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국가)에게 매년 20조 원 이상씩을 더 부담하도록 한, 국민연금 지급률 인상에 밀실 합의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수뇌부를 향하여 언론과 여론의 분노는 매우 거친 단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상배, 소매치기, 쿠데타적 사건, 저능아, 독재자, 정신줄 놓은 사람 등등.

어제 동아일보 사설은 與野가 합의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 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이 목표였으나 구조 개혁은 빠지고 현행 틀에서 수치 조정을 하는 데 그쳤으며, 새정치민주연합이 막판에 제기한,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2028년 이후 50%로 인상하는 방안을 새누리당이 덜컥 수용,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를 더욱 앞당길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2일 합의문을 발표하기 직전에 새누리당을 찾아가 “보험료를 두 배로 올릴 자신이 없으면 소득대체율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 요청했다. 문 장관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면 2065년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돈만 570조 원이 넘는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인한 절감분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50%는, 현행 9% 보험료율을 16.69∼18.85%로 인상해야 지급 가능한 액수라는 것이 복지부의 계산이라면서 현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해도 2060년경이면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는 거꾸로 가는 방안을 만들어 놓고 ‘재정 절감분 20% 국민연금 투입과 소득대체율 50% 인상’이라는 사탕발림을 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을 줄여서 국민연금에 보태 주는 것처럼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기금 고갈로 해마다 수조 원을 쏟아붓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라고 했더니 여야 정치인들은 2007년 4월 국회가 힘겹게 이룬 국민연금 개혁마저 후퇴시켰다. 이대로 시행되면 공무원 연금과 더불어 국민연금이 국가재정 파탄의 또 다른 뇌관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빚 폭탄을 떠넘길 수는 없다고 시작한 일이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포퓰리즘으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에게 향후 수십년 간, 수백 조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2000만 명을 넘는 연금가입자 등 利害(이해) 당사자의 의견 수렴절차 없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사람은 영장 없이 국민을 감옥에 보내는 이보다 더한 독재자이다.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도 못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언론의 자유, 선거의 자유, 私有 재산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밀실 합의는 국민기본권인 사유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일종의 쿠데타적 사건이다. 매년 23조 원의 추가 부담, 즉 국군을 하나 더 만들어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돈을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는 결정을 與野 의원 몇 명이 작당하여 할 수 있나? 국가를 부도로 몰고갈 정도의 천문학적인 금액과 관련된 합의가 몇 사람의 정치적 利害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것은 정상배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실감 나게 만든다.

1215년 6월15일 런던 근교에서 존 왕이 반란 귀족들과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체결할 때 핵심은 두 가지였다. 왕은, 귀족들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담시키지 않는다는 것, 자유민은 영장 등 적법절차 없이 체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는 여야 의원 몇 명이 800년간 이어져온 민주주의의 대원칙(국민 동의 없는 금전 부담 금지)을 무너뜨렸다.

문명국가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결정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이렇게 소수가, 이렇게 빨리 결정한 예는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이다. 재보선에서 이겨 인기가 오르니 국민도, 대통령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청와대를 향하여 질주만 하면 된다는 오만과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 아니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재보선에서 全敗한 문재인 대표에게 속았다고 변명하기엔 과오가 너무나 엄청나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잘 나갈 때 조심하라'인데, 김무성 대표는 잘 나갈 때 거의 치명적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수층의 이반과 여권 내의 분란이 예상된다. 김무성 대표는 자기 꾀에 속아 2017년의 좌파 정권 등장을 지원하고 있는 꼴이다. 보수가 보수적 정체성을 버리면 좌익의 노리개가 된다는 법칙이 새삼 확인되었다. 낭비적 복지확대는 보수적 가치가 아니다. 그가 만들려는 조국은 독일형의 통일강국인가, 아니면 타락한 그리스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빨리 對국민 연설을 통하여 수습방안을 내어놓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 국민들의 불만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대통령이 국민 여론과 헌법과 상식, 그리고 國益에 근거, 독재적 국회와 맞선다면 오히려 지도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再選(재선)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5년제 단임 대통령의 강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연금 改惡(개악)은 막아야 한다. 어중간한 합의, 합의를 위한 합의는 안하는 게 낫다. 좌익적 가치관을 가진 정치세력과 타협을 모색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수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악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국회가 관련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야합의 책임자들을 2016년 총선에서 낙선시켜야 한다. 국가이익 수호자로서 政商輩(정상배) 집단과 맞서는 대통령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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