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아래 기사는 허원근 일병이 자살한 게 아니고 피살되었으며, 軍이 이를 자살로 은폐하였다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뒤집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의문사위원회의 행태에 대한 근원적인 의구심을 갖게 된다. 자살을 타살로 뒤집으려면 그에 합당한 공정하고, 과학적이며, 끈질긴 사실확인 과정이 필요한데, 의문사위원회의 행태는 독재국가의 수사기관, 또는 봉건시대의 원님재판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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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팀 추적기 - 핵심 관련자 모두가 부인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그들만의 진실」


安容均

세상을 뒤흔든 의문사委의 발표


지난 8월20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한상범)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19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3연대 3중대서 사망한 許元根(당시 22세)일병 사망 사건에 대해 『許일병은 타살됐다. 현장에 있던 중대원뿐 아니라 상부의 조직적 개입으로 자살사고로 조작 은폐됐다』고 밝힌 것이다.

許일병은 부대 영내 廢(폐) 유류고에서 양쪽 가슴과 머리 등 3곳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들은 사건 당시부터 「자살하는 사람이 M16 총으로 세 발씩이나 쏠 수 있는가」, 「사고당일 휴가를 가기로 한 사람이 자살할 이유가 있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해 왔으나, 軍 당국은 수차례 조사를 통해 『중대장의 학대를 비관한 총기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의문사진상조사위는 軍 당국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의문사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84년 4월2일 許일병이 근무하던 부대 안에서 간부들의 회식이 있었다. 회식 中 중대장 전령이었던 許일병은 안주를 나르는 등 술시중을 들었고 새벽 2~4시쯤 회식을 하던 간부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술에 취한 한 하사관(현 副사관)이 실탄이 장전된 총을 집어 난동을 부리다 실수로 총이 발사됐고 許일병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져 숨졌다. 그날 새벽 4~6시 사이에 중대장(대위)은 곧 이 사실을 대대에 有線(유선) 보고했고 대대는 연대로 이 사실을 보고한다. 대대장이 아침 6~7시 사이에 사건이 벌어진 3중대로 올라와 중대장 및 현장에 있었던 간부들과 사건 대책을 논의하고 내려간다. 중대장은 현장에 있던 10여명의 사병들을 하나씩 중대장실로 불러 내무반에 흘러 내린 許일병의 피를 닦아내기 위해 물청소를 지시하는 등 할 일을 알려주고 알리바이를 조작한다. 오전 10~11시 당시 중대원들이 許일병 시체를 폐유류 창고로 옮긴 뒤 왼쪽 가슴과 머리에 1발씩 더 쏴 자살로 위장했다. 중대장은 오전 10~11시 총성을 듣고 창고로 가보니 許일병이 숨져 있었다고 허위신고한다>

의문사委가 발표한 당시 상황을 시간대 별로 정리했다.


▲1984년 4월1일 저녁(자정 전후로 추정됨)부터 4월2일 새벽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16소초장 장○○이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중대장 김○○, 소초장 장○○,선임하사 노○○은 중대본부 중대장실에서 진급축하 술자리를 가졌다. 김대위의 전령이었던 許元根은 안주를 준비하는 등 뒷바라지를 했다.

▲許元根은 술자리 도중 안주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중대장실에서 중대장 김대위로부터 질책과 함께 구타를 당했다.

▲이후 계속된 술자리 와중에 술에 취한 선임하사 노○○이 김대위와 말다툼을 했으며 화가 난 노○○은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내무반으로 뛰쳐나왔다.


「노하사관은 병사 3명을 걷어차다가 허일병에게 총을 쐈다」(의문사委 발표)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내무반으로 나온 노○○은 사병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책상 등을 걷어차고 許元根, 오○○, 손○○를 발로 걷어 차는 등 사병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손○○가 노○○을 말리자 노○○이 손○○를 밀어버리고 나서, 실탄든 탄창이 삽탄되어 있었던(노○○은 19소초에서 중대본부로 이동할 때 실탄이 들어있는 탄창을 삽탄한 채로 소총을 들고 이동했으며, 중대본부에서 탄창을 빼지 않았다) 자신의 M16소총을 들었다.

▲자신의 소총을 든 노○○이 중대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許元根을 개머리판으로 찍자 許元根이 팔을 들어 막았으며 그러자 노○○이 총을 쏘는 자세를 잡고서 『죽인다』고 고함을 쳤다.

▲그 순간 총이 발사되었고 총에 오른쪽 가슴을 맞은 許元根은 쓰러졌으며 오○○과 신○○이 쓰러진 許元根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노○○은 겁먹은 표정으로 한동안 총을 양손으로 잡고 팔을 내려뜨린 상태로 서 있었다

▲사건 당일 대대 상황실은 새벽(04:00~06:00)에, 연대장은 07:00쯤에 許元根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대대와 연대에서는 許元根이 사망(자살)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건 당일 許元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1대대장 전○○은 아침(06:00~07:00)에 사건 현장인 3중대 본부로 와서 중대장과 숙의 후 돌아갔다

▲대대장이 복귀한 이후 자살로 조작·은폐 행위가 계속되었으며 누군가가 오전 10:00~11:00 사이에 중대본부 밖에서 許元根에게 두 발을 더 쏘았다.


의문사진상규명조사委의 발표 다음날인 8월21일 대다수 언론이 「근무지 이탈 술판 숨기려 장교ㆍ하사관이 自殺 조작」이라는 제목으로 의문사委의 발표를 사실로 단정하고 비중있게 취급했다. 한 신문에는 「천인공노할 집단 타살 은폐」라는 제목의 社說이 실렸다.


국방부는 8월30일 『만약 사실이라면 軍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민간인과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조사단을 구성해 의혹을 풀 것이며 사실로 밝혀질 경우 당시 사건 담당자를 비롯해 관계자들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문사委의 너무나 엄청난 「진실」 폭로에 조선일보 사회부는 당시 사건 은폐를 현장에서 지휘했던 중대장과 총을 쏜 盧모 하사관 취재에 나섰다. 우리는 許일병 사건이 「상급부대의 조직적 은폐로 조작됐다」는 의문사위원회의 발표에 조금도 의문을 갖지 않고 있었다. 의문사委가 너무나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발표했고, 조작에 동원됐다는 사람들의 실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를 조작한 이들의 肉聲을 듣자


우리는 18년간이나 끔찍한 범죄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사람들의 肉聲(육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이 辯明(변명)이든 懺悔(참회)든.

당시 중대장 金모씨는 1999년 「이상한 죽음」을 했다. 8월21일 의문사委 관계자는 『중대장 金모씨는 1984년 사고 직후 군에서 불명예 제대를 당했고, 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살다 1999년 친구의 집에서 술병으로 객사했다』고 밝혔다. 취재결과 金씨는 아내와도 헤어진 후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았고, 일정한 거처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깊은 죄의식 때문에 인생을 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쯤 40代에 들어섰을 나머지 「조작 관련자」들의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의문사委의 발표 후 이틀이 지났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의문사委는 『현재 사건이 진행 중이라 당사자들의 신원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유일한 통로는 18년간 아들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故 許일병의 부친 許永春(허영춘·65)씨였다.

許씨는 혼자서 법의학 책을 독파해가며 군 당국이 내린 자살 결론을 반박하며 사건 관련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1987년부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 지회장을 맡아 다른 의문사 유가족들의 문제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의문사委는 중간발표를 통해 『이번 사건에는 허영춘씨의 노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8월20일 의문사委 발표장에서 처음 만난 許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의문사委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큰 키에 당당한 체구였다. 죽은 許일병의 신장이 당시로는 매우 큰 184㎝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발표 당일 許씨는 「아들을 죽인 사람」으로 발표된 하사관 盧모씨에게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진실만을 말해달라는 편지를 써 보낼 예정이다』고 말했다. 8월20일 許씨에게 『관련 당사자들을 만나 볼 수 없는가』하고 요청했다. 許씨는 『그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제3자로서 그 사람들의 신변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월21일 전화로 다시 요청했지만 許씨는 응하지 않았다. 우리는 許씨에게 『사건 직후 관련자들이 최초로 한 변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이 거짓이고 조작인지 확인하기 힘들다』고 설득했다. 許씨는 관련 사건 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를 알려줬다.


헌병대 조사기록에서 관련 장병 확인


許씨가 알려준 한 시민단체는 1984년 당시 許일병이 소속된 7사단 헌병대의 조사기록 사본을 보관하고 있었다. A4 용지로 300페이지 이상 되는 분량으로 3개 묶음으로 된 방대한 자료였다.

사건의 개요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부대원들의 진술서 許일병의 부검 기록 등이 있었지만 복사본이라 글자가 잘 안보이는 것이 많았다. 또 맨 앞장에 자료의 목록이 적혀 있지 않아, 전체 자료가 온전한 것인지 빠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헌병대 조서에는 의문사委가 밝힌 내용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진술서 중 흥미를 끄는 것은 의문사委가 당시 회식자리에 있었다고 명시한 張모 중위의 진술서였다. 그는 진술서에서 회식에 대해 적고 있었지만 싸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그는 당일 아침에 중대장과 함께 초소 순찰을 돌았고 오전 10~11시 사이에 두 번의 총소리를 들었다고 적었다.

다른 사병들의 진술서도 읽어 보았지만 회식에 대한 부분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당시 중대장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許일병의 신상명세서와 면담 카드도 있었다. 「내성적·말이 없음」이라는 글귀도 보였지만 「성실·순종적」이라는 글귀도 보였다.

흑백 복사본이지만 許일병이 사망한 곳에서 찍은 듯한 시신의 사진도 있었다. 가슴의 총상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앞 이마의 총상을 입은 모습은 흑백으로도 확연히 알아 볼 수 있었다. 부검 기록은 워낙 복사가 안돼 읽기가 힘들었다.

헌병대 사건 기록에 따르면 2일 오후 1시 20분쯤 밥을 타러 가던 부대원 두 명이 부대내 폐 유류고에서 許일병의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헌병대 사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죽은 김모 중대장을 제외하면 모두 13명이었다.

① 중대장 김○○(당시 대위):1999년 사망

② 소대장 장○○(중위):고등학교 교사

③ 인사계 박○○(상사):미확인

④ 관측 선임하사 이○○(하사):컨설팅 회사 근무, 의문사委가 밝힌 핵심진술자

⑤ 전○○(병장):학원 운영, 의문사委가 밝힌 핵심 진술자

⑥ 오○○(병장):신용협동조합 근무

⑦ 손○○(병장):중소기업 운영

⑧ 송○○(병장):회사원

⑨ 최○○(병장):미확인

⑩ 박○○(병장):미확인

⑪ 신○○(상병):슈퍼마켓 운영

⑫ 이○○(상병):미확인

⑬ 권○○(일병):자동차부품 대리점 운영

⑭ 안○○(일병):회사원


『당장 만나고 싶다. 할 얘기가 많다』


의문사委가 許일병을 쏜 것으로 밝힌 노○○ 중사의 기록은 사단 헌병대 기록에서 찾지 못했다. 의문사委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사단급에서도 이 사건을 조작했거나 아니면 그 이하 부대의 조작에 완전히 속았다는 증거였다. 노중사의 신원은 나중에 다른 경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당시의 주소 등 소재를 취재할 만한 단서가 있었던 사람은 장모 중위 등 9명이었다. 하지만 18년 전의 단서로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발표가 있은 지 3일째 되던 날, 제일 처음 소재가 확인된 사람은 ⑪ 신○○(상병)이었다. 신씨와 처음 연락을 취하면서 우리는 「엄청난 조작에 불가항력적으로 가세해야만 했던 그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신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어떤 언론사에든 연락을 취하고 싶었다. 당장 만나고 싶다.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신씨는 우리가 찾고 있던 인물인 ⑧손○○(상병)도 연락이 가능하며, 『원한다면 한 자리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만남은 지난 8월23일 늦은 저녁 경기도 안산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거의 폐인이 돼서 객사했다는 김모 중대장처럼 두 사람이 살지 않을까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은 신씨와 손씨를 만나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손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화학관련 중소기업의 대표이사로 있었고, 신씨 역시 안산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꽤 규모가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의문사委로부터 최소 여섯 차례 이상의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의문사委가 이미 무언가를 정해놓고 한 방향으로 자신들을 몰아 붙였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의문사委가 발표한 일들은 당시에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씨가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이다.


내가 허일병의 시신을 처음 확인했다


<▲1984년 4월1일 밤~4월2일 새벽

1984년 4월1일 밤 선임하사 노○○하고 16소초장 장○○ 중위, 중대장 김○○ 대위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대위가 큰 소리로 뭐라 하는 것은 들었다. 내무반 침상에 있던 우리는 모두 안자고 있었다(GOP는 현관에서 들어가면 왼쪽은 중대장실, 오른쪽은 인사계이고 더 들어가면 다시 왼쪽은 침상, 오른쪽은 행정계원들의 사무실이 있으며, 모두 20평 정도 된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마신 다음날이 허원근 일병이 사망한 날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의문사委에서 그랬다고 하니까, 그런 것 같다는 거다.

▲4월2일

2일 오전 9시 이후, 중대본부 요원들이 집합했다. 집합시킬 때 許일병이 같이 있었다. 중대장은 순찰을 돌면서 되도록 많은 인원을 데려가려 했다. 전령이었던 허 일병은 당연히 포함되는 것인데, 오○○(허일병 사수였음)이가 『얘는 오늘 휴가 출발이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 순찰에서 빠졌다.

16소초 주간 근무자인 성○○이 『중대본부 뒤에서 (총이 흙에 맞았을 때)먼지가 올라가면서 소리가 났다』고 보고를 했다. 전○○가 전화를 받았다. 얼마인지는 모르고 시간 간격을 두고 또 비슷한 보고가 왔다. 그래서 행정반 밖으로 나가 주위를 한번 휙 둘러봤다. 총소리라고 얘기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 안에서는 총소리를 못들었다. 이 시간은 2일 오전 10시쯤이었다고 생각했다.

권○○ 일병하고 이○○ 하사가 밥을 타기 위해 16초소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행정반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전령, 허일병 같은데, 저기 누워 있다』고 했다. 밥 타러 가는 시간은 보통 10시 이후다. 행정반에 있던 5~6명이 우루루 달려나갔다. 내가 기어가서 명찰을 확인했다. 許元根은 덩치가 컸는데 당시는 아주 작아보였다. 이마 쪽이 부어 있었다.

중대장에게 연락하기 위해 초소에 전화를 했더니 16초소와 14초소 사이에 있다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대장이 전화를 해서 내가 『許元根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중대장은 직접 보고하겠다고 했다. 중대장은 현장 확인 후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오전 11시쯤 중대 행정반에서 중대장이 대대장한테 보고하는 것을 봤다. 표정이 긴장된 것 같고 얼굴이 달아 올라 있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보고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중대에 왔다. 현장검증을 한다고 들었다. 저녁때쯤, 아마 副대대장이었던 것 같은데, 『헌병대로 내일 가야 하니까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4월3일 이후

점심까지 먹고 좀 늦게 사단 헌병대로 갔다. 가자마자 「매미」(영창의 철창에 매달려 「맴맴」하면서 매미를 흉내내는 얼차려)타고, 「원산폭격」도 했다. 한 4일 정도 계속됐던 것 같다.

조사는 취침시간(오후 9시나 10시)이 되면 우리 중대 행정계원을 한 명씩 헌병대 조사관실로 불러 조사를 받았다. 『니가 죽였지?』, 『니가 아니면 누가 죽여?』 『(2일) 아침부터 있었던 상황 그대로 쓰라』,『다른 병사들 기억하고 다르면 너는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잘못하면 내가 모두 뒤집어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3~4일쯤 이렇게 조사를 받은 뒤 사단 헌병대의 일반 보호소(경찰서의 유치장 같은 곳으로 그곳에서는 영창과 달리 바깥이 훤히 보이고 사단 상황실이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고 함)에 갔다.


『내가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고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겠나』


2~3일쯤 있으니까 중대장인 김○○ 대위가 그곳에 나타났다. 사복 차림이었다. 오○○에게 『미안하다』는 투의 말을 했다. 거기에 잡혀와 있던 전체에게 한 말인지, 아니면 오○○에게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대장이 들른 직후 헌병대 안에 있는 내무반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며칠간 머물면서 사역만 했다.

의문사위원회가 許元根에게 총을 쐈다고 한 노○○ 중사는 내가 제대할 때까지 한 1년간 3중대에서 같이 있었다. 그가 2소대 선임하사였고, 나도 2소대에 있었다.


▲許일병과 중대장에 대한 기억

許일병은 아주 호인이었다. 내성적이었던 것 같다. 묻는 말에나 대답할 정도로 말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3월쯤 소대에서 중대본부 행정계원으로 자릴 옮겼다. 김○○ 대위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괴퍅한 사람이었다. 가령 우리 행정계원이 밤에 자려고 하면 『다른 전우들이 야근을 하고 있는데 자서 되느냐』고 말해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우리야 고참이니까 대충 김대위가 자리를 비우면 잘 수 있었지만 「따까리(전령)」이었던 허일병은 고생했다. 낮에는 죽도록 중대장 따라다니고, 밤에는 4중대에 김대위가 고스톱 치러 가는 것도 따라가서 기다려야 했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3중대니까 김대위를 「제3공화국」이라고 불렀다. 하도 원칙도 없이 제 맘대로고 무서워서 그런 별명을 붙였다>

신씨는 『의문사委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했지만 의문사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의문사委에서 말하는 시간과 조금만 차이가 나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그런 엄청난 조작이 있었고 내가 그 일에 가담했다면 기억을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당시에 의문사委가 발표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신씨의 기억에 따르면, 의문사委가 許일병이 盧중사의 M16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2일 새벽 2~4시 사이에 총기 사고도, 이를 은폐하기 위한 조작도 없었다.


우리는 당시 신씨의 말을 들으면서 18년간이나 끔찍한 사실을 감춘 사람이라면 지금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완전히 접지 않았다. 우리가 그런 의혹을 제기하자 신씨는 『의문사委 발표가 정말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의문사委 말대로 내가 총을 쏜 것도 아니고, 사건 은폐야 「위에서 시킨 것」이라고 말하면 끝인데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라며 흥분했다.


의문사委의 조사실 풍경


신씨는 의문사委의 조사과정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2000년 초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라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바쁘니까 여기로 오라고 했더니 4~5월 어느 날 『안나오면 알아서 하라』고 강압적으로 전화를 했다.

결국 2000년 10월18일 처음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갔다.

조사관이 대뜸 『요즘 누구랑 연락하느냐』 『국방부 특조단에서 뭘 조사했느냐』 『당신을 중심으로 해서 당시 행정계원들의 말이 맞춰지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시작했는데 맞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질문 내용을 부인했더니 『애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언론에 實名(실명)이 나간다』고 위협했다. 또 『당신은 전혀 협조하지 않아 검찰에 가서 조사받고 재판도 받을 것이다. 한번 해봐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사받다가 『싫으면 그냥 가라』고 하기도 했는데, 무서워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조사를 끝내고 보내줄 때마다 『일주일 뒤에 봅시다』, 『한 달 뒤에 봅시다』고 해서 그 기간 동안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지난 6월말 마지막으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 의문사委 조사관 하나가 들어와서는 『밤에 선임하사가 술을 가져왔어. 술을 마시다 선임하사가 문을 박차고 나와서 침상에 앉아 있던 병사들 툭툭치고 다녔어. 손○○는 누워있었는데 선임하사가 발로 툭툭 찼지? 그래서 손○○이 『선임 하사님 왜 이러십니까?』라며 선임하사를 껴안았지? 그러다 許元根이 중대장실 앞에 앉아있는데 선임하사하고 許元根하고 실랑이가 붙었고 그 때 선임하사가 총을 쏜 것 아냐? 그때 너는 뭐하고 있었어?』라고 말하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없는 일을 어떻게 말하나.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다음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조사관의 질문들이 사실로 발표됐다』


『행정반 입구에 시멘트 바닥이 있는데 머리에는 총을 안맞고 가슴에만 총을 맞은 병사가 있었다는 진술이 있는데 이거 맞어?』

『행정반 입구 왼쪽에 핏자국이 있었는데, 이거 삽으로 뒤엎는 것 봤다는 애가 있어. 맞지?』

내가 『아니 왜 삽으로 뒤엎나, 코 앞이 계곡인데 핏자국을 삽으로 떠서 버리는 게 더 간단한데?』라고 반문을 했다.

기억에 하나도 없는 질문들을 조사관 3~4명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집요하게 물었다. 하도 물으니까 기억에 없더라도 『저 말이 혹시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집에 와서 정신을 차리면 정말 터무니없는 질문이었지만 어쨌든 요즘 나오고 있는 기사에 대해 내가 진술한 것은 없다. 내가 조사 받을 당시에 조사관들이 『이런 것 아냐』라고 묻던 것들이 그대로 기사화돼 나오고 있다.

조사관들은 이렇게 물었다.

『(2일) 새벽 3~4시에 행정계원 중 하나가 대대에 보고해서 대대 상황병이 대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들은 애가 3~4명이 있어. 새벽에 대대장이 허성식 하사라는 사람하고 같이 와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라며 역할 분담을 시켰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어. 맞지?』

『14초소 주간 근무자들이 「허일병 사망장소에서 누가 총을 2발 쏘는 것을 봤다」는 증언도 있어. 이래도 아니라고 할래?』

이런 질문을 받고 『아니다』고 하면 『남들은 모두 기억하는데 왜 당신만 못해?』라며 몰아세웠다. 그래 놓고는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얘기했는데 너를 포함한 3명이 말을 안하고 버티고 있다. 너희 세 사람은 검찰 조사도 받아야 하고 계속 우리에게도 불려와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마지막 조사를 받던 날 얼굴이 통통한, 과장으로 불리는 사람이 와서 『사고 당일 아침에 許元根이를 봤냐』고 물어 『봤다』고 대답했다. 과장이라는 사람이 『귀신을 봤냐? 許元根은 새벽에 죽었는데』라고 말했다.

내 말은 한마디도 안믿어주니 어떻게 해 볼 방법도 없고, 의문사委가 무섭기만 할 뿐이다>

신씨와 함께 나온 손씨는 당시 헌병대 조사 과정에서 현장 탄피를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 호되게 당했던 사람이었다. 당시 병기계였던 손씨는 許일병이 사망한 장소에서 탄피가 두개 밖에 안나오자(許일병은 세 발의 총상을 입었다) 숨겨두었던 다른 탄피 하나를 현장에 묻었고, 나중에 헌병대 조사에서 이 총알이 許일병의 탄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바람에 호되게 조사를 당했다.

헌병대 조사 기록에서 일반 사병으로 유일하게 견책조치를 받은 사람도 손씨였다. 손씨는 『허일병 사건이 있기 하루 전에 휴가에서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손씨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이다.

<▲1984년 4월1일

휴가를 갔다가 3월31일 복귀했다. 그 전에 사격훈련이 있었는데 병기계 담당이어서 소초마다 돌아다니며 1일은 탄피 개수를 세서 확인하는 일을 했다. 각 소초에 있는 것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일을 끝내고 들어갔더니 벌써 어둑어둑했다. 저녁은 20소초에서 먹고 들어간 것 같다. 내무반으로 들어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현관에 許元根 일병이 있었다. 어두컴컴한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아주 놀랐던 것 같다. 『추운데 왜 안들어가고 여기 있냐』고 했더니 그냥 있겠다고 했다.

그날 중대 간부들끼리 회식을 했다는데 기억이 안난다. 최소한 허일병이 죽기 전날 기억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4월2일

시간은 몇시쯤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행정반에서 가침 상태(침구를 깔지 않고 졸듯이 잠깐 잠을 자는 것)에 빠져 있었다. 그 안에서 내가 최고 고참이었기 때문에 누워서 쉴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더니 『총소리?』하고 말을 했다. 두 번 전화가 왔는데 두 번 모두 『총소리』란 말을 했던 것 같다. 만약 사실이라면 대대에 보고 해야돼 귀찮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고참인 내가 확인하러 나갈 필요는 없었다. 신○○이 밖에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 것 같다.

이○○ 하사가 밥을 타러 갔다. 얼마 후 이하사가 나타나서 『누가 죽었다』고 했다. 행정반에 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갔다. 누군가 다가가서 시체의 명찰을 확인했던 것 같다. 확실하게 점심을 먹기 전이었다.

얼마쯤 지나서 중대장이 우리를 집합시키고 탄띠의 탄알 개수를 맞춰보라고 했다. 나는 병기계라서 기억한다. 철책 근무자의 탄띠에는 105발인가, 75발인가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고참들은 그게 무겁다고 잘 안하고 다녔다. 중대장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곧 상급부대에서 부대의 일반 사항에 대한 점검을 시작할텐데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장○○ 중위하고 같이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총에서 탄창을 꺼냈다. 탄알을 세어보니 한 발이 모자랐다. 머리에 한 발, 가슴에 한 발을 맞은 것 같은데 탄창의 탄알은 세 발이 모자랐다. 내게 문책이 있을 것 같아 중대에 있던 탄알 한 발은 근처에 묻어뒀다. 너무 무서워서 엉겁결에 했던 행동이었다

얼마후 헌병대와 보안대가 들이닥쳤다. 나는 그날 오후 바로 헌병대에 끌려갔다. 헌병대 지프차에 가득 탔으니까 3~4명은 간 것 같다>


현직 고교교사인 장중위를 찾아내다


신씨와 손씨의 태도는 당당했고 무엇을 감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의문사委의 발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취재 목적에 수정이 필요했다.

의문사委는 발표 당시 『1명 이상이 확실한 진술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신씨와 손씨는 의문사委 조사과정에서 『은폐 조작이 있었고, 거기에 가담했다는 사람들과 대질 신문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을 취재한 후 취재의 중심은 4월1일 밤 시작했다는 회식 자리 참석자로 집중됐다. 당시 회식에 참석했던 사람은 중대장과 소대장 선임하사 3명이다. 중대장은 이미 사망했고 총을 쏜 것으로 알려진 선임하사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소대장 장모 중위였다.

장씨는 서울 노원구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8월22일 저녁부터 그의 집 앞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4시부터 12시까지 8시간을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부인에게 우리의 연락처를 전할 수 있었다.

다음날인 8월23일 장씨의 집을 다시 찾았고, 그가 현재 고등학교 교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씨는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신분을 노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만약 모든 보도를 사건에 대한 최종 발표까지 미룰 수가 있다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장씨와는 8월23일 오후 4시쯤 노원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중키에 안경을 썼지만 체구가 당당해 보였다. 교사라는 직업 때문이었을까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장중위 :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일은 없었다』


장씨는 『허일병 사건과 관련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전제하에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의문사委가 발표한 그런 일은 없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문사委는 내가 許일병이 사망했던 시점에 현장에 있었으며 사건 은폐에도 가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만약 의문사委가 현재의 내용을 가지고 최종 발표를 하고 나를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지목한다고 하더라도 없었던 것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말이 전부다』

우리는 장씨에게 당시 회식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물었다. 그는 당시 회식이 자신의 중위 진급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고, 중대장과 선임하사 그리고 자신 3명이 참석했다고 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1일 밤 11시를 넘어서 회식은 시작됐고 2일 새벽 2시쯤에 자신이 먼저 자리를 떴고 그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술자리에 참석했던 선임하사가 총을 들고 행패를 부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총을 들고 싸웠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총이 발사됐다면 내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그런 일이 없다. 내가 떠난 이후에 선임하사와 중대장이 더 술을 마셨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문사委가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장씨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4년 4월1일 새벽 2시까지

4월1일은 내 중위 진급날이었다. 아침에 대대에 가서 대대장에게 신고를 했다. 대대에서 근무하는 16초소까지는 길이 험하고 오는 길에 다른 초소의 동기들과 선임하사들에게 인사를 하다 보니 하루를 다 보냈다. 중대에 돌아와 중대장에게 인사를 하자 저녁에 진급축하 회식을 하자고 했다. 중대장과 사이가 별로 좋지도 않았고,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회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회식은 밤 11시 또는 11시 30분쯤 중대장실에서 했다. 당시 참석자는 중대장 노중사 그리고 나였다. 원근이는 전령이라 중대장실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중대장이 부르면 들어와서 심부름을 했다.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다. 중대장과 노중사가 작부집의 여자이야기도 했고 술 이야기를 했다. 음담패설도 했을 것이다. 싸움이 있었던 것은 모른다. 술이 취했으니 목소리가 컸을 수도 있다. 중대장이나 노중사나 성격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노중사도 FM은 아니었다. 건들건들하고 그래서 중대장하고도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회식은 새벽 2시 전후로 끝났다. 싸움이 있지도 않았고 특별히 고성이 오갈 정도의 싸움도 없었다. 나는 나와서 16초소로 돌아가 바로 잠들었다. 그때 노중사가 더 남았는지 아니면 다시 중대장과 술을 마셨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있었던 시간까지는 의문사委가 말하는 사고는 없었다. 자면서 총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내무반 안에서 근접사격으로 총을 쐈을 경우 총소리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총소리는 듣지 못했다.


의문사委는 나를 은폐조작 가담자로 몰아세웠다


▲4월2일 오전부터 許일병 시신 발견까지

오전 8시에 중대장한테 전화가 왔다. 오전에 초소순찰을 돌테니 올라오라고 했다. 짜증이 확 나서 잘 기억하고 있다. 중대장이 아침 일찍부터 초소순찰을 지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중대에 올라오니 중대 연병장에 사병들이 집합해 있었다. 중대장이 나오지 않아 올라가보니 중대장은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침상에 앉아 발을 닦고 있었다. 그때 수건을 들고 양말을 가져다 주는 사병이 있었는데 원래 그런 일은 전령이 하는 법이라 許일병이라고 생각했다. 난 의문사위원회에서 『2일 아침에 許元根을 본 것도 같다』고 말했다.

중대장과 함께 16초소를 지나다가 오전 10~11시쯤 총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좀 멀리서 들려서 연대 사격장에서 나는 소리인가보다 하고 중대장에게 말했다. 한 10초 후 총성이 다시 들렸다. 역시 비슷한 소리라 신경쓰지 않았다. 그날 따라 중대장이 별 쓸모없는 것까지 세세하게 검사를 해서 짜증이 났다. 다음 초소로 중대장을 인계하고 나는 16초소로 돌아왔다. 점심 식사 전인지 식사 후인지 모르지만 원근이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에 올라갔다. 중대에서 한 40m 정도 떨어진 둔덕으로 유류장으로 쓰던 곳이었다. 중대장도 있었다. 중대장은 나에게 내려가 소대를 맡으라고 했다. 혹시 공비가 내려와 한 일일 수도 있는 일이니까 소대로 내려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내려갔다. 내게 내려가라는 말을 한 중대장은 대대엔가 계속 전화로 보고했다. 사건 현장에 내가 처음 느낀 것은 핏자국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그후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고 별 의문점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조사를 받지 않았다.

▲의문사委 조사 과정

작년 7월부터 의문사委에서 연락이 왔다. 난 당시부터 「許일병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사를 도왔다. 지난 10월인가 의문사위 위원들과 許일병의 아버지와 함께 현장 검증에도 참석했다. 돼지 다리를 하나 가지고 가서 내무반 안에 들어가 직접 총을 쏘고 그 소리가 들리는지 어떤지도 확인했고, 총알이 발사되면 어디로 날아가서 박히는지도 조사했다.

그후 의문사委는 『내가 범행현장에 있었고 은폐 지시에도 가담했지 않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내고 흥분했다. 얼마전 신문과 방송을 읽고 의문사委가 나에게 질문했던 내용들을 기정 사실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로서는 좀 얼떨떨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내무반 안에서 총이 발사된 적은 없다. 의문사委도 두 가지 진술을 확보했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하나는 『노중사가 다 불었다. 「진작 이런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벌써 許일병의 부모님께 사죄를 했을 텐데」라고 털어놓았다. 왜 당신만 엉뚱한 사실을 말하는가』라고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시 중대 행정병이 『노중사가 총을 들고 설치자 내가 말렸고, 총을 쏜 노중사를 내가 데리고 나가 달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피가 튀는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겠느냐』고 항변했다. 아직 마지막 진술이 남아 있지만 나의 입장은 분명하다. 내가 보고 기억하는 것이 전부고 그것을 믿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알아서 하라고 할 생각이다. 난 여러 차례 『당시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있었던 사람들을 한데 모아 대질신문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세 명 외에도 우리는 ④관측 선임하사 이○○(하사) ⑤전○○(병장) ⑥오○○(병장) ⑧송○○(병장) ⑬권○○(일병)를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이들도 기억의 정확성에 차이는 있었지만 「1984년 4월2일 새벽 의문사委가 말하는 총기 사건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④관측 선임하사 이○○(하사)씨는 『의문사委가 종합적으로 조사한 것이니 믿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말을 하며 더 이상의 접촉을 피했고, 전화로 연락이 닿은 ⑤전○○(병장)씨는 『만약 신○○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시 상황에 대해 더 들을 것도 없다. 나의 이야기도 그 이상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그 이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강력하게 의문사委의 발표를 부인했다.


살인자로 지목된 노중사의 증언


우리가 만난 부대원 중 의문사委가 許일병에게 총을 쏜 것으로 밝힌 노○○ 중사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을 기억한 사람은 ⑥오○○씨였다. 당시 부대 최고참 중의 하나였던 오씨는 노○○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4월1일 밤에 간부들이 술을 마신 것 같다. 우리도 자지않고 있었다. 그날 밤에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의문사委에 갔더니 계속 「노중사가 총을 들고 행패를 부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너만 아니라고 하냐』고 다그쳐서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그랬겠죠. 그랬던 것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노중사가 지금 살인자로 몰리는 것을 보니 굉장히 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총을 쏜 사실은 없기 때문에 총을 들고 행패부린 것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발표 후 1주일째인 8월27일 의문사委가 許일병을 쏜 것으로 지목했던 노중사의 소재가 확인됐다. 7월15일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경기도 평택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었다. 그는 1984년 사고 후 4개월 정도 더 許일병이 근무했던 부대에서 근무했고 그후 부산의 기계화 사단으로 전출을 가 1998년까지 군복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중사의 증언


8월27일 오후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노씨는 6인실 병동을 쓰고 있었고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다른 환자들도 병실에 있었다. 노씨의 병상 옆에 놓인 수첩에는 「무료법률상담」이라고 적힌 메모도 보였다.

30분쯤 뒤에 나타난 노씨는 『기자양반 난 할 말 없소. 그냥 돌아가시오』라며 병상 위로 올라갔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화가 나 보였다.

한동안 돌아 누웠다 입을 연 그는 자신이 총을 쏘았다는 의문사委의 발표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노씨는 『내가 許일병을 죽였다면 왜 (軍 수사기관에서) 약식조사만 받고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겠느냐. 술자리 시점과 사고 상황 등이 내 기억과 다른데도 의문사委는 내 주장을 묵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중대장과 말싸움을 벌여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사실이고 주위에 있던 사병들에게 욕도 했지만 총을 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노씨는 『그날 새벽에 당시 내가 데리고 왔던 사병 하나와 내가 일하는 19소초로 돌아가 잠이 들었고, 4월2일 오후 2시쯤 중대본부에서 떨어진 19소초 수문공사를 하다가 중대장으로부터 「누가 죽었으니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니 許일병이 폐유류고 쪽에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병실의 다른 환자들의 눈치는 별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만약 내가 원근이를 쏘아 죽였다면 나 때문에 인생 망친 중대장이 죽기 전까지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겠소. 어차피 병들어 죽기 직전이었다면 한번쯤은 나를 찾아왔어야 되지 않소. 아니 내가 뭐 대단하게 이쁘다고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문단 말이요 』하고 물었다>


수사기관의 집요한 수사


당시 부대원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의문사委에서 밝히려고 한 내용의 대부분에 대해 사단 헌병대 등 軍 수사기관에서도 집중적으로 매달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軍 수사기관은 許일병의 사망 장소에서 발견된 세 발의 탄피 중 두 발은 죽은 許일병의 총에서 발사된 것이고 나머지 한 발은 당시 부대원이 중대장의 지시로 조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許일병의 당시 중대장이 許일병의 시체가 발견된 시간과 총소리를 들은 시간이 일치하지 않아 총소리를 들은 시간을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소초 상황병 송○○씨는 인터뷰에서 『시간대 조작 여부가 헌병대 조사에서 발각돼 혼이 났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8월28일 그간 취재한 당시 부대원들의 진술 내용을 기사화했다. 기사는 의문사委에서 발표한 핵심적 내용에 대해 당시 부대원들이 다르게 진술하고 있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보도가 나가자 의문사委는 8월28일 「許元根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고 조선일보의 보도에 유감을 표시했다. 의문사委는 「전체 상황을 말해 준 증언자는 분명히 있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당시 부대원 중 2명은 의문사委에서 진실을 밝혔고 우리는 이들에게 언론에는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따로 부탁했다.종합 조사결과 발표 때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의문사委 : 『언론 취재로 참고인들이 움츠러들었다』


의문사委는 이날 자료에서 「중간발표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에 기초하여 관련자들의 추가적인 진술을 얻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취재경쟁이 과열되면서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주요 참고인들에 대한 언론의 취재로 참고인들을 오히려 움츠러들게 하였다」고 밝혔다.

의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병 2명이 조사과정에서 결정적 증언을 했으며 진술서는 물론, 증언 과정을 녹화까지 해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녹화 테이프의 공개 시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의 신원과 증언 내용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9월2일과 3일에 걸쳐 실시되는 7중대 현장조사에 이들 2명이 동행할 것』이라며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許일병 사망사건과 관련 현장검증은 9월3일로 예정됐다. 우리의 관심은 핵심 진술자들이 나타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의문사委는 핵심 진술자들의 참석여부에 대해 『특정할 수 없지만 그들은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장검증 하루 전인 9월2일 의문사委는 이례적으로 「許元根 사건 2차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2차 보도자료에는 1차 때 공개되지 않은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진술들이 담겨 있었다.

이 자료에는 당시 내무반에서 핏자국과 물청소를 한 흔적을 보았다거나, 사건 당일 새벽에 대대장이 사고가 난 중대에 왔다갔다는 진술들이 있었다.

<당시 19소초원 이○○은 사건 당일 오전에 중대 본부에 들렀는데 내부반 안 이곳저곳에서 피를 목격했다. 내무반을 나와 현관 우측 모서리서 許元根의 시체를 보았는데 그 주위에서 피를 보았다>

<당시 14소초원 윤○○은 『당일 오전에 총성을 듣고서 중대본부에 올라갔는데 중대장이 무엇인가를 소각하면서 중대본부원들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했으며 중대본부원들이 내무반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닦고 있어 살펴보았더니 피였다』고>

<당시 16소초원 이○○은 『사건 당일 오전 근무가 끝나고 중대본부로 올라갔는데 내무반 현관 출입구 시멘트로 포장한 곳이 물에 젖어 있었으며 피자국이 있었다. 내무반에 들어가니 사람은 없는데 바닥은 물청소를 했는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당시 16소초원 홍○○은 『중대본부에서 許元根의 시체가 있었던 폐유류고로 오는 길목에 핏자국이 있었다는 말과 중대본부원들이 내무반을 물청소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許일병이 근무했던 곳이 물을 구하기 어려운 산꼭대기의 GOP라는 점을 고려하면 물청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진술들은 『직접 물청소를 했다』는 증언이 아니라 간접적인 증언들이다.


끝내 나타나지 않은 의문사委의 핵심 증인


의문사委는 핵심 증언자 2명이 이에 대한 진술을 했다고 밝혔지만 그들의 진술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당시 1대대 사병 배○○은 『사건 당일 06:00이 넘어서 대대장을 태우고 3중대에 갔다가 09:00~10:00 사이에 복귀했다. 3중대 사병으로 부터 사병이 머리에 총을 한 방 쏴 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당시 1대대 사병 최○○은 『사건 당일 새벽에 3중대로부터 「許元根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대대장이 06:10~06:20 사이에 운전병을 대동하고 3중대를 다녀왔던 기억이 나며 그 운전병이 3중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3연대장 김○○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1대대장으로부터 3중대장 전령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고 사단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許일병의 시신이 1994년 4월2일 오후 1시20분쯤 발견되었다는 헌병대 조사결과와 달리 대대장이 당일 아침부터 사고 사실을 사단에까지 보고했다는 이 진술들이 사실이라면 사단급 이상의 상부가 개입되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대대장 전모씨는 『새벽에 3중대에 간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9월3일 강원도 화천군 7사단 3연대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실지조사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핵심 진술자들이 나타나 의문사委가 밝힌 사실들을 공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오후 1시부터 시작된 현장검증에서도 핵심 진술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문사委는 『핵심 진술자는 오전 11시쯤 먼저 와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돌아갔다. 신원보호를 위해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검증은 의문사委 조사관들이 담당했다. 원래 두 명으로 예정됐던 핵심 진술자 중 한 명은 언론을 피해 오는 도중 다시 돌아갔으며, 나머지 한 명은 오전에 와서 따로 현장검증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許일병이 내무반 안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과정은 지금까지 의문사委가 밝힌 내용 그대로였다. 하지만 누가 쓰러진 許일병을 폐유류고까지 옮긴 후 두 발의 총알을 더 발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과거와 지형 지물이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문사委는 許일병이 2일 새벽 2~4시 사이에 처음으로 총상을 입었고 이후 오전 10~11시에 두발의 총을 더 맞았다고 밝혔다. 최소 6~9시간에 걸친 빈 시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 있지만, 의문사委는 『모든 것은 최종 발표 때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부검 기록은 許일병의 몸에 난 세 발의 총상에서는 모두 「생활반응이 있다」고 돼 있다. 이는 許일병이 세 발의 총알을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맞았다는 뜻이다. 만약 의문사委의 발표대로라면, 우측 가슴에 첫 발을 맞은 許일병은 그후 6시간 동안 살아 있었다.

단순한 사고사를 자살 사건으로 은폐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을 했다는 결론이 된다.

부검기록은 許일병의 시신에 난 3발의 총상이 모두 밀착사 내지 근접사에 의한 총상이라고 적고 있다. 총구를 바로 몸에 대거나 적어도 매우 가까운 거리서 총을 발사했다. 만약 누군가가 나머지 두발을 근접사로 쐈다면 그는 죽어가는 동료의 마지막 숨결을 느껴가며 방아쇠를 당겼다는 뜻이다.


의문사委, 「은폐 관련자」 밝히지 않아


한 법의학자는 『만약 누군가 사건을 자살로 꾸미려고 했다면 근접사로 쏴야 부검을 했을 때 자살로 판명난다는 법의학적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검증이 있던 날 許일병과 같이 근무했던 권○○씨와 통화를 했다. 그는 의문사委 홈페이지에 의문사委의 조사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의문사委가 총이 어떻게 발사됐는가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은폐가 이루어졌는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총이 발사되어서 사람이 죽었다면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의문사委에서는 모두가 은폐에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제발 18년 전의 몇시에 뭐했냐는 식으로 묻지말고, 어떻게 은폐가 됐는지 밝혀야 한다. 은폐한 것을 증명한다면 문제는 끝이다. 당시 사람들이 회식을 했는지 그 때문에 싸웠는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나. 하지만 은폐를 했다면 그것을 모를 리는 없지 않나. 하지만 난 은폐고 뭐고 그런 것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의문사委에서는 「그날 밤 사람이 죽었으니 거기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은폐를 했다」고 주장한다. 난 의문사委에서 시나리오를 짜고 언론을 이용해서 우리 중 누군가가 걸려들기를 바란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의문사委에서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는 9월10일이 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밝혀질 것이다. 그때가 돼서도 은폐에 대한 어떤 증거도 대지 못한다면 의문사委의 조사가 모두 엉터리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흥분한 권씨는 『의문사委도 국가기관이다. 자신들은 수사권도 없고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같은 개인에 비하면 엄청남 힘을 가지고 있다. 왜 그점을 모르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9월10일 오후 1시 의문사委는 許元根 사건과 관련해 최종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의문사委는 『許일병의 몸에 난 첫번째 총상과 두번째 총상 사이에는 최소한 6시간의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첫번째 총상은 술에 취한 부대 副사관의 오발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은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누가 許일병의 시신을 밖으로 옮긴 후 두 발의 총을 더 쏘았고 이후 상급부대서 어떤 식으로 은폐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황은 추정할 수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조사가 어렵다』고 밝혔다.


최종 발표, 이어지는 사건 당사자들의 명예훼손 소송


의문사委는 『핵심 진술자인 전모씨는 「사고 후 내무반 안에서 바닥청소를 했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1차와 2차 발표 때보다 의문사委의 발표 강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핵심진술자인 전모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의문사委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처리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며 다음 내용을 軍 특별 조사당국이 잘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8월20일 1차 발표 이후 사건 조사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으며, 이후 조사는 거의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위원회의 조사 활동 시한이 6일 전으로 다가온 현재 위원회는 許元根 일병 사망 사건의 풀지 못한 과제를 이후의 과제로 정리합니다.

(1) 2, 3발 총을 누가 쏘았으며, 왜 두 발을 더 발사하였는지 여부를 규명해야 합니다.

(2) 사건의 조작과 은폐를 누가, 무슨 이유로 지시하였으며, 어느 선까지 개입되었는가를 조사하여 규명해야 합니다.

(3) 軍 재조사 과정에서 자살로 결론이 다시 내려진 과정에 대해 규명해야 합니다.

(4) 軍 사망 사건 수사체계의 문제점을 교훈으로 찾아야 합니다」

의문사委는 자신들이 「분명한 진실」이라고 발표했던 사실들에 대해 軍 수사당국의 再조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8월20일 중간발표 당시 당당하던 모습에 비하면 초라한 결말이었다.

의문사委가 가지고 있는 許일병 타살의 증거는 오직 핵심 진술자 한 명의 진술뿐이다. 의문사委는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의문사委의 최종 발표 후 기자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그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곧 의문사委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의문사委의 조사를 받은 헌병대 관계자 2명은 이미 서울지검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그들은 또 시작될 軍 당국의 조사에 대해서도 기대감과 불안감을 표시했다. 한 관련자는 『하도 불려다니니 이젠 주위에서 이상하게 봐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나라가 하는 일인데』하고 말을 흐렸다.


의문사委의 유일한 핵심 진술자 전씨


핵심진술자 전씨의 소재를 확인한 것은 의문사委의 최종발표가 있던 9월10일 오후였다. 8월23일 처음 통화할 때만 해도 「만약 신○○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시 상황에 대해 더 들을 것도 없다. 나의 이야기도 그 이상은 아니다」는 말을 했던 전씨는 8월28일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간 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부대원들도 『그 사람하고는 연락이 안된다. 기자들보다 우리가 먼저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조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의문사委의 조사 내용에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던 친구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했다. 하지만 전씨에 대해서는 전주 어디선가 산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알려진 사실이 없었다.

운좋게 그의 집을 찾았지만 전씨는 집에 없었고 그의 부인하고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씨 부인은 「남편은 의문사委에서 진실을 말했다. 남편은 진실을 말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을 한동안 만나기 어려울 것이며 때가 되면 본인 스스로가 할 말을 할 것』이라고 했다.●