? 호수가 있고 서태후가 살았던 별궁도 있는데 굉장히 크죠. 거기에 감동이 있습니까? 성 베드로 사원을 보고 느낀 감동을 저는 이화원, 만리장성, 紫禁城에서는 못 느꼈습니다. ‘이건 사람이 만든 거다, 편의상 만든 건데 참 마무리가 잘 안되었다, 크기만 크다’ 이 정도죠. 거기에는 종교적 심성이 없죠. 권력자가 편의대로 만든 것이니까요. 우리가 석굴암(石窟庵)을 자랑하는 이유도 종교성, 절대성, 완벽성, 예술성과 관련됩니다.
거기에는 만든 사람의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聖德大王神鐘, 즉 봉덕사 종 에도 만든 사람의 정신이 들어가 있어 종을 치면 그 정신이 소리로 울려 나옵니다. 전설에 의하면 만든 사람이 자기 자식을 집어넣었다는데, 그건 뭐 야사(野事)이겠지만 사랑하는 자기 아이를 끓는 쇳물에 던져 넣어서 鐘을 만들 정도의 자세로 만든 것이 봉덕사 종,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이라는 거죠. 그런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가 一流국가였다는 증거입니다.
‘화랑도 정신이 살아 있었던 때, 호국 불교가 일어날 때가 바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예술혼이 살아 있었던 때다’는 여기에 일류국가의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종교, 전쟁, 예술이 인간의 능력과 자존심을 극대화시키고 富國强兵의 일류국가를 만듭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신라 삼국통일기에 호국불교가 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역할을 했느냐? 조선조(朝鮮朝)에서는 ‘돈 버는 것은 죄다, 청빈(淸貧)이 최고다’라고 했어요. 기독교 정신은 뭡니까? 열심히 돈 벌어라. 돈 버는 것은 죄가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쓰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즉 청부(淸富)정신이죠.
선진국 사람들은 조용하다고 했는데, 또 하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것이, 선진국 사람들은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적습니다. 생활이 심플(simple)합니다. 복장에서도 나타나죠. 세계에서 넥타이를 가장 많이 매는 나라가 일본, 한국입니다. 유럽에서는 점점 넥타이를 안 매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왕족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넥타이를 안 매는 정도까지 가 있습니다. 가끔 백악관에서 무슨 공연을 한다고 할 때 대통령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보신 적 있습니까? 다른 청중과 똑 같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근사한 자리를 맞춰서 앉히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중의 하나죠. 의자의 크기 가지고 인간을 차별하는 나라는 절대 一流 국가가 될 수 없죠. 의자는 의자일 뿐이죠. 그렇다고 해서 上下 구분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상의 상하 구분은 선진국이 더 엄격합니다.
한국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제일 골치 아픈 게 그 의자 배치 아닙니까? 의자의 순서를 놓고 구청장이 높으냐, 경찰청장이 높으냐 하면서 싸우고 자신의 의자를 잘못 놓았다고 뺨 맞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序列의식, 권위의식이 너무 강하면 一流국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회에서 내빈 소개 순서가 한 30분 정도 계속되는 걸 봤어요. 가만히 세어 보니까 반 이상을 소개하더라고요. 손님 소개가 아니고 자기들을 소개하는 거죠. 내빈 소개에 자기 이름이 빠지면 얼마나 원망을 하는지 아십니까? 내빈의 직함이 굉장해요. 반 이상이 회장, 위원장, 총재에요. 한국 사회에서 직함이 점점 더 권위적으로 변해요. 민주화는 脫권위주의인데 말입니다.
제가 평생 가장 감동했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저는 1988년 9월 17일 아침에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느꼈던 감동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서울 올림픽을 만들어 낸 힘도 일종의 종교적 심성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거죠. 서울 올림픽 게임의 定時 개최율은 역사상 최고입니다. 그만큼 경기를 완벽하게 운영했다는 뜻이죠. 서울 올림픽은 3000억 이상의 흑자를 봤습니다.
서울 올림픽 때 만든 시설이 꽤 괜찮지 않습니까? 올림픽 공원 근방에 사시는 분들은 설명을 안 해도 아실 것 같아요. 서울 올림픽 조각 공원은 동양에서 최고의 공원중 하나입니다. 거기에 세계적인 조각품들이 많습니다. 한 90억 원으로 만들었어요. 화가 한 분이 박세직(朴世直) 조직위원장한테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라는 게 멋진 브랜드이니까 세계의 유명한 조각가들을 초청해서 그 조각가들한테 ‘우리가 재료는 지원해줄 테니, 당신 이름이 남는 작품을 여기서 만들어놓고 가라’고 하자는 거예요. 조각가들이 돈 받고 만든 게 아닙니다.
돈도 많고 살기도 좋은 경남 창원에 가 보니 이 창원공단을 만드는 주역이었던 당시 경제수석비서관 오원철(吳源哲)이란 이름을 아는 이들이 별로 없어요. 一流국가의 또 하나 조건이 감사할 줄 안다는 거예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잘 되겠습니까? 一流국가일수록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축물이 많지 않습니까? 一流국가와 후진 국가의 차이가 뭐냐면, 一流국가에는 애국자들의 동상이 많고 후진국가에는 독재자의 동상이 많다는 거죠. 제일 동상이 많은 데가 미국, 불란서, 영국, 독일 이런 나라들 아닙니까? 미국 보스턴에 가면 하버드 대학 맞은 편 길가에 청동으로 기념물을 하나 만들어 놓았어요. 읽어보니까 뭐라고 써놓았냐 하면, 독립전쟁을 할 때 영국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이 독립군한테 이를 알리기 위해서 이 길 앞으로 지나갔다는 거예요.
일본의 니가타(新潟)에 가면 유자와 온천이라고 있는데 여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쓴 소설 ‘설국(雪國)’의 고향입니다. 거기에 雪國 기념관이 있어요. 거기에 가 보니까 판떼기가 하나 진열되었어요. 웬 판떼기가 박물관 안에 들어있나 해서 설명을 읽어보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 고마코(駒子)라는 기생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데, 영화를 찍을 때 여주인공역을 맡은 배우가 연기의 실감을 얻기 위하여 고마코의 모델이 된 실제 기생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추워서, 일본말로 고타츠라고 있죠, 그 온수통을 놓고 같이 발을 녹였는데, 그 때 온수통을 받치던 나무 판떼기가 이거다, 이렇게 써 놓았어요.
한국에서 창원사람들은 오원철이가 누군지 모르고, 트루먼 덕분에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젊은이들한테 설명을 해도 뭐가 뭔지 모른 채 멍하니 듣고만 있습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지 않으니 아직도 一流국가가 못 되고 있는 거죠. 一流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사람, 땀 흘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서 달달 외우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책으로 알려야 해야 합니다.
이러면 또 고액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액권 도안에 김구(金九) 얼굴을 넣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이승만(李承晩)을 넣겠다는 사람은 적죠. 그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마음가짐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一流국가가 될 수 없죠. 一流국가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一流로 올라갈수록 덕(德)이 있어야 되고, 고마움을 알아야 되고, 교양이 있어야 합니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대표선수가 지금 청와대에 들어가 있죠.
一流국가는 감사만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는 무서운 응징도 하는 나라입니다. 공동체의 적(敵)은 반드시 斷罪됩니다. 조국과 조상에게 배은망덕한 자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되고 감옥에 가야 합니다. 공동체에 도전하는 자를 용서하면 반란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자살하겠다는 거죠. 일본 사람이 빨리 죽고 싶으면 이런 자리에 와서 천황(天皇) 욕하면 됩니다. 특히 公人이 천황을 욕하면 혼이 납니다. 지방의 시장이 천황에게도 전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가 총을 맞았습니다.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천황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안 된다, 거기에 흠집을 내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고 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극우라고 하는 거예요. 김두한이가 한국의 마지막 極右입니다.
한나라당의 고위 간부 한 사람이 저하고 며칠 전에 통화를 하는데 제가 ‘왜 그런 아주 애매모호한 대북(對北)정책을 씁니까’ 하니까 그 사람이 ‘우리는 극좌(極左)와 극우(極右)를 탈피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극우, 극우 하는데 그 극우가 5% 같으면 피해야 하지만 그 극우가 40%다. 극우 맛을 볼 날이 올 것이다’. 극우란 용어를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은 그 머리에 좌파(左派)가 들어 있습니다. 이미 좌경적 세뇌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자꾸 한겨레신문, KBS 등에서 극우, 극우 하니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듣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이 극우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No revolution, No democracy. No war, No nation state.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고, 전쟁이 없으면 국민국가가 없다」
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고,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과 전쟁을 통해서 一流국가가 만들어지고 민주주의가 성숙된다. 이것이 역사다. 전쟁, 혁명 없이도 一流국가를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는데, 세계 역사를 들여다 보면 전쟁·혁명이 많은 데서 一流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도 지난 60년 동안 이것들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一流국가를 내다볼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4·19혁명, 1987년의 6월 혁명, 근대화 혁명, 5·16 군사혁명 등등입니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다 겪었으니까 우리도 一流국가가 될 수 있는 통과 의례를 마친 셈입니다.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왜냐? 혁명이란 것은 守舊的 가치관과 의식과 제도를 바꾸는 것인데, 기성질서를 바꾸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몇 번의 혁명이 있었어요. 地主계급을 없애는 농지개혁이라는 혁명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작품이죠. 이 위대한 지도자를 국민들이 나중에 ‘나라에 부담이 됩니다. 나이도 연로하시고 하니까, 비켜 주세요,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해서 밀어내버리는 4·19혁명도 있었어요. 그래서 40대의 젊은 기수 박정희(朴正熙)가 18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장기집권에 취해 있으니까, 역사가 김재규(金載圭)를 시켜서 62세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49세의 패기만만한 전두환(全斗煥)이라는 사람을 새로 지도자로 등장시키는 정변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혁명이 진행중입니다. 국민혁명, 의식혁명, 가치관의 혁명이 지금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른 혁명과는 달리 의식의 혁명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바다와 관계가 있는 국가에서 一流국가가 만들어집니다. 바다와 一流국가는 친하고, 내륙과 대륙이라는 말은 二流 국가와 친합니다. 一流國家群 세계사 속에서 쭉 훑어보면, 그리스·로마가 맨 먼저 一流국가였죠. 그때 만들어진 직접 민주주의, 원로원, 호민관, 변호사 제도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지중해를 內海로 하는, 바다와 친한 나라였어요. 이탈리아도 반도고, 그리스도 반도였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一流국가가 당(唐)나라죠. 당나라는 북방민족하고 한족(漢族)하고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합쳐져서 唐이라는 세계제국을 만들었는데 황제들은 보통 北方계통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은 중국의 역대 왕조중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며 해양적이었습니다. 唐을 해전에서 무찌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도 해양강국이었습니다.
8~10세기에는 이슬람 帝國이 一流국가였습니다. 특히 이슬람의 항해 기술이 대단하여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라비아 상인들이 통일신라와 무역도 하고 신라에 와서 살기도 했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라가 세계에 소개되었죠. ‘신라’라는 그 발음 그대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베니스는 중세 유럽의 해양강국이었습니다. 1000년 동안 한 번도 정변이 없었고 수도가 점령되지 않았던 영원한 一流국가였습니다. 13세기의 몽골제국도 一流국가였죠. 이 나라는 육상중심 국가였습니다. 15, 16세기에는 이스탄불을 무대로 했던 오스만 투르크가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 나라는 육상국가였는데 해군력을 길러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쳐들어가려다 fp판토 해전에서 스페인과 베니스 연합함대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서양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해양을 개척했습니다.
콜럼부스는 원래 해양도시국가인 제노바 출신의 선원이었죠. 이탈리아에서 해군이 강했던 나라가 베니스와 제노바였어요. 그는 포르투갈에서 항해 기술을 익히고,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죠. 15세기에 포르투갈의 엔리케라는 왕자가 항해학교를 만들어서 선원들을 길러냈습니다. 포르투칼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남미로 진출해서 자기 몸보다 몇 십 배나 큰 브라질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동양으로 와서 鳥銃을 일본에 전해준 것 아닙니까. 일본은 그 조총을 개량하여 戰國시대엔 유럽 전체보다 많은 총을 만들었습니다. 이 무렵 포르투갈 상인들이 조선에 조총을 전해주었으나 전쟁에 무지한 조선인들은 조총이 활보다 못하다 해서 외면해버렸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우리가 당한 거죠.
16세기는 스페인의 세기입니다.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바로 그해에 800년간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잔존 세력을 몰아냅니다. 서기 1492년 스페인 남쪽에 있던 스페인의 최후 거점 그라나다를 점령하여 800여년에 걸친 기독교의 수복운동이 끝났습니다. 800년 동안 스페인에는 이슬람 세력이 남아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오랫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다가 그 예쁜 알함브라 궁전을 남겨놓고 아프리카로 물러가면서 통일이 되었습니다. 한참 싸우다가 통일이 되면 에너지가 폭발하여 一流 국가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그런 피크 타임을 맞기 전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한 다음에 시너지 효과를 보면서 아마 一流국가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딛고, 전성기를 맞을 것 같아요.
16세기에 스페인은 통일을 한 다음에 國力이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南美, 北美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죠. 이 개척지에서 은을 가져와서 부자가 되니 근사한 건물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을 구경하면 16, 17세기에 만든 대단한 건물이 지금도 그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1년간 관광 수입으로 한 500억 달러를 벌고 있죠.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였습니다. 이 나라를 미국에서는 보통 저지대 국가(Low country)라고 불렀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붙어 있어서 우리는 베네룩스라고 하죠. 불란서에 가면 포도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이 있습니다. 부르고뉴란 공국(公國)이 있었어요. 公國이 하도 힘이 세어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 점령하고, 나중에 北上해서 베네룩스를 부르고뉴 사람들이 지배를 한 적이 있었어요. 포도주의 고향인 부르고뉴 지방의 도시, 예컨대 디종, 본느의 옛 건축물은 네덜란드풍입니다. 이때는 왕들이 결혼을 하면 나라를 선물로 주고 받던 시절입니다. 이 네덜란드 지역 통치권이 나중에 스페인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그 때가 종교갈등이 한창 때인데, 네덜란드에 신교(新敎)가 들어왔어요. 당시 스페인의 왕이 누구냐면 펠리페 2세, 영어로는 필립 2세라는 사람인데 ‘나는 가톨릭의 수호자다’ 해서 종교 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교도를 잡아들이고, 종교재판을 열어서 이단으로 몰아 불태워 죽이고 했습니다. 이때 네덜란드에 신교가 들어오니까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한 80년 동안 싸웠는데, 독립전쟁을 끝까지 끌고간 사람들이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들었고 중간에 포기하고 ‘우리는 독립 안 해도 좋다’고 했던 사람들이 벨기에로 남았습니다. 네덜란드는 끝까지 싸워 17세기 초에 독립을 쟁취한 다음에 힘이 넘쳐났어요. 그래서 바다로 갔습니다.
17세기 세계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안 간 데가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17세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설치고 다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선원의 유령이 모는 배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전설도 생기고 말이죠. 이들이 조선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습니까? 하멜(Hendrik Hamel)이라는 사람이 탄 배가 자카르타를 출발하여 대만을 거쳐서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길에 제주도에서 파선(破船)을 해서 30여명이 붙잡힌 거죠. 그 중에 8명이 탈출하여 일본 나가사키로 갔습니다. 하멜이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3년 전에 제가 하멜의 고향에 갔었습니다. 하멜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지역이 항구예요. 그쪽이 당진하고 교류가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를 한 번씩 읽어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저는 기행문을 많이 읽는데, 참 잘 읽힙니다. 특히 한국을 기행하고 쓴 글을 보면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봐요.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좋은 책 세 권이 ‘하멜 표류기’, 그 다음에 저번에 말씀드렸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란 책으로 일본사람이 중국을 기행하고 쓴 것인데 거기에 신라 사람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이란 책이 있어요. 이건 19세기의 한국을 기행하고 쓴 책입니다.
하멜 표류기를 읽어보면 이분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하멜이 감탄한 것이 교육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50세가 되어도 과거 시험을 친다, 과거시험에 평생을 건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조금은 못마땅한 눈으로 써놓았어요. 자기들은 배를 잘 몰고 총을 잘 쏘는 것을 최고로 아는데, 이 사람들은 매일 책만 붙잡고 비생산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고문도 많이 하고, 많이 뜯어가고 하는 관리들에 대한 비판도 많이 써놓았어요.
이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갔을 때 幕府 사람들이 취조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멜을 조사한 기록이 있어요. 형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듯이 일문일답으로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 사람들이 하멜을 통해서 조선의 사정을 알려고 책 한 권 분량의 신문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게 바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죠. 외국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는 좀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불러다가 구경이나 하고 구박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빼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서 鳥總도 만들고 합니다. 사람을 실용적으로 대하죠. 人材로 보는 것입니다. 조선은 인재를 죽였고 일본은 인재를 우대했어요.
네덜란드가 17세기의 覇者가 되어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18세기에 접어들면 네덜란드가 쇠퇴기로 접어듭니다. 나라의 운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기복(起伏)이 있습니다. 불란서에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은 태양왕 루이 14세가 60년 동안 통치를 하면서 전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네덜란드가 해군은 강한데 육군은 약하니까 제일 만만했죠. 불란서의 막강한 육군이가 막 쳐들어와서 네덜란드는 기를 펴지 못합니다. 이 나라는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 다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죠. 저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공통점이 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똑똑해요. 그 예가 바로 히딩크 감독이죠. 히딩크의 리더십은 네덜란드 사람의 野性과 知性, 즉 교양에서 나온 겁니다.
18세기는 프랑스의 세기입니다. 루이 14세가 관료 제도와 군대를 정비하고 확충하죠. 불란서는 유럽에서 농토가 제일 넓은 나라입니다. 미국 농촌과 불란서 농촌이 세계에서 가장 풍족합니다. 그 생산력을 기반으로 해서 루이 14세가 전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18세기의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하면 루이 14세를 봉쇄할 수 있을까’ 해서 영국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동맹을 맺죠.
전쟁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경제가 망가지고 서민과 귀족의 불만이 생깁니다. 이 불만이 18세기 말에 불란서 혁명으로 폭발하고 왕조가 타도되는 등 혼란을 겪다가 나폴레옹이 등장하죠. 이 나폴레옹이 15년 동안 전쟁을 해서 100만 명 이상이 죽고, 유럽 전체가 일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갑니다. 1815년에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지죠.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면 워털루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워털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굉장히 큰 데인 줄 알았는데 가보면 그냥 들판이에요. 한 10만 평쯤 될까요? 그 정도 들판에 양쪽 합쳐서 10만 명 군대가 모여서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 하루를 보낸 게 1815년 6월 18일입니다. 그 결전에서 나폴레옹이 지고 영국 웰링턴이 이겨서 세계 역사가 달라졌죠.
19세기는 영국의 세기죠. 불란서와 영국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서 서로 싸운 곳이 대체로 북미, 즉 캐나다와 미국에서였습니다. 결국은 해군력이 강한 영국이 이겼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캐나다의 퀘벡 주, 몬트리올 이런 데 가 보면 불란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래 불란서 식민지였던,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주는 미국이 독립을 한 뒤 제퍼슨 대통령이 사들였습니다. 북미를 상대로 영국과 불란서가 자웅을 겨루는 식민지 쟁탈전을 하다 영국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그 작은 섬나라가 19세기에 세계의 4분의 1을 제패하게 되었죠. 특히 인도 같은 나라를 지배해서 100여 년 동안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어요.
무엇으로 그렇게 성공했느냐? 첫째가 섬이기 때문이죠. 영국의 외교정책은 유럽에서 패권국가가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이었죠.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틀림없이 유럽을 통일해서 영국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자기들끼리 싸우게 해서 유럽을 갈라놓아야 한다>
즉 유럽에서 패권국가가 나타나면 안 된다는 그 정책을 최근까지 유지해왔습니다. 유럽의 강국이 도버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할 만한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 번도 점령 당한 적이 없죠. 불란스 노르망디에 있던 바이킹 족(族)이 도버 해협을 넘어가서 지금의 영국을 점령한 이후 천년 동안 영국은 한 번도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천년 동안 수도가 점령되지 않은 나라가 세계에 세 나라가 있습니다. 베니스, 영국, 신라의 경주입니다. 수도를 잘 정한 나라였죠. 이러다가 독일이란 강적을 만난 것 아닙니까?
독일의 통일과정과 한국의 통일과정은 참 비슷한데, 독일이 19세기와 20세기 두 차레 통일한 것이 우리에게 참고가 될 거예요. 게르만 족(族)은 워낙 용감하다고 보니까 귀족 부족 중심으로 해서 도시국가가 수십 개 있었습니다. 그 옆에 불란서가 있었는데, 그 불란서가 계속 독일을 분열시켜 놓으니까 통일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프러시아가 점점 커져서 워털루 전쟁 때는 큰 공을 세웠고 그 전에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名君들이 나타나 한 100년간 나라를 집중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프러시아가 점점 커집니다. 괴테 등 위대한 문학가들이 나타나서 ‘독일어를 쓰는 사람은 같은 민족이다’ 는 의식을 계속 심어주었고, 나폴레옹한테 크게 당하다 보니 ‘우리도 뭉쳐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시대정신이 생깁니다. 이를 이어받은 사람이 비스마르크, 몰트케, 그리고 두 사람을 쓴 빌헬름 1세, 이 세 사람이죠. 이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독일 통일을 위해 세 번 전쟁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덴마크하고 전쟁을 하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와 싸우죠.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守舊的인, 점잖은 나라였습니다. 이 오스트리아가 독일 민족을 대표하고 있었는데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 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게르만 족(族)의 챔피언이 오스트리아냐 프러시아냐를 결정하는 전쟁을 해서 프러시아가 이깁니다. 이겼다고 해서 비엔나를 점령한다든지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다른 독일 국가를 다 통합할 텐데, 여기에 간섭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나폴레옹 3세가 독일이 통일을 하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를 하니까 불란서와 싸움을 하는 거죠. 이것이 1870년의 보·불 전쟁이죠. 현대전(現代戰)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火力이 증강되고, 철도가 동원되어서 수십만 군대가 싸우는, 기존 전쟁과 다른 대규모 현대전의 개념이 태동한 것이 보·불 전쟁입니다. 불란서가 센 줄 알았는데, 전쟁을 해보니까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독일은 철도망이 발달해서, 병력을 집중시키고 이동시키고 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산업력이 뛰어난 독일이 나폴레옹 3세가 지휘하는 군대를 섬멸하고 파리로 쳐들어가서 포위를 했죠.
이렇게 되자 불란서는 내분(內紛)에 빠집니다. 결사항전이냐 아니면 항복이냐,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독일에 포위가 된 상태에서 파리 콤뮨이라고 하는 일종의 소비에크가 생깁니다. 파리 시청을 장악한 노동자 중심의 세력이 베르사유 궁전을 장악한 국회파와 싸워서 3만 명이 죽었습니다. 프러시아의 빌헬름 1세는 ‘이제는 프러시아의 왕이 아니고 독일제국의 황제다’ 해서 대관식을 올리는데 장소는 루이 14세가 만든 베르사유 궁전이었습니다. 불란서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치욕적입니까? 독일은 불란서의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자존심 강한 불란서 사람들이 절치부심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이 난 것 아닙니까? 1차 세계대전은 지금의 알자스·로렌 지방 등 서부전선에서 진지전을 오랫동안 하면서 불란서 20대 청년의 40%가 전사를 했습니다. 150만 명이 전사를 했죠. 불란서는 승전국(勝戰國)이 되었죠. 독일은 전투에서 망한 게 아니라 앞에서는 잘 싸웠는데, 등 뒤에서 공산당이 사보타주(sabotage·태업)해서 졌습니다.
여기에 원한을 품은 히틀러가 ‘내가 반드시 집권을 해서 유태인들, 저 반역자들하고 빨갱이들을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복수심을 가지고, ‘나의 투쟁’이라는 걸 썼고, 집권해가지고 책에서 하겠다는 대로 했습니다. 유태인을 죽이고 러시아로 쳐들어갔습니다. 종심이 깊은 러시아의 겨울에 걸려서 나폴레옹처럼 러시아 전선에서 녹아버렸죠.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동·서냉전이 시작된 거죠. 러시아 보고 강대국이라고는 하지만 一流국가라고는 안하죠.
영국이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힘이 다 떨어지다가 보니까 미국한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 뒤로는 미국이 세계 강대국이 되면서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되었죠. 미국이 20세기에 최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남북전쟁 덕분이었죠. 남북전쟁을 혹독하게 치러가지고 분리주의자들이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연방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전쟁을 통해 발달된 산업력을 팽창시키면서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 수 있었던 거죠. 남북전쟁 때 미국에서 60만 명이 죽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인구는 약3000만 명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레이건이 나타났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또 요한 바오르 2세와 대처,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1980년대에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바웬사라는 아주 용감한 노조 지도자가 반공(反共)노조운동을 벌이면서 폴란드가 중요한 역할을 해서 순식간에 소련, 동구권 공산주의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동구권(東歐圈)이 해방이 되고 지금 우리와 一流국가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들이 東歐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一流국가에 진입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한국, 대만, 이스라엘인데 이제는 라이벌이 세 나라 더 나타났어요. 헝가리, 체코, 폴란드입니다. 이 세 나라가 곧 쫓아올 거예요. 이 나라들은 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 경험도 오래 되고, 산업화의 경험도 오래된 굉장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이 공산당 물을 먹고 60년 동안 마취상태에 있는 사이에 우리가 앞장서 갔는데 요새 이 나라들에 가보면 정신을 차리고 역사의 힘으로써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一流국가를 두고 다투는 경쟁 국가가 일곱, 여덟 정도가 됩니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 그렇게 되려면 중국이 좀더 개명(開明)하고, 중국에서 한 번 혁명이 일어나야지요.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났지만 아직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너무 일찍 일어나서, 4·19 같은 사건이 되는가 했더니 鄧小平이 딱 정리를 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죠. 중국 사람들이 이제는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우리도 한국처럼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중국에서도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겠죠.
체제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죠. 一黨 독재체제를 민주화 체제로 바꿀 때 스무스(smooth·부드럽게)하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체제전환기의 혼란이 內戰상태로 갈 것이냐 아니면 한국처럼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바뀔 것인가 하는 건 두고 볼 일이죠. 체제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중국이 一流국가가 될 수 없죠. 중국 정부 연구소도 지금의 중국인들 생활 수준을 미국의 19세기 수준으로 보면서 一流국가가 되는 길은 요원하다고 느긋하게 생각합니다. 체제 전환기의 혼란으로 중국의 힘이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동양사람 입장에서는 중국이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슬기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민주화의 혼란도 큰 부작용 없이 수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어야 된다고 많은 국민들이 결정을 해서 ‘한국의 목표는 一流국가다’ 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죠. 이미 기업, 과학 분야는 一流국가의 문턱에 다리 하나가 넘어가 있죠. 그런데 나머지 발 하나가 一流국가로 들어가 있는 발 하나를 계속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이 또 다른 발 하나가 뭐냐? 바로 守舊좌파나 부패 보수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적 요소들입니다.
소위 지식인 사회, 사농공상(士農工商) 할 때 사(士)자 계급 있지 않습니까?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세력이 있습니다. 정치인, 지식인, 시민단체, 검사, 판사, 기자 같은 이들이죠. 한국 사회의 권력을 잡은 이들입니다. 관념론이나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고 글로벌 스탠드도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一流로 만들어야 되죠. 지금 세계 一流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기업이 아닙니다. 一流가 되어야 될 사람은 누구냐? 정치가 一流가 되어야 하고, 검사가 一流가 돼야 하고, 교수가 一流가 되고, 언론이 一流가 돼야 대한민국이 一流가 되는 것이지, 기업인은 더 一流가 될 필요가 없이 이미 일류고 과학자도 이만하면 한국이 괜찮습니다. 문제는 사농공상의 사(士)자 계급이죠.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사(士)자 계급에 속하네요.
이런 자가비판(自家批判)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제 一流 국가로 갈 수 있는 찬스가 왔습니다. 유권자들이 대한민국의 조종실을 장악한 반역좌파들을 선거로 몰아내고 정권을 되찾아오면서 민주주의의 힘으로 국가를 정상화시켰다는 점이 바로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士 부분만 一流가 되면 대한민국은 一流국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